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채널A가 보도한 「사나운 시골 인심… 텃세에 우는 귀농」의 사례들은 극단적인 사례인 것이 분명하고, 범죄이거나 범죄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차적으로는 법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있습니다만 그 후 해당 마을에서 사업은 완전히 물 건너간다는 면에서 법적 대응을 하기가 거의 불가능하죠.
그런데 이 반대의 사례도 많습니다. 저는 지금 사는 가평 설악에 들어온 지 5년밖에 안 됐습니다만, ‘외지 사람’ ‘서울 사람’으로 인한 시골 마을의 피해 사례도 상당합니다.
기사에서 나온 사례에서 언급한 것 중 ‘발전기금을 내지 않으면 도로를 막겠다’는 부분이 있는데요. 이건 당연히 불법입니다. 일반도로교통방해죄가 성립되지요. 신고하면 경찰이 출동하십니다. 그런데 이게 실질적인 위협이 되는 이유는 그 ‘도로’가 엄밀한 의미에서 공공도로가 아니라 사유지이기 때문입니다. 시골 마을에서 마을 앞 큰 도로를 제외하고 마을 안길은 거의 100% 주민들 각각의 사유지입니다. 원래는 대부분 경운기나 리어카 한 대 지나갈 1미터 남짓의 흙길로 주민들이 서로의 편의를 위해 양보해서 쓰던 거죠.
그러던 마을 안길을 빡통 님의 새마을사업을 시작으로 지자체에서 배움 모자란 노인들을 꼬드겼습니다. ‘공짜로 도로 포장해주겠다, 다만 조금만 넓히자.’ 이게 농로 사업의 진실입니다. 원래는 이 과정에서 각 주민들의 동의서를 받고 진행해야 하는데 동의서 작성이 없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주민들은 이 도로 포장사업으로 자신의 땅에 사실상 소유권 주장을 못 하게 된다는 사실을 대부분 몰랐습니다. 공무원들이 고지해주지도 않았습니다.
지자체 예산으로 포장된 원래의 사유지 농로는 공공도로로 지위가 바뀝니다. 공공도로는 사유지라도 사람이나 차량 통행을 막을 경우 일반도로교통방해죄가 성립되어 처벌받습니다. 예전처럼 주민들끼리 다니면 아무런 알력이 생길 리 없습니다만, 도로가 생겨 교통이 편리해지니까 외지인이 들어와 공장을 차리거나 하면서 주민들의 작은 승용차가 아닌 대형 트럭이나 레미콘, 덤프트럭들이 마을 안길을 질주하고 다닙니다.
원래 좁던 농로를 포장하면서 차량이 다닐 수 있도록 3미터가량으로 억지로 넓혀놨기 때문에 주민들이 평생 살던 집의 담벼락에 부딛칠랑 말랑하면서 대형 화물차량이 다닙니다. 이러니 주민들이 무한정 참을 수 있겠습니까. 참다못한 주민은 지자체에 민원을 넣거나 아예 못 지나가게 도로를 차단해버립니다.
도로 차단은 불법이지만 경찰에 신고해도 경찰은 법대로 처분해주지 않습니다. 이게 근본적으로 개발독재 시절 국가의 잘못에서 시작된 원죄가 있고, 민주화된 이후에도 보상 책임이 있는 지자체들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으면서 무한정 시간만 끌기 때문입니다.
원칙적으로 사유지에 개설된 공공도로는 지자체나 국가가 소유자에게 보상을 해주고 수용을 하거나 최소한 일종의 임대 계약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공공이라는 갑의 힘으로 지자체는 모르쇠 하며 버팁니다. 못 배운 시골 노인들은 공무원들이 말 돌리며 시간만 끌면 어쩔 수 없구나 하고 포기합니다.
시골 경찰관 역시 지역민이기도 하기에 이런 사정을 잘 압니다. 법률이 아무리 엄중해도 그 법률을 그대로 밀어붙일 수 없고, 억지로 밀어붙이다가 오히려 일이 더 커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경찰에 신고해도 즉각적으로 입건 처리를 해주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을 살펴본 후에 링크한 사례를 다시 생각해봅시다. 제가 봐도 너무 지나친 것은 분명합니다. 합의금조로 몇억씩 미리 지급했는데 동의서는 안 써준다든가 하는 것은 갑질을 넘어 분명한 범죄입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발전기금’을 내놓는 것은 억지가 아니라 당연한 일입니다.
외지인이라고 더 뒤집어씌우는 부분도 있겠지만, 첫 사례처럼 악취가 심하게 나거나 둘째 사례처럼 혐오시설일 경우 마을 주민들이 불편을 감수해야 하고, 그로 인해 사유지인 마을 안길로 대형 차량이 수시로 오가는 것도 감수해야 합니다. 도시에 살다 이사 온 지 5년밖에 안 된 제가 이렇게 시골 원주민들의 생각에 동조하는 것은 그 5년 동안 마을 주민과 같은 피해를 입고 여러 차례 분통을 터뜨렸기 때문입니다.
큰길가 마을의 끝자락 산 아래에 있는 우리 집에서 집 앞길을 통해 1.5km 더 산으로 올라가면 무분별하게 개발된 전원주택들이 40~50여 채 있습니다. 모두 외지에서 온 사람들로 저를 포함한 아랫마을 원주민과 거의 인사조차 하지 않습니다. 절반 이상이 서울 사람이고, 주말 주택으로 쓰며, 일부 상주하는 노인도 마을 사람에게 인사 한번 안 하고 다닙니다.
그런 사람들이 공사는 많이 해서 수시로 레미콘과 대형 덤프트럭으로 돌과 흙을 엄청나게 실어 나릅니다. 한 공사당 심하게는 덤프 300대까지 올라가는 경우도 있는데, 겨우 3미터 폭의 우리 집 앞길을 거침없이 내달립니다. 제 아들들이 바로 그 앞에서 놀고 있을 때도요. 대형 트럭뿐 아니라 윗마을 서울 사람들도 마구 내달립니다. 길을 막고 싶은 충동을 수백 번도 더 느꼈습니다. 심지어 그 길은 제 땅입니다.
한번은 집 짓는 과정에서 트럭에서 창호를 내리는데 도저히 트럭을 돌릴 수가 없어서 길에 잠시 세우고 창호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제게 한번 인사도 안 하고 쌩쌩 내달리던 윗마을 BMW 중년 남성이 쌩 달려와서는 쉴 새 없이 빵빵거립니다. 길을 막은 건 사실이니까 다가가서 머리를 숙이고 짐 다 내려가니까 한 2분만 기다려달라 했습니다. 그러니 제 얼굴을 쳐다도 안 보고 한다는 소리가
“아 씨발 차 빼라고.”
그럽니다. 예? 그랬더니
“차 빼라고!”
하면서 역시 고개 한번 안 돌립니다. 저 예의를 갖추고 사는 바른 생활 남성입니다만 상대가 싸가지없는 인간이라는 확신이 들 때는 돌변해서 성질을 드러내는 스타일입니다.
“여기는 내 땅이니까 당신이 돌아가시오. 돌아가도 다른 길 있으니까 그리로 다니고, 앞으로 이쪽으로는 다시는 오지 마시오.”
바로 얼어붙더군요. 갑질에 익숙한 사람들이 대부분 간이 작습니다. 보통 갑질은 자기보다 더한 갑에게서 배우기 때문에 상대가 의외로 고자세로 나오면 즉각 찌그러집니다. 쫄아서 찍소리 못하고 짐 다 내릴 때까지 기다리다가 차 몰고 올라갔는데 그 이후로 한번도 못 봤습니다. 우리 집 앞길 말고 한참 돌아가서 올라가는, 아주 불편한 망가진 길이 하나 더 있는데 그쪽으로 돌아다니는 겁니다.
다른 사례 하나를 더 말해볼까요. 윗동네로 수백 대의 흙 덤프가 올라가던 날, 그중 한 대가 무리하게 빠른 속도로 달려 지나가다가 아랫집 담장을 밀쳐 넘어뜨렸습니다. 시골집들이 허술한 경우가 많잖아요. 무너진 담장이 집 외벽까지 치면서 안방 벽까지 위험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주민들 입장에선 이런 일이 생기면 그 공사를 벌인 건축주에게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덤프트럭 기사에게 책임을 물어봤자 아무런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랫집 아주머니가 담장 보수공사를 해달라고 그쪽 건축주에게 강하게 요구했는데 해주겠노라 언질만 줘놓고는 2주 넘게 미적미적 미뤘습니다. 콘크리트 담장은 그대로 무너져 있고, 안방 벽이 무너질락 말락 하는 상태 그대로요. 약속만 믿고 계속 기다리던 사람 좋은 아랫집 아주머니, 마침내 폭발해서 집 앞길을 막았습니다. 1톤 트럭을 넘는 모든 트럭류, 레미콘류 차량을 다 지나가지 못하도록 막아버린 겁니다.
문제는 알고 보니 기다리던 그 2주 남짓 동안 그 공정은 끝났고 당분간 공사 자체가 없어진 겁니다. 그러고는 못 해주겠다고 배를 째 버리는 거죠. 문제가 해결되는 데는 한 달 정도가 더 걸렸고 이 과정에서 윗마을 친목회와 크게 감정싸움을 했습니다. 역시 마을 주민의 한 사람인 저도 주민들의 편으로 관여되었고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시골꼰대스럽게 느껴지실 수도 있겠지만 시골 생활에 익숙해진 제 관점에서 보자면 솔직히 시골 주민들은 대체로 예의를 알고 배려도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서울에서 온 외지인 중엔 인간적인 기본 예의도 없는 사람이 상당수입니다. 또 나름대로는 예의를 차리려고 애쓰는 일부도, 주민들의 입장은 생각해보지 않고 자신만의 ‘도시 스타일’ 겉치레 예의로 때우고 넘어가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이유로 시골 사람들이 도시 사람들에 대해 싫어하거나 경계를 합니다. 여러 번 반복적으로 당하다 보면 모르는 사람은 얼굴만 봐도 거부감을 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링크의 사례처럼 아주 지나친 경우도 있지만 제가 아는 한 대부분의 경우 시골 사람들이 원하는 건 돈이 아닙니다. 가장 원하는 건 평생 살아온 내 땅에서 살던 대로 조용히 사는 겁니다.
쉽게 비유하자면 미국 한적한 교외에서 목가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연상하시면 비슷합니다. 모르는 사람이 와서 평온한 일상을 뒤흔드는 것 아주 싫어합니다. 나와 내 지인들의 터전이거든요. 이걸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시골로 이주해서는 안 됩니다. 처음 귀촌할 때는 자신이 생소한 외지인이지만 몇 년만 지나 익숙해지고 나면 자신도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일상을 흔드는 외지인들에게 불편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또 한 사례를 말해볼까요. 우리 집과 친한 아랫동네 한 아주머니는 어느 날 낮에 집 앞에서 왁자지껄한 소리를 듣고 문을 열고 나가봤더랍니다. 그랬더니 전혀 얼굴도 모르는 외지 사람들이 집 정원 안에 들어와 짐을 풀고 도시락을 까먹고 있더랍니다. 여기 우리 집인데 뭐하시는 거냐고, 나가시라고 했더니 “잔디를 너무 이쁘게 잘 꾸며놔서 들어와 봤어요. 시골 인심이 왜 이래요. 밥만 좀 먹고 나갈게요.” 하면서 마저 다 먹고 나서야 짐 챙겨 나가면서 반 욕지거리까지 하더랍니다.
시골 마을은 공동체입니다. 그 안에서는 우리 집 이웃집 경계가 별로 없습니다. 밥 먹고 나서 여유 되면 스스럼없이 다른 집에 찾아가 내 집처럼 밤늦게 놀다 돌아가기도 하고 합니다. 즉 마을 전체가 내 집 같은 존재입니다. 외지사람이 들어오면 내 집에 외지사람이 마음대로 들어오는 것과 비슷합니다. 마을 전체가 사적 영역이 되는 거죠. 이런 측면을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자기 나름의 친절과 예의를 갖춘다고 하는데 도리어 거부감을 표시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시골 마을에서 함께 살려면 긴 시간을 두고 접촉을 조금씩 늘리면서 자신의 존재를 마을에 조금씩 익숙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무리하게 밀어붙이지 말고요. 대부분의 경우 억지로 이 집 저 집 찾아다니며 인사치레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연히 마주치면 안부 인사하고, 마을 행사 있으면 매번은 아니더라도 종종 참석하며 얼굴만이라도 알리고, 그래서 주민들이 좀 익숙하게 대한다 싶으면 서두르지 말고 조금씩 더 다가가는 게 답입니다.
우리 가족은 지금 마을에서 가까운 집들과는 다 친하게 잘 지냅니다. 근처 주민들은 비교적 젊은 축이지만 대부분 나이가 더 많은, 손주까지 있는 분들입니다. 마을에서도 우리 집에서 먼 분들은 아직 저희를 볼 때마다 생소해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서두를 필요 없이 앞으로도 10년, 20년 더 지내며 천천히 인사하면 됩니다. 단시간에 가까워지는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마을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 적극적으로 나서서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딱 1년 전인 지난해 설에 집 앞에서 도로 제설작업을 하던 트랙터가 저희집 근처에서 뻗었는데, 인근 주민들이 여럿 나와서 뭘 어떻게 하지도 못하면서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그 트랙터 운전하시던 분도 마을 주민이시거든요. 저도 나가서 몇 시간 달달 떨면서 함께 걱정하고 낑낑대고 했습니다. 사실 별 도움도 안 되었지만 마을 공동체의 어려운 일에 일단 나서는 사람이라는 것만 기억되어도 대성공입니다. 사실 당연한 일이기도 하거든요. 그 일로 별로 익숙하지 않았던 마을 아래쪽의 어르신 몇 분과 단박에 꽤 친해졌습니다.
그리고 링크의 사례의 경우, 사실상 귀촌이라기보단 마을에 업체를 차린 겁니다. 채널A가 제목으로 뽑아 놓은 ‘귀농’은 더더욱 아니고요. 귀농은 시골에 농사지으러 들어오는 걸 의미합니다. 농민들이 농사 지으려는데 싫어하겠습니까. 공장 차리고 장묘장 차리는 게 무슨 농사입니까. 이런 경우엔 마을 주민들의 반감이 훨씬 더 큽니다. 뻔히 직접적인 피해가 예상되니까 당연히 반감도 더 크죠.
불편으로 인한 반감을 돈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제가 보기엔 주민들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이주자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을 안에서 사업을 하려는데 오랜 시간을 두고 양해를 구하기가 어려우니까 단시간에 돈을 먹여서 무마시키려는 거죠. 그 단물에 지나치게 익숙해진 일부가 점점 더 탐욕이 커지는 겁니다.
시골 생활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에요. 도시와는 환경과 살이의 방식이 다르니까 서로 인사하고 익숙해지는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을 뿐입니다. 이걸 텃세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하면 거기서부터 귀촌은 실패 선고 땅땅땅입니다.
원문: 박지훈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