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절친 둘에게서 똑같은 질문을 받았다. 한 사람은 연초에 물었고 한 사람은 연말에 물었다.
“훤주 씨, 책을 왜 나눠주는 거죠?”
“거 하나 물어봅시다. 책을 왜 그렇게 나눠요?”
처음 질문에는 “그냥요.” 했고 두 번째 질문에는 “집이 좁아서요.” 했다. 우리는 서로 웃으며 이야기했다. 이렇게들 대답하자 다시 묻지는 않았다. 아마 나름 자기 방식으로 이해하고 짐작했겠지.
지금 나는 책을 다 읽고 나면 페이스북을 통해 곧바로 남한테 주고 있다. 줄 잡아도 8~9년은 되는 것 같다. 처음에는 내가 몸담은 경남도민일보 구성원을 상대로 그렇게 했다. 책이 곧잘 나가기도 했지만 나가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사나흘 기다려보고도 나가지 않으면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좀 더 많이 알리면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책이 적어지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경남도민일보로 한정하지 않고 페이스북을 통해 더 많은 이들에게 책 가져가시라 알렸다. 그러고는 나가지 않는 책이 생기지 않았다.
달라진 것이 하나 더 있다. 옛날에는 책을 받고도 ‘고맙다’고 하는 사람이 적었지만 지금은 100이면 100이 다 ‘고맙다’고 말한다. 경남도민일보 식구들이 ‘고맙다’고 말해주지 않아서 알리는 범위를 넓힌 것일 수도 있다. 아마 나는 아직 속물이고 좀팽이다. 세상 평판에 휘둘리며 산다.
나도 한때는 못지않은 장서가였다. 작은 아파트 비좁은 방에 사방 가득 책이 꽂혀 있었다. 적어도 4,000권은 훌쩍 넘었지 싶다. 나중에는 거실 하나로 모자라 안방에도 책꽂이를 장만해야 할 정도가 되었다. 그러다 한 절친이 집에 있는 책을 처분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충고해주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책을 쌓아두면 집에 먼지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책이 낡으면서 나오는 먼지가 보통이 아닌데 가뜩이나 좁은 집에 건강에 좋을 리가 없다는 얘기였다. 어차피 태어난 세상 죽을 때는 죽겠지만 죽는 순간까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것이 가장 좋다고도 했다.
또 하나는 쌓아놔 봐야 어차피 읽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여섯 달 지나도록 손이 다시 가지 않으면 한평생 다시 읽을 가능성이 5%고 1년이 지나도 손이 가지 않으면 0%라고 했다. 가만 생각해보니 과연 그러했다. 집에 있던 책 4,000권 가운데 내가 손을 두 번 댄 것이 드물었다.
그래도 아까웠다. 어쩌다 보니 모으기 위하여 모으는 경지까지 가버렸기 때문인 측면도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이나 창원·마산 일대 헌책방을 틈나는 대로 쏘다녔다. 명저로 알려진 오래된 초판본이나 내가 귀하게 여기던 책이 있으면 한 권 두 권 사서 모으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따뜻한 봄날 집 가까이 있던 헌책방에 연락해 아무 조건 없이 다 가져가시라 했다. 읽고 있던 책은 빼고. 두고두고 읽곤 하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열하일기』 『사기열전』 『장정일 삼국지』 등등도 빼고.
책값을 받지 않겠다 하자 헌책방 아저씨는 조그만 금붙이 장식을 하나 주었다(지금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아마 잃어버린 것 같다). 그러고는 트럭으로 너덧 차례 실어갔다. 하루로는 모자라 이틀인가 사흘에 걸쳐 실어갔다. 2008년인가 2009년인가에 있었던 일이다.
사실 처음에는 책을 주고 나서 나중에 필요해지면 어떻게 하지 걱정도 했더랬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여태 한 번도 없었다. 다 읽고 난 책을 다시 붙잡는 일이 전에도 후에도 없었던 것이다. 만약 그렇다 해도 다시 사면 된다. 요즘 갈수록 불황이라는 출판시장을 활성화하는 데도 적으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다시 사는 경우도 여태 한 번도 없었다.
책을 두지 않으니까 여러 면에서 달라졌다. 먼저 책에 대한 애틋함이 사라졌다. 책은 그냥 책일 뿐이다. 책은 책 이상도 아니고 책 이하도 아니다. 책에 대한 애틋함은 얽매임이고 구속이다. 얽매임이나 구속은 적을수록 좋다. 나는 책을 버리고 나서 책에 대한 집착과 소유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음으로는 책을 찾느라고 낭비하는 시간이 없어졌다. 옛날 책이 사방 벽을 가득 채우고 있을 때는 어떤 책을 하나 찾느라고 종일 헤매는 경우도 있었다. 책을 없애고 나니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집에 있는 책이 30권 안팎에 그치니 눈길 한 번에 찾을 수 있다(지금은 50권 가까이 된다. 지난해 출판사 산지니가 어렵다고 해서 한꺼번에 10권을 산 적이 있어서 그렇다).
세 번째는 무엇보다도 집구석이 환해지고 넓어졌다. 책이 나이를 먹으면서 내뿜는 어두움이 사라진 덕분이다. 책이 오랫동안 차지하던 공간을 없앤 덕분이다. 그러니 안에서 지내기가 편해졌다. 옛날에는 조그만 탁자 위에도 책이 쌓여 있어서 제대로 쓸 수 없었다. 책이 차지하는 공간이 커서 다른 가구나 물건은 제대로 앉힐 수도 없었다.
또한 책이 없거나 적으면 먼지가 덜 나온다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덕분에 집안이 깨끗해졌다. 나는 좀 더 게을러져도 되었다.
페이스북을 통해 이렇게 책을 처분하다 보면 뜻하지 않게 칭찬을 한 번씩 듣게 된다. ‘나눔’ ‘베풂’ ‘공유’ 등등이라면서 무슨 대단한 일을 하는 듯이 여겨준다. 고맙고도 송구스러운 말씀이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베풂도 나눔도 공유도 아니다. 그냥 처분이다. 다른 누구 좋으라고 하는 일도 아니고 내가 좋자고 하는 일이다. 책을 버릴 수 있도록 일러주고 책을 모으지 않도록 깨우쳐 준 절친한테 무한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