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어 리승환: 걸스데이 유라의 무브먼트를 좋아하는 종북게이.
인터뷰이 주현우: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로 일약 스타 좌빨에 오른 종북청년.
촛불시위가 던져준 작은 문제의식
리: 반갑다.
주: 나도.
리: 일베에 신상 털리지는 않았나?
주: 아직은 안 털렸다.
리: 내가 공개할 수도 있다.
주: ……
리: 당신이 쓴 대자보가 엄청난 속도로 퍼져 나가는 데 기분이 어떤가?
주: 대단치 않은 글이 자꾸 퍼져 나가서 당황스럽다.
리: 기쁘지 않나? 태어나서 최초로 스타가 됐는데.
주: 이런 글이 퍼져 나간다는 자체가 그렇게 기뻐할 일이 아니지 않나. 주목받는다고 다 같은 게 아니라 어떤 걸로 주목을 받았느냐가 중요한데, 성토 좀 했다고 주목받은 게 마냥 좋은 일인지 모르겠다.
리: 어쩌다가 대학 들어와서 이런 쪽에 관심을 갖게 됐냐?
주: 글쎄… 어쩌다가… 라고 하면…
리: 언제나 그렇듯 퀴퀴한 선배들이 술 사주며 꼬드겼나?
주: 그런 건 없었다. 내가 08학번인데, 2008년은 광우병으로 인한 촛불시위가 있었다. 일반화할 수는 없겠으나 우리 학번은 한 번씩은 촛불시위를 나가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리 학교(고려대)는 동맹휴업까지 했으니 나도 그 현장에 나가게 됐다. 그때 느꼈던 것 중 하나는, 여태까지 시키는 대로 할 거 다 하고 대학에 왔는데, 세상은 마냥 좋게 풀리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집회 좀 나갔다고 집에서 욕 먹은 평범한 청년
리: 답변이 참 원론적이다.
주: 실제로 그랬다. 여기 나온 사람들이 왜 이렇게 거리로 나왔을까? 이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런 원론적인 생각이 들더라.
리: 그런 질문을 하기에는 광우병 촛불시위는 특정 정치계층에 묶이지 않고 일반 시민이 모두 나온 시위가 아닌가?
주: 나에게 하나의 계기가 됐다. 당시 학내에서 진보신당 지지하는 고대생 모임이 있었고, 이들이 시위의 주도세력이 됐다. 그런데 여기 모인 사람들이 특정 정치적 성향에 묶였던 건 아니다. 당원이 아닌 사람도 많았고, 시위 참여를 강요하지도 않았고 대단히 느슨한 조직이었다. 그래서 현실참여는 하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고… 지켜만 본다고 해결되지 않겠지만 일단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리: 당신도 당원이 아니었나? 혹시 포섭을 위해 들어간 RO라거나…
주: 나는 조직도 없었다.
리: 이후 당신의 삶에 어떤 변화가 찾아왔는가?
주: 집안에서 이런저런 시위에 참여한 걸 들켜서 불호령이 떨어졌다. 평범한 집이 다 그렇듯 우리 집에서도 그런 활동을 경계했다. 나도 자연스럽게 위축이 됐다. 이런저런 사회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공론화하려 했어도 적극적으로 할 수 없었다. 특히 학교 밖으로 나가는 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학내에서도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후원 등 소극적 범위, 대부분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활동했다. 그것도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면 필요한 시기였다.
리: 다음은 군대에 끌려갈 차례다.
주: 그래서 2009년부터 2011년까지 군 생활을 했다. 군대에 있는 동안 천안함과 연평도를 겪었다. 2011년 2학기에 복학했는데 마침 희망버스가 있었다. 이제 군대도 다녀왔고, 집안의 경계도 있지만 스스로 판단해서 움직일 건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또 당시 희망버스도 광우병 수준은 아니지만, 참여 인원이 많았기에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은 아니었다. 뭐, 그게 또 들켜서 집안에 불화가 생기고 해서 상당기간… 2012년 초까지도 조용히 학교생활을 했다.
리: 뭔가 엄청나게 평범한 학생 같다.
주: 그랬는데 2012년 쌍용차 분향소가 박살이 났다. 분향소를 다 들어내 영정사진 등을 쓰레기차에 싣고 갔다. 그날 일과가 끝나고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현장으로 향했다. 가니까 너무 어이가 없더라. 철거는 철거고, 천막 쪼가리 하나 안 남겨두고 다 뺏다니, 이거 너무 웃긴 거다. 그때 알게 된 친구들, 당시 진보신당 학생들과 알게 되어 생각도 나누고 그랬다. 그러니까 요즘 말로 좌빨이 되어간다기보다 그때그때 상황이 나를 이렇게 형성한 것 같다. 물론 주체적 판단에 따라 의도적으로 행동했지만, 항상 그럴만한 상황이 있었기에 움직인 것 뿐이다.
리: 집안 이야기가 많은데, 집안 환경은 어떤가?
주: 전형적인 중산층이라 부를 수 있다. 또 그 중산층이 그렇듯 좀 불안하기도 했다. 아버지가 샐러리맨 출신에, 퇴사한 상태다. 당연히 경제적 문제가 없지도 않았고.
리: 이번 대자보에 따른 불화는 없나.
주: 그거는 뭐…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지금은 독립해서 살고 있어서.
리: 연락 오면 어떻게 대응할 건가? 또 군대 갈 건가?
주: 그냥 흘러가는 대로 맡겨야 할 것 같다.
자보를 쓴 이유: 써야 했으니까
리: 본론. 자보는 왜 썼나?
주: 아주 뻔한 이야기다. 월요일 일정 끝나고 저녁 늦게 들어왔는데 코레일 4,248명 해고가 떴더라. 말만 직위해제지, 나도 경영학과 학생이니 직위해제에 대해 배운 적이 있다. 옛날 IMF 이후 노동자를 해고해야 하는데 구실 없으니 직위해제 하는 것 아닌가? 하루아침에 파업으로 4천 명을 자르는 건 제정신이 아니라 생각했다. 원래 코레일은 이철 사장 때부터 만만치 않은 일을 겪은 적이 있다. 취업준비생 입장에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 생각했고, 이야기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리: 취준생 입장이라 하니 세대론이 떠오른다. 그 논리에 따르면 윗세대 자리 없어지는 건 청년 세대에게는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이기도 하다.
주: 나는 세대론을 경계한다. 그건 별로 논리적이지 않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부모 세대가 일자리를 놓지 않기 때문에, 우리 세대가 취업할 수 없다는 건 비상식적인 이야기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 그만큼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사회적 의무다.
리: 글을 쓸 때는 어떤 기분이었나? 제대로 열 받았나?
주: 오히려 담담했다. 역으로 그랬기 때문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던 것 같기도 하다. 이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최대한 진심을 담아 전달할 수 있을지, 사람들이 읽었을 때 타당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했다. 솔직히 내놓은 글 모두가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의도는 이해하겠다는 생각을 가질 글을 쓰고자 했다.
리: 그런 것치고는 뭔가 일필휘지로 쓴 삘이다.
주: 솔직히 그때 글이 잘 써지기는 하더라.
리: 대자보 문화에 대해 어이 생각하는가? 인터넷에 쓰면 더 많이 볼 건데 굳이 자보를 선택한 이유는?
주: 인터넷 공간이 여러 가지 장점이 있지만, 단점도 만만치 않다고 생각한다. 많은 이들이 소통을 이야기하지만, 인터넷은 다수의 익명성을 전제한다. 그래서 파장은 쉽게 일어나겠지만, 역으로 쉽게 잠재워지기도 한다. 사람들은 넷상의 글에 대해 신뢰를 하기 힘들고, 쓴 사람도 언행일치를 보이기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대자보는 한계가 뚜렷하다. 학교가 아니면 쓰기 힘드니까. 하지만 내 신분은 학교에 소속된 학생이다. 그런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간단한 일을 한 것뿐이다.
기성세대의 청년세대를 일반화하는 시각의 문제
리: 학생들이 관심 없는 주제에 대해 두루 언급했다. 그런데 정작 그 관심 없는 주제를 다 긁어모으니 학생들이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주: 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학생은 다 같은 학생 아니다. 청년도 마찬가지다. 학생은 이미 너무 파편화되어 일반화할 수 없는 집단이다. 나도 내 주변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안다. 하지만 학생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다.
리: 그럼에도 당신은 어떻게 하면 메시지가 학생들에게 먹힐까에 대해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고 생각한다.
주: 자기 자신이 직접 메시지를 만드는 것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생각을 처음부터 한 건 아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만드는 것, 판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안녕들 하십니까?”, 이 문구는 안녕하지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안녕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고 스스로 답을 구해 나온 문구다. 또 단순히 물음과 답에 그치지 않고 외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자보를 썼다. 각자가 스스로 자신이 직면한 묻고,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직시하면 문제 상당 부분은 해소된다고, 최소한 명확해진다고 생각한다.
리: 당신은 세대론을 부정했지만 ‘88만원 세대’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순간 논의가 흐려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 내가 글을 둘로 나눴다. 이유는 학교에 썼기 때문이다. 1번 이야기는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이야기다. 반면 2번은 내가 학교에서 하고픈 이야기였다. 2번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해 보자. 요즘 청년들이 패기 없고 실천하지 않는다고들 한다. 놀기 바쁘고 고생 안 하려 한단다. 이건 좌도, 우도 없다. 어느 쪽에서든 청년이 쓸모없고 무능력하고 방탕하다고 본다.
리: 이런 시각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주: 나는 이런 시각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세대는 일자리 풍부한 세상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일자리 얻지 못하면 비참해지고, 경기 안 좋으면 인생 끝장난다는 걸 눈으로 본 세대다. 이 세대는 나면서부터 경쟁으로 뛰는 사람들이다. 이걸 가지고 뭘 자꾸 하라는 건가? 그렇게 바쁘게 뛰고 노력하고 있는데.
리: 학생과 청년을 일반화할 수 없다고 했는데, 나름 자기 세대에 대한 상이 있는 것 같다.
주: 기성세대의 시각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각 세대는 모두 다른 청년기를 보냈다. 지금 청년들의 정치적 무관심은 그들 나름의 정체성이라 생각한다. 중요한 건 왜 그런지에 대한 구조적 문제를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시대적 상황을 겪어, 현재 어떤 상황인지, 그걸 지적하고 싶었다.
리: 글에 대해 SKY가 나서야 사회가 주목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주: 그럴 수 있는 환경이고,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게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걸 인정하지 않아서도 안 되고, 또 그런 말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글에서 ‘88만원 세대’를 이야기하면서도, ‘대학생’이라는 단어를 일부러 안 썼다. 우리 세대가 공통적으로 겪은 경험을 ‘대학생’의 경험으로 넘길 수는 없고, 또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가 대학을 대표할 수도 없다. 하지만 내가 한 이야기는 정서 차야 있겠지만, 스카이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물론 앞서 이야기한 문제가 있지만, 대립할 문제는 아니다. 그런 질문은 별도로 하고 여기에 대해 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질문은 ‘나’에서부터 시작해야
리: 졸업하고 뭐할 거냐?
주: 일단은 취업해야지. 물려받을 재산이 없으니, 일하지 않으면 먹고 살 길이 없다. 내 노동력 팔아 임금 받지 않으면 안 된다.
리: 이후 궁극적인 꿈이 있나?
주: 글쎄… 난 ‘뭐하며 살 것인가’라는 질문도 중요하겠지만, ‘그것을 왜 하느냐’라는 질문이 더 중요하다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하느냐’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와 ‘어떻게’는 사람들이 묻지 않는다. 그것도 사회적으로 강요된 부분이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일자리 갖기 바쁜데 그걸 어떻게 생각하겠나.
리: 굳이 결과물이 아니더라도, 어떤 방향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 정도는 있지 않은가?
주: 나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 상을 가진다고… 그저 어떻게 살 건지, 왜 그런 선택을 할 건지에 대한 물음 정도만 계속하고 싶다.
리: 마지막으로 아무거나 한 마디 해봐라.
주: 별로 할 말 없는데…
리: 치킨 사 달라거나 좌빨 만세라거나.
주: 그런 이야기 하지 않나. ‘생각 없이 살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라고. 그거야말로 가장 확실한 세뇌라고 생각한다. 왜, 어떻게, 무엇을…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그 모든 질문은 ‘나’로부터 시작했으면 좋겠다. ‘나’로부터 출발해서, ‘무엇’으로, 그리고 ‘어떻게’로 넘어가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는 거라 생각한다.
리: 끝?
주: 끝.
리: 아… 이어지고 있는 ‘안녕들 하십니까?’ 시리즈에 대한 소감은?
주: 이런 반응들이 내 글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제부터 인터뷰가 들어오는데 성실히 모든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그건 이번 일을 사건, 이벤트로 끝내지 않았으면 하기 때문이다. 이번 일은 내가 글을 잘 써서 퍼진 것도 아니고, 누가 최적의 멘트로 뿌려서 퍼진 것도 아니다. 물이 끓기 전까지는 아무리 열을 가해도 변화가 없다. 하지만 99도에서 1도만 올리면 수증기가 된다. 내 자보는 우연히 나온 하나의 방아쇠일 뿐이고, 이렇게 해서 터진 현상은 어떻게든 일어났을 일이다. 사람들이 말하고 싶은데 말 못하는, 분노하고 싶은 현실이 깔려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