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에 속아 위험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 게르트 기거렌처 지음 (전현우, 황승식 옮김), 살림, 2013
확률과 통계가 어려운 이유: ‘1천 명 중 1명’이 아닌 0.1%라 말하기 때문 에서 이어집니다.
HIV는 AIDS가 아니다?
한때 HIV와 AIDS의 병리적 개념은 물론 HIV 선별검진의 위양성 등 통계적 개념을 뒤죽박죽 섞어 무리수를 벌컥벌컥 들이키는 책이나 영상물이 많이 나온 때가 있었습니다. 예컨대 <에이즈는 없다>, <하우스 오브 넘버스> 등… 여기에서는 대담하게도 에이즈는 없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HIV 때문에 AIDS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HIV-AIDS 치료제 때문에 AIDS가 생긴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워낙 오래된 떡밥이라 요즘에도 믿을 사람들이 있을까, 싶었는데 여전히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보이더군요.
“위양성의 가능성을 모른다는 것은 확실성에 대한 환상의 한 가지 형태다.” – 169p.
이 책에도 나오지만 검진의 경우 의사-환자 간의 소통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위양성(false positive 거짓 양성)’의 개념입니다. 정규의학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위양성이 태초에 빛이 있던 무렵부터 있던 개념인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또는 수검자들이 검사에 대한 신뢰를 가지게 하려고, 혹은 귀찮기 때문에 환자들에게 이런 것을 주지할 책무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런데 HIV-AIDS에 관한 비합리적인 논법과 같이, 자신의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에서 의학을 불신하는 시작점은 위양성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기 때문인 경우가 다수인 듯 합니다. 여기서 시작하는 논리 구조를 한 번 따라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1) 봐라, 검진 결과가 양성으로 나와도 거짓양성이라는 게 있다더라
-> 맞아요 위양성이라는 게 있어요.
2) 그런데 왜 검사가 정확하다고 하고 믿으라고 하느냐.
-> 네, 무조건 ‘검사가 정확하다’, ‘믿어라’는 태도는 옳은 태도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3) 에이즈에 걸리면 인생 삐꾸되는 거 아니냐?
-> 꼭 그런 건 아닙니다. HIV-AIDS는 이제 만성질환이 되었지요.
참고 : <에이즈 누적감염자 1만명… 만성질환 됐지만 인식은 30년 전 ‘그대로’>
논리에 비약이 생기고 비약의 빈틈으로 불안감이 스며들면서, 여기부터 낭설들이 가세하게 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에이즈의 원인이 바이러스가 아니라는 이야기죠. 개념을 애매하게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사설이 들어가기 좋은 대목입니다. 왜냐면 면역결핍증후군을 유발하는 원인은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선천적으로 면역이 결핍된 경우에는 원인을 밝히는 것 자체가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죠. 후천적으로 면역을 결핍시키는 원인도 있습니다.
다만 밝혀진 원인 중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을 일으키는 주요한 원인이 바로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즉 HIV인 것이죠. HIV는 AIDS가 아닌 것이 사실이고 정확한 표현은 HIV-AIDS가 되어야 합니다. 이에 대한 혼동 때문에 낭설이 낭설을 낳게 되는 것이죠. 그럼 왜 하필 HIV가 타깃이 되었느냐,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HIV는 사람 사이에 전염될 수 있기 때문에 유방암과는 아주 다르다. 조기 발견은 바이러스의 확산을 감소시킬 수 있고, 이에 따라 유병률 또한 감소시킬 수 있다.” – 163p.
바로 전염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HIV 감염은 성매개감염(STD)이기 때문에 다른 모든 검진과 마찬가지로 검진이 감염을 예방할 수는 없지만, 감염자를 찾을 수 있다면 자신의 성적 파트너에게 알리거나 안전한 성행위를 하는 등 보건지침을 이행하도록 교육하여 감염이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건당국은 HIV 선별검사를 진행합니다. HIV-AIDS에 대한 오해가 조금 풀리셨나요?
위양성의 현혹: HIV 양성 결과가 나온 남성이 HIV에 감염됐을 확률은?
그렇다면 이제 다시 첫 번째 문제인 ‘위양성’으로 돌아가 봅시다. 모든 검사에는 병이 있거나 감염이 되지 않았는데 마치 있는 것처럼 나오는 ‘위양성(false positive : 거짓 양성)’ 결과가 나오게 됩니다. 100%라는 정확하다는 확신은 이데아의 세계에서 가능한 것이죠. 본문에 나오는 HIV 선별검사에 대한 예를 통해 저위험군(HIV 감염에 노출될 가능성이 적은 집단)에서 검사결과 양성이 나왔을때 실제 HIV에 감염되었을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를 한 번 계산해보시겠습니다. 주변에 필기구 있으면 들어주시구요.
“위험 행동으로 알려진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남성의 약 0.01퍼센트가 HIV에 감염되어 있다. 만일 어떤 남성이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다면 99.9퍼센트의 확률로 검사에서 양성 결과가 나올 것이다. 만일 어떤 남성이 감염되어 있다면 99.99퍼센트의 확률로 검사결과는 음성으로 나왔을 것이다.” – 173p.
뭔 소린지 모르시겠죠?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양성결과로 나왔을 때 정말 감염되어 있을 확률이… 아마 99퍼센트 정도 되려나요? 아님 99.99%? 제가 수능시험 직전이라거나 의과대학 본과 2, 3학년 때라면 제대로 풀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계산맹 이전에 숫자맹임을 밝혔듯이 아마 이 문제가 나와도 틀렸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이제 같은 제시문을 자연빈도로 표현해보겠습니다.
“위험이 있다고 알려진 행동을 하지 않는 1만 명의 남성이 있다고 하자. 그 중 1명이 HIV에 감염되어 있고 이 검사는 사실상 확실하다. 그리고 다른 한 명, 즉 감염되어 있지 않은 남성 9,999명 중 1명이 검사에서 양성 결과가 나온다. 따라서 우리는 1만 명 중 2명이 양성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 173p.
이것이 자연빈도의 힘입니다. 저위험군에서 HIV 선별검사에서 양성이 나올 경우 실제 감염이 된 경우는 2명 중 1명이 되는 것이죠. 우와 이거 엉터리 아니냐? 이렇게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HIV에 감염될 가능성이 높은 집단, 즉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한 선별검서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일반적으로 고위험군은 정맥주사 사용자, 정맥주사 사용자의 이성애 파트너, 동성애 남성, 혈우병 환자, HIV에 감염된 어머니의 아이 등 성적, 혈액학적 경로로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 집단을 이야기합니다. 책에서 계산된 바에 따르면 특정 고위험군에서 양성결과가 나온 151명 중 HIV에 감염되지 않은 사람은 단 1명, 즉 1퍼센트 이하의 비율이므로 HIV에 감염됐을 확률이 높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175p.)
그럼에도 151명 중 1명이라는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ELISA와 웨스턴블롯 같은 표준검사를 반복한다고 해도 어쨌든 누군가는 위양성 결과를 받고 절망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HIV 선별검사는 물론이거니와 각종 검사나 진단에 대해서 치료자나 상담자들은 확실성의 환상을 가지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를 받아들이는 수검자들도 마찬가지로 확실성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 위양성 결과가 나온 사람이 HIV 감염자와 위험한 성행위를 한다든가, 검진결과를 받고 자살을 하는 등 비극적인 일들이 발생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통계와 확률에 속지 않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1) 저자는 먼저 불확실성을 파악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저자는 “이 세계에는 죽음과 세금 말고 확실한 것이라고는 없다”는 경구에서 시작해보자고 이야기합니다. 즉, 과학과 통계의 세계 역시 세상만사와 마찬가지로 불확실하다는 전제 위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죠. 책에서는 불확실성의 극단적인 예로 무려 서른다섯 번이나 HIV 선별검사를 받았지만 지속적으로 음성결과가 나온 예를 제시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각종 선별검사와 DNA 지문 등과 같은 첨단 수사기법의 수혜를 받고 있기에 그런 첨단기술의 결과는 언제나 확실하다고 믿게 됩니다.
저자는 이런 기술들 자체는 경이로운 것이나 오류를 모두 제거할 수 없음을 인식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312p.) 위에서 든 예에서는 HIV 선별검사에서 모든 양성결과가 감염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것을 모르는 것이 이에 해당되겠지요.
2) 그다음으로 불확실성이 위험으로 바뀌는 상황에 대해서 인지하는 것입니다. 이는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가 되는지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이는 대부분의 ‘선택’이 확실성과 위험 사이에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과 불확실성 즉, 위험과 위험 사이에서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위험에 대한 무지는 치명적이죠. 담배가 일으키는 폐암의 위험성에 대해 무지했던 결과 80% 이상의 폐암이 담배에 의해 발생하게 된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315p.) 위에서 든 예에서는 HIV가 AIDS를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는 음모론이 횡행하게 되는 것이 이에 해당될 것입니다.
3) 마지막으로 이런 위험을 소통하는 데 있어 직관적이고 명확하게 표기할 수 있는 투명한 표기법을 발견할 수 있는 방식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예를 든 가장 투명한 방식은 비교 위험도 감소를 절대 위험도 감소로 표기하는 것이나 확률이나 퍼센트를 자연빈도로 표기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외의 방식도 있을 수 있으니 각 개인들이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방식의 계산안을 가지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기거렌처의 대안: 실제 병원에서 보는 그 의미와 한계
“환자의 선택은 의사와 같지 않을 것이며 또한 언제나 같아서도 안 된다. 휼륭한 의사라면, 환자들에게 자신과 환자의 이득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밝힐 것이다. 확실성에 대한 환상, 즉 치료가 오직 이득만을 지니며 결코 해롭지 않다거나, 최선의 치료법은 오직 한 가지뿐이라거나, 진단을 위한 검사가 절대적으로 확실하다거나 하는 환상들은 환자가 스스로 자신의 견해를 가지는 것을 가로 막는 장애물인 것이다.” -34p.
기거렌처의 방법론은 명료한 대안으로 보입니다. 저자 본인이 정리한 계산에 대한 객관적 지식이 사회적 비용을 줄이며 사회적 실천의 영역까지 확장하여 쓸 수 수 있는 대안적 도구임을 제시했기 때문이죠.
다만 이것이 하나의 도구라는 점 역시 뚜렷한 한계일 지 모릅니다. 가령 실제 진료환경에서 문제가 생기는 지점은 이런 것이니까요. 고혈압의 진단기준 권고안은 점점 낮게 책정되는 데 이는 상당부분 제약업계와 의료계의 이익이 반영되어 있지만, 그와 동시에 권고안의 혈압수치가 낮아질수록 고혈압에 따른 합병증을 줄일 수 있다는 합리적인 결과 역시 반영되어 있는 것입니다. 환자와 직접 대면하는 1차의료 종사자의 경우 이때 딜레마가 생기죠.
애매한 상태의 환자에게는 약물치료 이전에 충분한 시일을 두고 운동과 식습관 교정을 지속적으로 권고할 수 있습니다. 1) 이야기가 잘 통하는 분들께는 이런 방법으로도 혈압강하 효과가 분명히 있습니다. 다른 한 편에서는 2) 수축기 혈압이 200 가까이 되어도 생활습관 교정은커녕 약물복용도 잘 하지 않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관심법을 쓰거나, 독심술을 쓰거나, 송강호 같은 관상의 달인이라고 해도 진료실에 갓 들어온 초진환자가 1)과 2) 중 어떤 유형일지 정확히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만약 2) 유형의 환자에게 생활습관 교정만을 이야기했다가 쓰러져서 반신불수가 될 경우 (거의 필연적으로 뒤 따르며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소송을 피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점점 방어적인 태도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죠.
의료에서만 예를 들자면 의사가 환자나 수검자에게 치료나 검진의 불확실성을 인지시켜주고, 위험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고, 정확한 표현법으로 불확실성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행위별수가제 하에서 피상적인 물적보상이 보이지 않는 이런 소통방식에 시간을 투여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의료인이나 법조인 같이 계산맹 개안의 책무를 가져야하는 직종의 독자들 뿐 아니라 일반적인 많은 독자들에게도 읽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는 문맹률이 높던 곳에서 활자를 읽을 줄 아는 비율이 높아지면서 정보의 전달이 보다 평등해져 공동체 내에서의 사회 진보가 이루어지는 원리와 비슷합니다. 계산맹 개안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한 문단을 인용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의사들이 환자에게 정보를 전달해주는 데 실패하는 처음 세 가지 이유는 제도적, 전문적, 경제적 구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며 이 책이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네 번째 이유인 계산맹에 대해서는 희망을 가질 만한 근거가 있다. 이 책은 계산맹 상태를 개안시켜줄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이며 싸고 간단한 도구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충분한 수의 의사들과 환자들이 이 도구를 충분히 익힌다면 그들은 제도적, 전문적, 경제적 구조를 바꾸자는 압력을 가하기 시작할 것이다.” – 15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