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피해자인 저를 보십시오. 제가 그들에게 ‘사냥감’이 된 이유는 아마 ‘남성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그들에게 판단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마초적이지 못하거나, 신체적으로 취약하거나 ‘여성스러운’ 언행이나 취미를 가지거나, ‘남성문화’에 동조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너무나도 쉽게 표적이 되고 있습니다.”
- 「#MeToo 교실 내 성폭력, 7년 전 저의 경험담입니다」, 경북대학교 대나무숲
경북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에 인상적인 글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남성 피해자’의 #MeToo였죠. 그는 고등학교 교실에서 남성 동급생들에게 성적 학대를 당했습니다. 학우들은 그를 도와주지 않았고, 교사도 대수롭지 않게 “괴롭히지 말라”고 한 마디 훈계했을 뿐 사건을 해결해주지 않았죠.
최근 #MeToo 운동의 대상을 ‘권력을 가진 자가 이를 이용해 약자에게 젠더 폭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한정하려는 움직임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이처럼 동급생, 혹 그와 같은 대등한 관계에 일어나는 젠더 폭력은 #MeToo로 고발할 수 없는 것일까요? 심지어는 분명히 더 높은 지위에 있는 여교사들이 남학생들에게 성희롱을 당하는 것은 ‘#MeToo’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일까요?
성폭력, 또는 젠더 폭력이라는 이름이 말해주듯이 여기엔 분명 젠더라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물론 젠더 폭력의 양상은 다양합니다. 남성이 여성에게 폭력을 자행하는 경우가 가장 많지만 여성이 남성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도 있고 위의 경우에서처럼 남성이 남성에게, 또 여성이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도 있죠.
이처럼 성별을 막론하고 누구든 젠더 폭력을 저지를 수 있다는 점에서, 어떤 사람들은 이 문제에서 젠더 문제를 탈색시키려 합니다. 권력이 문제지, 남성이니 여성이니 하는 젠더가 문제가 아니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위의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 피해자가 남성이었다 해서 여기에 젠더란 요소를 탈색시킬 수는 없습니다.
이 고발이 묘사하는 성적 학대에는 소위 ‘남성성’ ‘남성문화’ 등으로 불리는 어떤 문화가 깔려 있습니다. 다소 모호한 개념이지만 대강의 공통분모가 있죠. 조직을 우선하며 그 안에서 확실한 위계관계가 존재하고, 신체 활동을 중시하고 정적인 활동을 터부시하며, 성적 능력을 과시하고 성을 가볍게 여기는 것 등.
#MeToo 운동이 고발하는 성폭력 문제의 근간에는 분명히 ‘남성성,’ ‘남성문화’라는 신화가 존재합니다. 이런 문화로 인해 성폭력이 무겁지 않게 받아들여지고, 추태가 남녀관계란 이름으로 용인되지요. 물론 이건 모든 남성이 가진 특질이 아닙니다.
이 문화를 제가 신화라 칭하는 것은 이것이 실제로 남성이 가진, 또한 가져야 할 특질과는 관계가 없는 어떤 고정관념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남성은 조직을 우선하나요? 모든 남성이 신체 활동을 좋아하나요? 모든 남성이 성적으로 활발한가요? 이건 ‘남성성’이란 이름으로 사회가 남성에게 주입한, 때로는 강요한 고정관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남성문화’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폭력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남성문화’에 순응하지 못하는 남성은 도태되고 멸시당하며 심지어 직접적인 폭력에 시달리기도 하지요. 위의 사례처럼 성적 학대에 이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희롱과 추행, 물리적인 폭행이 늘상 일어나지요. 많은 남성이 자신이 ‘남성문화’의 폭력에 시달려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거나 아예 망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엔 별생각이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그렇다 보면 남자답지 못한 자신이 잘못이라고 생각하게 되지요. 가해자도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지만, 주변에서도 남자답지 못한 피해자를 ‘남자답게’ 만들어주려고 하고, 그걸 해결책처럼 제시합니다(맞습니다. 이건 마치 가스라이팅 같은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것은 ‘남자답지 못한’ 일이니 숨기고 부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잊고 살게 되는 거죠.
#MeToo 운동을 비롯해 성 평등을 지향하는 운동을 단순히 여성과 남성 간의 성 대결 구도에 가둬서도 안 되지만, 동시에 이게 ‘젠더 문제’가 아니라고 우겨서도 안 됩니다. 남성 피해자의 #MeToo 운동에서 이 이야기를 시작한 까닭은 이 이야기가 남성들이 망각해왔던 ‘남성문화’의 폐해를, 심지어 남자들끼리의 집단에서도 일어났던 그 폭력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남성문화는 엄존합니다. ‘남성성’의 신화 자체가 권력이 되고 성폭력의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그 존재를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건 남성이 죄인이고 타파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와는 다릅니다. 남성이란 성별이 아니라 사회에 의해 만들어지고 주입되어 온 ‘남성문화’라는 고정관념이 적일 뿐입니다. 이건 여성은 물론이고 남성도 겁박해온 구악이며, 남성을 위해서도 타파해야 할 적폐입니다.
원문: YEINZ.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