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11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11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1.3% 상승하는 데 그쳤다고 합니다. 저금리 시대를 맞이해 가계부채가 1,400조를 돌파할 정도로 돈이 많이 풀리고, 더 나아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값이 급등하는데 물가는 왜 안정될까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한국 내부의 변수가 소비자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을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 통화량이 증가하면 물가가 상승한다.
- 주택가격이 급등하면 물가가 불안해진다.
- 경기가 좋을 때 물가가 오른다.
통화량이 증가하면 물가가 상승한다?
금속화폐 시절, 그리고 금본위제 시절에야 부분적으로 맞아 떨어졌을지 모르지만, 현재 같은 신용화폐 세상에는 잘 맞지 않습니다. 아래의 ‘그림’에서 붉은 선은 총통화(M2) 증가율, 그리고 파란 선은 소비자물가 상승률(CPI)인데.. 거의 관계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요?
그 이유는 2000년대 초반이나 2008년처럼 경기가 급격히 나빠졌을 때 통화공급이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경기가 나쁠 때는 신용수축이 발생하기 쉬운데, 통화공급이 증가한 이유는 정부의 강력한 경기부양정책 시행 때문입니다. 적극적으로 금리를 떨어뜨린 것은 물론, 재정을 확장적으로 운용하고 금융시장 관련 규제를 완화해 돈을 더 풀 수 있도록 유도했었죠.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 물가가 불안해진다?
지가 및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 물가가 불안해진다는 주장을 종종 듣는데, 역시 뚜렷한 관계를 발견하기 힘듭니다.
아래의 그림에서 붉은 선은 주택가격, 파란 선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인데.. 2002년이나 2007년, 그리고 2015년 주택가격 급등 구간에 소비자물가가 안정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 2011년에는 주택가격이 상승할 때 소비자물가가 상승하였습니다. 결국, 뚜렷한 관계가 없다는 말입니다.
경기가 과열되면 물가가 오른다?
아래의 그림은 한국 경기동행지수와 소비자물가의 관계를 보여주는 데, 동행지수가 상승하면(=경기 호조) 물가가 오른다는 이야기 역시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2008년 이전에는 경기동행지수가 소비자물가 변화에 선행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2012년 이후에는 이 관계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2012년 말을 고비로 경기선행지수가 상승하지만, 소비자물가는 오를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대체 어떤 요인이 물가에 영향을 미치나요?
이에 대한 답은 간단합니다. ‘해외요인’이예요.
아래의 그림은 한국의 수입물가와 소비자물가의 관계를 보여주는데, 매우 연관이 강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수입물가는 결국 ‘원자재’ 가격과 ‘환율’이 영향을 미치죠. 즉, 우리나라는 글로벌 원자재가격과 환율이 상승할 때 물가가 상승합니다. 반대로 원자재가격이 하락하고 환율이 떨어질 때에는 물가가 안정되죠.
이런 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시장개방’ 때문입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외환시장이 자유화된 것은 물론.. 한국 내수시장이 상당 폭 개방되면서 해외 요인의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높아진 것입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한국은행의 통화정책도 과거와 달라졌습니다.
한국은행은 어떨 때 금리를 인상하나요?
이에 대한 답은 간단합니다. ‘수출 경기’를 봅니다. 수출경기가 본격적으로 회복되며 경제성장률이 올라올 때에는 금리를 인상하고, 반대로 수출경기가 둔화되고 성장률이 하락하기 시작하면 금리를 인하해 경기 수축을 방어하는 겁니다.
최근 물가가 매우 안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상한 것은 ‘수출경기 호전’을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보아야할 것입니다. 물론 2014~2016년에 단행된 금리인하는 수출 부진의 충격을 상쇄하기 위함이었구요.
따라서 내년에도 정책금리를 추가 인상 가능성이 높죠. 최근 한국 수출의 선행변수(ISM 제조업지수 등)가 매우 강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으니까요. 물론 물가가 상승할 가능성은 높지 않으니, 정책금리 인상의 속도는 빠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원문: 홍춘욱의 시장을 보는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