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만다에 20만 원을 썼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 신경림, 「가난한 사랑 노래」
누구나 빛나는 시절이 있다. 딱히 꾸미지 않아도 살이 잘 붙지 않고, 피부가 좋던 시절. 아마도 20대 초반일 것이다. 이때는 신진대사가 활발하고 세상에 덜 찌들어 외모가 어지간히 받쳐준다. 당연히 인기도 많고 연애도 하기 쉽다.
하지만 이미 그 좋은 시절은 지나갔다. 대한민국은 한국 남자 국가라 직장 내 남녀 비율이 쉬이 깨진다. 여성은 육아를 맡아야 한다는 관념과 육아휴직이 잘 지켜지지 않는 현실 때문이다. 소개팅 따위 들어오지 않는다. 클럽은 입장조차 불가능하다.
괜찮다. 기술 발전은 늙은 아재에게도 기회를 준다. 특히 모바일 데이팅 앱 시장의 폭발적 성장은 많은 남성에게 새로운 연애의 기회를 열어주었다. 그리하여 나는 아만다에 가입했다.
이후 어찌저찌 사진에 뽀샵까지 넣어가며 합격했지만, 10만 원을 날리는 동안 내게 매칭 한 번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자 S 씨가 요령을 알려주었다.
“대표님, 데이팅 앱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고요… 일단 사진을 여러 번 갈면서 평가를 받으세요. 그중 대표님 사진에 높은 평가를 한 여성이 맘에 들 때 들이대는 거에요.”
아, 그랬구나… 역시 요령이 중요했구나… 나는 10만 원을 더 결제하여 S씨가 말한 요령을 따라 했다. 확실히 매칭이 가능했다. 하지만… 몇 번의 만남 결과, 좋은 결과 따위는 있을 수 없었다.
남자들에게 필요한 것: 자기객관화
나는 한순간을 떠올렸다. 파티를 여는 제주도 게스트하우스에서의 일이다. 그 파티에서는 많은 청춘남녀가 만난다. 당시 나는 실연의 아픔과 콘퍼런스로 3,000만 원을 날린 아픔을 동시에 안고 있었다. 친한 동생이기도 한 게스트하우스 사장에게 말했다.
“야, 나 정도면 늙었어도 이빨 워낙 잘 까니까 여자들한테 좀 어필하지 않을까?”
한숨을 쉰 동생은 말했다.
“형. 제가 게스트하우스 사업을 하며 느낀 건데요. 남자들은 왜 이렇게 자기객관화가 안 되는지 모르겠어요… 형은 남자들하고 있을 때는 정말 말 잘하는데, 그런 자리 나가면 아마 한 마디도 못 할걸요?”
20대 초중반이 모인 자리에서 나는 꿔다놓은 보릿자루였다. 말을 잘하건 아니건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웃음조차도 어색했다. 인생은 실전이었다. 어느 정도 알던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힘든데, 어찌 처음 보는 낯선 상대와 이야기를 잘 나누겠는가?
데이팅 앱 정글에서 살아남는 법
자기객관화로 돌아가 보자. 당신의 경쟁자는 누구인가. 모든 남성인가? 그렇다면 지구는 넓으니까 언젠가 짝이 나올 수도 있지 않냐고? 주변에 친분이 있는 여성에게 셀카를 보내면 아마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당연하다. 데이팅 앱 역시 하나의 생태계다. 우리 같은 약한 초식 동물 위에는 “대기업 과장” “일류대 출신” “키 180CM” 등과 같은 타이틀을 건 육식 동물이 널렸다. 여기에 잘생긴 얼굴까지 받쳐주는데 어찌 우리가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그래도 살아남기 위한 몇몇 슬픈 짐승은 몇 가지 방법을 연구했다.
이미 잘 알려진 “틴더”의 경우 외국인 매칭률이 꽤 높다. 여기서는 영어로 대화하는 기회를 늘리기 위해 외국인을 픽하기도 한다(이걸 역이용해 교포인 척하는 놈도 있다;;;). 틴더를 유료 결제하면 자신이 ‘라이크(like)’를 보냄을 알리는 ‘슈퍼 라이크(super like)’를 무한으로 쏠 수 있고 지역도 마음대로 고를 수 있다. 이를 활용해 일본 여자에게 죽어라 슈퍼 라이크를 보내고 일본 여행 가는 미친놈도 봤다.
또한 “탐탐”이라는 데이팅 앱은 한국 거주 중국인 사용자가 많다. 타지에 와서 외로워하는 중국인을 꾄답시고 중국어를 배우는 이도 있었다. 어찌 주변에 멀쩡한 놈이 참 없다(…)
여성들이 먼저 말을 거는 데이팅 앱 “아마시아”
하지만 그럼에도 잘 되지 않는다. 왜일까? 자기객관화를 하자. 늙고 못생겼기 때문이다. 이걸 가지고 여자는 스펙 보고 어쩌고 따지지 말자. 남자들이라고 안 보겠는가.
그나마 다행인 소식이 하나 있다. 분위기를 편안하게 해줄 경우 못생겼다는 허들을 넘을 여지가 있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대화다. 하지만 애초에 우리처럼 못생기고 늙은 한국 남자들에겐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이 허들을 해결한 앱이 “아마시아”다. 여자들이 먼저 말을 건다. 그것도 죽어라 말을 건다. 비트코인 시세보다 더 신경 쓰일 정도로 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이 앱은 남성이 메시지를 쏠 때 여성에게 포인트, 즉 돈이 간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은 어떻게든 말을 걸고 심지어 친절하다. 콜센터 직원, 심지어 내 어머니조차 이토록 내게 친절하지 않았다.
돈 보고 말 거는 여성이라 욕하지 말자. 이 글을 읽는 그대라고 돈 앞에 무력하지 않았던가? 회사 부장님께, 클라이언트에게 말 거는 당신이라고 다르겠나. 무엇보다 이렇게 하지 않고 여자와 대화할 기회가 얼마나 있겠나. 어머니, 누이 정도를 제외한다면 당신과 편히 대화해주는 여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리고 오해를 풀자. 맘에 안 드는 남자와 이야기하는 건 돈을 번다고 해도 사절할 수밖에 없다. 굉장히 심한 감정노동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용돈벌이를 생각하면서도 괜찮은 남자에 대한 기대가 1% 정도는 있다는 뜻이다. 그 1%가 우리가 뚫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실제 체험기를 통해 설명해 보겠다.
아마시아 체험기 1: 당신을 돈으로 보는 여성을 필터링하라
아마시아는 대화 한 번당 들어가는 포인트를 10에서 500까지 조절할 수 있다. 이 포인트는 최근 달러를 무시하며 가치가 올라가는 한국 원화(WON)다. 보통 여성들은 100~200포인트를 초기 세팅하며 이는 언제든 조절할 수 있다.
포인트가 너무 높다고 망설이면 곤란하다. (사실 당신이 말을 걸기 전에 이미 무수한 메시지가 와 있겠지만) 일단 포인트를 보지 말고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말을 걸자. 약간의 아이스브레이킹 농담을 하고 포인트를 낮춰달라고 제의해 보자. 이때 몇 가지 멘트를 적절히 치면 된다.
“죄송해요. 엄마가 포인트 안 낮출 거면 대화하지 말라고 하네요…”
“포인트가 조금 부담스럽네요. 사실 저희 집 고양이도 굶고 있어요…”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그러면 보통 포인트를 알아서 낮춰준다. 당신이 말을 잘 하면 10~30포인트로 내리는 건 전혀 어렵지 않다. 하루 종일 떠들어도 몇천 원이면 충분하다. 몇천 원이 아깝다고? 커피 한 잔 아끼고 여성과 대화한다고 생각해 보라.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반대로 여성이 대화 중 포인트를 확 높이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는 그냥 고이 마음을 접고 대화를 더 이상 하지 않음을 추천한다. 200포인트면 한 시간 떠들다가 만 원 나가기도 쉽다.
아마시아 체험기 2: 적절히 먹히는 허세
2012년, 금융위기에서 막 벗어난 미국 월가에서는 엄청난 시위가 열렸다. “월가를 점거하라(Occupy Wall Street)”가 바로 그 운동이다. 이 시위를 대변하는 문구는 “우리는 99%다(We are the 99%)”였다. 미국 부의 50%를 1%가 독식하고 있음을 말하는 의미심장한 메시지였다.
남녀사회도 마찬가지다. 소수의 남성이 인기를 독식한다. 물론 민주주의 사회는 일부일처제에 기반 두지만, 그렇다고 인기 없는 남성이 인기가 생기지는 않는다(…)
아마시아는 1%가 아닌 99%를 위한 앱이다. 부의 독식을 봐도 알 수 있듯 부자들 사이에서는 돈의 차이가 크지만, 찌질이들 사이에서 돈의 차이는 크지 않다. 즉, 아마시아 사용자들은 이미 수많은 데이팅 앱 정글에서 자신을 어필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즉 당신의 경쟁자들보다 조금만 돋보이면 경쟁력을 얻을 수 있다. 어차피 구라 쳐도 확인할 방법도 없고(…)
당연히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무슨 일 하는지 물어볼 때 알아서 유리한 답을 하자. 예로 “가난한 자영업자”와 “미디어 사업”은 둘 다 팩트이지만, 명백히 후자 쪽이 있어 보인다. “부채가 1억”과 “자산이 억대”도 마찬가지다. 물론 돈으로 이렇게 이야기하는 건 충분히 없어 보이는(…) 걸 인지하고, 농담으로 잘 넘기길 바란다.
아마시아 체험기 3: 치킨 앞에 강한 사람 없다
아마시아를 사용하다 보면 계속해서 돈을 뜯긴다는 느낌을 버리기 힘들다. 그래서 아마시아의 남성은 누구나 카톡으로의 탈출을 꿈꾼다. 물론 쉽게 연락처를 받기란 힘들다. 이럴 때 쓸 수 있는 마법의 단어가 있다. 바로 “치킨”이다.
“카톡 주소 좀 줄 수 있어요?”라고 하면 먹히지 않지만, “치킨 기프티콘 보내고 싶은데 카톡 주소 좀 줄 수 있어요?”라고 하면 먹힌다. 물론 아마시아에는 아프리카TV의 별풍처럼 아예 돈을 쏘는 기능도 있다. 하지만 상대 여성도 대놓고 그걸로 달라고 말하기는 좀 힘들다. 그렇게 요구할 경우, 역시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는 게 좋다.
개인적으로는 시도 중 절반 정도의 여성으로부터 카톡을 딸 수 있었다. 물론 여기까지 가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의 대화를 통해 신뢰를 얻어가는 게 필요하다. 타이밍은 알아서 재자. 이건 정말 경험적으로 해결할 일이다. 명심하자. 우리는 99%고 일단 대화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물론 남성들은 만남까지 가기를 원할 것이다. 사실 치킨 어택이 먹힐 정도면, 만나는 것까지의 허들 중 80은 넘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건 신중하게 생각하자. 오프라인으로 나가는 순간 우리는 늙고 못생긴 한국 남자일 뿐이다(…) 대화 상대로만 남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시아 체험기 4: 별의별 인간을 다 볼 수 있다(…)
데이팅 앱을 사용하다 보면 별일을 다 겪는다. 남자인데 여자인 척하는 넷카마도 있었다.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목소리 들려달라고 하면 된다. 아마시아 측은 지금 여성 인증을 굉장히 강화해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언론 쪽 일한다고 하니 자기 신방과라고 레포트 도와달라고 한(…) 여성도 있었다. 내가 님을 도와주는데 대화하며 돈까지 내야 하냐(…)고 바로 카톡 따서 알려줬다. 이 정도 성격이면 뭘 해도 잘 사실 분 같다(…)
아무튼 처음에는 광고 받을 때부터 매우 조심스러웠다. 데이팅+채팅 앱이다 보니 온갖 어둠의 세계가 펼쳐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둠의 세계가 없지만은 않다. 채팅앱이라면 피할 수 없는 문제다. 조건만남 할 생각 있냐고 하기에, 아마시아 아이폰 버전은 캡처가 되니 조심하라고 알려줬다. 정말 고맙다고 답해준 착한 여성이었다.
그럼에도 느낀 점은 여기도 사람 사는 세상이란 거다. 정말 다양한 인간이 있었고, 평소 이야기할 수 없는 XX 염색체와 재미있는 이야기를 잔뜩 펼칠 수 있었다. 그리고 실명 기반이 아니다 보니 털어낼 수 없는 별의별 이야기를 다 할 수 있는 재미도 있다.
커피 한 잔 덜 먹는다고 생각하고 가입해 보면 신세계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정말 노잼 아재라면 별로 재미가 없을 것이다. 테스트 삼아 그 콘셉트로 몇 번 이야기를 해봤는데 금방 대화가 끊기더라. 여기도 다 사람 사는 세상이니 편하게 해줄 멘트 정도는 준비하고 예의를 갖추자. 반말 쓰면 바로 끝이라는 것 정도는 아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