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생리학적 결함을 통한 말실수, 설마 박근혜 후보도?
누구나 말실수는 한다. “아줌마, 여기 너구리 순진한맛 없어요?”라던가 “아드님이 식물인간이 되셔서 어떡하나요.”라고 말해야할 것을 “아드님이 야채인간이 되셔서 어떡하나요.”라고 말하는 경우. 또 김밥천국에서 ‘유두초밥’을 찾는 말실수들, 모두 우리 주변의 이야기다. 말실수들이 재미있게 느껴지고, 종종 개그소재로도 사용되는 이유도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보았기 때문에 그 당혹스러움을 공감할 수 있어서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러한 말실수가 더이상 웃긴 에피소드가 아닌 다소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는 지점이 있는데, 그 경계는 첫째, 말실수의 빈도와 심각도가 정상범위를 크게 벗어나는지 둘째, 말실수의 원인이 신경생리학적 결함에 있는지를 따져봄으로써 결정할 수 있다.
대선이 본격화되고 나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말실수가 연일 화제다. 특히 대선후보 TV 토론이 시작된 이후, 박근혜 후보의 말실수가 빈번하게 관찰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다만 우스운 에피소드로 치부될 만한 수준이 아니고 좀더 본질적인 문제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본질적인 문제’란 바로 ‘신경생리학적 결함’을 의미하며,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언어/말 장애’로 진단되어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할 문제이기 때문에, 전공지식을 살려 박근혜 후보의 말실수를 분석해보도록 하겠다. 필자의 전공인 ‘언어병리학’(speech-language pathology)은 ‘언어, 말, 청각, 의사소통에서의 장애’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학문인데, 많은 사람에게 생소할 수 있을 것이다. 뭐 그런 게 있다.
Step 1. 워밍업! 박근혜 후보의 귀가 문제일 가능성 탐구.
그럼 이제 박근혜 후보의 잦은 말실수가 과연 어떤 문제에서 비롯된 것인가를 찬찬히 살펴볼텐데, 그녀의 말 문제는 하나의 공통된 원인에서 발생했을 수도 있고 여러가지 다른 원인에서 따로따로 발생했을 수도 있다. 또는 몇 가지 원인이 하나의 현상에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박근혜 후보를 데려다가 종합적인 언어평가를 실시하고, 입, 혀, 성대 등도 관찰하고, 뇌도 찍어보면 언어/말장애 여부와 그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을 터인데, 현재로서 내게 주어진 것은 그녀의 말실수 모음 동영상뿐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말을 할 때 우리 몸 속에서 일어나는 과정을 순서대로 따라가보면서, 박근혜 후보의 어떤 말실수가 어느 단계에서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는 정도로 추측해보겠다.
말을 하려면 일단 귀로 들어야 한다. ‘청각이 정상이다’는 말은, 첫째 귀의 내부 구조(고막, 망치-모루-등자뼈, 달팽이관)가 정상이다, 둘째, 청신경이 정상이다, 셋째, 청신경으로 전달된 소리정보가 뇌에서 해독(decode)되는데 문제가 없다, 는 뜻이다.
박근혜 후보의 청각이 정상인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녀의 뒷통수에 대고 소리를 질러보면 된다. 뒤돌아보면 정상이고, 안돌아보면 귀 또는 청신경에 문제가 있거나 난청이다. 소리정보를 정확하게 해독할 수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몇 가지 사물의 이름을 들려주고 손으로 가리켜보게 하거나 ‘앉으세요’, ‘일어나세요’, ‘오른손을 들어보세요’ 등의 지시를 내리고 내용대로 실행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면 된다(운동기능이 정상이라는 가정 하에). 동영상에서 박근혜 후보는 사회자의 지시를 알아듣고, 다른 후보의 말에 반응한다. 따라서 그녀의 청각은 정상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패스.
Step 2. 서론! 본격 탐구에 앞서 간단한 언어병리학 강의.
이제 본격적으로 말을 해보자. 일단 머릿 속에서 ‘무슨 말을 해야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어떤 개념을 떠올리게 되고, 그 개념에 해당하는 언어 표현들이 뇌에서 활성화된다. 여기서 개념과 해당 언어 표현은 일대일 관계가 아니다. 또 개념에 걸맞는 언어표현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말로는 표현을 못하겠어!”가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떠올린 개념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적 표상이 존재하고, 여러 개가 동시에 활성화될 경우에는 그 중 가장 적절한 것을 선택해 말한다. 예를 들어, ‘빠르다’라는 개념에는 ‘빠르다’, ‘재빠르다’, ‘신속하다’, ‘민첩하다’, ‘이르다’ 등의 언어적 표상이 연결되어 있다. 이 중 자신의 생각에 가장 적절하다 판단되는 한 가지 표현을 골라 역치(threshold)를 넘는 수준까지 활성화(activation)시키고 나머지 표현들은 억제(inhibition)시킬 수 있어야 말을 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한 가지 표현을 골랐으면, 이제 그 표현에 해당하는 소리를 찾아 순서대로 잘 끼워맞춰야한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라는 언어표상은 ‘ㄷ’ ‘ㅐ’ ‘ㅌ’ ‘ㅗ’ ‘ㅇ’ ‘ㄹ’ ‘ㅕ’ ‘ㅇ’ 의 소리로 구성되어 있다. 이 소리들을 순서대로 잘 연결해야 ‘대통령’이라는 낱말로 완성되지, 만일 어떤 오류가 발생해 순서가 뒤바뀌면 ‘태동령’ ‘래통뎡’이라고 말하게 된다. 또 순서는 맞더라도 ‘대통령’에 해당하는 소리들을 끌어오는데 실패하면, ‘개통령’ 이나 ‘새통령’이라고 말하는 실수를 범할 수도 있다.
여기까지 실수없이 잘 만들었으면, 이제 숨을 들이쉬고 공기를 폐로부터 기관-성대-구강/비강을 거쳐 내보내면서 혀와 입술, 턱을 정교하게 움직여 계획된 언어에 해당하는 소리를 발성하면 된다. 만일 이 과정에서 실수가 발생하면 흔히 ‘발음이 틀렸다’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꽤나 복잡한 과정이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언어를 계획하고 말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오류를 저지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매번 두 번씩이나 내가 맞게 말을 했는지 검토하는 과정(monitoring)을 거치는데 첫번째 단계는, 말이 소리로 전달되기 직전에 뇌 속에서 언어 계획이 문제없이 이루어졌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고, 두번째 단계는 말을 하고 나서, 내 귀로 듣고 처음 계획한 형태와 일치하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커다란 문제가 없는한 대부분의 오류는 첫번째 검토과정에서 수정된다. 간혹 뇌가 너무 바빠서 첫번째 과정에서 오류를 발견하지 못한 경우에는, 두번째 검토과정에서 이상을 발견하고 “내가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라고 되물은 후 다시 말하면 된다.
Step 3. 본론! 박근혜 후보에 대한 언어병리학적 고찰.
대선후보 TV 토론에서 박근혜 후보가 다른 두 후보에 비해 유창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토론 중에 준비된 자료 없이 다른 후보의 공격에 대응할 때의 말하기(이정희 후보에게 작정하고 나왔다고 말하는 부분. 2차 대선토론에서 이정희 후보의 세금 관련 질문에 답을 회피하고 말을 돌리며 시간을 버는 부분)가, 준비된 자료를 보면서 말할 때보다 더 유창함을 확인할 수 있다.
즉, 메세지의 생성이 본인 뇌 속에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평소 말하기와 같이 억양도 자연스럽고 유창한데, 누군가 써주고 외부에서 주입한 메세지를 외워서 말하는 경우에는, ‘기억’으로부터 메세지를 상기해내야하기 때문에 유창성이 급격히 저하되고 말의 흐름이 부자연스럽게 변한다.
‘지하경제 활성화’와 같은 모순된 개념이나 ‘나쁜 악영향’과 같은 잘못된 표현을 말하고 나서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메세지를 스스로 생성하지 않은 전형적인 예이다. ‘비정규직을 대폭 축소하겠다’라고 말한지 5분 후에 문재인 후보에게 ‘비정규직 50% 축소가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보십니까?’라고 질문하는 예도 본인 뇌에서 생성한 개념을 말하지 않은 예이다. 흔히 “걔는 자기가 말하는 게 무슨 뜻인지도 몰라.”라고 표현되는 경우이다.
‘바쁜 꿀벌’을 ‘바쁜 벌꿀’로, ‘이석기, 김재연’을 ‘김석기, 이재연’으로 말한 경우는 소리를 음절 단위에서 순서대로 배열하는데 오류가 발생한 경우이다. 계획 단계에서 오류가 발생할 수는 있는데 중요한 점은 두 번의 검토 과정을 거치면서도 이 오류가 수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뇌가 너무 바쁘다는 뜻인데, 다음 말할 내용만을 처리하기에도 분주할 정도로 뇌의 용량이 작거나 또는 언어 이외의 다른 감정이나 긴장, 걱정 등을 통제하느라 뇌 용량이 나뉘어 사용되어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전화위복’을 ‘전화위기’로, ‘이산화탄소’와 ‘산소’를 각각 ‘이산화가스’와 ‘산소가스’로, ‘국회의원직 사퇴’를 ‘대통령직 사퇴’로 말한 경우는 선택되지 말았어야 할 연관 언어표상들이 효과적으로 억제되지 못하고, 역치를 넘어서도록 활성화된 경우이다. 즉, ‘위복’을 생각할 때 ‘위’로 시작하는 다른 낱말들 ‘위기’, ‘위선’, ‘위치’ 등도 뇌 속에서 함께 활성화되는데, 이중 어떤 이유로 ‘위기’가 억제되지 못하고 원래 선택되어야 할 ‘위복’ 대신 발화된 것이다.
원래 말하려던 언어표상과 경쟁관계에 있는 연관 표상들을 효과적으로 제어하지 못하는 이유로는, 첫째, 대뇌 부위 중 언어를 담당하는 브로카와 베르니케 영역에 구조적 결함이 발생한 경우 둘째, 언어표상과 개념간 연결망 구축 실패, 한 마디로 ‘연습부족’을 들 수 있다. 박근혜 후보가 뇌졸중이나 뇌경색을 앓은 것으로는 보이지않으니, 첫번째 이유보다는 두번째 이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전화위복’, ‘이산화탄소’ 등의 용어는 평소에 자주 말하거나 생각하지 않았고, ‘국회의원직을 사퇴’대신 ‘대통령직을 사퇴’라고 말한 경우에는 그 즈음에 ‘대통령’이란 말을 너무 많이 말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솔선수범’을 ‘솔선을 수범’이라고 말한 경우는 딱히 오류라고 볼 수 없다. 원래 ‘솔선’은 명사이고 ‘수범’은 명사로도 쓰이고 동사로도 쓰인다. 비록 흔히 볼 수 있는 형태는 아니지만,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5.8조’를 ‘오점 팔조’라고 읽은 것 역시 통용될 수 있는 수준이므로 오류라고 볼 수 없다.
전반적으로 ‘그, 저기, 이제, 그 뭐냐, 저’ 등의 삽입어(interjections) 사용이 두드러지고 ‘마, 마치’ 등의 음절반복이 나타나는 문제, 문장 중간에 머뭇머뭇대거나 동어반복이 자주 등장하는 문제 등은 모두 언어계획 단계에서 발생하는 오류를 내적으로 수정할 시간을 벌기 위해 발생한다. 그만큼 뇌 속에서의 언어 계획에 오류가 잦고, 수정해야 할 내용이 많다는 뜻이다.
Conclusion. 결론! 언어병리학상 장애는 없습니다. 박수를 드려요. ^^
이 모든 종류의 오류에 공통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요소가 있는데 바로 ‘긴장’이다. 우리의 뇌는 한없는 용량을 자랑하는 무제한 프로세서가 아니다. 용량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시간적 압박이 있거나 떨릴 때 또는 기분이 무척 우울할 때 등은 이러한 걱정과 부정적 감정을 조절하느라 ‘주의’(attention)가 분산되고 그만큼 언어 계획과 말산출에 사용할 용량은 적어져서 말실수가 증가하게 된다.
2차 대선후보 토론을 보면, 박근혜 후보가 카메라를 응시하기 보다 앞에 놓인 시계를 쳐다보며 남은 시간을 확인하고 카메라도 시계도 아닌 곳에 불안한 시선처리를 하고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시간적 압박 또는 과도한 긴장 때문에 주의가 분산되어 말실수가 더욱 빈번해졌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동일한 환경의 다른 두 후보는 박근혜 후보만큼의 말실수를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박근혜 후보가 다른 두 후보에 비해 외부 스트레스에 더 취약하거나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기술이 떨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종합적으로 볼 때, 박근혜 후보의 잦은 말실수가 ‘언어/말장애’라고 판단될 만한 수준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박근혜 후보가 말하기 연습이 잘 되어있는 경우가 아닌 것은 명백하다. 다만 ‘말’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 개념과 언어표상 간의 연결망을 구축하는 차원에서의 문제이고, 토론에서 다루는 주제들에 대해 평소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고 피상적인 수준 외에는 깊이있는 사고를 요하는 대화를 별로 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흔히 ‘배경지식 부족’, ‘생각이 얕음’ 등으로 표현되는 상태이다.
이는 훈련으로 어느 정도 극복이 가능하다. 다만 보통 2분 정도의 길이의 대본은 막힘없이 술술 외워 말할 수 있을 법도 한데 그렇지 못한 것을 보면, 박근혜 후보의 기억력이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따라서 MMSE (Mini-Mental State Examination; 치매선별용 간이정신상태검사)를 권한다.
대통령 후보에게 빈번한 말실수는 분명 매력적이지 않은 요소이다. 전달하려는 메세지의 신뢰도를 저하시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근혜 후보에게만큼은 이러한 말실수가 오히려 도움이 될 수도 있는데 이유는 다음과 같다. 사람들은 누가 ‘어떻게 말하는가’에 집중하다보면 ‘무엇을 말하는가’에는 덜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즉, 사람들이 박근혜 후보의 말실수에 관심을 기울이다보니 정작 그녀가 말하는 내용에는 덜 관심을 쏟게되었고, 따라서 정작 그녀의 토론 내용을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게 되었다.
어쩌면 박근혜 후보의 토론 내용이 얼마나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고 말이 안 되는지를 감안할 때, 말실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얘기를 듣지 않게 하려는 박근혜 후보의 치밀한 책략일 가능성도(…) 물론 그럴 리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