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식 투자를 할 때, 매수하고 나면 종목명은 거의 다 잊어버린다. 종목 발굴보다 일관성 있는 투자전략의 개발, 즉 어떤 논리로 주식을 매수하고 보유하고 매도하는지 고민하는 것이 백배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투자전략이 정해지면 그 전략에 적합한 종목은 저절로 나온다. 전략을 실천하기만 하면 수익은 저절로 따라온다.
좋은 투자전략은 누구나, 초보 투자자도 곧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구체적이며 명확해야 한다. 요리사가 바뀌어도 문제없는 식당의 레시피처럼, 투자자가 바뀌어도 동일한 방법으로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매수, 보유, 매도 기준이 체계적이고 계량적이며, 오해 소지가 없는 명확한 규칙을 따라야 한다.
왜 이렇게 틀에 박힌 전략을 구사하라고 하는 걸까? 전략의 구체성이 떨어지고 계량화가 어려우면 투자 과정에 어쩔 수 없이 사람의 주관(사실은 편향)이 개입하게 된다. 그러면 적어도 주식 투자 분야에선 대부분 패망의 지름길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두뇌는 합리적이지 않다.
인간의 두뇌는 주식 투자를 잘하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다. 앞으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우리의 뇌는 모순투성이다. 우리는 인간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동물이라고 착각한다. 물론 우리의 두뇌를 풀가동해서 매우 열심히 노력하면 가끔, 정말 이주 가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는 정말 예외상황에서나 발생하는 일이다. 우리의 두뇌는 그런 판단에 익숙하지 않다.
행동경제학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카너만(Daniel Kahneman) 교수는 우리 두뇌에서 두 가지 시스템, 즉 직관 체계와 추론 체계가 존재한다고 정리했다.
직관 체계에는 갑자기 소리가 난 곳으로 주의를 돌린다든지 하는 능력을 말한다. 생각이 필요 없으며 빠른 반응을 보장한다. 반면 추론 체계는 복잡한 계산 등 정신적인 노력이 필요한 상황에 가동된다. ‘17Ⅹ24 = ?’ 같은 문제에 대해 직관 체계는 답이 5나 5,000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아채지만, 정확한 값인 408을 구하기 위해서는 추론 체계를 사용해야 한다.
직관 체계는 일상생활에서 매우 요긴하게 쓰이고, 익숙한 상황에서 별 생각 없이 정확한반응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나 논리와 통계를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특정 상황에서 오류를 보인다. 그리고 작동을 단 한 순간도 멈출 수 없다. 2+2는 4라는 것을 머리속에서 계산하지 못하게 막을 수 없다. 큰 소리가 나면 무조건 사람의 관심은 일단 그곳으로 향하게 된다.
더 심각한 건, ‘논리적, 합리적 판단’담당인 추론 체계는 우리의 의지가 없으면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추론 체계가 작동하는 데는 노력과 주의가 필요하다. 따라서 인간은 일상생활을 하면서 대부분인 경우 ‘감각적인’ 직관 체계의 통제를 받고, 아주 가끔 필요한 경우에만 ‘논리적인’추론 체계를 쓰는 것이다.
우리는 피곤하고, 배고프고, 귀찮고, 바쁘고, 주의가 분산될 경우 추론 체계를 가동할 노력과 에너지를 투입하기 어렵다. 이 경우 추론 체계가 필요한 경우에도 직관체계의 명령을 따른 때가 많다.
직관 체계는 간단한 상황에서는 옳은 결정을 내리지만 논리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오류, 즉’편향’을 보이곤 한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것은 주식시장에서는 치명적이다. 주식시장은 우리의 직관으로만 대처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이래서 투자자의 직관 체계가 비극을 만들기 전에, 투자자의 주관적 판단이 필요한 상황을 최대한 피하는 것이 좋다. 단순한 기계적 투자전략들이 수십 년 공부하고 경험을 가진, 그러나 자신의 머리를 사용하는 펀드매니저들보다 수익률이 훨씬 더 높다.
판단을 흐리는 편향들
행동경제학은 직관 체계가 구체적으로 어떤 편향에 약한지 연구하고, 따라서 인간이 공통적으로 주식 투자에서 실수하는 원인을 밝혔다.
한국에서 알파를 창출한 대부분의 전략은 해외 증시에서도 알파를 재창출했다. 인간의 편향을 역이용하면 얼마든지 알파을 창출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인간의 편향은 어딜 가도 비슷하기 때문에 모든 증권시장에서 예외 없이 괴리가 발생한다. 시간이 지나 괴리가 해소되면서 일시적으로 저평가된 기업들은 제값을 찾아간다. 이 과정에서 알파가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편향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동시에 편향에 휩쓸리지 않도록 특히 유념해야 한다.
편향의 대표적인 몇 가지 사례는 다음과 같다.
비일관성
성공적인 투자는 별거 없다. 가치투자는 꾸준히 수십 년간 PER, PBR, PCR 등 밸류 지표가 우량한 주식을 사면 부자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일관성 있게 행동하는 사람은 발견하기 어렵다. 판사 8명이 가석방 신청을 검토하며 평균 6분 만에 결정을 내리는데, 식사 직후에는 가석방 승인 비율이 65%였던 반면, 식사 전 2시간 동안에는 승인 비율이 점점 떨어지다가 식사 직전에는 0%로 감소했다. 배고프면 요청을 쉽게 거부하는 것이다.
주식 시장에서도 똑 같은 조건을 가진 주식을 분석해도 기분, 건강, 배고픔, 피로, 날씨, 오늘 본 신문 내용, 점심 식사의 맛 등 투자와 전혀 무관한 요소에 가치 판단이 좌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렇게 살아도 사회생활에는 큰 문제는 없다. 가석방 판사들도 사회에서 매우 존경받는 분들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판단이 오락가락하면 주식 투자에는 치명적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이렇게 오락가락하지 않는 사람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단 한명도 없다. 일관성 있는 행동이 이렇게 힘든데, 일관성 있게 투자하는 행위는 얼마나 어렵겠는가?
과잉 확신 편향
우리는 모두 남보다 잘났다고 생각한다. 이를 과잉 확신 편향, 속된 말로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 이라고 한다. 당당한 태도, 자신감의 찬 모습은 사회생활에 굉장한 도움이 되지만 투자할 때 만큼은 굉장히 위험하다. 특정 종목을 보유한 후에 그 종목이 별 볼 일 없다는 확실한 증거가 아무리 많이 나타나도 근자감으로 지속 보유를 고집하기 때문이다. 결국 망한 후에야 정신을 차리게 된다.
한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개인 투자자 중 1~2종목만 보유한 투자자가 전체의 60% 이상이었다. 10개 종목 이하를 보유한 투자자는 93%다. 또 국내 주식 투자자 500만 명 중 책을 읽고 공부를 하는 투자자는 5만 명 미만이라고 한다. 나머지 99%는 도대체 무엇을 믿고 투자할까? 이것만 봐도 국내 투자자들이 얼마나 심한 과잉 확신 편향에 사로잡혀 있는지 드러난다. 자신이 매수한 1~2개 주식이 “꼭 상승할 거야”라고 근거 없이 믿는 것이다.
기준점 편향
어떤 실험에서 참가자 절반에게 10이라는 숫자를 보여주고 나머지 절반ㅇ네게는 65하는 숫자를 보여줬다. 그러고 나서 “아프라카 국가 중 UN 가입국이 몇 퍼센트 일까?”라는, 참가자들이 알기 어려운 질문을 했다. 10과 65하는 숫자는 이와 전혀 관계가 없으나, 질문 전에 10을 본 이들의 답은 평균 ‘25%’, 65를 먼저 본 이들의 답은 평균 ‘45%’였다고 한다. 이렇게 의사결정과 전혀 상관없는 숫자나 팩트를 바탕으로 결정을 내리는 현상을 기준점 편향이라 한다.
주식을 언제 팔아야 할지 고민하던 중 3번 버스가 3대 연속으로 지나가면 ‘3일 후에 파는 것이 어떨까?’라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 대부분이 기준점 편향에 약하다는 설은 학계에서 논문으로 많이 검증되고 있으며, 우리가 접하는 왜곡된 정보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잘못된 기준에 따라 투자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손실 회피 편향, 처분 효과
대부분의 투자자는 매수 단가 밑으로 하락한 주식을 매도하는 행위를 지극히 싫어한다. 손실을 확정짓는 것이 매우 슬프기 때문이다. 이를 손실 확정 편향이라고 한다. 사실 매수한 주식을 매도할지 또는 계속 보유할 지 결정하는 데 매수 단가는 중요하지 않다. 합리적인 투자자는 그 주식이 투자전략에 적합하다고 판단하면 계속 보유하고, 그렇지 않으면 매도한다.
일반적으로 100만원을 버는 기쁨보다 100만원을 잃는 슬픔이 2.5~3배 정도 더 강하다고 한다. 그래서 누가 봐도 쓰레기 같은 주식을 “본전 만회해야지!”를 외치면서 팔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며 상장폐지일까지 보유하고 있다가 파멸하곤 한다.
손실 회피 편향을 가진 투자자들의 상당수는 주가가 10~20% 정도 상승하면 서둘러 매도해 이익을 확정짓고자 하는 경향도 있다. 상승했던 주식이 반락해 손실을 볼지도 몰라서 두려운 것이다. 이처럼 이익을 챙기는 데 급급한 행위를 처분 효과라 한다. 괜찮은 투자 수익을 얻으려면 100% 이상 상승하는 종목도 보유해야 하는데, 10~20% 선에서 서둘러 잘라버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손실 회피 편향과 처분 효과가 합쳐지면, 많이 하락하는 종목은 본전 욕심에 계속 보유하고, 계속 상승할 종목은 서둘러 매도하는 슬픈 현상이 발생한다. 개미 투자자의 ‘90% 이상은 위와 같은 매매 패턴을 보여 망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