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녀석이 죽었다.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그리 호기롭게 나섰던 그 녀석이, 그러니까, 진짜로 죽어버렸다. 스스로 몸을 던졌다. 세상이 그 녀석을 저버렸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도 그럴 법 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비난했고, 조롱했다. 왼쪽에서도 오른쪽에서도 전부 그를 욕했다. 그게 그 녀석을 여기까지 몰아넣었던 것일까.
“너밖에 없다. 네가 해 줘야 돼. 친구였잖아.”
해 줘야 한다니, 뭘 해 줘야 한다는 것일까. 이미 죽어버린 사람에게 뭘 해 준들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야. 그 녀석은 죽어버렸는데. 이렇게 싸늘한데. 내가 아무리 빨리 달려간들, 그때처럼 그 녀석의 뜻을 번복시킬 수 있는 게 아닌데.
그렇게 속으로 몇 번을 생각하면서도 결국 검은 수트를 입고 검은 타이를 맨다. 관성이다. 아무 의미 없는 의식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냥 관습에 떠밀려, 분위기에 떠밀려 하는 것이다.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을 테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을 순 없으니까. 그러니까 그냥, 늘상 하던 일을 하는 것이다.
침을 꿀꺽, 삼키고 분향을 시작한다. 맨 앞에 들어온 사람은 여인이다. 그 녀석과는 일면식도 없었을 듯한 사람인데, 온 얼굴에 눈물 범벅이 돼 들어온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겨우 국화 한 송이를 바치더니만, 이내 버티지 못하고 온 얼굴을 찡그린 채 폭포처럼 눈물을 쏟아낸다. 대체 무슨 슬픔이 저리도 크기에, 어안이 벙벙해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으려니, 남편 쯤으로 보이는 사람이 마찬가지 울상인 표정으로 들어와 그녀를 부축해 겨우 나간다.
두 번째 들어온 사람은 남자다.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향을 피우고서는, 분에 못 이긴 듯 소리친다. “복수할거야”. 대체 뭘 어떻게 복수한다는 걸까. 말 한 마디 나눠본 적 없을 한 사내의 갑작스런 고성에, 나는 당황한다. 저런 사람들도 있구나, 슬퍼해주는 사람이 있구나. 그제야 마음이 좀 진정된 것인지, 주위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한 사람, 세 사람, 다섯 사람. 열 사람, 스무 사람, 서른 사람. 대체 몇 사람이 온 거지? 그 녀석의 죽음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슬퍼해주고 있는 거지?
그제야 눈에 보인다. 그야말로 끝이 보이지 않는 물결. 한 송이씩 쌓인 국화는 이미 산처럼 쌓였고, 온 사방에 흐느끼는 울음소리와 명복을 비는 추모의 목소리가 가득하다. 사람들은 파도처럼 들어와 폭포처럼 눈물을 쏟아내고, 슬픔의 강을 이룬다. 모두가 그 녀석을 욕하던 게 아니었구나. 모두가 우리를 비난하던 것이 아니었구나. 우리가 해온 일, 헛된 게 아니었구나.
그 녀석의 얼굴, 그 녀석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가득 메운다. 왜 이제야 생각난 것일까. 그 녀석이 내게 해 줬던 말.
“할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어.”
“갑자기 왜?”
“네가 내 친구니까.”
그제서야 눈물보가 터졌다.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옇게 흐려진 시야 속에, 향을 피우는 사람들의 물결이, 마치 검은 강물처럼 넘실거렸다. 그래, 그 녀석은 내게, 친구라고 말해 주었다. 내가 곁에 있기에 할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다고, 그렇게 내게 의지해 주었다. 그랬다. 친구라고 말했지만, 친구가 아니었다. 그 녀석은, 내게 -.
* * * * * * * *
세상 사람들 모두가 그 녀석을 추모했다고 말한다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장이 지나치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고 면박을 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만은 정말로 그랬다. 온 세상이 그 녀석과 함께 울었다. 그리고 나도 울었다.
그 녀석은 자신의 죽음을 운명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 유언을 품 속에 담았다. 그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이 그의 말대로 운명이라면, 그를 위해 온 세상이 운 것도, 그 눈물의 강을 타고 내가 여기까지 온 것도 모든 것이 운명이겠지.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그런 자리에, 지금 나는 서 있다. 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이끌어야 할, 또한 그 수많은 사람들을 뒷받침해야 할 그런 사람이 되었다. 그 녀석이 있던 자리를, 이제 내가 대신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 자리에서 ‘그 남자’를 만난 것을 나는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그 또한 운명인 것일까. 그 남자는 갑자기 나타났고, 갑자기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록 스타.
그 인기는, 마치 록 스타 같았다.
하지만 인상은 록 스타와는 정 반대다. 작은 키와 서글서글한 인상이 그 녀석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인간 대 인간으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사람. 모두가 그를 사랑했다. 그리고 나 또한, 그랬다.
주위 사람 모두들 잘 어울린다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가 한 자리에 같이 있기만 해도, 사람들은 우리를 엮지 못해 안달이었다. 반듯한 분위기와 부드러운 이미지로 우리를 이런 저런 묘사들로 규정하기도 했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기분 나쁜 일은 아니었다. 그는 록 스타였고, 모두의 사랑을 받는 존재였으니까. 그리고 그 록 스타의 연인이 된다는 것은 언제나 짜릿한 일이니까.
하지만 다들 알지 않는가? 에릭 클랩톤이 ‘레일라’와 ‘원더풀 투나잇’을 불렀던 까닭. 록 스타란 언제나 독점할 수 없는, 제멋대로인 존재인 법이다.
“핸드드립 커피를 괜찮게 내리는 데가 있던데, 같이 한 잔 어때요?”
그 수많은 지원을 등에 업고 용기를 내 데이트를 신청했는데 기다리라며 묵묵부답. 그 외에는 가타부타 말도 없고 그냥 침묵 뿐이다. 커피를 싫어하나 하고 이번에는 괜찮은 칵테일 바를 찾아 보여줬더니 또 뭐라 말이 없이 묵묵부답. 어쨌거나 먼저 좋아하는 쪽이 약자일 수밖에 없다는 격언을 되새김질하며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반응이 오기를,
“커피 한 잔 할래요? 이거 데이트 신청이에요.”
– 지금껏 내가 했던 데이트 신청들은 그럼 다 뭐란 말인지. 그걸 좋답시고 받은 내가 또 문제였던 것일까. 아메리카노가 인기인 브랜드 카페? 갖가지 신메뉴를 내놓는 토종 카페? 바리스타가 내린 핸드드립 커피가 주력인 교외의 카페? 갖가지 카페를 알아보고는 조심스레 어느 쪽이 낫겠냐 물으니, 이번에는 뚱딴지같이 이렇게 말한다.
“난 아이스크림이 좋은데. 아이스크림 아니면 데이트 안 해요.”
아, 이를 어쩌란 말이더냐. 실컷 커피 얘길 하다가는, 이 엄동설한에 갑자기 아이스크림이라니. 대한민국 남자란 사람이 대체 ‘아이스크림이 아니면 데이트 않는다’니, 이건 또 무슨.
그래서 여차저차 이 시점까지 온 것이다. 연인은 고사하고, 사귀는 것도 아니며, 만나는 것조차 아닌, 그렇다고 해서 서로 아무 관계도 아니냐 묻는다면 또 그런 것은 아닌, 정말이지 애매하기 짝이 없는 관계.
“동향(同鄕) 출신이시라 하던데요.”
“동향은 아니지, 그냥 그 근처야, 근처.”
나는 고향까지 끌어들이며 나와 그 남자와의 연관성을 억지로 끌어내려는 주변의 목소리를 애써 물리쳤다. 글쎄, 내 고향이나 죽어버린 그 녀석의 고향이나,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이 남자의 고향이나, 사실 이 나라 전체를 보자면 다 그 동네가 그 동네지. 하지만 그냥, 그 얼마 되지도 않는 수 킬로미터 차이로, 억지로라도 그때 그 녀석이 지금 이 남자보다 나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고, 그리 믿고 싶은 것이다.
죽어버린 그 녀석은 길을 잃고 방황하던 내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 이 남자는 다르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나를 어찌 여기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늘상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로 얼버무리며 넘어갈 뿐이다.
늘 먼저 손을 내밀어주던 옛적의 죽어버린 형 한 사람과, 내미는 손을 잡지도 뿌리치지도 않는 동생 한 사람. 인상 좋은 미소는 닮았지만, 다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늘 먼저 나를 안고 다독여 줄 것 같았던 같은 업계의 선배와, 큰 형처럼 끌어안아줘야 할 것 같은 다른 업계의 후배. 나보다 아주 조금쯤 작은 키도 서로 닮았지만, 두 사람은 너무나 다르다.
“그래도 어쨌든 만나긴 하실 거죠?”
“그야…”
그런데 그래서 데이트를 하기 싫다는 거냐, 그 남자가 싫다는 거냐 하고 직구를 던져버리면, 아니다, 그럴 생각 없다, 하고 딱 말할 수가 없다는 게 또 내 문제다. 그래, 그는 어쨌든 ‘록 스타’니까 말이다. 확답을 듣겠답시고 그의 집 앞에서 몇 시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까닭이란, 우리 모두는 결국 록 스타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 때문이리라. 그 록 스타가 암만 변덕쟁이라 한들, 그 록 스타를 보기 위해서는 그루피라도 될 준비가 되어 있는, 그런 팬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부정할 수 없는 내 스스로의 마음에 쓸데없는 울분이 터져, 나는 괜히 심술궂게 과녁을 돌렸다.
“그건 그렇고, 그건 전략적으로 하는 얘기야? 우리 둘이 잘 되게 밀어 주면, 좋은 그림이 나올 테니까?”
“아뇨, 아뇨, 그런 게 아니고…”
짓궂은 표정으로 물으니 그가 어쩔 줄을 모른다. 사실 반쯤은 진실일 게다. 시쳇말로 요새 ‘뜨는’ 두 사람의, 그리고 또 한창 ‘뜨는’ 열애설이 사실이라더라. 손을 잡고, 포옹을 하고, 어쨌든 뭐라도 하는 순간, 아마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겠지. 단순한 시너지 효과를 넘어서는 어떤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전략적으로는.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지 말입니다. 워낙 힘들어하셨잖아요.”
조수가 뾰루퉁한 표정으로 항변한다. 요즘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힘들다 걱정해주는 것일까, 아니면 혹 그날 그 죽음을 애둘러 말하고 있는 것일까.
“혼자 하실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어요. 마음이 가시면, 다른 거 따지지 말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세요.”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사실 뉜들 그리 하고 싶지 않겠는가. 마음 같아서는 이런 저런 것들을 전부 벗어던지고 그냥 손 꽉, 잡고 나 너 좋다, 하고 싶은데. 그게 안 되는 건, 이미 십대의 치기로 일을 벌이기에는 생각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확실히 문제를 직격하는 데가 있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생각만이 깊고 깊어져, 실제보다 더 심각하게 머리를 짓누를 뿐이다.
그 녀석이 날 친구라고 불러준 순간, 그래서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던 순간, 그냥 그 녀석을 끌어안고 싶었던 그 순간이 떠오른다. 그래, 일어나자. 밖으로 나가면, 무어라도 일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면 또한, 무어라도 할 수 있게 되겠지.
“가시게요?”
“그래, 가야지, 어쨌든.”
사실 죽어버린 그와 지낸 시간들이라 해서 어찌 좋은 일만 있었겠는가. 흡사 좋은 일만 있던 시절인 것처럼, 그렇게 기억되는 까닭은, 그것이 꿈처럼 막연한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 속에는 없는, 그냥 마냥 좋게만 보이는, 하지만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것. 시간이 오래 지났고, 이제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사랑을 해야 할 이 순간에, 그 꿈이란 사실 장애물일 뿐이다. 현실 속의 최선을 끊임없이 부정하고, 이걸로는 부족하다며 만족하지 못하고, 그렇게 끊임없이 과거로, 과거로 가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지금 그에게 괜히 투정을 부렸던 것처럼.
허황된 꿈을 넘어, 내 앞에는 현존하는 진짜 사람들이 있다. 멋진 미소와, 따뜻한 체온을 가진, 날 아껴주는 사람들이, 나를 바라봐주는 사람들이, 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그 날 그 녀석이 죽었을 때, 검은 수트를 입으며 그것을 관성이라 불렀던가. 이 또한 관성일지도 모르겠다. 마음이 시키고 있으니까. 앞으로 떠밀고 있으니까. 그 녀석이 내 등을 밀어 여기까지 오게 한 것처럼, 이제 또 한 사람의 그의 팔을 잡아 같이 가야 할 때니까. 그러니 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 내 갈 길을 닦아주고 있는 그들이 있으니, 내겐 여전히 그 사람들이 먼저다. 사랑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