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당 부대표 박은지 씨가 11월 8일 금요일 8시부터 9시 30분까지 썰타임에서 질문을 받습니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여기를 클릭해서 편하게 질문 남겨 주세요.
11월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따뜻했던 화요일, 합정역 노동당사에서 박은지 노동당 부대표를 만났다. 박은지 부대표의 첫인상은 정치인으로서 어울리지 않게 솔직하고 편한 사람이었다. (편집자 주 : 위 이미지는 대충 따온 거고, 이미 부대표 맞습니다…)
박은지와 그녀의 삶을 변화시킨 아이
Q: 정치활동을 하는 싱글 맘으로서 자식을 키우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A: 아이를 일찍 낳았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나도 그렇지만 정치활동, 특히 운동한다는 사람들은 고집이 강하다. 정치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생활 모든 면에서 그렇다.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대해 단언하는 경향이 있고 아이를 낳기 전에는 나도 그랬다.
나도 예전에는 출산과 육아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애를 왜 낳아? 책임도 못 질 거면서.” “행복하지 못한 사회,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지옥 같은 입시 경쟁 사회에서 애를 키우면 안 되지”, “결혼은 여성을 착취하는 불합리한 제도야!” 이렇게 생각했다. 지극히 운동권적인 마인드랄까? 그런데 아이가 생기고, 낳고 키우다 보니까 새로운 세계가 열리더라. 사회과학을 공부하고, 정치를 공부하면서, 내가 세상에 대해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를 만나고 보니 착각이었다.
아이와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대화도 많이 하고,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키우려고 노력한다. 내 감정도, 아이의 감정도 소중하게 여기고, 또 아이도 그럴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우려고 다양한 시도를 한다.
Q: 예를 들자면?
A: 최근에는 2층 침대를 샀다. 아이가 아직 어려서 엄마랑 계속 같이 있고 싶어하고, 같이 자고 싶어한다. 강제로 혼자 자게 하기는 싫었고, 그렇다고 계속 같이 자자니 걱정되더라. 그래서 생각한 게 2층 침대였다. 2층 침대로 자니까 자연스럽게 따로 또 같이 잘 수 있게 되더라.
아프면 학교에 가지 말라고 한다. 피곤해하면 쉬라고 한다. 나도 편하고 아이도 자유롭게 키우고 있다. 그러다 보니까 오히려 학교를 더 즐겁게, 강박관념 없이 다니는 것 같더라. 물론 이렇게 키워서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는 거겠지만.
Q: 남성 중심 사회, 소위 마초적인 사회를 비판 하는 입장에서 아들을 키울 때에 고민이 많을 것 같은데?
A: 아들 낳는 것이 무척 두려웠다. 한국 사회에서 마초로 크기는 너무 쉬우니까. 그래서 평등한 관점을 심어주려고 많이 노력했다. 어렸을 때부터 정말 많이. 아이 아빠도, 나도. 그렇다고 너무 양성평등의 사고를 강요하면 그것이 또 다른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회에서 문화충격을 느낄 것이고 또 그 모습을 집에서 숨길 지도 모른다.
그래서 주입식으로 가르치기보다는 최대한 많이 보여주려고 했다. 전 남편과 같이 살 때는 서로 가사와 육아를 나눠서, 일에 맞춰서 분담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많이 노력했다. 필요할 때는 아이의 생각을 고쳐주기도 했다. 어린이집 갔다 와서 “난 남자니까 파란색을 입어야 해!” 이런 말을 하면 “엄마는 너 분홍색 바지도 예쁜 것 같은데?” 라는 식으로.
한편으로는 걱정했다. 학교 가서 남자애들끼리 잘 못 어울리면 어쩌나, 장난감 총 한번 갖고 놀지 못한 아이니까. 수컷 사회에서 따라가지 못 할까 봐. 근데 친구들이랑 딱지 치면서 잘 놀더라. 지금은 좀 마마보이다. 커서도 그럴까 걱정은 된다. 아빠랑 안 살고 있으니까 더욱 신경 쓰이는 부분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것은 주어진 상황이니까 편하게 생각하고 있다. 어차피 사춘기가 되면 변할 것을 계산하고 키운다. 언젠가 이 아이가 담배를 피고, 여자친구가 생겨서 엄마를 귀찮아하는 날이 올 테니까!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예쁘다고 생각하는 순간은 지금뿐일 테니까.
Q: 공부는 어떻게 시키나?
A: 안 시킨다. (웃음) 사실 한국 사회에서 공부 열심히 하란 말은 내가 안 해도 아이 할머니, 할아버지, 학교 선생님, 어린이집 등에서 이미 충분히 많이 듣고 있다. 숙제도 많고… 이미 힘들다. 사실 학원 보내고 과외 시킬 돈도 없다. 어린이집, 방과 후 학교 등의 프로그램으로 보충은 하고 있다.
선생님의 꿈 vs 사교육 강사라는 현실
Q: 정치 활동을 하면서 아이도 키우기에는 생계가 어려울 것 같은데.
A: 물론이다. 한국에서 웬만한 전문직, 고소득직이 아닌 이상에야 아이를 키우면서 살기 어렵다. 진보 정치 활동하는 사람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우리는 돈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현재 노동당은 최저임금만 주고 있다. 물론 특근, 야근 수당 같은 것은 없고. 아까 얘기한 2층 침대도 가스비를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나온 발상이다. 어떻게든 한 방에서 자야 될 것 같아서.
Q: 최저임금으로 충분한가?
A: 아껴 쓴다. 그리고 젊었을 때 모아둔 돈 조금씩 조금씩 뜯어서 쓰고 있다.
Q: 젊었을 적에 언제 돈을 모았는지?
A: 대학을 졸업하고 학원에서 일했다. 그러나 학원에서 일하고 싶지 않았다. 학벌주의를 타파하고 사교육을 없애자는 사람이 사교육에서 종사하고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니냐. 학원은 스파르타식 입시학원이었고, 난 그곳에 놀랍게, 무섭게 잘 적응했다. 돈을 많이 벌었고, 시간은 없었다. 통장 잔고는 늘면서 돈맛을 봤달까? 더 열심히, 더 많이 일하고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그래도 교사의 꿈은 버리지 않았다. 전교조 교사가 돼서 참교육을 실천하고, 조합에 일원으로서 운동도 하고 싶었다. 그런데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기간제 교사조차 되는 것이 너무나도 어렵더라. 많은 노력 끝에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1년 계약도 채우지 못한 채 임신했단 이유로 그렇게 가고 싶었던 학교를 떠나야 했다. 그 당시에 전교조에 조금 실망을 했던 것 같다. 일선 교사의 15% 정도인 기간제 교사에게는 손을 내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조합에 대한 환상이 조금은 깨졌다.
어쨌든 아이가 생겼으니 생계는 급해졌다. 전에 일하던 학원 원장이 다시 한번 일해 보지 않겠느냐고 물어봤을 때는 사교육이니 공교육이니, 그런 것을 따질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다시 학원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눈 코 뜰새 없이 바쁘게 일했다. 투표일에도 수업이 너무 많아서 점심을 거르고 겨우 투표를 했다. 그렇게 돈을 모으고, 경력을 쌓고, 학원계에서 커 나가고 있었다. 아이들을 좋아하다 보니까 싫지만은 않았다. 아이들과 부대꼈고, 돈이 모였고, 또 돈은 필요하니까.
사실 사교육계에 운동했던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운동권에서 겉돌다가 사교육에 종사하는 거가 아니더라. 운동권의 소위 빅네임들이 지금 메가스터디에서 가르치고 있다. 억대 연봉에 외제차 굴리면서 가르치고 있더라. 사교육 종사자들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생활을 위해서 나도 했던 선택이었다. 사실 지금도 그때 벌어놓은 돈을 쓰고 있으니까. 하지만 40대에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많은 고민이 있었고, 어두웠다. 그때 당시 진보신당에서 공채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했다.
진보진영을 향한 비판과, 실제 진보진영의 모습
Q: 지금의 노동당과 그 당시의 진보신당은 어떻게 다른가?
A: 일단 그 당시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어렵다. 그 당시에도 물론 부족했지만, 원외정당이 되니까 여러모로 어려운 점이 많다. 돈뿐만 아니라 정보력, 정치력 등이 모두 부족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감이 부족해질 때도 있더라. 일전에 국회에 기자들과 출입할 일이 생겼다. 앞서가는 기자들은 모두 프레스 출입증을 보여주고 들어가는데 나는 아무것도 없지 않느냐. 그래서 그 순간 경비 아저씨한테 “제가 출입증을 안에 두고 왔어요.” 라고 얘기를 하고 싶었다. 다행히 앞에 가던 기자분이 “이 분 노동당 부대표입니다.” 라고 해주셔서 들어갔지만 그때 내가 많이 주눅 들어 있구나, 라고 느꼈다.
진보정당이 모두 그렇지만 노동당도 당원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이권도 없고, 혜택도 없다. 그렇지만 당원들이 당을 계속 지지하는 이유는 “우리는 실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옳은 길을 걷고, 올바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다. 지금은 비록 아무도 우리를 알아주지 않을 지라도.” 라고 믿어주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주눅들면 안 된다. 당을 대변하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술도 많이 안 마시고, 모습도 단정하게 하고 다닌다. “운동권 애들 참 추레하게 하고 다닌다” 같은 얘기는 듣고 싶지 않다.
최근에 논평 중에 “짜장면을 표준어로 인정한 것을 환영한다” 라는 논평을 썼다. 보수적인 언어 정책 때문에 국민들의 절대다수가 사용하고 있는 단어를 표준어로 인정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것을 국립국어원이 인정한 것을 환영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국어선생으로서의 경험이 있는 내가 아니면, 노동당이 아니면 쓸 수 없는 논평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이 나의 당원으로서의 실력이고, 나의 활동은 당원들의 자존심에도 중요하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 당원들이 우리를 지지하는 것은 실력이 있기 때문이다. 당원들이 당의 실력에 신뢰를 잃으면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
Q: 진보 정당에 대한 비판 중에 진보 정당이 내부적으로 가장 비진보적이다, 예를 들면 ‘진보 정당의 행태가 가장 마초적이고 운영방식이 비민주적이다’라는 비판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A: 사실 그 비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경직된 측면이 많이 있는 것은 사실이니까. 사실 진보진영이라서 더 마초적이라기 보다는 진보 진영이, 노동조합이, 마초적인 곳에서 태동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대공장에서 교대 근무를 하고, 서로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임금 문제로 단결하다가 자연스럽게 노동조합이 생기는 것이니까. 당직 활동을 하면서 수천 명의 조합원 중 단 한 명이 여성인 조합장에도 가본 적이 있다. 그렇게 “남고” 같은 생활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경직된 면이 존재한다. 결과만 보지 말고 원인을 살펴야 한다.
또한, 진보 정당이 생기면서 많이 변화했다. 일단 나만 해도 젊은 여자가 당직을 맡고 있으니까 조합원들이 신기하게 생각한다. 그렇게 문화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SNS와 교육을 통해서 교류가 계속되면서 문제의식이 생기고 퍼져 나가는 것 같다. 특히 요즘 많은 변화를 느낀다. 비판할 부분은 비판한다.
비판의 성역은 없으니까. 진보신당이 처음 생긴 이유도 민주노총에 할 말은 하겠다고 시작한 것이다. 우리당은 종북, 북한 역시 비판하고 있다.
Q: 결국 그런 비판의식이 진보 진영의 파편화를 가져왔다는 의견도 있는데?
A: 사실 한국 사회에서 진보 정당이 정치권에 진입한 것이 2000년 민주노동당의 탄생 이후니까, 아직 역사가 매우 짧다. 오늘날의 한국 정치가 다양한 진보의 색채를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인지, 아니면 진보진영이 단일화해야만 그나마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수준인지는 사실 자명하다.
보수 정치권, 즉 민주당과 새누리당은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이권이 정말 많다. 지역구 공천, 당직, 공직 등등…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 합의가 쉬운 것이다. 그러나 진보 진영은 그럴 이권도 없고,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사실 진보진영은 여전히 사상적 “순결” 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그런 부분은 비판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사상의 순결이라니?
A: 사실 사상이 완전히 같은 사람이 있을 수 있겠냐. 진보 진영의 활동하는 방식은 무척 비판적이고, 적을 만들고, 차이를 찾아가는 과정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정규 교육을 받고 성장한 사람이 사상이 바뀌는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비판할 것, 바꾸어 나갈 것들 투성이니까. 애국주의, 학벌주의, 남성중심주의 이런 교육 받아온 인식들을 모두 고쳐나가야 하니까.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인식이 개인 내에서뿐만 아니라 진보 진영 내에서도 이어진다는 점은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피아식별을 못하고 비판을 하는 경향이랄까? 물론 건강한 자아비판도 있지만, 정도가 지나치다 보면 대중에게 혼란을 주는 것 같다. 즉 일곱 빛깔 무지개 속에서 대중들은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당색만을 알고 있는데, 진보진영이 자신의 색깔을 알려야 할 때 진노란색과 연노란색의 구분을 두고 싸우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그리고 그 싸움의 상처가 오래 남는 것 같다. 좋게 말하면 순수하고, 나쁘게 말하면 비판과 선 긋기에 익숙한 사람들이라서. 작금의 진보정치 상황은 문제가 있다. 모두가 동의한다. 이런 상황을 바라는 진보진영인사는 없을 것이다. 타계 될 것이다. 타계 되지 않으면 진보의 미래는 없다.
진보가 나아갈 길과 노동당의 역할
Q: 박근혜 정부의 행보를 신 공안 정국이라고 비판을 하고, 또한 이석기 사건에 대한 대응을 보복정치라고 비난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진보가 나아가야 하는가?
A: 이석기 사태는 특별하다. 당 차원에서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대응 또한 비판의 대상이다. 박근혜 정부의 정치는 매우 간단하다. 국민의 정치에 대한 관심을 없애는 과정이다. 국민이 언제까지 대통령의 해외 순방, 입은 옷과 머리스타일에 관심을 가져주겠는가? 그래도 그럴 수 있는 것은 확고한 고정 지지층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다. 지난 대선 때 보여준 장년층의 지지를 믿고 나머지 국민들은 정치에 대한 무관심으로 몰아가고 있다.
지금의 진보, 조합들은 오해받고 있다. 국민들은 조합을 기득권층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노동자들, 시민들은 자신들이 어떤 피해를 보고 있고 어떤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 또 어떻게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지를 모르고 있다. 하지만 여론은 쉽게 바뀐다. 당이 노력하고 조합들이 노력하면 인식이 바뀐다. 제아무리 탄압을 받아도 대중이 지지하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조합들이 지역 사회에서 좋은 활동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 시민들이 조합이 있으니까 좋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노동조합이 지역 사회에 봉사하고 정의를 수호하면 지역 사회가 변하고, 진보에 대한 인식이 변한다.
Q: 노동당에서는 어떠한 운동들을 하고 있는가?
A: 후쿠시마 사태를 들어 얘기를 해보겠다. MB 정권은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면서 원자력 발전산업을 키워왔다. 광우병 촛불 시위 때를 생각해보자. 시민들이 들고일어난 이유가 오직 광우병에 대한 의문이고 걱정 때문이었나? 난 민주주의 부재에서 일어난 봉기라고 생각한다. 즉 촛불 시민들의 목소리는 순수한 생명에 대한 걱정, 먹거리에 대한 의혹이라기 보다는 공동체 협의로 결정해야 할 사안을 상명하복 형태로 결정한 것에 대한 불만이 아니었을까. 지금 핵 발전소 문제도 그렇다. 나는 폐기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폐기를 결정하기 이전에 합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진보 정당이 얘기하던 무상의료, 무상보육, 무상급식 등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몇 년 전만해도 우리들의 주장은 빨갱이들 주장이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그러나 어느새 보수 정치권에서도 실시하고 있지 않은가. 노동당은 내년 지방 선거에서 무상교통과 빨간날 사업을 중점적으로 홍보할 예정이다.
이동의 자유는 국민의 권리이다. 또한, 이미 대중교통은 국가의 대규모 지원을 받아가면서 운영되고 있다. 공공재를 사회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맞지 않는가. 무상교통은 교통약자에 대한 보호와 동시에 임금 상승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빨간날 사업 또한 특별하다. 공휴일이 휴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공휴일은 공무원들이 쉬는 날일 뿐이다. 노동법상 규정되어 있는 휴일은 주 하루 밖에 없다. 모든 노동자들의 휴일은 연차에서 나가는 것이다. 알고 있었는가?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노동자는 거의 없다. 변호사들만 알고 있다. 노동자들은 이렇게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 빨간날이 휴일로 지정되면 그 또한 임금 상승 효과를 가져온다. 노동당은 내년 지방 선거에서 이런 이슈를 홍보할 것이고, 그 여파로 노동계와 경제계 사이에 논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썰타임에서 이러한 내용을 질문하면 더욱 자세히 설명해주겠다. 진보에 대한, 노동당에 대한, 그리고 박은지에 대한 모든 질문 또한 환영한다.
노동당 부대표 박은지 씨가 11월 8일 금요일 8시부터 9시 30분까지 썰타임에서 질문을 받습니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여기를 클릭해서 편하게 질문 남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