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말하는 ‘어른 세대’하고 왜 커뮤니케이션이 쉽지 않은가 고민하다 내린 결론은 즉시성, ‘개인화 여부’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의 방향성’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
과거, 휴대폰 메시지가 보급되었을 때 이미 기성세대였던 분들은 답변의 즉시성이 그 이전 편지보다 훨씬 빨라진 휴대전화 메시지에도 ‘아무에게나 할 수 있는 말’을 ‘통보’ 식으로 했다. 이건 그들이 무례하다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라 당시의 커뮤니케이션 특성상 당연한 것. 그들이 쓰던 커뮤니케이션 도구는 편지였고, 편지는 즉각 답변을 받을 수도 없거니와 상대방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받아낼 수 없다는 것에 대해 상호 암묵적 동의가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당연하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더 많이 담을 수밖에 없다. 물어봐야 답변이 오려면 최소 며칠, 길면 몇 달(국제 편지의 경우)도 걸리다 보니 상대방에게 물을 수 있는 것들은 극히 한정되고 자신의 현재 상태와 앞으로의 계획을 열심히 말하는 것으로 글의 주제가 집중될 수 밖에 없기 때문.
그 과도기에 생긴 게 바로 통보 문자다. 불특정 다수에게 발송되고 아직도 구태의연한 정치인들이 아무한테나 다 똑같은 메시지를 발송해서 욕은 먹지만 왜 욕을 먹는지 정작 당사자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그 문자. 그것이 바로 편지와 카톡으로 대변되는 모바일 메신저의 과도기적 현상인 것이다.
문자 메시지와 현재 모바일 메시지는 즉시성이 담보되었다는 공통점을 지니지만 ‘건당 과금 vs. 무제한 사용 가능’이라는 차이점이 있었다. 따라서 문자 메시지를 보내던 시절에는 할 수 있는 모든 길이를 가득 채워 보내야 했다. 현재 ‘ㅇㅈ?’ ‘ㅇㅇㅈ’ 이런 류의 메시지는 돈이 아까워서라도 보낼 수가 없었다.
즉 통보 문자는 편지세대가 휴대폰 세대로 넘어오면서 과거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그대로 차용해서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사람은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을 선호하기에 완전한 모바일 시대로 진입하였음에도 기성세대는 여전히 과거의 편지형 커뮤니케이션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금속활자가 보급되기 전에는 책 역시 같은 내용을 써 내려가더라도 다 일일이 적어내야 했다. 즉 내용은 같지만 다른 책이었던 것. 마찬가지로 편지를 쓸 때는 설령 이것이 같은 내용일지언정 일일이 작성되었다는 것을 서로가 안다. 따라서 내용을 달리할 필요가 없었던 것. 그냥 그 결과물을 받는 것 자체가 신경 쓴 결과물 정성이 담긴 결과물을 받은 것이니까.
그러나 디지털 세대로 진입하면서 동일한 내용은 복제하는 데 수고가 거의 들지 않는다. 따라서 내용이 달라야 정성을 쏟은 것으로 자연스럽게 간주한다. 하지만 기성세대는 과거에 했던 것처럼 같은 내용을 여러 사람에게 보낸다. 하나도 고치지 않고.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아무한테나 다 보낼 수 있는 메시지를 받고 정성이 들어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건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성의가 정말 없는 행동이거든.
지금 이 글을 보는 당신이 기성세대라면 상대방에게 연락할 때 자신의 할 말만 하지 말고 마지막엔 ‘상대방에게 특화된 질문’을 덧붙이는 것만으로도 훨씬 젊은 세대와의 교류가 쉬워질 것이다. 당신이 젊은 세대라면 꼭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 어른이 왜 나한테 할 말도 아닌 것 같은 말만 하고 아무것도 묻지 않는지 그 배경 정도는 이해해 둘 필요가 있다.
모든 도구가 개인화라는 말이 나올 필요도 없이 아날로그였고, 생산과 수요가 1대 1로만 매칭될 수밖에 없던 당시 도구에는 자동적으로 개인화라는 것이 적용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즉 그들이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아 과거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그대로 활용할 뿐이라는 것을 알면 마음이 한결 편하다.
모두에게 똑같은 메시지를 통보식으로 보내는 사람이 독단적이거나 자기 할 말만 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고 먼저 부드러운 한 마디로 상대방과 개인적 대화를 이끌어낸다면 세대가 다르더라도 분명 이야기가 오갈 것이다. 사람은 어느 시대에 태어났느냐에 따라 더 익숙한 것이 달라진다.
젊은 세대인 역시 언젠가 나타날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현재 익숙한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려 하고 미래의 젊은 세대와 점차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워질 것이다. 하지만 배경을 조금만 되짚어 보면 그들의 방식 역시 그리 대단히 어려운 것이 아님을 알 것이다. 방식의 차이점은 있을지언정, 우리는 적어도 현재는 같은 도구와 같은 언어를 사용해서 이야기를 나누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