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일 오후 8:00 부터 9:30까지 썰타임에서 김동성 씨에게 질문을 하세요. 로그인 없이도 편하게 질문이 가능합니다.
Q: 안톤 오노에 대한 질문부터 시작할게요. 솔트레이크시티 동계 올림픽 당시 안톤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으로 실격처리가 되어서 금메달을 얻을 기회를 놓쳤는데요. 그 상황 당시 기분이 어땠나요?
A: 사실 미국에 도착한 순간부터 현지에 오노는 금메달리스트가 될 거라는 분위기가 만연했어. 원래 한국의 쇼트트랙 작전이 “막판 스퍼트” 잖아. 그래서 감독님이랑 얘기를 한 내용이, 그렇게 치고 나가는 과정에서 앞사람이랑 접촉이 있거나 하면 내가 실격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 전략을 바꾸자, 이번 경기는 처음부터 앞으로 치고 나가서 계속 선두를 유지하자였거든. 그렇게 1등으로 달리고 접촉이 없으면 어떻게 실격이 될 수 있겠어?
근데 내가 어떠한 접촉도 없이 일등을 하고 태극기를 들고 기뻐하는데, 1분 후? 오노의 이름이 전광판에 올라가 있는 거야. 그 순간 정말 내 머리에 아무 생각도 안 들었어. 정말 1분 동안 좋았다가, 천국 같은 성취감을 느꼈다가, 다음 순간 지옥 같은 느낌이었지. 그래서 그 순간에 정말 얼음에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안 들더라고. 내가 17년 동안 스케이트를 탔는데, 그 경기는 내가 아는 룰뿐만 아니라, 올림픽을 나가는 선수가 아닌 누가 봐도 잘못된 편파 판정이잖아.
결국 나가서 라커룸에서 스케이트를 벗다가 기절을 했어. 너무 열이 받았던 거야. 눈을 떠보니까 다음 날 침대에서 산소기를 끼고 링거를 맞고 있더라고. 모르는 사람들은 그 때를 순간의 억울함, 혹은 4년간의 준비의 좌절로 생각하지만, 난 정말 17년의 준비였어. 스케이트를 타는 순간부터 준비해온 순간이 날아간 거지. 그것도 은퇴 경기에서.
경기 이전에 무릎 연골판 수술을 3번이나 했어. 그래서 의사선생님이 선수 생활을 그만 둬야 한다고 얘기를 하더라고. 퇴행성관절염이 오게 될 거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마지막 경기에서 메달을 따고, 멋있게 은퇴하고 싶어서 나름 많은 준비를 했는데 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최악의 경기였지. 태어나서 그 순간 이전에도 후에도 그렇게 억울한 순간은 없었어.
Q: 인터넷에 오노와 화해한 사진이라고 돌아다니던데, 화해한 것 맞나요?
A: 화해한 것 아니야. 어깨동무하고 껴안고 있는 사진 말하는 것 맞지? 내가 미국에서 코치를 하고 있을 때, 시합장에 오노가 전국 투어 중에 왔어. 그런데 나를 보는 순간 갑자기 껴안는 거야. 그리고 나를 보고 저 쪽을 보라고 하더라고. 그 순간 사진이 찍힌 건데 난 사실 사진이 찍혔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어.
오노가 자서전에 그런 얘기를 썼대. 나랑 만났을 때 내가 오노가 최고의 스케이터다, 나보다 오노가 월등히 뛰어나다는 얘기를 했다고. 그런데 사실 운동선수는 언제나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을 해야 돼. 은메달이건, 동메달이건, 순위 밖이건 이건 똑같아.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신을 갈고 닦아야 이길 수 있는 거거든. 나도 물론 그렇고. 그런데 내가 왜 오노를 최고의 선수라고 인정하겠어.
결국 그때 찍은 사진도 방송용, 프레스용으로 찍은 거지. 사실 화해한 적은 전혀 없어. 그 후에도 공식석상에서 만난 적도 있는데 그 당시에도 그냥 공식적으로, 가식적으로 만났던 것뿐이었어. 대화도 없이.
Q: 인터넷에서 떠도는 소문 중에 김동성이 미국에서 코치 생활을 했을 때 학생들을 때렸다, 망치로 때렸다, 성추행을 해서 쫓겨났다는 얘기가 있는데요. 사실인가요?
A: 사실이면 지금쯤 교도소에 있어야겠지. 미드에 나오는 주황색 죄수복 입고서. 그 때 나를 지목한 부모들의 주장이 내가 3년 전에 애들을 때렸다, 성추행 했다는 거였어. 그런데 그 내용을 고소하거나 신고한 것이 아니라 언론에 얘기한 거였어. 그것도 부모들이랑 친한 기자한테.
그 똑같은 기자가 1년 전에는 나를 엄청 좋게 써줬어. 그런데 1년 만에 내가 애들을 망치로 머리를 때렸다, 스케이트 날로 엉덩이를 때렸다 이런 얘기를 쓴 거야. 그런데 그런 일을 했으면 자국도 남고, 진단서도 받을 수 있을 텐데, 3년간 아무 얘기도, 불만도 없다가 갑자기 그런 보도를 한거야.
스케이트장은 완전히 오픈된 공간이야. 김연아 선수가 훈련 할 때조차 사람들이 들어와서 볼 수 있어. 또 미국이 어떤 나라야? 고소와 신고가 생활화 되어 있는 나라잖아. 그런데 3년 동안 스케이트장에서 코치가 애들 머리를 망치로 때리고 엉덩이를 때렸는데 말 한 마디 없었다고? 말도 안 되잖아.
결국 날 매장시키고 은퇴를 시키려고 한 거야. 뒷이야기가 있지. 그 당시 내가 학생을 70 명 정도 가르치고 있었거든. 그러면 강습비, 스케이트장 사용료까지 해서 한 달에 몇 천만 원이 오가는 장사야. 그 때 주최 측 이사회에서 보니까 김동성 코치한테 나가는 돈이 너무 많은 거야. 그러면 ‘김동성 코치를 쓰지 말고, 월급쟁이 코치를 쓰면 이득이 훨씬 많이 나겠구나.’라고 생각을 한 거지. 그래서 나를 밀어내려고 작전을 짠 거지.
Q: 김동성이 불륜을 했다, 여배우랑 잤단 얘기가 나오는데 사실인가요?
A: 난 그 얘기가 왜 날 자꾸 따라다니는지 모르겠어. 김동성을 치면 연관 검색어가 나오는데 이게 참 웃겨. 김동성 여배우, 김동성 아내, 김동성 분노의 질주, 그리고 나오는 게… 앙드레”김 동성”연애야. 김동성 여배우를 검색해보면, 내가 여배우랑 한강 둔치에서 데이트를 하는 것을 목격했다는 얘기가 나와.
난 그 때 태릉에 있었어. 모두 증권가 찌라시에서부터 시작된 얘기야. 증권가 찌라시에 보면 프로 운동선수라고 되어 있는데, 알다시피 올림픽 선수는 아마추어잖아. 나도 그렇고. 사실 난 그 때 실제로 데이트를 한 사람을 알아. 선배 하나가 같이 술을 마시면서 얘기해 주더라고. 누구누구 때문에 네가 이렇게 누명을 썼다. 그래서 내가 “형은 어떻게 알아요?” 라고 하니까 “그때 내가 망 봤거든.” 이러더라.
내가 24살에, 아내가 22살에 결혼을 했어. 그런데 그 결혼이 불륜 설을 덮기 위해서 여배우 남편이 사주한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더라고. 소문이 참 무섭고, 더럽고, 그냥 되는 대로 뱉어내는 것 같아. 아내 집안이 법조계 집안이야. 그런데 누가 사주해서 결혼이 되겠어? 그리고 불륜을 한 남자한테 딸을 줄 장인이 어디 있겠어? 당연히 장인어른이 나에 대한 소문도 들었을 것이고 알아도 봤겠지. 난 그런 사람이 아니거든. 그래서 믿어주신거고.
다른 얘기지만, 내가 일찍 결혼을 한 이유는 물론 아내를 어린나이에 만나서 일찍부터 사랑한 것도 있지만 내가 가정에 대한 욕심이 있어서 그래. 우리 아버지가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돌아가셨어. 내가 국가대표 선발전 할 때 돌아가셨거든. 그런데 대학생이 되고 어른이 되니까 아버지의 빈 자리가 크게 느껴졌어. 그래서 난 어서 아이를 낳고, 함께 하고, 내가 가지지 못한 시간을 자녀와 함께 하고 싶었던 거지. 그것도 젊은 아빠로서.
Q: 이제 한 가정의 아빠로서, 그리고 연사라는 새로운 삶의 길에서 어떻게 미래를 바라보시나요?
A: 운동선수로서는 다 겪어 본 것 같아. 최고의 자리, 최고의 순간, 그리고 최악의 순간까지. 운동선수로서의 삶은 참 짧아. 은퇴 후에 인생도 참 한정되어 있고. 난 지금도 기업체, 학교 등에서 강연을 하고 있는데, 그런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해줄 애기가 있는 것 같아. 목표를 향해 꿈을 꾸고 달렸던 경험, 그리고 그 꿈을 이뤘던 경험, 좌절한 경험 등이 있어서 다행이야.
난 진심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의 얘기를 들어주고 나의 생각을 전해주고 싶어. 나도 힘들었고, 나도 느껴봤으니까. 시합 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올림픽 당일 연골판이 찢어지는 일도 있었고… 이젠 그런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경험들이 좋은 재료가 되어서 목표라든가 희망, 긍정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있는 것 같아.
또 그런 나를 재밌게, 좋게 봐주시고. 또 나는 나름대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경험들을 전할 수 있는 거고. 나의 진실한 모습, TV에서 보인 모습과 다른 모습을 썰타임에서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기뻐. 이제 운동선수가 아닌 30대 가장으로서, 한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얘기와 생각을 솔직하게, 가식 없이 보여주고 싶어. 인간 김동성을 보여주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