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기기로 시료를 검사할때 백그라운드에 깔리는 잡신호(noise) 대비 실제신호(signal)의 비율이 중요합니다. 잡신호에 비해 실제신호가 월등히 강하다면 편안하게 확인작업이나 정량작업이 수행될테지만 주입한 시료의 농도가 너무 낮거나 기기가 최적화되어 있지 않을 때면 화면상에 나온 피크가 실제 목표하고 있는 신호인지 아니면 백그라운드에 무작위로 나오는 노이즈중에 하나인지 헷갈릴때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상황파악이 안되는 거죠.
실제 실험에서야 기준시료의 주입량을 확 늘리는 스파이킹이라는 방법으로 확인을 하면 비교적 용이하게 문제가 해결되기는 한데 오늘은 좀 엉뚱한 생각을 해 봤습니다.
남북정상회담 관련해 노이즈만 뱉어내는 검찰과 국정원
어제 지인과 한국 정치 현상에 대한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꼭 그분과의 대화뿐만 아니라 한국에 계신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때 늘 느끼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마치 시그널/노이즈 비율 (S/N ratio)이 엄청나게 낮은, 그러니까 온통 잡신호가 넘쳐나서 어떤 피크가 실제 의미있는 피크인지 구분을 하기 힘든 상황에 놓여 있어 보인다는…
한국의 정치 상황, 특히나 박근혜정부 출범이후 정치, 경제 뉴스중에 과연 어떤 뉴스들이 잡신호이고 어떤 뉴스들이 실제 사안의 본질을 짚어주는 시그널인지 한국에 살고 있다면 홍수같은 뉴스의 흐름속에서 정세의 본질을 파악하기가 참 어렵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령 최근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국회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몇일전 증언한대로 “노전대통령이 소신껏 하라 말해서 NLL을 지킬 수 있었다”라고 확인이 됐다면 지난 12달동안 한국정치판의 화두요 국론을 극한에 이르도록 갈라놓은 ‘NLL 포기발언 확인 정국’은 뭔가 떠들썩해 보이고 심각한 문제가 있어 보여도 결국은 노이즈에 불과한 거죠.
즉 최근 검찰이 참여정부 시절 남북정상회담 내용을 담은 문서가 삭제되었다며 하루건너 하루씩 언론플레이를 하는 것도, 그리고 남재준 국정원장이 남북정상회담 내용을 공개해 버린 결정 역시, 원래 시스널을 가리는 노이즈들에 불과합니다. 본질은 산으로 가버리고 곁가지도 아닌 잡신호에 혹해서 나중에 빈손으로 터덜터덜 돌아올 엉터리 분석에 매달리고 있는 형국이죠.
박근혜 정부, 의미 있는 신호를 내고는 있나?
그럼 박근혜정부가 나중에 역사의 평가를 받을 때 쓰일 진짜 시그널, 즉 의미있는 업적을 준비하는 행보들은 과연 무엇이 있나 눈여겨 봅니다. 뉴스들은 넘쳐나는데, 과연 이 정부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나 귀기울여 보면 아직은 수면위로 드러나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잠시 시계를 돌려 노무현정부 시절로 가보죠. 종부세의 모태가 되는 부동산 보유세 개편방안이 처음으로 나온건 노무현대통령 집권 3개월후였고 2003년말까지 행자부로부터 관련전산자료를 획득하고 실무팀을 발족하죠. 이후
2004년 상반기 – 관계부처 협의 와 공청회
2004년 하반기 – 법안 국회제출, 법안 공포
2005년 상반기 – 시행령, 조례등 행정준비와 공무원 직제정비
2005년 하반기 – 첫 종부세 공지
이렇게 흘러갑니다.
즉 참여정부의 최대 역점 사업이었던 종부세 실시도, 청사진이 나온게 집권후 3개월만이었다면 실제로는 인수위시절부터 발빠르게 물밑작업들이 진행중이었다는 얘기고, 다시 그때부터 실무팀 구성하고, 각 부처간 이견 조율과 공청회해서 법안으로 공포가 되고, 실제 실행이 가능하게끔 각종 행정준비를 해서 첫 종부세 공지를 하는데까지 꼬박 2년이 걸렸습니다.
실제 실행이 이루어지고 수정 보완작업까지 감안한다면 사실 레임덕이 시작되는 임기 마지막 1년을 제외한 4년도 빠듯하기 짝이 없는 기간입니다.
한국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시민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여유롭게 만들어 줄 정책들을 임기내에 실현하고 수정 보완해서 박근혜표 정책으로 역사에 자국을 남기고 싶다면 사실 지금쯤은 청사진 정도가 아니라 실무팀이 구성되어서 부지런히 작업들을 진행해야 합니다. 그래도 빨라봐야 내년에야 국회에서 이 문제들을 다룰 수 있고 내후년에 실제 시행이 가능한 거죠.
그런데 제가 한국 뉴스에 둔감한 건지, 현재 박근혜정부가 대선중에 공약한 굵직한 정책들중에 어느 하나 실제 시행을 위한 준비가 발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습니다. 현재 한국 뉴스지면을 뒤덮고 있는 노이즈 뉴스들 말고 정작 시민들의 삶과 다음 세대들의 미래를 준비하는 정책적 노력들이 우리들이 관심을 기울여야하는 실제 시그널들인데 말입니다.
노이즈로 가득찬 대한민국, 그 결과는?
과학자 중에서도 넘쳐나는 노이즈 피크에 현혹되어 내가 뭔가 유의미한 연구 결과를 내고 있다고 착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처럼 현재 한국의 시민들이 사안의 본질과 관련없는 엉뚱한 뉴스에 매몰되고, 정부가 당연히 준비하고 실행해야 할 개혁적 정책준비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고생은 고생대로 한 연구자가 나중에 아무짝에 쓸모없는 데이터 더미로 망연자실하듯이 정작 50%가 넘는 지지율로 당선된 박근혜정부가 차기정부에 바톤을 넘길 때 결국 집권 5년이 아무런 정책적 열매없이 시간만 낭비한 허송세월이었다는 걸 깨달을 날이 올 겁니다. 그리고 그 폐해는 고스란히 정신줄 놓고 쓰레기 뉴스에 넋을 놓고 있는 시민들 자신들과 그 자녀들에게 돌아갈테고요.
사실 이런 사태를 예방하는, 다시 말해서 노이즈 속에서 실제 시그널을 찾아내서 시민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역할이 언론의 주요한 기능인데 요즘은 오히려 언론 자체가 노이즈 대량 생산의 주체같아 보입니다. 더불어 정신차리고 올바른 소리를 해 줄 지식인 사회도 도대체 이 양반들이 어디 있나 싶게 다들 당파적 입장에 매몰되어 또 다른 노이즈 생산주체가 된 느낌도 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