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1일, 밀덕계의 큰 별이 졌다.
밀덕이라면 대부분 한 편 이상은, 밀덕이 아니라도 한두 편 정도는 소설, 영화 또는 게임을 통해서 접해봤을 그의 세계관과 소설들은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이다. 물론 꽤 많은 수의 작품들이 대필을 통해서 집필된것으로 알려졌지만, 그가 세운 세계관과 테크노 스릴러라는 장르는 앞으로도 여전히 큰 영향력을 유지할 것이다.
톰 클랜시의 데뷔와 작품 세계
보험 설계사로 일하던 그는 와이프의 할머니가 세운(장가를 잘 가야 된다) 보험회사에 들어가면서 생긴 여유시간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첫 소설 <붉은 10월>은 그렇게 탄생한다. 당시 작가로서는 신인이었던 톰 클랜시는 소설을 내줄 출판사를 찾지 못해 기존에 칼럼을 연재하던 미 해군 재단에서 겨우 책을 냈을 정도였는데, 당시 대통령이었던 로날드 레이건이 TV 인터뷰 중 이 책을 언급하면서 엄청난 대박을 터트리게 된다. 이후로 그의 작품은 영화화, 게임화 등을 통해서 대중들에 알려진다.
열렬한 공화당 지지자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종교적인 시점은 꽤나 중립적이다. 에서 그는 테러리즘과 이슬람의 관계는 테러리즘과 기독교(및 다른 종교)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종교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그 전에도 그는 9.11 직후에 가진 인터뷰에서 ‘이슬람은 자살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코멘트를 한적도 있다.
그는 소설에서 일련의 사건들을 미리 예측하기도 했는데(고도의 개연성을 바탕으로 한 픽션은 현실과 닮기가 쉽다-편집자 주), 그 중 가장 유명한 일화는 <적과 동지(dept of honor)>에서 9.11을 암시하는 듯한 여객기를 이용한 테러를 예측한 것이다. 또 에서는 중동 테러조직과 남미 카르텔간의 마약을 매개로 한 협력을 예측하기도 했다.
국내에 발매된 그의 소설은 매우 한정적이지만 (대부분 OP센터 내지는 넷포스 시리즈), 그는 잭 라이언과 존 클락을 시리즈 전반에 등장시켜 프랜차이즈를 이어간다. 가장 중심이 되는 캐릭터 중 하나인 잭 라이언은 초기작에서 CIA 정보분석관으로 등장했다가 후반에는 재선 대통령으로 승진(?)하며, 최신작에서는 그의 아들이 새로운 비밀 정보기관에 취직해서 사촌들과 함께 악을 응징한다. 그의 아들은 CIA 분석가였던 그의 자리를 새로운 비밀 기관에서 상속하며, 그의 사촌들은 전술팀이었던 존 클락의 자리를 이어받는다.
밀덕의 결정체이자 완전체, 그리고 장르를 성립시킨 거인
그의 이름을 걸고 나온 게임 타이틀은 매우 많지만, 그의 손이 직접 닿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초창기의 레드스톰 사의 타이틀 중 가장 유명한 게임은 레인보우 식스이다. 퀘이크가 한국 시장에서 FPS의 대표적인 이름을 얻어가고 있던 중 발매된 게임으로 수많은 클랜을 양산해 내었으며, 그중 일부는 비공식 세계랭킹 1위에 잠시 오르기도 하였다. 이후 이어진 밀리터리 FPS붐은 카운터 스트라이크로 이어졌으며 서든어택을 낳았다.
워낙에 유명한 분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더 하는 것은 사실 어렵다.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군경력없이 순수하게 발표된 사실만 가지고 소설을 쓰며, 거꾸로 미국 정부나 CIA등에서 강연등을 하기도 했던 그는, 밀덕의 결정체이자 완전체 같은 존재였다.
사실 그가 밀덕들에게 준 가장 큰 도움은, 국내에 테크노-스릴러 장르를 정립시키고 확산시킨 점이다. 이전까지의 밀리터리 소설에서는 소총, 권총, 탱크 등의 표현이 고작이었으나, 그의 소설에서는 실제로 등장하는 무기들의 상세한 설명이 동반되었으며, 동시에 전체적인 스토리에서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한다.
테크노-스릴러 장르의 정립을 보여준 <붉은10월>의 경우 소비에트 연방의 잠수함, ‘붉은10월’호가 가진 능력이 서사를 진행하는 데 큰 축을 담당하며, 기존에는 생략되거나 단순하게 언급되던 전투장면마저 굉장한 디테일로 묘사된다. 이는 다른 작품들에서도 계속해서 나타나는 특성으로, <적과 동지>에서는 여객기가 의회에 충돌하는 장면에서 경호팀이 스팅어를 발사하지만 탄두의 파괴력부족으로 여객기를 막아내지 못하는 등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에서 테크니컬한 부분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
이러한 부분에서 그는 주로 전쟁에서의 인간 존엄성이나 잔혹성을 묘사하는 데 그치던 기존의 밀리터리 장르의 경향을 뛰어넘어, A국과 B국이 붙었을 때 누가 이길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답을 정교하고 기술적인 묘사로 직접 제시한다.
이제는 없는 우리의 영웅을 기리며
사실 필자의 영어공부를 가장 많이 도와준건 그의 소설들이었다. 국내 발매가 되지 않은 소설이나 한글화가 되지 않았던 그의 게임들을 하면서 20대를 보냈고, 지금도 그의 이름을 건 The division을 기다리고 있다. 그의 신작들이 발매될때마다, 번역을 기다리지 못하고 원서를 구해 끙끙대며 몇 달을 읽어대는게 큰 즐거움 중 하나였는데, 이제 더 이상 그의 신작을 기대하지 못함이 매우 황망하다.
졸렬한 글 한 편에 그의 훌륭함을 모두 담아내지 못함에 부끄러우나, 그저 한 팬의 넋두리로 너그럽게 받아주시라.
RIP, Tom. You will be mi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