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소상공인 수수료 부담 제로 결제서비스’를 도입한다
소상공인 수수료 부담제로 결제서비스 도입을 위한 업무협약 취재 초청 공문을 살펴보았다. 장관, 시장, 도지사, 은행장, 은행장, 대표이사, 회장, 대표이사, 공동의장… 등등, 높으신 분들이 꾸러미로 함께 등장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 별 실질적인 이야기 없이 인사나 나누는 그렇고 그런 지루한 행사겠구먼.
뻔한 그림을 떠올리며 7월 25일, 협약식이 열리는 대한상공회의소에 찾아갔다. 그리고, 미리 도착한 식장 앞에서 나눠주는 발표자료를 미리 읽어보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소상공인 수수료 부담제로 결제서비스는 생각보다 거대한 사업이고, 생각보다 생활과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칠 정책이었다.
대체 ‘소상공인 수수료 부담제로 결제서비스’란 무엇인가
많은 언론 기사에서 이 서비스를 “서울페이”라는 이름으로 칭하지만, 이 글에서는 이 이름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XX페이”라는 호칭을 쓰면, 전혀 새로운 결제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듯 인식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착오는 지금까지 정부가 주체가 되어 오픈한 전자처리 서비스의 조악한 질을 떠올리게 해서 실상과는 다른 경험적인 고통을 떠올릴 수도 있고…
이 서비스의 가장 큰 특징은 새로운 화폐나 새로운 결제시스템을 구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상공인과 소비자, 양측의 사용자는 카카오페이, PAYCO, 네이버 페이 등 이미 상업 운영 중인 간편결제 플랫폼을 기존과 동일한 방법으로 사용해서 결제하면 된다. 즉 간편결제 플랫폼의 범용성을 확대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방법으로, 우선 ‘소상공인 수수료 부담제로 결제서비스’는 (서비스에 참가하는)간편결제 플랫폼에 모두 호환되는 단일한 상품별 결제 공동 QR코드를 부여하고, 이를 서비스에 가입한 소상공인에게 제공한다. 따라서 소상공인이 서비스에 가입하기만 하면 소상공인과 소비자는 모두 기존의 간편결제 플랫폼을 이용해 이 서비스를 통한 결제를 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뭐 어땠냐고?
플랫폼 사용에 따른 수수료, 플랫폼에 연결된 신용카드 또는 은행 계좌의 수수료가 발생한다는 점 때문에, 일반적인 신용카드 결제 수수료와 마찬가지로 소상공인에게 부담이 발생했다.
따라서 ‘소상공인 수수료 부담제로 결제서비스’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소상공업체에서 발생하는 결제에서는 계좌이체 수수료(각 시중은행), 플랫폼 사용 수수료(각 결제플랫폼 사업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11개 시중은행, 5개 간편결제 플랫폼 기업과 협약을 맺어 ‘소상공인 수수료 부담제로 결제서비스’를 이용한 결제에서는 수수료를 부과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그뿐 아니라 서울시는 다수의 플랫폼 사업자와 은행 간 정보처리 및 중계를 수행하는 “허브 시스템”을 개발하며, 이를 통해 가맹점 등록정보와 향후 서비스에 참여할 은행/플랫폼 사업자를 일괄 관리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이러한 확장성을 바탕으로, 이미 서울시 외에도 4개 지방자치단체(부산광역시, 인천광역시, 전라남도, 경상남도)가 서비스에 참여하기로 협약하였다. 이상의 5개 지방자치단체에 소속된 소상공업체는 서비스에 가입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소상공인 산업구조를 제대로 파고든 흔치 않은 ‘정책’
한국사회에서 소상공인의 사업과 생계 문제는 언제나 중요하게 다뤄졌다. 경기가 불황이라 자영업자가 위기라든가, 대규모 해고로 자영업소가 급증한다든가, 급격한 임금상승으로 자영업자 수입이 줄어든다든가, 심지어 ‘집회가 일어나는 대로변의 자영업자가 손님을 받지 못해 어렵다’는 사실과 전혀 다른 내용에서도 소상공인의 이름이 호출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사례에서도 보듯 소상공인과 얽힌 경제구조와 산업정책을 직접 이슈화하여 다루는 경우는 떠올리기 힘들다. 소상공인은 영업장과 물류유통 체계를 마련하고 손님을 유치하며 그들과의 금융거래로 수입을 올린다. 그리고 이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자를 고용하고, 때로는 프랜차이즈 업체에 가입하여 규모의 경제에 참여하기도 한다.
소상공인은 부동산임대업, 물류/유통산업, 금융업, 노동시장의 임금과 고용구조체계, 프랜차이즈 업체의 입점 및 유지관리체계와 얽힌다. 당연히 소상공인 문제는 여러 가지 산업구조를 유기적으로 다뤄야만 해결된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소상공인을 위한 산업정책의 필요성은 거의 주목받지 못했으며, 그나마 ‘만만한’ 노동자의 임금이 너무 높다는 식으로 겉핥듯 다뤄졌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소상공인 수수료 부담제로 결제서비스’는 하나의 산업정책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상공업체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사람에게는 단지 소상공인의 수수료 부담을 줄여주는 정책일 뿐이지만, 이 서비스는 소상공인의 수입구조와 관련된 금융업 전반에 큰 충격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정책을 통해 엿볼 수 있는 두 가지 충격
- 첫째, 자동결제 서비스마다 다른 양식을 가진 결제 QR코드를 규격화해서 한국 내에서 자동결제 서비스의 표준화를 이룰 것이다.
- 둘째, 아직 널리 대중화되었다고 하기 어려운 자동결제 서비스를 전체 소상공인과 행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보급하고 홍보할 중요한 명분이 생길 것이다.
이는 한국 온라인 시장에서 어느 정도 정착한 간편결제 서비스를 오프라인 시장에도 빠르게 보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며, 신용카드 서비스 기업에는 큰 경쟁자가 나타나는 셈이 될 것이다.
반면 간편결제 서비스 기업과 (체크카드를 운영하는) 은행의 입장에서는 행정부 정책을 통해 빠른 시장확대를 가능하게 하는 대신, 소상공인 수수료 부담을 없애는 행정부의 정책 기조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된다.
결국 행정부가 ‘소상공인 수수료 부담제로 결제서비스’를 통해 이루려는 것은, 현금 유통과 관련된 금융산업의 경쟁 구도를 바꾸고, 그 과정에서 소상공인의 결제수수료 부담을 없애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이것은 산업정책을 통해 공익을 부합하는 성과를 일구는 일종의 정치적 거래라고 보아야 한다. 이는 협약식에서 진행된 서비스 기본구상안 발표에서 김태희 서울특별시 경제기획관이 한 “(오프라인 간편결제 시장의) 초기 시장 형성 과정에서 신용카드 수수료 시장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초기에 민간과 공공이 협력해서 공정한 결제시장을 정착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발언에서 알 수 있다.
‘드디어’ 정책이 IT를 이해하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상업 운전을 시작한 런던 지하철이 비좁고 냉방이 안 되는 구린 시설로 런던 시민의 복장을 터지게 하듯 세계에서 상당히 일찍 정부 행정의 전자처리를 도입한 한국에서 그 원망은 하늘을 찌른다. 행정부가 개입한 전자처리 서비스라 하면 액티브X 설치와 공인인증서 갱신으로 대표되는 짜증, 누가 다운로드를 받기나 할지 의심스러운 각종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공문서 레이아웃을 그대로 가져다 붙인 듯 불편한 UI/UX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일반적인 IT산업 종사자가 보기에 너무나 해괴한 이런 상황은, 행정 분야에서 IT산업과 IT서비스 제공 방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이런 사례가 쌓여 ‘공무원의 무능함’을 질책하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서울시가 발표한 ‘소상공인 수수료 부담제로 결제서비스’가 구동되는 구조를 보면 각종 행정부처가 현재 시점의 IT를 이해하는 수준이 높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과거의 행정방식이라면 이 정책은 이런 방식으로 운영되었을 것이다.
- 행정부는 소상공인 수수료가 없는 간편결제 시스템을 새로 만들고
- 그 시스템은 기술 수준을 충분히 검증받지 않은 개발사가 제작할 것이다.
- 소상공인과 소비자는 모두 새로운 시스템에 별도로 가입해야 하고
- 담당자가 이동할 때마다 운영에 큰 혼란이 벌어질 것이다.
- 아니, 그 이전에 아무도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 받지 않아서 담당부처는 소리소문없이 사라질 것이다(…)
앞서 말했듯 ‘소상공인 수수료 부담제로 결제서비스’는 이미 상용화된 간편결제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간편결제를 이미 활용하는 소상공인과 소비자는 자신이 새로운 결제서비스를 이용하는지도 모르는 채 서비스를 열심히 활용할 것이다.
이는 서비스를 유지·관리하고 홍보하는 데 들어갈 비용을 크게 줄인다. 새로운 서비스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위해서는 이미 활성화된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IT 산업계의 방향성을 제대로 꿰뚫었다 할 것이다.
서비스 영역을 확대할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도 큰 장점
수십 개의 은행과 간편결제 플랫폼 사업자, 그리고 수십만 개의 소상공업체를 연결할 하나의 서비스를 만든다는 것은 그만큼 기술적으로 복잡한 일이다. 곳곳에서 동시다발로 일어나는 결제 건을 처리하고, 플랫폼마다 각기 다른 결제시스템으로 처리하는 것을 하나의 통일된 과정으로 인식하도록 조정해야 한다. 이 과정을 구현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더라도, 이 과정이 많은 시간과 데이터를 소비하지 않고 효율적으로 작동하도록 설계하는 것은 꽤 까다로운 일이다.
서울시가 선택한 방법은 모든 사업자와 소상공업체의 데이터 처리를 규격화하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서비스에 참가하는 모든 결제 플랫폼을 포괄하는 표준 QR코드를 개발하고, 향후 서비스에 참여하는 은행도 결제가 이루어졌다는 신호를 바로 수신하고 반영할 수 있도록 지정된 양식의 공개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제공(open API)할 예정이다. 또한 서비스에 가입한 소상공업체의 DB 구조 역시 표준화해서, 서울 이외의 다른 지방자치단체 소속 소상공업체도 같은 DB에 등록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행정부에서 제공하는 많은 전자처리 시스템에서는 이 확장성이 결여되어, 같은 서비스를 지역별로, 산업별로, 부처별로 따로 개발하는 경우가 많고, 사용자의 이용성이 크게 떨어지곤 했다. 반면 ‘소상공인 수수료 부담제로 결제서비스’는 규격화를 통해 확장성을 확보해서, 더 많은 소상공인과 소비자가 참가하고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했다.
특히나 이 서비스의 확장성은 앞으로 정책 자체가 더 다양한 분야로 확장될 가능성도 열어둔다. 상상력을 더 발휘해보자. 흔히 떠올리는 ‘소상공인’과는 다르더라도 수수료 부담을 덜어야 할 상공인을 위한 경우, 예를 들어 개인택시, 농산물직판장, 개인 창작자를 위한 거리시장 등에도 이 서비스를 적용하는 방식으로, 범위를 확대할 가능성이 충분히 확보되었다. 적어도 ‘기술 이슈’가 문제가 되어 확대가 거부되거나 대대적인 개편작업을 해야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이상의 기대가 모조리 설레발일지도 모른다
한국말을 끝까지 들어야 아는 것처럼, 이런 낙관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오픈할 때에는 매우 조잡한 서비스로 변질될 가능성은 여전히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적어도 협약식에서 발표된 로드맵만 본다면, 적어도 과거처럼 “국민들에게 이런저런 편의를 주기 위해 이런저런 앱을 개발하였다”는 식상하기 그지없는 조잡한 계획만 발표했던 행정기관의 모습이라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기대하게 한다.
어쨌거나 갖은 설득과 영향력을 통해 사기업과 함께하는 행정의 결과다. 신용카드 기반 금융과 예금 기반 금융, 신용카드 기술과 모바일 간편결제 기술이 대결하는 가운데, 중앙/지방정부는 간편결제 시장을 확대하려는 금융기업과 기술기업에게 미끼를 던져서 “기업이 스스로 수수료가 무료인 서비스에 참여하도록 하는” 효과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낸다.
물론 행정은 행정일 뿐이고, 입법과 달리 제도적으로 강제력이 있다고 하기 어렵다. 지난 7월 25일의 행사는 ‘소상공인 수수료 부담제로 결제서비스’를 위한 ‘업무협약(MOU) 체결식’일 뿐이다.
막상 시작되면 기업들마저도 얼마든지 입장이 바뀌어 참가를 철회할 수도 있다. 또한 법률을 통해 모든 결제수단에 대한 수수료를 경감한 것이 아니므로, 소상공인의 소득이 보전되기 위해서는 올해 12월에 출시될 서비스가 반드시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한계도 엄연하다.
서비스가 기술적으로나 사용성으로나 무리 없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4개월의 촉박한 기간 양질의 디자인과 구현 작업을 마쳐야 한다. 잘 구현되었다 하더라도 많은 소상공인이 이 플랫폼을 사용할지, 소비자가 신용카드 대신 간편결제 플랫폼을 이용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더 많은 금융기업과 플랫폼 기업, 지방정부가 참여할 것인지 여부도 아직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소상공인에게 부과되는 수수료 부담이 없는 전자결제 시스템의 탄생은 그 자체로 충분히 유의미하다.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수수료 부담을 없애는 정책의 경험이 쌓이면, 그 경험은 사람들의 불안감을 지우고 익숙함을 남겨서 소상공인이 수수료 부담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법의 탄생으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이 서비스를 주목하는 이유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