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서원·밀양향교 방문
‘옛날 학교’ 궁금증 재미있게 퀴즈 풀며 알아가
밀양시립박물관에선 독립운동가 활약상 한눈에
10월달 즈음, 밀양으로 역사탐방을 다녀왔다. 밀양은 역사탐방을 하기 좋은 장소가 많다. 임진왜란 때 대활약을 펼쳤던 사명대사의 사당이 있는 표충사, 우리나라 3대 누각 중 하나로 꼽히는 영남루, 밀양이 배출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을 정리해 놓은 밀양박물관 등. 예림서원과 밀양향교 또한 규모나 아름다움이 어디에 내놓아도 뒤처지지 않는다. 아이들과 함께 찾은 곳은 예림서원과 밀양향교 그리고 밀양박물관이다.
서원과 향교가 무엇이 같고 다른지는 물론 그것들이 옛날 학교라는 사실조차 아는 사람이 뜻밖에 드물다. 제사를 지내는 오래된 건물 정도로 아는 경우가 많다. 밀양 가는 버스에서 별 기대 없이 물었더니 역시나 옛날 건물이라는 답이 여기저기 들려온다. 서원과 향교 구분을 할 줄 알게 되면 그것만으로도 역사에 관심을 가지는 작은 계기가 될 수 있겠다.
“옛날 초등학교는 뭐지요?” 하면 “서당요” 한다. “대학교는?” “성균관요.” “그러면 중·고등학교는?” 이번에는 다들 조용하다. 서원과 향교가 바로 중·고등학교인데, 향교는 공립이고 서원은 사립이라는 차이가 있다는 설명을 듣고 난 후 친구들의 자세가 한결 편안해졌다. 아마 학교라는 장소가 주는 친숙함 때문일 것이다.
예림서원에 도착한 후 강당에 옹기옹기 모여 앉았다. 내려다보이는 서원의 풍경은 요즘 학교와는 비길 수 없을 만큼 고즈넉한 정취로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예림서원에서 모시는 인물 김종직은 아무래도 아이들에게는 무거운 주제다.
대신에 옛날 기숙사(동재·서재)는 학생들 신분을 차별해서 들였을까? 초등학생도 서원에서 공부할 수 있었을까? 오늘날 도서관과 같은 건물은 왜 벽을 나무로 만들었을까? 출입문(독서루) 2층은 어떤 공간이었을까? 등등 관련 얘기들을 지루하지 않고 가볍게 도전 골든벨 형식으로 풀었다.
김종직을 제사 지내는 사당이 강당 뒤쪽 높은 데 있는 까닭을 묻자 ‘하늘과 좀 더 가깝게 하기 위해서’라는 재미있는 답이 나왔다.
밀양향교는 전국 으뜸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크고 근사하다. 규모만으로도 옛 밀양의 영화를 충분히 짐작해볼 수 있을 정도다. 게다가 건물만 남은 여느 지역과는 달리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생동하는 공간이다. 사람들이 와서 쉬기도 하고 공부도 하는 살아 숨 쉬는 문화재다.
정문 격인 풍화루에 올라앉아 가장 편한 자세로 옛날 공부를 해보기로 했다. “요즈음은 학교에서 국어 영어 수학 등을 배우는데 옛날에는 무엇을 배웠을까요?” 그랬더니 “공자 왈 맹자 왈을 배웠습니다” 이런 답이 날아온다. “공자 왈 맹자 왈이 무엇이에요?” 했더니 “그냥 공자 왈 맹자 왈입니다요” 그런다.
재미있는 대답이다.
“그렇다면 오늘 ‘공자 왈 맹자 왈’을 한 번 배워보자. 다들 가지고 있는 종이와 볼펜을 꺼내 자기가 생각하는 효도에 대해 한 번 적어보자.”
모두들 엎드려서 열심히 끄적이기 시작한다. 요즘 친구들이 생각하는 효도란 무엇일까? 적고 있는 글이 궁금했다.
“공부를 잘하는 것이다”
“돈을 많이 벌어서 용돈을 많이 드리는 것이다”
” 말을 잘 듣는 것이다”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엄마 아빠가 아플 때 보살펴드리는 것이다”
“동생과 싸우지 않는 것이다”
“내가 안 아픈 것이다”
등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이 가운데 “동생과 싸우지 않는 것이다”와 “내가 안 아픈 것이다”를 뽑아 쥐꼬리 장학금 1000원씩을 안겼다. 전자는 효는 현재 실현 가능한 내용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으로 보았고, 후자는 부모 걱정을 끼쳐드리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효의 본질을 담았다고 보았다.
아이들에게 서원과 향교의 기능이 어떻고 구조가 어떻고 누구를 모시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옛날 학교에 와서 옛날 방식으로 공부를 해본 기억이 훨씬 오래가지 않을까. 공부를 마친 아이들이 향교 마당에서 뛰어노는 모습이 자연스럽고 정겹다. 세월과 상관없이 학교는 아이들에게 몸과 마음이 성장하는 데 가장 중요한 곳임에는 틀림이 없다.
마지막으로 밀양박물관을 찾았다. 밀양박물관 하면 “나, 밀양 사람 김원봉이오” 영화 <암살>에 나오는 이 대사를 빠뜨릴 수 없다. <암살>을 본 친구들 가운데 이를 기억하는 친구가 있었다.
많은 이들이 백범 김구 선생을 가장 대단한 독립운동가로 여긴다. 당시 일제가 백범 김구 체포 현상금으로 60억 원을 걸었다면 약산 김원봉을 잡기 위해서는 100억 원을 걸었다는 얘기를 설명했다. 아이들은 다들 놀라는 표정이다. 김구보다 더 대단한 인물을 떠올리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밀양 출신 독립운동가는 일흔 명이 넘는다.
박물관에서 미션 문제를 풀고 보니 네 팀이 동점이었다. 최종 한 팀을 뽑는 미션은 태극기 그리기였다. 지금 당장 그려보게 하면 어른들도 정확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두 팀이 정확하게 그렸다. 이런 정도면 사비를 털어서라도 쥐꼬리 장학금을 주어야 한다. 하하.
돌아서면 금세 까먹을지라도 지금 이 순간 뭐든 열심히 하는 아이들이 예쁘고 대견했다. 시간이 된다면 나도 또 한 번, 이 글을 보는 사람들도 아이들과 함께 밀양에 방문해보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