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끝난 이후 고3부터 헬스장에 등록은 했으나 나가다 안 나가다 반복한 흔하디흔한 기부천사였다면, 본격적으로 웨이트 트레이닝에 매진한 것은 군 입대 후 자대 배치를 받고 난 뒤였다. 운이 좋아서 카투사로 복무할 수 있었던 내가 누렸던 최대의 행운은 바로 잘 갖추어진 체육관이 캠프에 존재했던 것, 그리고 영양분을 마음껏 섭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곳에서 기본적인 러닝머신이나 웨이트 머신 이용은 물론 복싱, 라켓볼, 농구, 수영 등 다양한 운동을 손쉽게 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도 습관이 되어 10년 넘게 꾸준히 운동하는 생활 체육인이 되었다. 물론 당시 수영장에서 수영도 못하는데 허우적대다 빠져 죽을뻔한 것은 자랑이 아니지만… 벤치프레스 양쪽에 10kg을 끼고도 제대로 들지 못해 허둥대다 바에 깔리고, 기구 사용법을 제대로 몰라 디렉션만 한참 쳐다보던 시기를 지나 매일 4시간에서 4시간 반씩 운동하고 아침, 점심, 저녁 단백질이 풍부한 식단으로 식사했다.
군대 가기 전까지 50kg대 후반에서 60kg대 초반 사이의 몸무게를 유지하다 군 제대 이후 68-70kg의 몸무게를 가지게 되었다. 10년 넘는 동안 꾸준히 운동해서 지금은 70kg대 후반이며 지방을 모두 걷어내는 컷팅 작업을 하고 나면 70kg대 초반의 몸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처음 근육을 붙일 때도 참 쉽지 않았지만 1년 넘게 거의 매일 4시간씩 운동해서 간신히 근육량을 올렸는데 그 이상으로는 근육이 잘 붙지 않았다. 분명 주변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근육질이고 덩치가 큰 사람인데도 인바디를 재보면 어떨 때는 근육량이 부족하다고 나오거나 근육량이 평균에 머무르게 측정되는 경우가 있었다. 몇 년간은 이걸 ‘인바디가 부정확한 거야’라고 대충 넘겼다.
이상했다. 사실 군 전역 직후에만 가도 그 헬스장에서 몸이 가장 좋고 덩치가 좋은 사람에 속했다. 그런데 최근 4-5년 정도 동안 이상할 만큼 나보다 덩치가 좋고 근육이 더 잘 발달한 ‘한국인’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지금 헬스장에 가면 나는 운동을 아예 처음 시작하는 사람보다 좀 나을 뿐 중간 또는 중간 이하의 수준의 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약 13년을 홀로 운동하면서 ‘혼자 해도 이만큼 올라왔는데 내가 PT를 받아야 해?’라는 알량한 자존심으로 버텼다. 그런데 지인의 ‘김연아도 코치가 있는데 뭐 그리 자존심을 세워’라는 한 마디에 생각을 바꾸고 PT를 받기 시작했다. 이후 지금껏 운동하며 알던 상식이 틀린 게 참 많고 PT 받으면 혼자 운동하는 것과 분명 다른 점이 있다는 걸 확실히 깨달았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PT를 하면서 내가 새로 깨닫게 된 것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운동 방법과 영양 관련 이야기가 모두 섞여 있다.
1. 하체 운동을 열심히 하면 유산소를 굳이 안 해도 된다
개인적으로 이게 가장 충격이었다. 하체 운동을 열심히 하면 유산소를 안 해도 된다고? ‘에이 설마, 그래도 유산소를 해야 살이 빠지지’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런데 하체를 ‘제대로만’ 한다면 지금 하는 유산소 운동 시간을 절반 이하로 줄여도 좋다.
실제로 내가 상체가 꽤 발달했음에도 근육량이 평균치 초과 직전까지만 가고 전체적으로 초과하지 못한 건 하체 운동에 충실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늘상 유산소 30-40분 이후 벤치프레스, 풀 업, 숄더프레스 정도 후 집에 가는 스케줄이었다. 스쿼트, 레그프레스 등의 운동은 내 리스트에 없었다. 물론 하루에 10여 층 이상을 계단으로 올라다녔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하체를 정말 열심히 앞쪽 뒤쪽을 모두 골고루 사용해주면 큰 에너지를 쓰고 이게 대충 설렁설렁 걷는 것보다 지방 태우는 효과를 훨씬 더 낸다. 유산소를 그래도 포기할 수 없다면? 유산소 시간을 반으로 줄이고, 러닝머신의 인클라인(기울기) 기능을 활용해 보자. 기울기를 5%로만 놓고 평소 걷던 속도로 걸으면 훨씬 짧은 시간 안에 몸에서 땀이 펑펑 터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내 경우 원래 40분간 걷던 러닝을 PT 이후 20분으로 줄이는 대신 그 20분 동안 앞 17분은 기울기 7%, 2분은 기울기 15%, 마지막 1분은 기울기 3%로 마무리했다. 똑같이 6km/h로 걸었는데 소모되는 칼로리를 측정해보니 40분 걸었던 때만큼 소모된다. 시간 절약과 하체 운동을 동시에 할 수 있으니 이득 아닌가. 무의미하게 천천히 걷느니 하체 운동에 매진하자. 생각보다 하체가 중요하다.
게다가 유산소를 계속하면 몸은 근육도 함께 에너지원으로 소모해 버린다. 웨이트나 스쿼트 등의 운동은 그럴 걱정이 없고 오히려 근육을 생성시켜주는 운동이다. 이만하면 하체 운동의 매력이 엄청나지 않은가? 살 빠지는데 근육량은 늘고 몸매가 예뻐진다니.
2. 국물을 마시면 살이 찐다
탄수화물을 먹으면 살찐다는 건 대다수가 아는 상식이다. 백색 곡식은 더 살이 찐다는 것도 이미 꽤 알려진 상식이다. 밀가루는 다이어트의 적이다. 그런데 의외로 국물을 마시지 말라는 말씀을 트레이너 선생님이 하시더라. 이유는 염분에 있다.
염분은 우리 몸의 수분을 붙잡아 두는 역할을 하기에 몸을 항상 부어있게 만든다. 평소에도 저염식을 주로 하고 있고 국물을 일부러 많이 먹는 편이 아니었지만, 이 말을 들은 이후 의식적으로 국물 요리에서 건더기만 건져서 먹기 시작했다. 시작한 지 3일도 안 되어 몸에서 불편한 부기가 빠지기 시작했다.
3. 술 마시면 살 뺄 시간을 빼앗겨서 살이 찐다
술 마시면 술 자체 때문에 살이 찌는 게 아니라 살 뺄 시간을 빼앗겨서 찐다. 이것도 신박한 개념이었다. 가끔 술 마시면 안주 때문에 살찌니까 술’만’ 마시면 살 안 찐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것이다. 근데 결론부터 말하면 이게 틀렸다는 것이다.
우리 몸은 수면을 취하면서 에너지를 소모하고 그 에너지 중 노폐물을 만들어 아침에 일어나면 배출하게끔 설계되어 있다. 그런데 술로 우리 몸에 영양은 없는데 칼로리만 있는 ‘공갈 칼로리’가 들어오면 이 에너지로 밤 동안 소모해야 하는 에너지를 다 충당해 밤 동안 살이 빠질 기회가 사라진다.
즉 그냥 술 안 마시고 잤으면 살이 빠질 기회가 오는데 술을 마셔서 그 기회를 박탈당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술’만’ 마신 게 아니라 안주까지 먹었으면? 두말할 필요도 없지.
4. 자세의 중요성
수능 끝난 첫해에 갔던 헬스장은 지방 동네의 자그마한 헬스장이었다. 근육은 있으나 배는 나오신 분이 관장님이었고 요즘 같은 트레이너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관장님께 처음으로 벤치프레스 하는 법을 배웠다. 최대한 쇄골뼈 쪽으로 당겨서 바를 내린 다음 올리라고 했다. 실제로 해보면 대흉근이 스트레칭되는 기분이 든다. 뭔가 근육이 생성되는 기분이 마구 든다. 그 자세가 맞다고 생각하고 10년 넘게 그 자세로 해왔다.
물론 10년 넘게 꾸준히 했으니 아무것도 안 생긴 건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한 거다. 나는 남들보다 무게를 한참 더 든다. 들어본 벤치프레스 무게가 최대 130kg 수준이다. 이 정도면 내 신장에선 거의 선수급인데 그들과 나의 몸매 차이는 너무 확연했다. 그냥 과거 군대에서 들었던 말처럼 근육이 잘 안 붙는 ‘저주받은 몸’이라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이번에 PT를 받으며 자세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봐 달라고 부탁드렸다. 어? 벤치프레스를 하는데 내가 하던 것보다 바를 한참 밑으로 내린다. 팔이 후들거렸다. 평소 100kg은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꼴랑 40kg을 들면서 바가 후들댄다. 전보다 운동하며 가슴이 쭉쭉 찢어지는 느낌은 덜했다. 그런데 다음날 가슴 쪽에 근육통이 느껴진다. 오히려 운동이 제대로 된 것이다.
5. 하루에 한 곳만 집중 공략
또 하나 흥미로웠던 것은 PT할 때는 하루에 한 부위만 집중적으로 공략한다는 점이었다. 가슴 운동하는 날이면 가슴만, 등 운동하는 날이면 등만, 하체 운동하는 날이면 하체만. PT 받기 전에는 가슴 운동할 때 무게를 올리며 벤치프레스 3세트 하고 끝이었다. 그것도 12개씩 3세트. 그런데 PT 선생님 방식은 달랐다.
가벼운 무게로 시작하지만 한 번에 20개씩 3세트를 한다. 이것도 힘든데 인클라인 벤치(기울어진 벤치)를 또 20개씩 3세트 한다. 이번엔 딥스 바로 이동하더니 상체 기울이고 20개씩 3세트, 그다음엔 체스트프레스 머신으로 이동해 또 20개씩 3세트, 마지막으로 팩 머신에서 20개씩 3세트를 시키신다. 한 시간 동안…… 이러니 가슴에 자극이 안 갈 리가 없다. 이렇게 하루 동안 한 부분을 죽도록 공략하면 그다음 날 제대로 근육통을 느낄 수 있다.
확실히 강도를 높인 운동을 근육에 먹이니 근육이 미세 파괴되고 커지는 원리였다. 운동할 때 하루에 여기저기 대충 다 하지 말고 한 곳만 집중적으로 공략하며 사이클 운동 방식으로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물론 복근이나 어깨처럼 근육 사이즈가 작은 부위는 매일 해도 금방 피로 회복이 된다고 매일 하는 것도 좋다고 말씀해 주셨다.
다시 만난 운동, 새로운 목표
많은 사람이 다이어트 성공 바디 프로필 등을 찍곤 한다. 그런데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이걸 이미 10년 넘게 해 오고 있어서 크게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엔 새로운 목표를 세웠는데, 이번 피티가 끝나는 2월 또는 연장해서 피티를 더 하게 되는 5월 끝날 즈음 ‘트레이너 선생님과 같이 상의 탈의하고 어깨동무하고 사진 찍기‘를 해볼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누가 트레이너인지 모르게끔 내 몸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며 재밌는 목표도 만들었다. 굉장히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