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은 익숙해져야 한다
심리학적으로 ‘문전 걸치기 전략’이라는 것이 있다. 심리학자 조너선 프리드먼의 연구에 따르면 상대에게 부담감이 적은 부탁으로 허락을 받으면, 다음에는 점차 큰 부탁도 쉽게 들어준다는 것이다.
‘문전 걸치기 전략(foot-in-the-door technique, FITD)’의 영어를 직역하면 ‘발부터 집어넣어라’ 정도가 되는데, 이 전략의 요점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해석이다. 예를 들어 영업 사원의 경우 문을 열고 그냥 말을 건네는 것보다 문틈으로 일단 발을 들이미는 것이 매몰찬 거절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호구도 아닌데 문전 뭐시기 전략에 쉽게 당할 것 같냐고? 놀랍게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그러고 있다(…)
후원단체가 간단한 서명부터 요구하는 것도 다단계 판매원들이 공짜 공연을 준비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뭐든지 처음이 어렵다. 하지만 그 사람과 관계를 시작하는 순간 많은 것이 상대적으로 쉬워진다.
연인 관계도 ‘문전 걸치기 전략’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몇십 년간 각자의 세계에서 살던 남녀가 있다. 아무리 좋더라도 첫 만남부터 다짜고짜 고백했다간 뺨을 맞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일단 영화를 본다. 맨날 영화만 볼 수는 없으니까 밥도 먹는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단둘이 술도 마실 일도 있겠지… 이런 식의 작은 허락이 모여 두 사람의 세계는 점점 가까워지고, 결국 고백이라는 단계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는 ‘문전 걸치기 전략’이지만 반드시 주의할 부분이 있다. 상대방의 허락을 당연한 것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서명을 한 사람에게 자꾸만 후원을 강요하거나 공짜 공연을 보러 온 사람에게 당연하다는 듯 판매를 강요하는데도 남을 호구는 없다.
연인도 마찬가지다. 최초의 허락을 받기 위한 노력은 사라지고, 익숙한 사이가 되어버린 관계에서는 서로의 사랑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일이 많다. 최근 300만 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하며 화제가 된 덴티스테 광고 ‘30일의 약속’은 서로에게 너무 익숙해진 모습을 너무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익숙함에 젖어버린 관계를 잘 표현한 ‘30일의 약속’
여기, 연애를 거쳐 결혼으로 골인한 한 사람들이 있다. 마냥 행복한 나날이 이어질 줄 알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지 않은 나날이 이어졌다.
결국 이혼을 결심한 남편은 부인에게 서류를 내민다. 이때 부인은 조금 특별한 제안을 한다. 딱 한 달 동안만 자신이 요구하는 것을 따라주면 이혼을 합의하겠다는 것. 남자는 부인의 말에 따르기로 한다. 어차피 30일만 지나면 모든 것이 끝날 테니까.
부인의 요구는 별다른 것이 아니었다. 산책하다가 손잡기. 출근할 때 안아주기. 일어나자마자 키스하기. 남자는 그런 부인의 요구에 시큰둥한 표정으로 맞춰준다. 이것은 그저 이혼을 위한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남편이 간과한 것이 하나 있다. 부인이 요구한 것들은 앞서 배웠던 ‘문전 걸치기 전략’의 기본이다. 부인의 목적은 남편의 사랑을 되돌리는 것이다. 하지만 맨 처음부터 그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일단은 손부터 잡기. 그리고 출근할 때 안아달라고 말하기. 그러다 아침에 키스해달라고 말하기.
이미 부인은 남편의 문으로 발을 집어넣었고, 남편은 그런 부인의 요구를 착실히 허락하고 있다. 덕분의 각자의 세계는 다시 급속도로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익숙하다는 이유로 잊고 있었던 처음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끼게 된 것이다.
그동안 소중한 것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남편은 뒤늦게 후회하지만, 이미 약속한 이혼 날짜는 다가오고야 말았다. 갑작스럽게 내리는 비를 뚫고 부인 곁으로 달려가는 남편. 그는 다시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뭐든지, 익숙해진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
광고이지만 자꾸만 보게 되는 매력을 가진 ‘30일의 약속’ 아래에는 연인들의 눈물 젖은 댓글로 가득하다. 익숙하다는 이유로 각자의 소중함을 잃어가는 연인들의 일반적인 과정을 섬세하게 표현한 덴티스테 광고에 크게 공감하면서 지금의 소중한 사랑을 잊지 말자는 말을 나누는 것이다.
실제로 태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오랫동안 사랑을 이어가는 부부들의 비결은 별다른 것이 없었다. 손을 자주 잡거나, 포옹을 나누거나, 입을 맞추고, 사랑한다고 ‘자주’ 말할 뿐이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익숙함에 젖어 연인 간의 가장 평범한 행동조차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한 사람에게는 하나의 우주가 존재한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이라는 것은 몇백 광년씩 떨어져 있던 각자의 우주가 하나로 합쳐지는 위대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인류가 우주로 나아가기 위해 사용한 돈은 1,000조 원이 넘는데 아직 발을 디딘 곳은 겨우 달에 불과하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당신 옆에 있는 ‘우주’는 다르다. 당신이 조금만 용기를 내어 상대방의 문에 발을 집어넣는다면, 사랑이라는 이름의 빅뱅이 언젠가는 시작될 것이다.
그러나 명심하도록. 그렇게 가까워진 관계에서 조금이라도 방심하는 순간, 서로는 다시금 몇백 광년만큼이나 멀어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 같이 소리 내어 읽어보자. 익숙함에 속아 중요한 것은 잊지 말자. 지나간 버스는 돌아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