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언론과의 인터뷰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면, 저는 부동산 버블을 부추기는 악당처럼 보입니다. ㅎ 간단하게 부동산 관련 의견을 정리했습니다.
Q. 집값을 결정하는 요인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선순위를 매기거나 비중으로 따지면 어떻게 정리될까요.
A. 가장 중요한 것은 공급이라 봅니다. 주택은 발주에서 공급(혹은 입주)까지의 시차가 긴, 다시 말해 리드 타임이 긴 상품입니다. 따라서 주기적인 공급 과잉(및 공급 부족)이 반복되는 특성을 지니며, 이 결과 경제 전체의 순환을 촉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대신 주택경기순환은 대략 15~20년 정도의 장기를 형성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두 번째로 중요한 요인은 수요겠죠. 인구변화나 (특히 국제) 인구이동, 금리변화, 소득 증감 등이 여기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요인은 정부가 어느 정도 평활화를 시킬 수 있기에, 공급이 미치는 영향에 비해서는 작다고 보여집니다. 예를 들어 수요가 급격히 치솟을 때 금리를 인상하거나 거래세(및 매매차익과세) 등을 인상함으로써, 수요를 잡을 수 있겠죠.
Q. 집값을 결정하는 요인 중에 우리나라가 해외 주요국 대비 갖는 특수성이 있을까요. 혹은 우리나라에서 일부 요인이 주택가격 결정에 비중이 높게 차지하는 특수적인 지역이 있을지요.
A. 2017년 1월 세계적인 경제저널 《American Economic Review》에 실린 카트리나 크놀 교수 등의 논문 「No Price Like Home: Global House Prices, 1870-2012」는 세계 주요 선진국 부동산시장의 실질가격이 우상향 흐름을 보였으며 특히 1970년대를 전후해서 급등하기 시작했다고 밝힙니다.
그리고 1970년대부터 주택가격이 상승한 이유로 바로 ‘철도 총연장’의 감소를 꼽았습니다. 한마디로 철도연장은 도시 택지공급의 확대 효과를 지니는데 이게 중단되거나 감소했다는 지적입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지속적으로 지하철과 고속철도망이 확충되었고, 이 과정에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집값 상승을 억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철도망의 확충 속도가 느려졌습니다. 신분당선과 9호선 그리고 SRT 정도를 제외하면 새로운 철도망의 건설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 GTX 등 새로운 철도망의 확충이 이뤄진다면 현재 소외된 2기 신도시도 다시 관심을 받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Q. 거시경제지표 중 국내 주택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혹자는 무역수지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주장하던데요.
A. 미국 S&P500지수와 가장 밀접한 연관을 맺는 것은 방글라데시의 우유값이라고 하더군요. 상관관계가 있는 것을 열심히 찾으면 결국 어느 것 하나는 얻어걸리겠죠.
무역수지는 1997년 외환위기 이전까지 한국경제의 사활을 건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무역수지의 만성적인 흑자 흐름이 이어졌습니다. 원화 가치가 저평가되고 또 기업들의 경쟁력이 개선되었으며, 무엇보다 기업들의 투자가 예전만큼 적극적이지 않은 게 무역수지 흑자 원인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주택시장이랑 어떤 연관을 맺을까요? 저는 ‘단순’ 상관관계에 불과하다 봅니다. 즉 ‘인과관계’라고 보기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래 그림처럼 부동산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핵심적인 지표는 주택공급 흐름이라 봅니다.
Q. 여러 요인을 살펴봤을 때 우리나라, 서울의 집값이 해외 주요국 대비 높은 수준이라고 평가하시는지요. 소위 말해 거품 논란인데 우리나라 일부 지역에라도 거품이 있다고 보시는지요. 있다면 어느 지역인지.
A. 다른 나라와 절대 집값을 비교하는 것은 덧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맨하탄 1급 지역, 예를 들어 센트럴파크가 내려다보이는 펜트하우스는 한 채에 수천억 원 합니다. 이게 비싼지 싼지 우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결국 다이아몬드의 가격처럼 ‘희소성’의 원칙. 더 나아가 세계적 부호들의 수요가 좌우하겠죠. 그처럼 지역마다 부동산시장의 가격을 결정하는 요인은 다 다를 것입니다. 런던이나 파리 같은 세계적인 인기 지역의 고가 부동산은 세계적 부호의 수집대상일 테니까요.
그런 면에서 결국 한국 부동산이 다른 나라에 비해 비싼지 싼지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봅니다. 다른 대안은 ‘버블지수’가 될 텐데요. 간단하게 말해 실질주택가격의 변화와 실질소득의 증가율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실질소득보다 실질주택가격이 더 많이 오른 나라는 아무래도 거품이 낀 것으로 볼 수 있고, 반대로 실질소득보다 실질주택가격이 덜 오른 나라는 거품이 덜 끼었거나 아예 없다고 볼 수 있을 테니까요.
아래 그림은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집계한 세계 주요국의 주택버블지수를 보여주는데, 제가 보기에 한국이 그렇게 심각한 버블이 낀 나라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Q. 과거 우리나라에서 주거복지 혹은 집을 장만하기 가장 좋은 시기가 언제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당시 비결(원인)과 현재에서 그때로 돌아갈 방법은 있다고 보시는지.
A. 지난 2~3년이 주택 마련하기 가장 좋은 시기였다고 봅니다. 아래 그림은 한국주택금융공사에서 발표하는 주택구입부담지수인데, 2014년 이후 최근 2~3년이 가장 부담이 적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주택구입부담지수가 90.1이라면, 이는 서울의 중간소득 가구가 서울 중간가격 주택을 구입할 경우 적정 부담액(소득의 약 25%)의 90.1%를 주택구입담보대출 원리금 상환으로 부담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지수가 상승할수록 주택구입 부담이 커진다고 보면 됩니다.
2000년대 후반에는 서울 주택구입부담지수가 180까지 상승했는데 지금은 100대에 불과합니다. 즉 소득의 25% 정도를 주택구입담보대출 원리금 상환으로 부담한다는 것이니 심각하게 주택구입이 어려운 상황은 아니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물론 지방으로 내려가면 이 부담은 더욱 작아질 것입니다. 서울 부동산이 지방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싼 것은 분명한 사실일 테니까요.
주택구입부담지수가 하락하려면 1) 주택가격이 하락하거나 2) 이자가 떨어지면 됩니다. 아! 한 가지 더 있군요. 3) 실질소득이 증가하면 됩니다. 이 중 앞의 두 가지는 힘들 테니, 마지막 소득 증가만이 희망이라 하겠습니다.
Q. 국내 소득계층별로 보면 저소득층의 자가점유율은 올라가지 않고 서울 집값 상승률이 특히 높아 주거 양극화가 발생합니다. 최저임금 상승으로 대변되는 소득주도성장과 4차 산업혁명이 주거 양극화의 간극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시는지요. 혹은 양극화 해소의 방법으로 생각한 게 있으신지요.
A. 한국경제는 대공장/대기업/정규직 문화가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대우 등 많은 대기업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서서히 이 부문의 비중이 줄어들죠. 그러나 여전히 압도적인 힘을 발휘합니다. 대기업들이 정규직을 채용했던 이유는 ‘장기근속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 주된 이유였습니다. 팀워크를 갖춰서 장기간 일하며 ‘학습효과’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기업들은 급격한 생산성의 향상을 이뤘습니다.
그런데 한국 대기업/중소기업 문제, 혹은 정규직/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이 시스템을 파괴하는 순간 대신 생산성 향상 속도의 저하라는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래 표와 그림은 최근 한국은행에서 발간한 자료에서 인용한 것인데, 한국은 선도 기업과 후행 중소기업 사이에 생산성의 격차가 심각할 정도로 벌어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문제는 대기업이 아니라 중소기업의 성장지체, 즉 피터팬 신드롬에 있다 봅니다. 이걸 손쉽게 해결할 방법이 있을까요?
따라서 한국 경제의 수출주도 성장, 특히 대기업 주도의 혁신 흐름이 지속되는 한 양극화 문제는 어쩌면 필요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정부가 재분배정책 등을 통해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경기의 부진이 심화된다 싶을 때 재정지출 확대정책을 펼쳐 저소득층의 빈곤 심화 문제를 완화해주는 정도가 해법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Q. 공공임대주택 확대, 임대주택 등록 의무화, 재건축 규제 강화 등으로 주택 수급 불균형이 심해질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한 생각은. 반대로 인구가 줄어드는 시기가 오면 집값이 붕괴할 수 있나요.
A. 인구가 감소하는 시기가 언제 올까요? 2005년 인구추계에서는 2018년으로 예측했습니다만 2016년 인구추계에서는 그 시기가 2032년으로 지연되었습니다. 기대수명이 연장되고 외국인 이주 인구가 급증한 탓이죠. 이런 상황에서 인구감소가 주택시장에 미칠 영향을 논하는 것은 맞지 않다 봅니다.
오히려 1인 가구의 증가가 가져올 주택에 대한 장기적 수요 증가에 초점을 맞추는 게 올바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최근의 주택착공 감소 흐름은 이후 주택공급의 만성적 부족을 가져올 수 있다는 측면에서 우려됩니다. 일각에서는 서울에 입주 물량이 많다고 지적하나 아래 그림에서 보듯 가구 수 대비로는 전국 평균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봅니다.
Q. 집은 어떠해야 한다 혹은 주택을 대하는 소비자와 투자자, 정부의 기본적인 입장을 어떠해야 한다는 철학이 있으면 부탁드립니다.
A. 주택 역시 ‘시장’에서 거래되는 재화라는 것을 먼저 인정하고 대책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주문에서 공급(=입주)으로의 시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 봅니다.
원문: 시장을 보는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