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술항공기지 세 곳의 이전이 추진되고 있다
우리 공군력을 책임지는 공군기지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전술항공기지와 지원항공기지가 그것으로, 말 그대로 전술항공기지는 전투비행단을 비롯한 전술항공기가, 지원항공기지는 수송기 등의 지원항공기가 주로 운용되지요. 한국에는 16곳의 전술항공기지와 29곳의 지원항공기지가 위치했습니다.
최근 우리 공군력의 핵심인 전술항공기지 중 세 곳이 동시에 이전을 계획 중이거나 계획을 실행 중입니다. 경기 수원, 대구, 광주 공군기지가 그곳인데요. 셋은 공통점이 있죠. 모두 인구 100만 이상의 대도시라는 점입니다. 대구와 광주야 해당 지역을 대표하는 광역시이고, 경기 수원도 인구 120만을 넘는 대한민국 최대의 기초자치단체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들 지역의 공군기지는 이래저래 볼멘소리도 듣는데요. 가장 대표적인 게 소음 문제입니다. 해당 공군기지의 이전이 추진되는 까닭도 군사적인 이유라든가 하는 게 아니라, 바로 이 소음 문제에 대한 지역민들의 불만입니다.
정치권도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2012년에는 ‘군공항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하기도 했는데, 정확히 수원, 대구, 광주 공군기지 이전을 위한 법이죠. 이 법은 1조에서 “군 공항 이전사업에 대한 지원 및 군 공항 이전부지 주변 지역에 대한 지원체계를 마련함으로써 군 공항 이전사업을 원활하게 시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전하라는 수원, 절대 못 받는다는 화성
이중 가장 첨예하게 찬반이 갈리는 지역은 수원입니다. 수원 공군기지는 현재 예비 후보지로 화성의 화옹지구를 선정하여 이전 계획을 진행 중인데요. 화성시 당국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화성시는 수원 군 공항 예비이전 후보지 선정을 취소하라며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기도 했죠. 헌재는 이를 각하했지만, 화성은 여전히 반대 입장을 고수할 예정입니다.
한편, 수원시는 12월 초 화성 주민을 군 공항 이전 홍보 시민 협의체에 포함하는 내용의 조례 개정에 착수했습니다. 화성시는 이에 대해 주민들을 갈라놓으려는 꼼수라고 반발하고 있는데요. 예비 후보지인 화옹지구는 화성시 서부에 위치한 지역이기에 서부 주민들은 공군기지 이전에 부정적입니다.
한편 같은 화성시 안에서도 화산동, 기배동 등 일부 지역은 수원 공군기지에 인접해 있어 이전에 우호적이죠. 화성시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동부 주민들에 의해, 피해자가 될 서부 주민들의 의견이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이 화성시 주장입니다.
수원에 지역구를 둔 김진표 의원은 수원 공군기지 이전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인사 중 한 명인데요. 같은 맥락에서 주민투표를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서로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니, 화성 주민들이 주민투표를 통해 결정하자는 것이죠. 반면 채인석 화성시장은 이런 제안을 일축하고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걸어서라도 이전을 막겠다는 입장입니다.
도외시되는 국방 문제
이처럼 수원 공군기지 이전 문제는, 수원 주민들과 화성 예비 후보지 화옹지구 인근 주민들 사이의 갈등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주변 주민들의 소음 공해 문제가 걸려 있죠. 그런데 이렇게 지역민들의 목소리가 높게 울리는 동안, 정작 담론장에서 사라져버린 목소리가 있습니다. 수원 공군기지 이전이 국방, 안보에 있어 끼칠 악영향에 대한 우려입니다.
사실 수원 공군기지는 갑자기 이 자리에 생긴 게 아닙니다. 1953년 제10 전투비행단이 창설되며 운용된 것이니, 65년이나 되는 역사 동안 이 자리에 있었죠. 당연하게도, 처음 생길 때만 해도 이 주변 지역은 거의 개발되지 않았고, 인구도 농가 몇 개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이 인근은 공군기지가 거기 있다는 걸 알고도 개발된 것이고, 이곳으로 이주해온 주민들 역시 이를 알고 이주해온 것이죠. 그런데 기지 이전을 요구하는 게 합당할까요? 물론 그렇다고 무조건 소음을 참고 살아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소음으로 인해 피해를 입고 있다면 국가에 적절한 보상을 요구하는 건 당연히 가능하죠.
하지만 기지 자체를 내쫓는 건 아무래도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는 격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65년이란 시간은, 거의 대한민국 건국 이래의 근현대사에 맞먹는 긴 시간입니다. 그동안 만들어진 우리 군의 작전계획도 수원 공군기지의 존재를 상정한 것들이지요.
지금도 수원 공군기지는 최전선용 기체가 전개된 주요 공군기지로, 최전선의 아군을 근접항공지원하기 위해 휴전선에서 가까운 기지에 배치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합니다.
전시에는 더욱이 그 입지상 우리 공군이나 동맹 공군이 전개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시에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계획이 확립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 이를 이전한다면 그 모든 계획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화성과 수원이 그리 멀지 않으니 큰 차이가 없다 여길 수도 있지만 특히 전시에는 평시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항공기가 자주 운용될 것입니다. 약간의 위치 차이, 거리 차이가 동선을 완전히 꼬아버릴 수 있죠.
따라서 전시에 이를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 하는 계획은 대단히 세심하게, 큰 노력과 시간을 투입하여 세워야 하는 법인데요. 평소 철도나 공항이 운영되는 것만 봐도 그 복잡성이 엄청난데 전시에 군 공항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겠죠.
게다가 전시라면 피격 등으로 비상착륙이 요구될 수도 있는데, 이 경우엔 더욱이 그 약간의 거리 차이가 큰 차이로 다가오게 됩니다. 파손된 항공기에겐 짧은 거리도 무시할 수 없는 부담이니까요. 이런 측면에서, ‘전쟁이 안 날 것이라 상정하지 않고서는 이전을 이렇게 밀어붙일 수 없다’ 같은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훗날 돌아올 청구서: 환경 문제
예비 이전 후보지인 화옹지구의 환경 파괴 문제 또한 지적됩니다. 화옹지구는 간척지입니다. 호곡리, 원안리, 화수리 일대 역시 연약지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에 활주로를 놓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공사가 필요합니다. 땅을 단단하게 만들어야 하고, 파일을 박아야 합니다.
결국 남양만 지역의 환경 파괴는 너무나도 뻔한 결과입니다. 남양만은 멸종 위기, 천연기념물 조류의 천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종은 도요물떼새인데, 남양만은 봄철 2만 마리가 넘게 도래하는 3곳 중 한 곳입니다.
이외에도 많은 새가 남양만을 찾습니다. 저어새는 한때 개체 수가 288마리에 그쳤던 국제 보호종인데 전체 개체 수의 6% 이상이 남양만에서 정기적으로 서식한다고 합니다. 노랑부리백로도 전체 개체 수의 6% 이상이 남양만에 의존해 산다고요. 한국에선 멸종한 국제 보호종 황새도 화성호에서 발견된 바 있습니다. 흑두루미, 큰고니도 몇 개체가 발견되었고요.
새들은 공사 기간 동안 거처를 잃게 될 것입니다. 공사가 끝난다 한들 돌아올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돌아오더라도 문제가 끝나는 건 아닙니다. 특히 바다 쪽으로 이착륙할 경우, 습지에 다수 서식하는 새들과 충돌하여 버드 스트라이크 사고를 일으킬 위험성이 커집니다.
환경은 때로 개발에 밀려 뒷전으로 취급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개발 과정에서 자연환경이 파괴되거나 변화하는 것은 어느 정도 어쩔 수 없는 일인 경우가 많죠. 인간과 환경이 더불어 사는 세상이란 어쩌면 기만적인 구호일지도 모르고요. 그러나 환경은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차후 우리에게 예상하지 못했던 청구서를 꼭 발행하는 법입니다. 꼭 필요한 이전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수원 공군기지 이전은 군사적으로 합리적인 선택도 아니잖아요.
지역민 여론이 모든 문제를 잡아먹은 형국
지역민 여론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닙니다. 수원 공군기지에서 발생하는 소음은 분명 주변 지역민들에겐 큰 공해일 것입니다. 보상을 요구할 수 있죠. 하지만 있던 기지를 쫓아낸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것도 아니고, 무려 65년 동안 그 자리에 있었던 기지를, 뒤늦게 들어온 주민들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이건 너무 과합니다.
게다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공군기지 이전은 국방에 있어 어떤 실익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이전 자체에 엄청난 비용이 소모되는 건 당연하고, 그 이후에도 끊임없이 청구서를 제시할 겁니다. 주변 인프라 확충, 작전계획 수정에 이르기까지요.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만에 하나 실제 전쟁이 발발했을 때 공군기지 이전으로 얼마나 많은 혼란이 발생하고, 얼마나 많은 피해가 더해질지는 계산조차 불가능합니다.
거기에 습지의 중요성이 점점 주목받는 지금, 환경 파괴 문제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군사적으로 어쩔 수 없는 이전이라면 모르겠지만, 이건 그런 경우도 아닙니다. 다만 주변 지역민의 편의를 위한 이전일 뿐이죠. 습지를 부수면서까지 꼭 이전해야 하는 걸까요.
비대해진 ‘지역구 정치’ 개혁이 필요하다
그럼 왜 지역민들의 여론이 군사, 예산, 환경 등 그 어떤 문제보다도 중요시되는 것일까요? 결국 ‘표심’이 거기 달려있기 때문일 겁니다. 예를 들어 같은 민주당 소속이지만 수원에 지역구를 둔 김진표 의원은 어떻게든 공군기지를 수원에서 쫓아내려 하는 반면 채인석 화성시장은 이를 어떻게든 막으려 하고 있습니다.
진보-리버럴 경향인 민주당이야 그럴 수도 있다 칩시다. 그럼 이마에 핏줄 세워가며 안보를 외치던 보수정당은 다를까요?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비슷한 상황에 놓인 대구 공군기지 이전을 가장 앞장서서 추진한 것은 보수정당 대표이자 지난 대선에서 안보를 그렇게 외쳐댔던 유승민이었습니다. 당시엔 새누리당 소속이었고요. 다들 짐작하시겠지만 유승민의 지역구는 대구입니다.
굳이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을 호출할 것도 없습니다. 공군기지 이전 계획이 세워지고, 승인되고, 법적으로 뒷받침까지 받은 게 모두 지난 보수정권 때의 일입니다. 진보정권 때의 일이 아니고요.
정치인은 지역구의 표심을 얻어야 합니다. 국회의 총 300석 중 257석, 8할이 넘는 수가 지역구 국회의원입니다. 게다가 소선거구제죠. ‘큰 그림’을 그릴 겨를이 없습니다. 당장 내 지역구의 민심을 살피지 않으면 다음 선거를 치를 수가 없습니다. 기초자치단체들은 다들 지역민의 구미에 맞춘 선심성 사업에 골몰하게 됩니다.
지역분권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드높습니다. 특히 개헌 정국을 앞두고 이런 목소리는 더욱 커졌습니다. 하지만 그게 정국의 만능열쇠가 될 수 있을까요? 지역구 정치가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져 다른 모든 가치를 밀어내버리고 있는 형국에, 저는 아무래도 회의적인 생각이 듭니다.
과거 주민기피시설로 여긴 시설들, 교정시설이나 발전소, 쓰레기장 등을 유치하고 싶지 않은 건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민기피시설의 범위는 점점 넓어져서 이젠 심지어 특수학교나 소방서 등도 주민기피시설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주민들의 강경한 반대 여론에 나랏일을 해야 할 지역구 국회의원조차 힘을 실어줍니다. 그것이 국가적으론 큰 손해를 일으키는 전형적인 님비임에도 말입니다.
핌피도 어마어마합니다. 철도, 도로, 사회 인프라 건설 등이 지역구 의원들의 힘 싸움으로 이뤄집니다.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힘 있는 국회의원들이 예산을 잔뜩 타가는 풍경이 흔히 보이죠. KTX 정차역으로 오송역이 선정되는 과정은 영화로 만들어도 믿지 않을 블랙코미디 수준입니다. 유치위원장이 테러 협박을 할 정도였으니 말 다 했죠.
오히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건 지역 분권이 아니라, 비대해진 지역구 정치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 것 하는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자치는 중요합니다. 지역주민의 의견이 더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전달되고 반영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국방, 환경과 같은 국가적인 의제를 잡아먹을 지경에 이르러선 안 됩니다.
이는 개헌 과정에서 선거구제 개편, 지방자치제도 자체의 개선, 기초지자체 및 기초의회 등의 개혁이 함께 논의되어야 할 중요한 까닭이기도 합니다. 국방마저 뒷전으로 밀렸습니다. 어떤 가치든지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단 얘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