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수원시와 화성시가 수원 공군기지(K-13) 이전을 두고 첨예한 갈등이 일고 있는 가운데,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12월 28일 화성시가 국방부 장관을 상대로 낸 권한쟁의심판 사건에 대한 각하 결정을 내렸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거대 광역시로의 확장을 꿈꾸는 수원시에 이웃인 화성시의 입지가 약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웃 도시에 대한 배려 없는 큰 도시의 횡포?
수원 공군기지를 두고 수원시와 화성시가 첨예한 대립을 하게 된 이유는 ‘수원 공군기지 이전’에 경제적 득실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수원 공군기지 이전 사업은 공군의 필요에 의해 추진된 것이 아니라 수원시의 요청에 의해 추진되는 사업이다. 이와 관련해 ‘수원시가 이웃의 화성시에 대한 배려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수원시가 추진하는 공군기지 이전사업은 건설사가 새로운 부지에 공군기지를 세워주고 이전이 완료된 공군기지 부지에 대한 개발수익을 취하는 방식으로 사업 규모는 7조 원, 파급경제효과는 10조 원으로 추정된다. 반면 화성시가 얻을 이익은 5,000억 원 정도로 알려졌다.
화성시 입장에서 보면 공군기지 이전 예비 후보지로 선정된 화성시 화옹지구에 공업지역과 상업지역을 개발해 얻을 수익 가능성마저도 침해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화성시의 인구는 수원의 절반 수준이지만 지난 2017년 시 예산은 2조 7,000억 원으로 수원시에 크게 뒤처지지 않기에 수원시의 일방적 사업 추진에 불만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기존 수원 공군기지 부지의 상당 부분이 화성시에 포함돼 수원시가 화성시의 동의 없이 공군기지 이전을 신청한 것은 ‘군공항이전특별법’을 위반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큰 도시가 이웃한 소도시를 배려하지 않는 사례로 김해신국제공항 건설을 들 수 있다. 공군기지 시설에 의존하는 김해국제공항의 확장을 통해 공항 이용객 및 물류량을 더 유치하려는 부산광역시와 확장공사로 인해 발생하는 소음 및 환경 문제만을 이웃도시 김해시가 떠안기 때문이다.
지난해 부산시는 최근 4년간 김해공항의 이용객 수가 꾸준히 늘고 있다며 김해국제공항의 확장공사가 시급하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그러나 확장공사로 연간 30만 회에 이르는 항공기가 1~2분 간격으로 뜨고 내리면 이로 인한 일상생활에 막대한 피해는 김해시의 몫이 되는 셈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실익보다 국가안보가 우선돼야
수원 공군기지는 지리적으로 최전방 중서부 전선을 지원하는 공군의 최전선 기지다. 즉 북한과 대치한 안보 상황에서 과중한 인구밀도의 수도권 영공방어와 최전선의 근접지원을 신속하게 지원해야 하는 주요 군사시설이다.
수원 공군기지 이전과 관련해 공군의 관계자는 “수원 기지와 후보지인 화성 화옹지구 모두 공군의 작전 환경을 충족한다”면서 “공군의 입장에서는 작전환경만 충족한다면 큰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예비역들은 ‘안보라는 국가적 이익이 지역의 이해관계에 따라 흔들리는 선례를 만들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익명의 한 예비역은 “군사 시설의 이전은 작전 환경을 충족하더라도 다양한 변수 사항들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기지 이전에 따른 항공기 연료 소모, 이에 따른 작전 계획 변경, 주변 지역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이·착륙 비행경로 등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항들을 종합하는 것은 군에 상당한 부담을 안겨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예비역은 “수원 기지는 철도 등 군수지원 인프라가 인접해, 유사시에 우리 공군의 항공기를 비롯해 미 공군 및 우방국 공군 기체들이 전개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수원 공군기지는 한국전쟁 이후 60여 년 넘게 미군과 우리 공군이 활용해온 만큼, 오랫동안 수립되어 온 기지 활용 계획이 틀어져 군사작전 계획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예비역은 “군이 민의에 응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경제 논리에 의해 전략적·전술적 요충지를 잃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라며 “이명박 정부가 국책사업으로 추진한 제2 롯데월드 건설로 이미 위험을 떠안은 선례가 있다”고 지적했다.
2008년 말 롯데는 서울공항(성남 공군기지)의 동편 활주로 각도를 3도가량 트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전액 부담하겠다는 명분으로 제2 롯데월드를 착공했다. 성남 공군기지의 활주로를 3도가량 틀기는 했지만 일선 공군 조종사들 사이에서는 제2 롯데월드로 인한 이착륙 시의 위험성은 여전히 높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군 일각에서는 ‘군대는 있어야 할 원래의 장소에 있어야 한다’는 우려가 내부적으로 꾸준히 나오고 있다. 국가 안보를 위해 오랫동안 자리 잡아 왔던 군사시설이 인구 증가, 개발 논리에 밀려 자리를 내놓는 선례가 쌓여만 가면 군대는 산이나 무인도로 옮겨야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문제는 공군뿐 아니라 각 군이 모두 직면한 문제다. 전군의 사격장은 총 1,522곳(육군 1,379곳, 해군·해병대 53곳, 공군 60곳, 국방부 직할 20곳)이다. 이 중 115곳이 1일 현재 사용 중지 상태이며 53곳은 폐쇄 대상이다. 사격장뿐 아니라 군 훈련장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육군은 2024년까지 전국 시·군별 대대급 훈련장 200여 개를 연대급 40개로 개편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파이트 투나잇’을 위한 큰 그림 그려야
파이트 투나잇(Fight Tonight)은 ‘오늘 밤이라도 당장 (최적의 태세로) 전투에 나설 수 있다’는 미군의 슬로건이다. 문재인 정부는 우리 군을 표범처럼 날쌘 즉응성을 갖춘 군대로 개편하기 위해 ‘국방개혁 2.0’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수원 공군기지 이전, 군의 사격장 및 훈련장 감축 등은 즉응성을 갖춘 실전대비태세의 발목을 잡는 전투력 저해요소로 작용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군사시설은 점점 오지로 숨어 들어가고 있다.
훈련장 문제를 놓고 육군 20사단은 지난해 9월 지자체 및 주민들과 함께 양평종합훈련장(용문산 사격장) 갈등 관리 협의체를 구성했다. 이 훈련장은 기계화보병사단인 20사단이 1982년부터 36년간 전차 및 장갑차 훈련장으로 사용하는 곳이지만 각종 사격훈련으로 인한 도비탄 사고와 지속되는 굉음, 산불 발생 등을 이유로 양평군민이 폐쇄를 요구해 왔기 때문이다.
강원도 양구군의 경우 민통선 이북지역인 방산면 천미리로 옮기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심지어 지난 2005년 군 당국은 열악해지는 훈련 환경을 벗어나기 위해 해상에 인공섬이나 해상 플랜트를 조성해 공대지사격장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한 적도 있다. 이러한 우리 군의 모습은 군대가 아닌 일본 자위대보다 심각하다.
일본도 자위대 훈련에 대한 민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시아 최대 규모의 후지종합화력연습장과 북해도 7사단의 대규모 기계화 훈련장을 확보했다. 북한의 안보위협은 증대되고 주변 4강의 군사 동향에 기민하게 움직여야 할 대한민국 군대는 파이트 투나잇은커녕 지자체의 개발 논리에 방황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