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출근길 어떤 기분이셨나요? 몸은 천근만근 무겁고 도대체 언제까지 이놈의 회사를 다녀야 하나, 5월까지만 다니고 퇴사해야지, 놀고 싶다, 쉬고 싶다, 불로소득 하고 싶다… 등등의 생각을 하진 않으셨나요? 출근길이 힘든 이유는 육체적인 피로도 있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더 클 것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삶, 그것 자체가 지칠 수도 있고요. 혹은 일은 열심히 하지만 ‘무엇을 위해…?’라며 방황하는 마음 때문일 수도 있겠네요.
여기 “누군가의 출근길 표정을 바꾸자”라는 모토로 뭉친 스타트업 팀이 있습니다. 일주일 중 가장 피하고 싶은 월요일 아침과 주말을 앞두고 괜히 신나는 목요일 아침에 들을 수 있는 오디오 콘텐츠를 만드는 ‘왈이의 아침식땅’(이하 왈식땅) 팀이에요.
다양한 분야에 있는 스타트업 여성 분들을 만나기 위해 기획했던 ‘스타트업 여성들의 일과 삶(이하 스여일삶)’ 프로젝트 두 번째 인터뷰 주인공으로 왈식땅 팀을 만나기 위해 2월의 어느 날 혜화로 향했습니다. 왈식땅 팀은 미디어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투자하는 액셀러레이터 회사 ‘메디아티’가 제공하는 공용 사무실에 입주해 있었어요.
메디아티에는 닷페이스, 쥐픽쳐스, 긱블, 디에디트와 같은 다양한 미디어 스타트업이 동고동락하고 있었습니다. 회의실 한 곳을 빌러 왈식땅 공동 창업가 3분(노영은 님, 김지언 님, 권예솔 님)과 자리를 잡았어요. 약 한 시간 정도 인터뷰를 하다 보니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의 비결’이 뭔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죠. 지금부터 그 얘기를 전해드릴게요.
출근길 표정을 바꾸자!
먼저 ‘왈이의 아침식땅’이 어떤 서비스인지 간단히 설명해주세요.
왈식땅은 ‘출근길 표정을 바꾸자!’는 주제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구성된 팀입니다. 매주 월요일, 목요일 아침 8시에 네이버 오디오 클립을 통해 콘텐츠를 올려드리고 있어요. 메인 타깃은 2432 일하는 여성 분들이죠.
‘왈이’라는 강아지 캐릭터가 나오는데 이런 콘셉트 어떻게 만들게 되었나요?
3명의 공동 창업가 중 김지언 대표가 순수 미술, 저널리즘을 전공했는데 그가 만든 캐릭터입니다. ‘왈’이라는 이름은 공자 왈 맹자 왈 할 때 왈(曰)에서 따왔어요. 그리고 왈과 닮은 것 같은 강아지 캐릭터를 그려 만들어졌죠. 왈이는 항상 마음이 앞서는 강아지예요. 진심 어렸지만 뭔가 대강 대강하기도 하고, 구멍도 많고, 자기 맘대로죠. 하지만 자기 사람은 잘 챙기는 그런 캐릭터에요.
왈식땅은 주로 어떤 채널에 배포되나요?
네이버 오디오 클립이 메인이고, 카카오톡 ‘왈이의 아침식땅’ 플러스 친구를 통해서도 만나보실 수 있어요. 그 외의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채널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왈식땅에 대한 구독자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원래는 카카오톡을 통해 1:1로 문장을 보내드리는 서비스로 시작했었어요. 이때 1,000여 명 정도 독자가 있었죠. 그러다가 오디오 서비스로 형태를 바꾸게 되었는데 솔직히 저희 입장에서는 이탈에 대한 걱정이 많았어요. 그런데 기다려주시는 독자 분이 많더라고요.
독자 반응의 특징을 꼽자면 정말 자신의 이야기를 라디오에 사연 보내듯이 댓글로 달아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으려는 정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댓글에 대해서도 일일이 답변드리곤 하죠. 초반에 1:1로 커뮤니케이션하고 관계를 맺어와서인지 지금도 독자들과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왈식땅을 한 번 듣고 댓글도 남기고 하다 보면 잘 안 나가세요. (웃음)
왜 독자분들이 왈이를 밀접하게 느낄까요? 차별화 포인트는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일단 콘텐츠를 기획할 때 정말 친한 사람들한테만 이야기할 법한 소재를 화두로 먼저 뽑아요. 그렇게 사소하고 솔직한 얘기를 먼저 잡다 보니 굉장히 사적인 페르소나가 느껴지는 것 같고요. 차별점은 공적인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제일 친한 친구와 하는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 나의 진짜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 부담 없이 ‘왈’이에게 할 수 있게끔 하고요. 이렇게 맺어지는 관계를 통해 독자들을 알아가는 것도 재밌어요.
오늘, 지금, 어떻게
반응이 좋았던 주제나 에피소드는 무엇이 있나요?
만드는 입장에서 좋아했던 에피소드와 실제 반응이 좋았던 것은 좀 달라요. 예를 들어 18번 에피소드 ‘잘 까먹는 인간을 위한, 막 까먹는 호두과자’ 같은 경우 일상에서 잘 까먹고, 가방을 지하철에 두고 내리고 이런 사소한 내용이 담겨 있거든요. 그런데 들으시는 분들이 ‘잘 까먹는 친구’가 막 떠올랐나 봐요. 공유도 많고 인기도 많았어요.
그럼 콘텐츠를 만들면서 잊을 수 없었던 순간이나 뿌듯했던 때가 있다면?
광화문에 왈식땅을 열었을 때 취업 준비생 손님이 가장 먼저 찾아주셨는데, 우울함이 많은 시기에 저희 오디오를 듣고 위로를 받고 공감이 많이 되었다고 해주셨어요. 그 말에 저희가 더 감동했죠.
반대로 기대를 많이 했는데 반응이 아쉬웠던 에피소드는 없었나요?
생각한 것보다 잘 안 되어서 안타까웠던 건 17화 김애란 작가 편이요. 반응이 없어서 제목도 한 번 고치고 그랬어요. 첫 제목이 추상적이고 모호해서 그랬나 봐요. BGM도 아껴뒀던 걸 쓰고 공들였는데… 아쉬워요! 또 10화 ‘사직서를 품고 일하는 인간’ 같은 경우는 처음으로 사연을 받아서 만들었던 콘텐츠인데, 사연을 하나도 각색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진행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해결책 없이 불평불만 하다가 그냥 끝나버려서 아침에 듣기에 좀 불편했던 에피소드로 남았어요.
앞으로는 어떻게 콘텐츠를 만들고 싶으세요?
‘왜 사냐’보다는 ‘어떻게 사느냐’에 더 초점을 맞추고 싶어요. 크게는 ‘오늘, 지금, 어떻게’를 계속 이야기하는 집단. 그러면서 일하는 여성 분들이 오늘, 지금, 어떻게 살아가는지 이야기하고 싶어요. 동시에 개인에게 최적화된 콘텐츠, 맥락이 잘 이어지는 콘텐츠를 만드는 게 목표에요.
예를 들면 ‘회사 회장실에서, 신입사원이, 8시 야근 중에 몰래 들을 수 있는 콘텐츠’처럼 구체적인 거요. 요즘 AI 스피커가 발전하잖아요. 개인적인 요소에 접근할 수 있게 변화하고 있고, 그게 기술적으로 가능해지고 있으니 콘텐츠를 모듈화해서 그 맥락에 맞게 제공하도록 만들려고 노력해야죠.
콘텐츠를 만드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기로 하고, 잠깐 돈 버는 이야기도 해볼까요? 왈식땅 비즈니스 모델은 무엇인가요?
독자들이 지금보다 더 많아지면 ‘네이티브 애드’를 통해 광고/홍보 수익을 받으려고 해요. 일반 라디오와 저희 콘텐츠를 비교해보면, 라디오에서는 프로그램 전후에 CM 광고가 빠르게 지나가잖아요. 저희 콘텐츠 같은 경우에는 콘텐츠 안에 제품을 녹여낼 수 있거든요. 에피소드 중에 ‘ㄱ 초콜릿’을 언급했던 적이 있는데 구독자 FGI를 해보니 전혀 광고 같지 않았다는 피드백을 들었어요. 이런 샘플을 많이 만들어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또한 오프라인으로 연결하려고 이벤트도 많이 하는데요, 이는 온라인 콘텐츠와 오프라인에서의 경험, 접점을 찾기 위해서 실험하는 거예요. 독자 분이 에피소드에 나온 음식들을 진짜로 먹어보고 싶다는 말씀을 많이 하거든요. 이를 위해 다른 업체와 연결해 비즈니스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미담 스타트업
창업자 3분의 개인적인 얘기도 해볼까요? 연애나 일에 대한 생각… 세 분은 오늘, 지금,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김지언: 삶과 일이 거의 교집합 같이 되어버렸어요. 그래서 연애의 모습도 달라지기도 했고요.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어요. 제가 힘들고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땐 상대방의 배려를 기대하게 되거나, 그런 소소한 부분에서요.
노영은: 스타트업에서 대표가 되었다고 하니까 엄마가 연애나 결혼에 대해 잔소리하시던 게 끊기더라고요. 이전 직장 다닐 땐 그런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부담을 덜 주려고 일부러 그러시는지, 정말 한 마디도 안 꺼내세요. 욕심이 많은 편이어서 욕심이 생기면 스스로를 다독이는 편인데 그 와중에 사람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지금은 일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데 가끔 일이 나를 삼킬 때마다 사람이 먼저인지 일이 먼저인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봐요. 그러다 보면 사람이 항상 먼저였어요. 일이 좀 늦더라도 사람을 더 지키겠다는 마음이에요.
김: 스타트업을 하다 보니 선택의 기로에 서더라고요. 작게 운영하면서 의미를 찾아가는 방식과 크게 임팩트를 내는 걸 추구할 수도 있는데, 지금 저희는 서로 미팅을 하면서 마일스톤을 정리해가고 있어요. 삶에서 하나의 방식으로서 일이 존재하는 거지, 그래서 일관성 있게 살고 싶은 거지.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이런 토론 없이 일만 하면 안 되는 거 같더라고요. 계속 그렇게 얘기를 많이 하고 있어요.
권예솔: 왈식땅에 합류했을 때 4학년 2학기였어요. 학교를 다니면서 일을 시작했죠. 졸업하고 처음 일한 곳이 스타트업이다 보니 친구들과 얘기해보면 정말 많이 달라요. 저희 팀에서는 ‘삶의 방식으로서 일’을 계속 얘기하거든요. 저도 여기 들어오기 전에는 일의 의미를 생각해본 적이 없긴 한데, 다른 친구들 보면 당연히 일하는 건 힘이 들고 주말만 기다리고 그러더라고요. 근데 저는 최소한 여기서 일하는 중에는 그런 생각을 한 번도 안 봤어요.
일할 때 효능감이 많이 느껴지는데, 그래서 여기가 좀 이상한 곳이라고도 생각해요. (웃음) 아주 이상적인 곳인데 이상한 곳이기도 하죠. 만약 나중에 다른 일을 하더라도 이런 근무환경은 만나기 힘들 거 같아요. 일은 계속 배우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해요.
혹시 왈식땅 팀만의 자랑하고 싶은 문화가 있다면요?
김: 소통 수단으로 ‘슬랙’을 쓰는데 여기에 We-write라는 채널을 만들어놨어요. 여기에 해야 할 일도 작성하고 그 날에 대한 생각이나 감정을 짧게 써서 공유해요. 서로 쓴 글을 보면서 감동하기도 하고요, 반성도 되어서 좋아요. 말로 이야기하는 건 좀 오글거리지만 글로 보니까 더 좋은 것도 있고요. 한 번은 아침에 눈을 떴는데 내가 이런 사람들이랑 행복하게 일하는 게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영은이와 통화하다가 ‘함께 일할 수 있어서 영광이야’라고 말한 적도 있어요.
노: 지언이가 ‘함께 일할 수 있어서 영광이다’라고 얘기해주니까 하루 종일 기분이 엄청 좋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오늘 카톡을 하다가 ‘오늘 네가 눈 떠줘서 고마워’라고 했어요. 이런 표현을 자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예솔이를 만났을 때도 안아주고 시도 읽어주고 명상도 같이하고 그랬어요. 오늘 죽어도 후회가 없도록, 표현을 많이 하려고요.
김: 과학적으로도 분위기가 좋으면 창의성도 더 높아진다고 하더라고요. 계속해서 우리의 힘으로 증명받고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느낌, 감각에 집중하고 싶어요. 우리가 만들고 싶은 경험을 더 짜임새 있게 구성해서 전달하고 왈식땅을 들었을 때 진짜로 식당에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고, 이런 느낌들을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초심을 잘 간직하면서 계속해서 많은 분께 전해드리고 싶어요.
노: 우리는 미디어 스타트업이 아니라 미담 스타트업이에요. 오늘 왈식땅을 혜화역에 차려봤는데, 다들 물품 보관함 여는 그 순간이 너무 좋았다고 얘기해주셨어요. 왈식땅에 오시는 분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좋아요. 일부러 월요일에 하기 잘 했다 싶고요. 계속해서 미담을 듣고 미담이 많은 스타트업이 되고 싶은 게 새로운 목표에요!
마치고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왈식땅 팀의 순수함과 긍정적인 기운에 덩달아 에너지가 샘솟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좋은 콘텐츠에는 만드는 사람의 상태와 생각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거였지. 그래서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을 돌보는 일이겠구나.
왈식땅 팀에게 전염되었는지 요즘 출근길이 힘들다는 친구에게 오디오 클립을 공유해주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좋은 사람이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비결을 고스란히 안은 왈식땅 팀! 앞으로도 따뜻한 콘텐츠 기대할게요. 스여일삶 커뮤니티 덕분에 새로운 서비스도 알고 좋은 분을 많이 만나서 다시 한번 기뻤던 하루였습니다.
원문: 지영킹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