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과연 치러지려나?’ 우려되던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나름 성공적인 반환점을 돌고 있다. 굳이 근래의 브라질이나 중국 올림픽의 구설수를 떠올리지 않아도 경기장 등의 배후단지 조성, 최순실의 홍역을 치르면서도 선방한 개막식 공연, (역시 최 씨와 연관 있던) 수호랑 캐릭터의 인기와 무리 없는 진행, 나름의 흥행 성공, 무엇보다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은 물론 상대적 비인기 종목의 선전까지.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남북 단일팀과 개막식 공동 입장 또한 썩 나쁘지 않은 이벤트였다고 평가하고 싶다. 그런데 이 분위기에서 그것이 터지고 말았으니. 바로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 추월의 이른바 ‘왕따 스캔들’. 국내에서 치러지는 이 좋은 미디어 환경에서도 빙상 연맹과 관계자들의 대처는 그야말로 ‘대책 없음’. 되짚어보면 (축구는 논외로 하자) 국가를 대표하는 A대표팀이 그 격전의 현장에서 팀킬에 마녀사냥을 당한 적이 과연 있었던가?
그런 전차로 현업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담당자 모임 #이름없는스터디(이하 이없스)가 평창올림픽 스페셜로 준비했다. PR 담당자들이 말한 이번 여자 팀 추월 이슈 관리의 아쉬움과 그 해법은 무엇일까?
- 이 글은 21일(수) 하루 동안 이없스 멤버들의 의견을 취합해 정리했으며 요청에 따라 ‘회사명’과 ‘이름’은 공개하지 않습니다.
- 홍보 담당자들이 다루기 부적절한 경기 내적 부분, 혹은 확인되지 않은 루머 따위는 판단에서 제외하고 공식 보도 혹은 공론화된 이슈만 그 대상으로 했습니다.
1. 현장 인터뷰 및 긴급 기자회견 관련
지난 19일 여자 팀 추월 경기 직후 김보름, 박지우 선수는 현장 인터뷰를 갖는다. 그리고 다음 날인 20일 백철기 대표팀 감독과 김보름 선수가 참여한 ‘긴급 기자회견’이 연달아 열린다. 이 이슈는 24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역대급’ 반열에 오른다.
미디어 ㅂ 님, 에이전시 ㅌ 님
최초 인터뷰는 물론 아쉽지만, 흥분된 심정에서 그 나잇대에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봅니다. 다만 이후 내부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대응이 근본적인 실책이겠죠. 대중들은 ‘기만당했다는 느낌’을 참지 못하는데요. 문제는 요즘의 그들이 절대 ‘기만당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미 비디오 머그니 풀타임 영상이니 그동안의 SNS 기록까지 다 떴지 않나요? 빙상연맹의 가장 큰 오판은 기자회견 후에 노선영 선수의 반발이 늦게 나올 거라 생각했던 거 같은데요. 올림픽 기간에다 세계 모든 언론이 평창에 있습니다. 다른 선수들 인터뷰 보면 선수단 PR 담당자가 썩 잘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데… 대체 왜 그랬을까요?
제조사 ㅂ 님
뭐가 그리 급했을까요? ‘긴급’이 아니라, 모든 경기가 끝나고 입장 정리한 다음에 공식적인 발표를 냈어야 합니다. 오해의 소지나 문제가 된 것은 깔끔하게 인정하고 개선 방향을 구체적으로 말했어야죠. 그냥 ‘아니다 사실 잘 지낸다’ 그걸 누가 믿나요? 게다가 톤과 메시지 정리 안 되는 감독, 감정으로만 호소하는 선수도 통제가 필요했습니다. 공식적인 코멘트를 전달할 중재자가 필요했던 건데요. 다만 애초에 이 구조적 문제를 왜 개인에게 떠넘기나요? 이거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감독이 하나요? 선수가 하나요? 이건 비겁한 겁니다.
스타트업 ㅁ 님
현장 인터뷰의 메시지 관리는 분명히 실패한 거고요. 그 부분은 현업에서도 쉽지 않아요. 다만 기자회견 세팅은 반성해야죠. 팀 추월 경기의 깨진 팀워크와 파벌싸움을 구분 짓는 전략이 필요했어요. 팀 내부 봉합까지는 어려워도 어느 정도 합은 맞춰야죠. 상식적으로 감독이랑 가장 논란이 되는 선수만 나오면 뭘 어떡하나요. 가장 논란이 되는 선수들은 대화 한마디 안 했다니요. 거기다가 확답을 피하는 단어들과 논란에 대한 해명 없이 눈물뿐인 기자회견이라니… 상대는 기자라고요.
에이전시 ㄱ 님
최악의 시기에 최악의 방법으로 최악의 결과를 만들었네요. 매우 아쉽습니다. 청와대 청원을 비롯한 뜨거운 여론의 불길이 집중된 시기에, 홀로 그 열기에 들어가 기자회견을 강행하기엔 너무나 많은 맹점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내부관리도 되지 않아 곧바로 2차 이슈가 터졌네요. 관리 안 된 3차 메시지까지 나오는 상황입니다. 이슈 거리만 제공했고 논란만 커졌어요. 어쩌나요? 이제라도 솔직하게 방향을 정해야 합니다. 이런 식의 접근은 디지털 시대에 좋은 먹잇감만 던져줄 뿐입니다. 그런데 누구 아이디어인가요? 그리고 그분들은 지금 어디 계신가요?
2. 빙상연맹 이슈 관리 관련
기자회견 이후 이슈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이른바 ‘빙X연맹’으로까지 매도되는 빙상연맹의 이슈 관리 능력이 도마 위에 오른다. 과거 안현수 선수 파문부터 가깝게는 이 일의 도화선이 된 노선영 선수 대표팀 제외 사건까지. 빙상연맹의 이슈 관리는 어느 지점에 있는가?
생활건강사 ㅊ 님
조심스럽지만… 빙상연맹 입장에서 지금까지 여론 악화는 별 ‘위기’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들의 고객은 국민이 아니에요. 어디까지나 선수나 부모를 상대하니까요. 따라서 여기에 맞춘 커뮤니케이션에 최적화되었고 지금까지는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어요. 하지만 이번 이슈는 국내의 올림픽이고 태세 전환이 필요했겠죠. 기자회견이 대표적인데 이게 기어가 잘 안 먹은 거죠.
일반 국민과 선수, 업계와 빙상연맹의 행정을 바라보는 온도는 다릅니다. 다만 접근을 조정했다면 팀 추월 이슈는 거기에 한정하고 빙상연맹과 파벌까지의 확전은 막아야 했습니다. 근데 비전문가가 정리되지 않은 메시지 들고 나가서 2차, 3차 막 뻗어 나가는 거예요. 여기까지 커지면… 이거 일반인들 어떻게 이해시키려나요.
공기업 ㅇ 님
결과와 엘리트 스포츠를 중시했던 과거에서 이제는 과정과 공정함을 더 중요시하는 세상으로 변화되는 듯합니다. 일종에 ‘금메달 공장’으로 인정받아온 협회가 이제는 ‘악’으로 이동하는 거죠. 예전엔 그게 효율로 인정받았는데요. 물론 이게 시대의 흐름이니 빠른 태세 전환이 필요할 것 같아요. 하지만 빙상이 평소에 많은 관중이 동원되는 스포츠도 아니고 외국 빙상연맹이 직접 개입하는 경우도 거의 없어서 쉽게 개선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정권도 바뀌었고 행정감사 시즌에 국정감사 대비도 해야 하니까… 관련 대비는 하고 있을 거 같네요.
공공기관 ㅇ 님
진정성 있는 사과의 전제 조건은 먼저 주체가 명확해야 하고 이슈가 되는 논점을 명확히 짚어야 합니다. 이번 기자회견이나 인터뷰를 보면 다 잘 안 됐죠. 사실상 주어인 ‘빙상연맹’이 빠진 건데요. 불행히도 다년간 학습된 대중들에게 안 먹히죠. 그러다 보니 더 분노하고 여론은 더욱 악화됩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감독이 아닌 그 이상의 책임자가 나와서 진정성 있는 사과와 공감할 수 있는 대응책을 내놔야 합니다.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가급적 빨라야’ 하고요. 이 정도 크기라면 늦출수록 더 튑니다. 다행히 국내에서 진행되는 올림픽이고, 컬링과 대표팀 선전 등의 호재가 있으니… 결단이 있어야죠. 올림픽 후에 두드려 맞으면 감당되시겠어요?
에이전시 ㅊ 님
아쉽지만 빙상연맹은 대중들에게 좋은 여론이 형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여기에 이번 이슈가 더해졌으니 동종 업계 담당자 입장에서 안타깝습니다. 다만 협회 행정은 물론 파벌과 친족 문제로 고초를 겪은 노선영 선수에게 어쩌자고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울 생각을 한 걸까요? 물론 사실관계를 좀 더 따져봐야겠지만. 노선영 선수에게 피해자의 여론을 몰아주고 ‘아직 미성숙한 나잇대 선수들의 승부욕’ 정도로 사태를 정리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이제는 아주 높은 분이 나서서 진상 규명하고 대책 발표하고 해야 할 텐데… 그쪽 분위기상 과연 그렇게 될까요? 걱정이네요.
3. 청와대 청원과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흐름
이와 함께 미디어 환경과 개개 구성원들의 의식 수준 등의 변화에 따라,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새롭게 살펴볼 지점들도 눈에 띄었다. 예를 들어 청와대 ‘청원 사이트’가 그러하다.
여행사 ㄱ 님
현재 청와대 청원 사이트는 본 취지와는 다르게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이슈는 결국 권력 다툼이고 ‘작은 사회’ 내에서의 문제로 규정할 수 있는데요. 이런 일이 발생하고 올라간 청원이 단기간에 20만 명을 돌파했다는 것은 물론 빙상연맹이 평판 관리에 실패했다는 의미도 있겠죠. 다만 명확한 진상 규명 전에 무분별하게 퍼지는 속보 경쟁과 가치 판단이 결여된 소스들이 그 어떤 거름망 없이 피드를 타고 흐르고 있습니다. 만약 진실이 다르다면 누가 책임질 건가요? 청원에 동의한 20만 댓글은 하나하나의 책임을 보증하나요?
스타트업 ㄱ 님
부분 편집된 동영상이 온라인에 확산되며 선수들에 대한 무분별한 비판이 빠르게 퍼져나간 것도 당황스러웠지만 청와대 청원 역시 충격적이었습니다.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팀워크를 깬 선수를 처벌해달라는 국민 청원이라니요. 모 스포츠 브랜드는 이 이슈가 발생한 다음 날 ‘해당 선수의 스폰서십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좀 더 신중하게 시간을 두고 내려야 할 결정 아니었을까요? 너무 손해 안 보려고, 의리 없는 인상을 전달했다고 생각해요. 제가 해당 브랜드 담당자라면 기자들에게 ‘확인해보겠다’ 혹은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다’ 정도로 답변을 유보했을 듯합니다. 담당자도 당장의 군중심리가 두려웠겠죠. 까딱 잘못하면 적폐 기업 낙인찍힐지도 모르니까요. 그러니까 결국 떼법이고, 여론재판인 겁니다. 명확한 팩트나 법리적인 판단 이전에 ‘이거 좀 아닌데?’ 싶으면 쪼르르 달려가서 떼쓰는 거 아닌가요?
매체사 ㅂ 님
과거와 같은 미디어 환경이라면 시간이 해결해주겠죠. 기자 관계만 잘 가져가도 방어할 수 있고요. 하지만 1인 1미디어에 자발적 유저가 넘쳐나는 현재는 시간을 끌수록 불리합니다. 특히 이런 소재는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증폭돼요. 특히 최근에는 #MeToo처럼 불합리한 행동에 대한 응징 욕구가 폭발하고 있는데요.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겠죠. 재발 방지와 그에 따른 단계별 실천안을 고민해야 합니다. 현시점에서 시민들은 해당 협회를 ‘적폐의 범주’로 인지하고 있지 않은가요?
커머스사 ㅂ 님
저는 이 사건을 ‘채선당 임산부’ 또는 ‘240번 버스 운전기사’ 이슈와 비슷한 맥락으로 바라봅니다. 즉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마녀사냥 하는 인상이라는 거죠. 물론 김보름 선수의 인터뷰, 기분 나쁠 수 있습니다. 다만, 그건 뉘앙스라든가 주관적 판단의 영역이지 그녀의 잘못은 과연 무엇인가요? 여기서 언론과 연맹의 역할이 중요한데요. 원인을 파악하고 정확한 팩트체크를 해서 고지를 해야죠. 근데 없잖아요. 결론적으로 섣불리 피해자 vs. 피의자 구조를 만들지 말자는 겁니다. 이제 그 정도는 벗어날 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니까 이러다가 갑자기 ‘알고 보니 XXX가 문제였네’가 되면 어쩔 건가요? 저 어린 선수들 누가 책임질 건가요?
원문: 이름없는스터디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