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를 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못해요”
‘가만히 있으면 보통은 간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보통’이 되려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끊임없이 어딘가에 들어가야 한다. 대학교에 들어가고, 적당한 회사에 들어가서, 언젠가는 학부모 집단에 속해야 평균으로 취급받는다.
그러나 누군가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고, 어떤 이는 어떤 회사도 들어가지 못한다. 결혼도, 출산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들은 곧 주위의 걱정거리이자 무차별적인 잔소리의 대상이 된다. 평균의 흐름을 벗어나는 순간 당장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사회는 소란스럽게 개인들을 압박한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 못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무언가를 못한다고 말하는 건 어렵다. 누군가는 극복하라고 다그칠 것이고, 어떤 이는 나약하다고 말할까 두렵다.
이규경 시인은 “나는 못해요”라고 말했지만, 내게 더 많은 노력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못한다’고 말하는 건 용기를 필요로 한다. 에세이 『남편의 그것이 들어가지 않아』는 용기 낸 사람의 이야기다.
남편의 성기가 들어가지 않는다
책 속의 그녀는 남편과 관계를 갖지 못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남편의 성기가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20년 동안 부부로 살아간다.
그녀의 엄마는 아플 때 ‘정신력이 부족’하다고 혼내는 사람이었다. 가족은 가난하고 불행했다. 사람들과 제대로 대화를 할 수도 없었다. ‘추한 내 모습이 속속들이 드러난다고 생각하니 얼굴이 빨개져 끝내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긋지긋한 산골 마을에서 벗어나 대학생이 된 ‘나’는 도시에서 한 남자를 만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받는, 그녀가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하지만 남자의 성기가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결혼한다. 하지만 문제는 계속된다. 성기가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아이도 갖지 못한다.
노력이 부족했던 거 아니냐고?
그녀는 최선을 다했다.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젤을 써가며 남편의 성기를 넣으려 시도했다. 남편이 다른 여자와 관계하는 걸 덤덤히 받아들이고 불임 치료를 받는다. 문제의 원인도 알 수 없고, 해결책을 찾을 수도 없지만.
교사로서의 삶도 평탄하지 않다. 아이들과의 관계가 무너지고 교실은 통제권을 잃지만, 죽고 싶은 상황이 올 때까지 교사를 관두지 않는다.
이 모든 노력에도 그녀는 들어갈 수 없다. 교사로서 아이들과의 관계에 들어가지 못하고, 부모 집단에 들어갈 수 없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과 함께 ‘나란히 뿌리내린 고목처럼’ 늙을 수 있다면 행복하겠다고 생각하며 덤덤히 살아간다.
남편과 관계를 가질 수 없는, 남들과 조금은 다른 삶을 사는 그녀에게 보험컨설턴트는 이렇게 말한다.
아직 괜찮아요. 앞으로 생길지도 모르잖아요. 저도 마흔에 낳아서 알아요.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꼭 생겨요. 아세요? 쟈가요코타(프로레슬러이자 연예인)는 마흔일곱에 출산했대요.
‘자칭 전문가’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누군가의 상황을 재단하며 쉽게 조언한다. 내가 다른 상황에 처해 있고, 지금까지 해온 경험이 다르다고 말해도 고려하지 않는다. 거침없이 내가 틀렸다고 말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흔들리곤 한다. 정말 내가 내린 결정이 그들의 말처럼 틀린 결정일까 두렵고 불안해진다. 하지만 그녀는 흔들리지 않는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거듭 생각하고 고민한 끝에 내린 결단을, 그렇게 살기로 한 결의를, 그건 틀렸다고 가볍게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랬다. 내가, 그리고 우리들이, 선택에 의심을 가졌던 이유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같은 선택을 해야만 자신이 옳다고 안심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확신한다. 자신의 삶의 모습이 결코 틀린 것이 아니라고.
과거의 조각이 모여 현재가 된다
이 책은 어딘가에 들어가지 못하는 모두의 문제를 남편의 성기가 들어가지 않는 독특한 소재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녀가 계속해서 어딘가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겪는 고통과, 들어가는 것을 실패했을 때 느끼는 불안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모두가 한 번쯤은 어딘가에 들어가기 위해 발버둥 치고 때로는 실패한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삶과 주변의 모습이 자꾸만 겹쳐진다. 무엇보다, 그녀는 ‘보통 이하여도 인생은 즐거울 수 있다’고 설득하지 않는다. ‘아무려면 어때’라는 식의 성급한 결론을 내리지도 않는다. 자신의 삶 속에서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찾아내고 그 모습 그대로 살아갈 뿐이다.
책을 덮는 순간 그녀를 응원하고 싶어졌다. 나도, 계속 살아갈 테니 당신도 잘 살라는 인사를 괜히 건네고 싶어진다. 그러니 당신도 나도, 이 모습 그대로 살아남자고. 꾸준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