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중반 이후 비약적인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면서 일자리 구하기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게 되었고, 다만 ‘보다 나은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관건인 시기가 오래 지속됐다. 고등학교 졸업자의 대학 진학률이 꾸준히 늘어나는 데 반해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한국경제의 성장 패러다임은 한계에 다다르면서, 제대로 된 일자리 구하기는 이제 상시적인 문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더구나 1997년 외환위기로 대량해고라는 산업화 이후 초유의 사태를 경험하게 된 한국인들은, 이 과정에서 평생직장 개념을 저 멀리로 떠나보내버렸다. 가까스로 위기에서 벗어난 한국 기업들은 양적 팽창에 한계를 느끼고 비용 통제에 더욱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오랜 관행으로 정착된 고용시장 제도는 하루 아침에 바뀔 수 없었으며, 기업들은 궁여지책으로 점점 더 많은 비정규직 직원을 고용하게 된다.
▷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이 급속히 벌어져
급기야 전체 취업자 가운데 비정규직의 비율은 급격히 늘어 2001년 27% 수준에서 불과 3년 뒤인 2004년에는 이 비율이 37% 선까지 치솟게 되었다. 이후 비정규직 비율은 32% 선까지 낮아졌지만 이제는 비참하기까지 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사회적 관심을 끌게 되었다. 정규직 및 대기업 노동자 위주로 이루어진 노동조합 단체들은 일제히 정부와 기업들의 비인간적인 비정규직 대우를 문제삼고 이들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비참한 노동환경과 낮은 임금에 항의하며 목숨을 끊는 노동자가 생기게 되고, 노동조합 단체들은 기회가 될 때마다 이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실제로 시간당 임금을 비교할 때 정규직 임금 대비 비정규직 임금의 비율은 2002년 80% 선에서 10년 뒤인 2012년에는 65% 선까지 낮아진다. 기업들은 이러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는 없다고 맞서고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비정규직과 관련된 문제는 고스란히 정부 정책과 비정한 기업들의 책임인 것으로 생각되기 쉽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같은 통계자료들도 발상을 전환해 들여다 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가능하다. 즉, 정규직 노동자들이 현재 누리고 있는 임금 수준 및 각종 비임금 혜택은 과연 정당한가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것.
▷ 비정규직 문제는 진정 비정규직 문제일까?
심상정 국회의원실에서 작성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모 자동차회사의 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월정급여는 254만 원 선으로 같은 회사 비정규직 노동자의 185만원보다 약 40% 많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월정급여 이외에 정규직 노동자가 받는 돈은 상여금, 연월차 수당, 경영성과금, 사업목표 달성 성과금 등 모두 12가지 항목이 추가돼 총 수령액은 649만원으로 늘어나게 된다. 반면 비정규직 노동자는 임금 이외에 4개 항목이 추가돼 총 361만원을 받는다.
그 결과 비교 대상인 이들 두 명의 노동자는 비슷한 업무를 하면서도 정규직 노동자가 비정규직 노동자보다 매월 거의 두 배에 이르는 돈을 받고 있는 것으로 이 자료에는 나타나 있다. 만일 임금 이외의 각종 추가 지급 항목을 없앴다면 이들 두 노동자의 임금 차별 문제는 훨씬 해결이 쉬워질 뿐 아니라 분쟁의 소지도 줄어들 수 있다.
다른 통계들과 함께 살펴본 결과 정규직 노동자들 위주로 구성된 노동조합 단체들이 그토록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촉구하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이나 이권은 거의 양보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한 가지 예로 노사분규 발생 현황을 보면 종업원 300인 이상의 대기업이 전체의 50%를 넘게 차지한다. 기업 숫자로는 중소기업이 훨씬 많은데 노사분규는 절반 이상이 대기업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 정규직 위주의 관행도 큰 문제
또 눈에 띄는 것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급여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큰 폭으로 삭감됐다가 이제야 서서히 회복되고 있으나 정규직 노동자들은 그 기간 중에도 급여가 계속 올랐다는 것이다. 심하게 얘기하면 경제적 고통을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전가했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한국의 총 단위당 노동비는 2000년부터 2011년 사이에 두 배로 올라 미국이나 OECD 평균인 40%를 훨씬 앞지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되자 기업들은 해외의 값싼 노동력과 유연한 고용제도가 있는 곳으로 생산기지를 옮기거나 신규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그에 따라 국내 산업의 공동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상황이 이런 데도 정규직 및 대기업 위주로 이루어진 노동조합들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와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위 설명을 바탕으로 필자는 비정규직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든 것은 사실 정규직과 관련된 기존 관행이 시대 변화에 맞춰 유연하게 바뀌지 않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부와 기업들도 비정규직 노동자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하겠지만 각종 혜택에 비교적 안정적인 고용조건을 누리고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도 제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