그곳에서 나는 악마가 되었다
2011년 충청도 모 보호시설에 자원봉사를 간 적이 있다. 학년 전체가 그곳에 2박 3일간 머물렀다. 나는 남자장애인과 알코올 중독자들이 수용된 시설에 배정되었다. 그곳의 화장실에는 타일마다 오래된 배설물이 끼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하지만 구역질 나는 광경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청소 시간이 다가왔다. 담당자들은 하나의 방에 쉰 명에 가까운 수용자들을 한 방에 몰아넣었다. 그들은 안에서 괴성을 질러 댔다. 나는 그들이 나오지 못하게 문고리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문이 살아 숨 쉬듯 덜컹거렸다. 담당자는 절대 열어주지 말라고 했다. 어린 나는 온 힘을 다해 문고리를 붙들었다.
청소가 끝났다. 문을 잡고 있던 손아귀에서 힘이 빠졌다. 동시에 엉켜 붙어있던 그들이 쏟아졌다. 복귀 시간이었다. 담당자들은 빠릿하게 걷지 않는 장애인에게 발길질을 하면서 욕설을 내뱉었다. 얼이 빠져 보고 있던 나를 보고 담당자들은 씩 웃었다.
“저 새끼들은 이래야 말을 알아 처먹어.”
보호시설이라는 이름의 지옥
90년 전, 먼 미국에서도 보호시설이라는 이름 아래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던 사람들이 있었다. 미국의 테네시 주(州)의 조지아 탠은 1920년부터 1950년까지 극빈층 가족의 어린아이들을 납치했다. 길거리에 아이들이 없으면 막 출산한 어머니에게 강제로 약물을 투여한 다음 아이들을 공급했다.
명백한 아동 인신매매였다. 하지만 탠은 입법부에 압력을 행사하면서 책임을 회피했다. 어른들의 은밀한 거리 때문에 수십 년간 3,000명이 넘는 아동이 영문도 모르고 사라졌고, 부모들은 울며 아이들을 찾아 헤매야 했다.
테네시 주의 이야기가 담긴 『당신의 손길이 닿기 전에』를 읽으면서 다시 충청도의 보호시설을 떠올렸다. 봉사를 마치고 그 요양동을 관리하는 신부를 만날 수 있었다. 예수의 가르침을 행한다는 그에게 물었다. 이런 식으로 운영되어도 정말 괜찮냐고.
“갈 곳 없는 불쌍한 사람에게 봉사하는데, 뭐가 문제지?”
하지만 봉사를 실천하는 그곳의 공기는 적막했다. 가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외마디 비명이 들려올 뿐이었다. 직원이 수용자를, 혹은 수용자가 수용자를 그렇게 두드려 팼다.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모든 수용자의 눈동자들은 어딘가 모르게 슬퍼 보이고 무기력했다.
인신매매범 조지아 탠도 비슷한 얘기를 한다. 그는 자신이 ‘가난한 가정의 아이를 상류층으로 만들어 주는 선행’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물쇠가 채워진 방 안에 갇혀 잠들었고 여러 사람이 씻은 구정물에 몸을 씻는다. 식사라고는 옥수수죽이 전부였다. 기본적인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그곳에서 폭행과 강간은 습관처럼 일어나고 하루에도 수 명의 아이들이 죽어갔다.
여전히 약자를 노리는 악마들의 “손길”
인신매매범 조지아 텐의 손길이 닿지만 않았더라면, 아이들은 그들만의 보금자리에서 행복하고 올바르게 살아갔을 것이다. 그 누구도 악마의 손에 넘어가지 않은 채 자신의 삶을 온전히 자신이 선택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충청도 시설의 수용자들은 어디로도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이미 가족이 없고 집이 없는 무연고자들은 자신의 나이를 잊었고 서로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어느 수용자에게도 정상적이고 명확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1930년에 있었던 테네시 보육원의 이야기를 다룬 『당신의 손길이 닿기 전에』는 실제 피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충격적인 진실을 폭로한 이 책은 34개국에 출간되면서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는 동시에, 아마존과 뉴욕타임스에 베스트셀러로 등극하였다. 전 세계 100만 독자는 어째서 테네시 보육원의 이야기에 감동하고 있을까? 그것은 아직까지 이런 일들이 현재 진행형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2018년, 이 땅의 또 다른 악마들의 ‘손길’은 여전히 약자들을 노리고 있다. 정부지원금과 후원에 기생하면서 힘없는 사람들의 불행을 부의 수단으로 이용할 뿐이다. 좁은 방에 갇혀 문이 부서져라 내리치던 약자들의 고성들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계속 들려오고 있을 것이다.
테네시의 비극은 끝났지만, 누군가에겐 여전히 구원의 ‘손길’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