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indizio님이 올해 4월에 발행한 글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정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사고 팔려는 사람이 많으면 이미 화폐
최근 비트코인(bitcoin)이라는 디지털 화폐가 화제다. 비트코인은 인터넷상에만 존재하는 가상의 화폐, 디지털 화폐다. 네이버 고스톱 칠 때 쓰는, 혹은 리니지 게임에서 쓰는 아덴 같은 사이버머니와 다를 바가 없다. 사실 지금 우리가 쓰는 달러, 원, 유로 같은 화폐도 이젠 다 디지털 화폐다. 동전이나 지폐로 유통되는 부분은 굉장히 적고, 대부분의 양이 컴퓨터 상의 데이터로만 존재하니까.
다른 점이 있다면, 달러, 원, 유로 같은 전통적인 디지털 화폐는 국가가 운영하고, 아덴은 NC소프트에서 운영하고, 고스톱 게임머니는 NHN에서 운영하고 관리하지만 비트코인은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가명을 쓰는 누군지도 모르는 프로그래머가 만든 컴퓨터 알고리즘에 의해 자동으로 만들어지고 조절된다는 거다(현재는 10분당 15 비트코인인가가 자동으로 생성되고 있다 한다). 인간이 통화량을 조절하는게 아니라, 컴퓨터가 한다.
비트코인은 1월 초만 해도 1비트코인에 13달러 정도에 거래됐다. 그러다가 올 초 유럽 금융위기가 심각해지면서 가격이 폭등해서 260달러까지 올랐다가 지금은 1200달러 정도에서 거래되고 있다. 투자자중에는 유명 헷지펀드들도 있다.
이렇게 가격이 엄청 오르고 또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이런걸 누가 왜 살까?”하는 질문들을 던지게 되는데, 뭐 알고보면 별 이유 없다. 사고 싶으면 사는거다. 사고 팔려는 사람들이 많으면 그 자체로 화폐가 된다. 꼭 정부가 만들고 해야지만 화폐로 인정받는 건 아니다.
금과 비트코인의 차이는 ‘시간’
금은 실체가 있지만 비트코인은 실체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이 금을 원하는 이유는 비트코인을 원하는 이유와 같다. 그냥 갖고 싶기 때문이다. 물리적 실체가 있고 없냐, 손으로 만질 수 있냐 없냐는 21세기 사이버 사회에선 중요하지 않다.
FT 칼럼니스트 존 케이는 금의 가치는 ‘아름다움’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금이 비싼 건 귀하기 때문이 아니다. 금보다 훨씬 귀하고 실용성도 높지만 가격은 금보다 싼 금속들이 많다. 유독 금만 비싼 것은 금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 때문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아름다움이 화폐의 조건이라면, 비트코인을 사모으는 오타쿠들과 헷지펀드들은 비트코인의 알고리즘도 금만큼이나 아름답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예술하는 사람들은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돈의 본질은 美다. 미래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이 돈도 많이 벌 것이다.
그렇다면 화폐로서 금과 비트코인의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케이는 바로 ‘시간’이라고 말한다. 금은 수백, 수천 년 동안 전세계적으로 화폐로 쓰여왔던 역사가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문화적으로, 관습적으로 ‘금은 돈이다’라고 생각하게 됐다.
비트코인은 고작 몇 년 밖에는 안됐고 그것도 아주 한정적인 사람들 안에서만 쓰였다. 비트코인도 수백 년 후라면 진짜 돈으로 인정받을 날이 올 수도 있다. 실제로 비트코인의 알고리즘을 프로그래밍한 사람은 22세기까지 공급량을 조절해두었다. 시간의 무서움이 이거다. 시간은 신용(credit)을 창조한다. 아래 FT의 관련 글은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가치는 가격과 다르다’ (Fair value is not the same with market price)
– John Kay, April 16, 2013
경제 평론을 하다보면 가끔씩 희한한 화폐시스템을 주장하는 사람들로부터 연락을 받게 된다. 민간이 만든 사이버머니인 비트코인도 그런 이상한 아이디어 중 하나다. 비트코인은 그 공급이 컴퓨터 알고리즘에 의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물가인상(인플레)를 통제할 수 있다는게 장점이란다. 또 비트코인은 또 무정부주의자와 자유주의자들의 사랑도 받는다. 수학을 좋아하는 괴짜들과 오타쿠들도 비트코인을 좋아한다.이들에게는 비트코인을 만들고 운영하는 수학적 컴퓨터 알고리즘의 복잡성 그 자체가 경외의 대상이다.
이런 비트코인 소동은 결국 슬픈 결말, 즉 거품의 붕괴로 끝나게 될 것이다. 또 우리는 대체 이런 소동 뒤에 어떤 나쁜 놈들이 숨어있었는지 끝내 알아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그런 결말과는 별도로, 비트코인 소동이 ‘가격’과 ‘가치’의 관계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해주는 것만큼은 틀림없다.
금융업이 발달하면서 물건의 가치는 그것의 가격에 잘 반영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공정 가치(fair value)’와 ‘시장 가격(market price)’를 거의 같은 뜻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큰 실수다. 어떤 물건(자산)의 근본적인 가치는 그것이 가져다주는 현금이나 수익이나 그밖의 어떤 효용에서 나온다. 그런데 시장가격이 항상 그 물건의 근본 가치를 정확히 반영하지는 못한다. 미래에 수익과 효용이 어떻게 변할지 미리 예측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또 그 자산의 가치가 미래에는 올라갈거다, 혹은 떨어질거다 라는 기대에 의해 가격이 형성되기도 한다.
그렇긴 해도 근본가치와 시장가격의 차이가 영원히 지속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튤립버블, 닷컴버블, 그리고 2008년 금융위기때의 모기지 파생상품(CDO) 거품도 결국은 다 꺼져버렸듯이, 언젠가는 제자리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예외가 딱 두 가지 있다. 바로 금과 돈(화폐)이다. 이 두 가지는 영원히 본질 가치보다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
금의 근본 가치는 아름다움과 희귀함이다. 그런데 부자들은 아름답고 희귀한 금을 남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부를 자랑할 수 있다. 이는 다시 금의 가치를 더욱 더 높여준다.
다이아몬드도 비슷하다. 다이아몬드의 가치는 ‘다른 사람의 부러움을 삼’이라는 효용에서 나온다. 이는 20세기들어 다이아몬드 회사들의 마케팅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미술작품도 그렇다. 미술 작품의 본질적 가치는 아름다움이다. 그런데 1억 달러짜리 미술품을 사가지고는 깜깜한 지하 금고에 보관한다면 과연 그게 1억 달러만큼의 미적 즐거움을 소유자에게 줄 수 있나? 또, 복제품이나 진품이나 아름다움의 차이는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피카소의 복제품은 값이 사고 오리지널만 비싼 이유는무엇인가? 이런 경우 그림의 값어치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소유’ 그 자체에 있다. 비싼 그림 가지고 있다고 남들에게 자랑하는 것이 효용이다. 다시 말해 그림의 본질적 가치가 가격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가격이 가치를 결정한다.
하지만 금은 다르다. 금은 수천 년 전부터 재산의 저장 수단으로, 또 물건을 사고 파는 수단으로 쓰여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사람들은 금을 직접 들고 다닐 필요 없이 금의 소유권을 적은 증서를 들고 그걸로 대신 거래를 해도 충분하다는 걸 발견했다. 다시 많은 세월이 지나고 이번에는 사람들은 증서에 대해 사회적인 신뢰가 충분하다면 굳이 금과 엮이지 않은 증서라도 그 자체만 가지고도 거래를 할 수 있겠다는 걸 깨달았다. 이것이 곧 화폐의 역사다. 이는 화폐의 본질이 ‘돈은 귀중하기 때문에 귀중하다’에서 ‘돈은 돈이기 때문에 귀중하다’로 바뀌었음을 말해준다.
어쩌면 물리적인 화폐가 될지도 모른다?
미국의 자유주의자 정치인 론 폴(Ron Paul)은 비트코인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말한다.
“사실 너무 복잡해 보인다. 난 돈에 대해서 오랫동안 공부해왔는데, 내 주머니 안에 넣을 수 있는 게 아니라면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어쨌건 그건 자유 시장안에서 만들어진 거다. 교환의 수단으로 만들어졌다면 그걸 금지할 수는 없다. 통제하려 해서도 안된다. 하지만 나는 비트코인의 돈의 정의에 맞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돈은 6000년이나 여기 있어왔다. 사람들은 돈을 정의하고, 만지고, 주머니 안에 넣고 싶어한다.”
(“To tell you the truth, it’s little bit too complicated. If I can’t put it in my pocket, I have some reservations about that. But it has been designed in the free market. If it is a means of exchange, it would not ever be illegal. You shouldn’t regulate it in the free market, but I do not think it fits the definition of money, which has been around for 6000 years. People want to see something they can know what it is, they can define it, touch it and put in their pocket.”)
FT의 존 케이가 돈의 조건으로 ‘시간’을 얘기했는데, 론 폴은 시간도 중요하지만 ‘주머니에 넣을 수 있어야’ 돈이라고 말한다. 옥스퍼드 출신인 케이는 추상적으로 분석한거고, 텍사스의 사업가 출신인 폴은 텍사스스럽게 구체적으로 말한 것이 재미있다.
론 폴의 말이 맞다면, 만일 누군가가 비트코인을 카지노칩 같은 형태로 만들어 들고다닐 수 있게 바꿔준다면 진짜 화폐로 인정받는 날이 생각보다 빨리 올 지도 모른다. (이거야말로 새로운 사업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