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 나간다. 한국의 인터넷 환경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지적을 한 국회의원은 누구일까?
“우리는 MS 익스플로러, 액티브X 사용을 사실상 강요해서 해킹에 극도로 취약한 구조다”
“한국식 공인인증체계를 폐지해야 액티브X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
답: 5)
이석기씨의 국회의원으로서의 활동내용이 궁금해 홈페이지에 들어가봤다. 위에 소개한 액티브엑스 얘기는 국어책 읽듯이 하는 걸 보니 보좌관이 써준 것 같다. 그래도 저런 말을 했다는 것 자체는 칭찬받을 일이라 생각한다.
국회의원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는 법을 만들거나 고치는 일이다. 이석기씨가 지금까지 대표로 발의(제안)한 법안은 3건 밖에 없지만 공동 발의자로 참여한 법안은 수십 건 있다. 참여한 법안들을 보면 괜찮은 것들도 많다.
예를 들어 가장 최근(7월 17일)에 제안한 법안은 “문화산업진흥 기본법 일부개정안”이다. 드라마, 영화 등의 외주제작업체가 망해서 스태프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못할 경우 제작 발주를 한 방송사측에서 그 돈을 대신 지급하게 하는 법이다. 영화, 방송 쪽 일을 하는 사람들은 워낙 임금도 낮은데다가 그나마 받아야 할 돈을 떼이는 일이 많다. 이런 사람들을 보호해주자는 법안이다. 이런 법안은 아무리 이석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욕할 구석이 없다.
또 2013년 5월에는 ‘소득세법 일부개정안’을 냈다. 여기서는 금과 보석류에 대해서도 양도세를 물리자고 하고 있다. 나도 처음 알았다. 지금까지는 보석과 금에 대해서는 양도세를 물리지 않았다는 걸. 엄청난 세금이 줄줄 새고 있었던 것이다. 이 법안은 탈세를 막고 세원을 확충하자는 신념을 갖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굉장히 좋아할만한 제안이다. 그런데 이 법안을 대표발의한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이 아닌, 이석기와 함께 (보수단체들에 의해) 양대 악마로 꼽히는 정치인, 바로 ‘종북 얼짱’ ‘진보의 수애’ 김재연 씨다. (링크)
법안들을 살펴보니 흥미롭게도 이석기씨는 이번에 내란/간첩혐의를 받기 전부터 국가정보원과 이미 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8월 7일 동료 오병윤, 김재연 의원과 함께 국가정보원법 개정 법안을 냈다. 국가정보원에서 수사권을 박탈하고 ‘해외정보원’으로 바꿔서 해외업무만 담당하게 하자는게 요지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그는 그 국가정보원에 갇혀서 수사를 받고 있다. 국정원 조사관들이 얼마나 신이 났을지 눈에 선하다. “쌤통이다 요놈아!” 이러고 있지 않을까?
이석기 씨가 구속되지 않았더라도 위의 법안이 통과될 리는 없다. 다수당인 새누리당이 반대했을 테니까. 어쨋든 국정원 직원들 입장에서는 이 세 명의 통합진보당 의원들이 괘씸했을 거다. 언제 한 번 싹 손봐줘야 겠다고 벼르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 가능할 것도 같다고 한 번 상상해본다. (이렇게 빙빙 돌려서 말할 수 밖에 없다. 아니면 나도 이석기처럼 국정원에 끌려가거나 선배A, 선배B처럼 검찰에 끌려갈지도 몰랑……)
이석기 씨는 국정원 뿐 아니라 언론들도 적으로 두고 있었다. 국회에서 방송통신쪽 일을 주로 맡았던 그는 최근 종편 재심사 문제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정부는 방송사들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3년마다 심사를 하는데, 채널A, TV조선, JTBC등 3개 종편 채널이 이번에 그 대상이라고 한다. 조-중-동 3개 언론사가 운영하는 이 종편채널들에 대해 이석기 의원은 부정적인 의견을 갖고 있다. “종편은 출범 시점부터 지금까지 편법으로 특혜를 누리고 있습니다”라고 주장하면서(링크). 그래서 종편에 대한 재심사를 까다롭게 하자고 말해왔고 종편이 받고 있는 여러 가지 혜택을 줄이자는 법안도 발의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란 혐의가 터지니, 그가 아주 조금이라도 호의적인 보도를 받을 가능성은 0%였다. 앞으로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법원이 어떻게 판단할지는 두고봐야 하겠지만 법정에서의 판결을 떠나서 그는 이미 여론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거나 마찬가지다. 스스로를 (마치 예수처럼) 권력과 대중으로부터 탄압받는 메시아로 포지셔닝해온 그의 입장에서는 나쁜 일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