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침대 시장은 독과점 시장이다. 침대 브랜드 하면 떠오르는 딱 두 곳, 시몬스와 에이스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3위 업체인 썰타까지 포함하면 파이는 국내 침대 시장의 절반에 가까워진다. 침대 기술 획득과 시장 진입이 반도체, 디스플레이처럼 까다롭지 않다는 점을 생각하면 조금 의아한 수치다.
에이스, 시몬스, 썰타… 모두 한 가족?
1963년 안유수 회장이 설립한 에이스침대는 2002년 장남인 안성호 대표가 물려받았고, 안 회장의 또 다른 회사였던 시몬스 침대는 차남인 안정호 대표에게 돌아갔다. 두 기업이 같은 뿌리를 가진 ‘형제 회사’인 셈이다.
회사를 두 아들에게 물려준 안유수 회장은 얼마 지나지 않아 침대 브랜드 썰타를 인수하기에 이른다. 업계 1~3위 업체를 한 가족이 운영하게 된 것. 실제로 어느 회사도 과반을 점유하고 있지는 않지만 사실상 독과점에 가까운 체제가 된 것이다.
결국 이들이 독과점하고 있는 것은 시장만이 아니었다. 자사의 지분 구조마저 철저한 독과점이었다. 에이스 침대는 의결권 지분의 92%를 안 사장 등 오너 일가가 가지고 있다. 안성호 대표가 안유석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주식을 바탕으로 지분을 점차 키워온 것이다. 그 결과 에이스침대의 유통주식은 전체주식의 6.7%라는 기형적인 구조를 갖게 되었다.
시몬스 침대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안정호 대표는 시몬스침대를 물려받은 후 1인 지배 구조를 만들어 냈다. 무려 100%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시몬스가 곧 안 대표이고, 안 대표가 곧 시몬스인 것이다. 이 말은 곧 매해 수십억이 넘는 배당금을 안 씨 홀로 가져갔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시몬스 이사회 역시 그의 손에 달려 있다. 2명의 사내이사와 1명의 감사로 이루어진 이사회에서, 안 대표 본인과 어머니 김영금 씨가 사내이사직을 나누어 가졌다.
‘침대는 가구가 아냐?’ 더 이상 속지 마세요
이런 문제적 경영에도 이들이 시장의 과반을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천문학적인 마케팅 금액이다. 기업의 이미지와 제품 홍보를 위해 엄청난 비용을 지급하는 만큼, 상대적으로 자본력이 약한 후발주자들이 시장을 찾아오기란 쉬운 일일 수 없다.
에이스 침대는 TV 광고에 지속해 유명 연예인을 캐스팅하며, 16년 전체 매출 2,028억의 13.7%인 278억을 광고비로 지출했다. 에이스침대 전체 판매관리비의 36%에 달하는 비용이기도 하다.
시몬스 침대 역시 마찬가지다. 매출은 증가하는 추세지만 광고 비용 상승 폭이 매출의 상승 폭을 크게 앞질렀다. 작년 한 해 지출한 광고비는 298억, 전체 매출의 20%에 맞먹는 금액이다. 전체 판매관리비인 683억 중 40% 이상이 광고비로 지출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들이 다른 선택을 하기란 쉽지 않다.
독과점 시장 속, 현명한 소비자가 되려면
언제나 소비자는 호구가 될 수밖에 없는 걸까? 그렇지는 않다. 밀어내기로 인해 연신 비판을 받던 남양유업은 거센 불매운동에 직면해야 했다. 판매량은 크게 떨어졌고, 결국 대국민 사과까지 해야 했다.
가구 업계로 눈을 돌려보자. 버려진 나무 자재들을 재활용한 합판인 파티클 보드(PB)를 생활 가구를 만드는 데 사용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소비자들은 분노했고, 선택권 보장을 위해 어떤 자재가 사용되었는지 확인 가능한 라벨 부착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지만, 가구 업계는 ‘영세 업체의 생존권’을 빌미 삼아 문제를 회피해 버렸다.
그리고 가구공룡 이케아가 국내에 상륙했다. 소비자들은 더욱 폭넓은 선택권이 보장되면서도 국내 업체보다 가성비가 뛰어난 이케아 매장으로 몰려들었다. 이는 타성에 젖어 있던 국내 업체들이 소비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촉매가 되었다. 소비자의 분노와 대안적 선택이 가구 시장의 궁극적인 성장을 이끌어낸 것이다.
국내 침대 시장도 달라지고 있다
침대 시장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소비자들은 거대기업에서 새로운 곳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가구 매장을 직접 찾는 것보다, 인터넷을 통해 원하는 제품을 찾아 구매하기를 택했다. 고비용의 한계를 극복하는 렌탈 서비스에 대한 수요라든가, 공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기를 위한 소파 베드에 대한 수요 또한 증가하고 있다.
합리적인 가격과 품질, 새로운 구매 방법을 통해 대안을 제시하는 신규 업체도 있다. 높은 가격의 원인으로 지목받던 대리점과 같은 중간단계를 모두 없애고, 소셜 네트워크 및 자체 쇼핑몰을 통해 소비자와의 거리를 좁히고 있다. 비싼 임대료가 당연할 수 밖에 없는 목 좋은 위치의 넓은 매장에서 영업사원의 권유에 따라 고르는 것이 기존의 침대 구매 방식이었다면, 새로운 업체들은 온라인 주문과 편리한 배송을 무기로 빠르게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이 분야의 선두주자인 삼분의일을 예로 들면 이들은 런칭 초기부터 지금까지 매장 하나 없이 성장한 온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여기서 매트리스를 주문하면 주문 후 단 며칠 만에 두께 25센티의 두툼한 매트리스가 배송된다. 그것도 ‘택배’로. 매장 투어를 할 시간이 없어도, 집에 사람이 없어도 침대를 구입할 수 있는 것이다.
이케아는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 시장을 조사하기 시작하며 소비자의 진짜 수요를 찾은 바 있다. 업체 삼분의일 역시 직접 사용자가 매트리스에 눕게 한 뒤 느낌을 조사하면서 100명 중 70-80명이 선호한다고 응답할 때까지 제품 출시를 미루며 개발을 지속했다.
최근 방영된 ‘쇼미더머니’를 보면 래퍼들이 이케아 티셔츠를 즐겨 입는 것을 볼 수 있다. 미국 타임스지가 말했듯 “이케아 브랜드에 대한 신뢰”가 묻어 나오는 부분이다. 삼분의일 역시 브랜드의 ‘팬’을 모으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덕분에 소비자들은 브런치를 통하여 내 눈앞의 제품에 대한 스토리를 알 수 있으며, 불편한 진실을 알리는 ‘삼분의일’의 목소리에도 ‘팬심’을 담아 응원하고 있다.
이케아가 국내 가구 시장의 변화를 이끈 것처럼, ‘삼분의 일’과 같은 신규 업체들이 성장은 국내 침대 업계의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한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들도 소비자들의 선택이 없으면 변화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 있듯 지금 현명한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면 독점의 역사는 계속될지도 모른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