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진 전 의원이 후원금, ‘남의 돈’으로 정치를 계속하는 이유
리: 낙선을 축하드리오며… 백수가 된 지금 뭐하고 지내나요?
김: 백수가 더 바쁘다고 매일 정신 없죠. 공식적으로는 ‘함께 여는 미래’라는 단체의 대표로 있습니다. 그곳을 통해서 여러 가지를 고민 중인데, 아직 큰 성과물은 없네요. 일단은 방송하고 강연 다니고, 그런 걸로 밥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리: 단체는 몇이나 됩니까?
김: 저와 사무국장이 상근직이고, 반상근이 1명 있습니다. 회비를 내는 회원이 200명 정도고요. 그냥 김광진 팬클럽이라 하긴 뭐하고, 제가 정치인으로서의 생활이 좀 유지되기를 원하는 분들이 도와주는 거죠.
리: 와이프 집이 돈 많다고 들었는데 왜 후원금을 받나요?
김: 반대로 묻고 싶어요. 자기 돈으로 정치하는 게 정상일까요?
리: ……
김: 정몽준 의원님처럼 자기 돈으로 정치하는 게, 그게 우리가 꿈꾸는 정치인가요? 전 아니라고 봐요. 정치는 많은 사람들의 힘을 통해 이뤄져요. 시간과 돈을 내주는 것은 그러한 힘 중 아주 중요한 부분이고요. 정치는 공동체 그 자체고, 당연히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게 중요해요. 스폰서 돈을 받는 경우도 있는데, 그러면 당연히 그쪽 이권을 신경써야 하죠.
리: 단체명은 어떻게 ‘함께 여는 미래’가 된 거죠?
김: 제가 현역 의원 시절부터 명함에 ‘더불어 함께’라는 슬로건을 썼고, 단체도 그 이름으로 가려 했습니다. 그런데 당명이 ‘더불어민주당’으로 되면서, 당색이 너무 강해 보이더라고요. 저 역시 더불어민주당의 당원이고, 당의 많은 부분에 동의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잖아요. 대선으로 따지면 문재인, 이재명, 안희정, 이렇게 다 조금씩 생각이 달랐듯 말이죠.
리: ‘함께 여는 미래’ 에서는 주로 어떤 활동을 할 생각입니까.
김: 국회에서 토론회가 정말 많이 열리는데, 기록으로는 거의 남지 않죠. 평일 낮에 일부러 시간 낼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고요. 그걸 녹화해서 유투브에 올리는 작업을 진행하려 해요. 실제 이슈는 안 돼도 정책 하나하나가 우리 생활과 밀접한 것들이거든요. 나중에는 TED 같은 형식으로 프로그램화도 구상하고 있고요.
리: 정치대중화에 관심이 많으신가 봐요.
김: 정치 안에서도 ‘정책’적인 부분에 관심이 많죠. 정치인은 정치와 정책, 이 두 가지를 하는 직업인입니다. 우리 사회는 너무 정치만 생각해요. 페이스북에 사이다 발언 몇 개 올리면 잘하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치인들이 내놓는 정책에 유권자가 관심을 가지는 거에요. 그러면 정치인들도 자연히 더 나은 정책을 내놓는 쪽에 시간을 쓰겠죠. 하지만 여전히 정책보다 유권자와 막걸리 마시고 악수하는 데에 관심을 가지죠. 그게 더 관심 받으니까요. 어떻게든 정책이 우리 삶을 바꾼다는 걸, 하나하나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리: 후원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바라고 김광진에게 돈을 보낼까요?
김: 저를 후원하는 분들이 단순히 김광진의 정치적 노선을 따르겠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직은 구체적으로 ‘이게 김광진스러워’, ‘이게 김광진의 정치야…’라고 할 건 없는 게 사실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젊어서’가 아니라, ‘기존 정치와 다른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무언가를 기대한다고 봐요. 지금은 초선 비례의원밖에 못했지만, 좀 더 정치인으로 키워나가면 괜찮은 놈으로 크겠다…
젊은 층, 장애인, 노인 등 약자 목소리가 없는 한국의 잘못된 비례대표
리: 젊은 정치인으로서 지향하는 바가 있다면?
김: 개인적으로는 저 자신은 제 나이대에서 정치인으로 가장 빠른 진입에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저뿐만 아니라, 제 세대 정치인과 함께 커가고 싶어요. 정치에서 세대로서의 집단화는 386 이후에 없잖아요? 민주당에 이동학, 여선웅, 성치훈, 장경태… 이런 친구들과 뜻을 모아 공통의 아젠다를 세팅해 보고, 함께 이룰 수 있는 길을 찾고자 해요.
리: 글쎄요… 386도 그렇지만, 정치 세력이 꼭 세대로 묶일 필요가 있을까요?
김: 젊다고 정치 잘한다고는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대의민주주의는 대의성이 정상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시스템인데, 한국은 그게 안 되고 있습니다. 나이로만 봐도 한국에 20대가 15%, 30대가 16% 정도이니 둘을 합치면 30%가 넘어요. 300명 의원 중 30%면 90명이겠죠. 그런데 실제로는 2명, 1%가 채 되지 않습니다. 성별과 직업군도 마찬가지죠. 왜 변호사만 수십명이 있어야 할까요? 이런 구조로 실제 정상적인 대의가 이뤄질 수 있을까요? 젊은 사람이라고, 여성이라고 잘한다는 게 아니에요. 그렇지만 여성이 50% 들어가야 민의를 정상적으로 반영할 구조가 되는 거죠.
리: 하지만 의원으로서의 능력 역시 중요한 부분 아닐까요?
김: 지금 법이라는 게 50대 이상의 중산층 남성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어요. 청년 문제가, 청년고용법 등 청년이란 이름이 들어간 법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예로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명함 배분만 가능한 예비선거운동기간에, 명함을 돌릴 수 있는 건 당사자와 배우자, 그리고 아들딸 등 직계존비속 뿐이에요. 저야 결혼했으니 와이프라도 돌리지, 제 나이에 결혼 안 한 사람은 어떻게 하겠어요? 40대라고 해도 법률상 19세 미만은 정치활동이 금지돼 있어서 자식들이 명함을 못 돌려요. 반면 50대는 당연히 애들도 돌릴 수 있고요. 이렇게 시작부터 불공정한 선거운동인데, 우리는 몇십년 간 이걸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거죠. 대학생 이상 아들딸 둔 사람을 위한 선거죠.
리: 그렇다면 청년 외에도 다양한 계층을 대변해야 한다…
김: 그렇죠. 청년 뿐 아니라 노인 세대도 제대로 반영해야죠. 다양한 직업군도 그렇고요. 20년 전부터 여성 정치참여 운동이 이어지며, 부족하지만 하나하나 제도화되고 있어요. 이제는 청년에 대해서도 그러한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는 거죠. 청년이면 무조건 잘한다가 아니라, 잘하든 못하든 인구비례에 맞추는 게 대의민주주의 취지라고 봐요.
리: 청년 외에 어떤 계층의 민의가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보시나요?
김: 비례대표의 취지 자체가, 민의가 반영되지 않는 약자들의 권익을 높이는 거잖아요. 그런데 사회적 약자의 가장 대표적인 그룹인 장애인만 봐도 그게 안 돼요. 법률적으로 가장 먼저 보호되어야 할 분들인데… 비례대표에서 원래 추구했던 소수자와 취약계층, 직선 선출로서 당선되기 힘든 이들에 대의성 보완이 사라지고 있는 거죠. 애초에 비례대표를 더 늘려서 의원 수도 500명까지 늘리는 게 맞다고 봐요.
리: 왜 그토록 대의성이 지켜지지 않는 걸까요?
김: 당마다 성향은 다르지만, 더불어민주당 기준으로 본다면 당도 ‘당헌’이라는 헌법 같은 기준점이 있어요. 여기 보면 청년 몫 2명, 노동자 몫 2명이 명시돼 있어요. 또 그 아래 ‘당규’라는 법규를 보면, 여성, 노인, 직능, 소상공인 등이 명시되어 있죠. 그런데 지난 선거 때 ‘정무적’으로 가겠다는 선언으로, 당헌당규를 전부 무력화시키고 아무 것도 안해버린 거죠. 당의 법으로 보장한 기준점을 무시한 거에요.
말이 ‘정무적 판단’이지, 결국 ‘비민주성’이에요. 법을 만들 때는, 힘들고 어렵지만 최소한 이런 걸 지키자고 합의한 건데, 그걸 누군가의 정무적 판단으로 바꾸는 건 독재죠. 더불어민주당 뿐만이 아니죠. 새누리당은 옥새 파동이 있었고, 국민의당은 완전히 갈라지며 정상적 공천할 상황도 아니었고… 여튼 의원 정수를 확대해서라도 빨리 대의성을 살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무런 스펙도 없었기 때문에 주변이 도와줘서 의원이 되다
리: 어쩌다 정치를 시작하게 된 거죠?
김: 정치를 둘로 나눠볼 수 있어요. 저처럼 직업정치인으로 사는 것, 그리고 노사모나 지역 시민단체 회원들처럼 직업정치인은 아니지만 생활정치인으로 사는 거죠. 솔직히 의원이 되기 전까지 직업 정치인으로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2012년 민주당에서 청년비례대표를 오디션으로 뽑자는 제도가 나올 때도 당원이 아니었고요. 국회의원은 고사하고 시의원 같은 생각도 없었어요. 심지어 대학 때 학생회 활동도 하지 않았고, 지역에서 시민단체 활동한 게 전부에요.
리: 시민단체 활동은 어떤…
김: 작은 직장 다니며 순천 YMCA 재정이사, 민족문제연구소 동부 사무국장, 순천 청소년위원회 위원 등을 했어요. 직장생활하며 여가활동 정도로 생각한 거죠. 이게 제가 생각하는 생활정치였고요. 어느 시민단체 활동하다 보면, 옆에 시민단체에서 좀 도와달라 하고… 저도 한 군데만 계속하면 지겨우니 다른 곳 활동도 하는 식이었죠.
리: 그런데 어쩌다 청년비례대표에 도전하셨나요?
김: 원래 1차 공모가 있었는데, 워낙 홍보가 안 돼서 지원자가 열 명 남짓이었어요. 그래서 다시 공모를 했는데, 그때 지역 분들이 너무 인원수가 없으니 쪽수라도 채워졌음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민주당에서 하는 건데, 1차 응모에 전남 출신이 1명도 없었거든요. 지금 와서는 반성할 생각이지만, 저만 해도 그때 시민단체 활동가가 정치에 눈독 들이면 변절자라는 느낌이 좀 있었어요. 게다가 전국에서 투표하는데, 저는 순천에서만 초중고에 대학까지 나온 지방대 출신이잖아요. 의사, 변호사도 아니고 당 생활도 안 했고… 시민단체도 지방이니 객관적으로 엉망인 스펙이라 떨어질 게 뻔했어요. 그렇게 떨어져봐야 ‘저새끼 정치하려고 시민활동 했냐…’ 이런 식으로 욕 먹고 싶지도 않아서 계속 고사했죠.
리: 그런데 왜 도전한 거죠?
김: 주변 분들이 어차피 홍보 안 됐으니 떨어져도 모를 거라고(…) 그래서 큰 부담 없이 도전했는데, 계속 올라가다가 최종적으로 370명 중 1등이 돼서 비례의원이 된 거죠.
리: 지역에서 많은 도움을 줬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김: 그런 건 없었어요. 애초에 지역에서 관심이 그리 크지도 않았고… 30대 남자로 최종 4명이 남았을 때도 제가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어요. 박지웅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 출신에 군대 내 불온서적 위헌 소송으로 엄청난 이슈몰이를 했고, 영웅이형도 당 활동 오래 하며 장애인 인권을 외쳤고, 또 한 분도 국립대 총학생회장 협의회장 출신이에요.
리: 마음을 비워서 잘 됐다?
김: 그 정도가 아니라, 솔직히 할 생각이 별로 없었달까… 그래도 최종 4명까지 갔으니 아무 것도 안 한 건 아니지만, 최선을 다했냐면… 그런 건 또 아니었어요. 자신감이 없었죠. 그때 20대 여자 최종 4인은 100표도 못 얻고 그랬는데, 표를 모은다는 게 정말 쉬운 게 아니에요. 시의원만 해도 선거 치를 때 입당원서로 500장 모아오고 하는데, 동네 주름잡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실제 해보면 쉽지 않아요. 제 경우에는 중간중간 떨어졌던 분들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사람.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스펙 좋은 엘리트들보다, 김광진이 당선되면 편하게 전화라도 하고 같이 밥이나 먹을 수 있는 느낌이 아니었을까…
리: 그런데, 딱 당선되니까 신난다!
김: 축하파티도 없고 그냥 정신이 없었어요. 그 당시에는 제주해군기지 구럼비 바위 건으로 제주도 있다가, 갑작스럽게 수락연설도 준비 못하고 올라갔어요. 그러자마자 최고위원이 돼서 전국선거 뛰어다녔는데… 지원유세라는 게 지원유세 해주는 사람을 알아봐야 의미가 있어요. 지금도 국회의원 300명 중 국민들이 알만한 사람은 솔직히 50명도 안 돼요. 현역이 그런데, 제가 지원한다고 무슨 효과가 있겠어요? 심지어 최고위원 되면 활동비 좀 나올지 알았는데, 오히려 당비 150만원 내야 하더라고요. 돈 없다고 나중에 낸다고 하고 흐지부지되며 안 냈죠(…)
리: 그게 대체 뭐죠(…)
김: 이게 이미 선거 구조가 매우 비정상적이라는 거에요. 최고위원은 이미 국회의원이라 생각하고, 당사에 책상도 없어요.
리: 사실 스펙이 좋지 않아서 잘 할까 의심을 가지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객관적으로 스펙을 보면 제가 남들보다 나을 게 하나도 없었죠. 하지만 저는 제 스타일대로 제 스토리를 그려왔다 생각합니다. 정치인이 되어서도 그 기조는 유지시켜 왔고요.
리: 의원 생활을 하며 눈부신 성장을 했다는 평도 많습니다만…
김: 저는 제 의원 초기도 별로였다 생각하진 않습니다. 사실 초선에 정치 생활이 처음인데, 애초에 평가할 여지도 없잖아요. 이미 평가를 내리고 시작하는 거죠. 사실 국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같은 국방위에서도 김광진이 4성 장군만큼 일을 하겠냐, 이런 편견이 있었죠. 하지만 실제 제가 의원활동에서 정말 제대로 못했냐, 아니라고 생각해요. 너무 설친다는 인상도 있었지만, 저는 저격수로 활동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고요.
리: 왜 굳이 저격수죠?
김: 국회의원은 보통 상임위를 2년마다 바꿔요. 제가 3년 차 정도 되니까 그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저는 애초에 군인과 연이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2년 국방위에 있으면서도 군 관계자들과 별로 친해지지 않았고요. 그럼에도 국방위 한 곳에 있다 보니, 일이 아니라 사람이 보이기 시작해요. 예로 방산비리 문제 하나 지목할 때도, 그래도 이 사람이 나랑 친분이 있는데, 같은 지역 출신인데… 전혀 로비를 받지 않아도 사람 감정이라는 게 이래요. 원론으로 돌아오면, 저는 갑작스럽게 의원이 됐잖아요. 덕택에 누구 도움을 받은 게 없이, 빚지지 않고 정치를 시작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제 할 말을 할 수 있었죠.
리: 그래도 당론과 다르다고 까인 적도 좀 있지 않습니까?
김: 국회의원 하면서 느낀 건데, 국민들이 보는 눈과는 좀 달라요. 많은 사람들이 당론 엄청 강하다 생각하는데, 사실 당론이라 할 게 그리 많지 않아요. 체계도 생각만큼 일사분란하지 않고요. 개별 국회의원이 각자 생각하는 정치를 할 뿐이죠.
리: 하지만 선거는 전시 체계라 다르지 않나요?
김: 제가 있는 국회의원 기간 동안 당대표만 14번 바뀌었어요. 당대표한테 잘 보인다고 공천 받는 게 아니에요. 물론 첫 출마는 지도부 결정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있죠. 하지만 일단 한 번 국회의원이 되면, 특히 지역구 의원의 경우 자기 지역 관리 잘하는 게 훨씬 중요하죠. 어차피 한 당의 국회의원이면 기본적으로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저는 눈치보지 않고 일선에 서서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었어요. 애초에 라인 탄 게 아니라 계파성에서도 자유로워서, 당내에서도 문제제기가 자유로웠고요.
국회의원 능력은 전문성의 함정, 국민 누구라도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리: 여당에서 특히 많은 공격을 받았는데…
김: 박근혜 정부, 청와대 입장에서는 더욱 껄끄러웠겠죠. 지금도 국정원 업무일지에서 계속 제 이름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아무튼, 저에 대한 비판은 스펙 떨어지니 메신저 자체에 대한 비판이 많았지, 제 활동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물론 제가 정치경험이 짧아서 부족한 측면도 있었겠죠. 정책에 있어서의 개별적 비판은 저 역시 수긍하는 부분이 있고요.
리: 실제 국회의원을 해보니까 어떻던가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라 생각하시는지?
김: 물론이죠. 저와 장하나 의원이 기존 정치적 프레임으로 보면, 가장 특이하게 들어간 비례대표에요. 기존에 여성, 시민단체 등에서 비례대표를 뽑았지만, 사실상 준 정치인이라 할만큼 정치 경험이 많은 분들이었어요. 경실련 사무국장 몇 년, 여성 단체 몇 년… 국회의원과 비슷한 사회적 일들을 하고 계셨던 분들이죠. 저와 장하나는 진짜 말 그대로 일반 시민 중 하나가 들어간 케이스죠. 그런데 우리 둘의 의정활동에 점수를 매긴다면, 언론, 의원, 당원, 모두에게 높게 나올 거라고 봐요. 저는 그것만으로도 국회의원은 누구나 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고 봅니다.
리: 하지만 무거운 일인만큼 역량도 필요하지 않습니까?
김: 창업했다고 해서 다 빌게이츠가 되고 잡스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하지만 입법부는 시스템이 이미 잘 갖춰져 있어요. 기업 대리를 전무로 앉힌다고 해서 일을 전혀 못할까요? 그렇지 않아요. 다만 방향성이 달라질 뿐이죠.
리: 그러기에는 전문가들이 가진 인맥 풀이 참 중요하지 않을까요?
김: 역으로 그런 게 없어서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봅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전문성의 함정에서 좀 탈피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국회의원, 장관, 다 정무직이지, 실무를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국방위원이라 해서 전쟁 날 때 군대를 지휘하지 않아요. 인적 네트웍이 있어야 일 잘 할 것 같지만, 실제 국회의원은 끊임없이 견제하고 감시하고 질문하고 판단하는 사람들이죠. 그러니 인맥에서 자유로워야 훨씬 더 문제해결이 잘 되죠.
리: 예를 들자면…
예로 저와 군생활 오래 한 의원, 두 사람에게 사이버사령부나 방산비리 제보가 들어왔다고 쳐요. 저는 그냥 바로 편하게 지적질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저쪽은 얼마나 아는 사람 민원이 많이 들어오겠어요. 친한 사람이면 흔들릴 수밖에 없을 테고, 거기에 보좌진 인맥까지 더하면… 견제와 감시라는 측면에서 인적 네트웍을 많이 갖는 게 마냥 좋은지는 모르겠습니다.
리: 음…
김: 또 다른 측면이 있어요. 전문성이 있다는 건, 그 분야만 잘 안다는 거죠. 예로 해군참모총장이 해군 쪽에는 전문성 있겠죠. 하지만 이 분이 공군 병장, 예비군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요? 또 의사 출신 국회의원이라면 한의학 불신이 심할 테고요.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병원과 한의원, 모두 중요한 존재에요. 과연 양의학과 한의학이 대립할 때 합리적으로 법안을 볼 수 있을까요? 아니면 한 쪽에 대변인 역할을 할까요?
리: 하지만 그 사람은 적어도 의학 쪽은 잘 알겠죠.
김: 저는 그렇게 자기 지식에 함몰되는 게 국회의원에게는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저처럼 아예 모르면 다 공부할 수밖에 없어요. 법사위에서 제대로 일한다는 사람들 중 변호사 아닌 사람 많아요. 박지원, 박영선, 신경선 의원님… 다 변호사 아니잖아요. 국방위에서도 진성주, 안규백 의원님, 다 군인 출신 아니에요. 반면 군 출신 쪽의 평가가 좋나요? 통일부 정동영, 보건복지부 유시민, 두분 다 장관하기 전에 해당 분야로 책 한 권 쓰지 않았어요. 정무직이라고 하는 건 관점을 얼마나 잘 가지고 실행하느냐가 중요한 거지, 실제 그 분야에서 얼마나 뛰어봤냐는 전혀 다른 이야기에요.
김광진이 말하는 진짜 국회 이야기
리: 개인적으로 많이 배웠고 따라가고 싶은 의원을 꼽자면?
김: 저는 정치력 있는 사람보다 ‘정책’으로 평가받는 사람이고 싶었어요. 그런 면에서 최재천 의원님은 공부도 많이 하시지만, 정책적 아젠다를 잘 잡고 일하시죠. 실제로도 많은 도움을 받기도 했고요. 박지원 의원님께도 도움 많이 받았고… 개인적인 친분과 무관하게 괜찮다 느낀 건, 유승민 의원님이에요. 국방위 할 때 국방위원장을 하셨는데, 여야간 입장을 잘 조율했어요. 또 이 분야에 관해 큰 그림을 잘 그리고 종합적으로 이해하며 질문을 잘 던졌고요. 진성준 의원님은 한 문제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드는 모습이 멋졌죠.
리: 의원님만 해도 한놈만 조지는 스타일 아닌가요?
김: 그래도 전 하고 싶은 게 많아서 그랬는지, 발언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했어요. 반면, 진성준 의원님은 언론에서 써주든 말든 관심 갖든 말든, 하나만 잡고 집중하는 스타일이었어요. 일례를 들자면 F-15 체계 변환, 이런 건 대중도 언론도 별 관심이 없어요. F-16 사온다면 난리 나겠지만, 개선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거든요. 그런데 의원님은 개선 가지고 끝없이 파고 들어요. 심지어 다른 주제 이야기할 때도, 그 사이에 팩트체크해서 또 질문하고… 질문도 보통 의원들은 주목 받으려고 장관을 물고 늘어지는데, 담당자 콕 찍어서 따지고… 아무튼 전 그래서 국방위가 꽤 재밌었어요. 여야를 초월해서 팀플이 잘 됐달까… 문재인 현 대통령은 와서 거시적인 이야기하고, 유승민은 잘 조율하고, 진성준은 파고 들고…
리: 사석에서는 여야를 떠나 상임위 의원들끼리 친한가 보군요?
김: 회의 때 싸우고 끝나고 웃으면서 같이 밥 먹어요. 많은 분들이 비난의 요소로 삼는데, 친한 게 당연히 좋다고 봐요. 회사도 회의하면 홍보팀 사람은 광고비 늘리려고, 예산팀은 줄이려고 첨예하게 싸우잖아요. 회의 때 입장 차이가 있었다고 커피 한 잔 안 마시고 회식 참여 안 하나요? 각각 역할이 다르니까 부딪히는 거지… 국회도 마찬가지에요. 여당과 야당의 방향성은 다를 수밖에 없어요. 짜고 친다고 비난하는데 아니에요. 각자 자기 자리에서 그 역할 하는 거죠.
리: 의원들의 정치적 쇼맨십은 어떻게 보시나요?
김: 분명히 있죠. 하지만 다들 성과를 이루기 위한 행위일 뿐이에요. 누군가는 길에서 촛불집회하고, 1인 시위하고… 국회의원은 카메라 오면 책상 치고 소리 질러서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알려야 하는 입장이에요. 나쁘게 볼 거 없다고 봐요.
리: 의원님도 여러 차례 화제가 되지 않았습니까?
김: 전 그거 못한다고 욕 좀 먹었어요. 기존에 국회가 워낙 안 다룬 걸 다뤘으니, 언론의 관심을 받은 것 뿐이죠. 사실 의원 개인의 스타성도 그런 면에서 중요해요. 제가 군납 급식 이슈를 내세운 후부터는 ‘김광진이 내놓는 문제는 진짜 문제다…’, 이런 이미지메이킹이 됐거든요. 사실 의원들이 정말 배짱 있는 사람들이에요. 카메라 올 때 강하게 행동하기 쉽지 않잖아요. 자기가 주최한 행사도 아닌데, 어디 행사 가서 피해자들 안아주고 이런…
리: 뭐, 그게 잘못은 아니지 않습니까…
김: 그렇죠. 하지만 정치 오래 하려면 그런 스킬도 좀 있어야… 어떤 의원은 현안이 있으면 “해임하세요”, “잘라야 합니다”, 이렇게 한 마디씩 던지는 게 주 스탠스였어요. 반면 저는 국방부와 관계 안 좋은 것 같은 이미지는 있지만, 잘라야 한다거나 이런 센 이야기는 해본 적이 없어요. 그냥 좋은 아이템 찾으면 메시지 강하지 않아도 몰아칠 수 있겠지…
리: 뭐, 사실 많은 경우 해임할 것까진 아니죠(…)
김: 전 개인 문제가 아닌, 시스템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노크 귀순사건이 사단장 잘못일까요? 철책 경계 시스템이 그러니까, 누가 와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겠죠. 제도 개선하지 않고 사령관 하나 자르는 게 해결책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건 동의할 수 없어요.
리: 군 급식이나 퇴직금이나 이런 건 세게 가도 되지 않았나요?
김: 그건 문제제기 자체가 강해서 할 수 있는 범주 안에서는 해결했어요. 미진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물론 야당의 의원이 할 수 없는 부분이 있죠. 예를 들면 급여를 갑자기 확 올리는 건 통수권자의 결정 문제에요. 여당 의원이 주장해도 대통령이 ok 해줘야 하죠. 군 의문사도 집권당 아니면 정부조직법을 변경할 수 없으니, 한계가 있었고요. 참여정부 때에는 재심기구를 따로 뒀는데 박근혜 정부가 그걸 무시하니, 국방부에 심의위원회 따로 두는 정도로 합의했죠. 제가 낸 법을 통해 김훈 중위, 윤일병 등 군의문사 피해자 다수가 순직처리됐죠. 다 국립묘지 안장하고…
낙선 소감(?), 그럼에도 계속해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의원들
리: 여당 의원이 아니어서 아쉬움은 없나요?
김: 당연히 있죠. 그러니까 정치인이 계속 정치하려고 하는 거고… 자리가 좋아서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초선의원이 못하는 부분이 많아요. 재선으로 간사의원, 법안소위위원장 되면 법안은 좀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고… 여당에서 3선으로 위원장 되면, 예산편성도 건드릴 수 있고… 그러다가 견제만이 아니라 직접 예산안을 짜기 위해 장관 되려 하고, 아예 나라를 바꾸려 대통령도 꿈꾸는 거겠죠.
리: 그런데 경선에서 떨어졌습니다. 보통 국회의원 떨어지면 개털이라는데 어떻습니까?
김: 생각보다 막 그러지는 않아요. 인생이 무너진 것 같고 그러지는 않는다. 저 같은 뜬금포는 논외로 쳐도 국회의원 해본 사람들, 되기 전에 밥 못 먹던 사람 아니에요. 첫 출마했는데 당선 안 되면 개털 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의원 생활 하다가 떨어지면 주변 다 떨어져 나간다? 변호사 많은데, 이 사람들 사무실 차리면 돈 잘 벌어요. 또 전문직 아니라도 어디서 교수 자리 정도는 주고요. 물론 여러 사람 이목 끌고 권력도 있다가 사라지면, 상실감은 있겠죠. 아무튼 보통 의원들 원래 부자들이에요. 20대 국회의원 평균 자산이 39억인데…
리: 그러면 의원님 생활 변화는 어떤지요?
김: 솔직히 저는 그래도 의원 하고 떨어졌는데, 앞으로 재출마 못할 건 없잖아요. 최소한 선거 또 나온다고, 왜 정치권 기웃거리냐고 욕하진 않을테니… 한 번도 안 된 사람은 좀 다르지만… 현역에서 떨어졌다고 끝났다는 건 좀 볼멘소리라 봅니다. 저도 낙선의원이지만 누구 만나자고 하면, 어지간하면 다 만나줘요. 순천 경찰청장님께 차 한 잔 마시자 하면, 당연히 오라 그러죠.
리: 재선은 가능할 거라고 봅니까?
김: 된다 안 된다를 떠나서, 전 어쨌든 낙선 시기가 그리 나쁘진 않았어요. 필리버스터를 통해 정치인으로 정점을 찍고 있던 시기여서, 그래서 낙선을 해도 유명인이었어요. 국회의원 300명 중 국민들이 얼굴 아는 사람 50명 정도라고 했는데, 그 안에 들어간 거죠. 그래서 지원유세 가도 ‘김광진 왔네’ 이야기 들을 정도는 됐고요. 전국 어디 가도 지원유세가 의미 있는 사람까지 됐으니 초선의원 치고는 ‘정치’인으로도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국회의원들이 떨어지면 끝장이라 하는 거… 그거 사실 가장 슬픈 게 잊혀지는 거라 그렇거든요. 전 그런 면에서 잊혀짐 없이 낙선했으니 행운아죠.
리: 그래도 떨어지니 기분이 어떻던가요?
김: 그게 참… 10시 반에 결과가 발표됐는데, 인생이 죽은 놈은 죽은 놈이고 산 놈은 산 놈이라고… 발표난지 30분 정도 지나서 19대 친한 의원들로부터 문자가 오기 시작했어요. 안타깝다는 말로 시작하지만, 우리 지역에 한 번 좀 와서 유세 좀 해달란 거죠. 개소식이 언젠데 축사 좀 해줘… 바로 다음 날 신정훈 의원님 선거사무소 개소식 갔어요. 더큰유세단이라고 전국 중앙당 차원에서 지원유세도 하고, 경선, 대선까지 이어졌죠. 그렇게 불러주는 사람이 있으니, 잊혀질 거에 대한 두려움도 없고… 모두가 그렇진 않지만 제 경우는 그렇게 힘들진 않았어요.
리: 비록 본인은 낙선했지만, 이 분은 꼭 계속 국회에 남아주셨으면 좋겠다는 의원이 있다면?
김: 사실 국회의원이 300명에 다들 바쁘니, 의원들 잘 아냐고 하면 솔직히 잘 몰라요. 평가하기도 쉽지 않고… 다만 일을 같이 해보면 알죠. 이 사람이 능력 있는지, 보좌진 써준 것만 읽는지… 상임위 여럿 안 하다 보니 국방위 쪽 분들만 평가할 수 있는데… 아까 언급한 진성준 의원님은 꼭 정치를 계속했으면 좋겠고, 은수미 의원님도 을지로위원회 때 전문성을 많이 보여주셔서 그랬으면 해요.
리: 함께 일하지 않은 분 중 꼽는다면…
김: 다선의원으로 치면 최재성 의원님을 꼽고 싶은데, 3선 의원 정도 되면 자기 욕심 차리기 시작하면 할 게 너무 많습니다. 당 내 자리, 정치적 지역구 예산 확보 등… 그런데 최재성 의원님은 중재도 잘 하시고 사람도 키우는 등, 체계적인 변환에 힘쓴 분이셨죠.
리: 유명하지 않은 분을 꼽자면…
김: 좀 다른 측면으로 박혜자 의원님도 주목하고 싶어요. 여성의원이 점점 늘고 있는데, 사실 이분들이 정부와 딜 뜨거나 지역구 예산을 확보하거나 하는 데에 좀 약해요. 그런데 박혜자 의원님은 지역구 의원으로 이런 역할을 아주 잘하시더라고요. 이런 구태성이라 보는 시각도 있는데, 나쁜 의미가 아니라 지역구의원으로 지역에 본인이 해야 할 역할이라 생각해요. 별로 유명하지 않고 이미지 메이킹 될만한 이슈가 없는 분이라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여성의원 중 이런 역할을 해줄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최재천 의원님은 행정가로 가셔도 잘할 것 같고요.
군공항 이전, 무대포로 진행하면 안 되는 이유
리: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수원 군공항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 대구, 수원, 광주 등 군공항이전법이 만들어져서 통과됐죠. 국방위에 이전사업단도 있는데, 사실 국방위원들에게서 많은 관심을 받은 이슈는 아니에요. 오히려 지역구 민원 때문에 통과된 거지… 대구의 유승민 의원, 수원의 김진표 의원, 광주의 권은희 의원… 이런 식에서 지역구에서 많은 관심을 가졌죠. 각각의 지역구 의원들이 민원을 숙원사업처럼 해결하려고 상임위로 오는 경우죠. 법은 통과가 됐지만, 실제 이전은 국회보다 국방부의 의지에 달려 있어요.
리: 매각하면 옮길 예산은 나오나요?
김: 수원은 나와요. 대구는 될똥말똥 수준이고, 광주는 힘들죠. 그런데 수원도 용산 미군기지 이전을 떠올리면 쉬울지는 모르겠어요. 용산 땅값이 좀 떨어져서 막판에 예산 지원이 잘 안 되는 등의 문제가 있었거든요.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서해안 작계가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는 점이겠죠. 그동안 세워둔 걸 완전히 새로 세팅해야 하니…
리: 갑자기 왜 이리 이슈가 된 거죠?
김: 글쎄요… 아직 큰 이슈는 아닌 것 같고… 군 입장에서는 이전해서 도움이 된다면 하려 할 텐데… 이에 앞서 이전 비용이 나와야 하는 게 문제겠죠. 먼저 기존 부지의 매각대금으로, 옮기려는 곳에 기지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하고, 여기에 이전하려는 곳의 새로운 민원도 해결해야겠죠. 옮기려는 동네 사람들이 어서옵쇼 하는 게 아니니, 그쪽 민원도 해결해야 해요.
리: 수원 군공항을 옮긴다는 화성시 입장에서는 어떤가요? 개발을 통해 상권 형성 등을 노릴 수도 있지 않나요?
김: 군부대로 상권 형성은 불가능해요. 육군이라면 면회라도 가지, 공군 같은 경우는 사람이 일하는 부대가 아니에요. 인원수도 적을 뿐 아니라 장교 중심의 부대라서 출퇴근 인원이 많아요. 더군다나 요즘은 이미 경제 상권이 잘 형성돼 있어서 군부대 상권을 원하는 동네가 잘 없어요. 군사보호지역 묶여서 건축도 묶이고 다 안 돼요. 누가 동의하겠어요… 그래서 수원시도 화성에서도 간척지로 이전하려 하는 거고…
리: 간척지면 위험하지 않나요?
김: 인천공항도 매립지잖아요. 실제 군공항을 이렇게 만든 사례가 외국에도 있어요. 심지어 소음문제 심하면 산과 산 사이의 가운데를 활주로로 만든 경우도 있고… 그런 식으로 고민하는 등등의 연구용역이 다 있어요. 그런데 경기도에는 그럴만한 자리가 없으니, 계속 미뤄지는 거죠.
리: 군공항 이전 반대하는 화성시민은 어떻게 보세요?
김: 군공항 이전 반대를 님비(NIMBY; 내 집 앞은 안 된다는 지역 이기주의)라 할 수는 없어요. 누구라도 반대할 수밖에 없는 문제니까요. 방폐장 같은 경우는 관리가 잘 될지와 별개로, 정말로 안전하고 잘 관리된다는 가정 하에 평시에는 별 문제가 없어요. 터지면 극심한 문제이지만… 하지만 군공항은 평소에 인근 주민을 힘들게 해요. 그리고 비행기라는 게 항상 추락위험이 있어요. 2년 전에만 해도 광주에 떨어졌고, 원주에도 그런 일이 있고… 그럴 때 파일럿이 자기 목숨 희생하며 도심 피해서 그렇지, 탈출했으면 도심에 떨어졌을 거에요.
남의 눈치 보지 않는, ‘김광진’다운 정치를 이어가며
리: 의원을 마치고 아쉬웠던 점은…
김: 다른 상임위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여러 경험해봤으면 더 많이 배우고 깨우쳤을 텐데…. 국방위, 정보위, 흔히 말하는 외치 쪽만 보고 내치적 문제를 잘 보지 못했죠. 특히 기재위, 정무위, 이런 곳에 있었다면 국가를 숫자로 보는 눈이 많이 좋아졌을 것 같은데, 그거에 대한 아쉬움은 항상 있어요. 낙선 때 어떤 신문사가 ‘청년의원 뽑았는데 좋은 국방위원 얻었다’는 평을 내기도 했어요. 그 평가에 대해서도 인정하면서도, 청년의원으로 해야 할 역할은 나름 다했다고 봐요.
리: 군 문제가 청년 문제와 밀접하긴 하죠.
김: 우리는 청년 문제를 청년관련 법을 만들어 해결해야 생각하는데, 실제 대한민국은 모든 법이 50대 남성을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어요. 이걸 우리 세대 관점으로 바라본다는 건 굉장히 큰 문제에요. 제가 혼자서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으면 우리나라가 이모양 이꼴이 아니겠죠. 부족한 부분 인정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여력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또 한 가지 안타까움은… 4년을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 후회는 없지만, 제가 원하는 타임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지 못한 거에요. 초선 의원이니 이슈가 있으면 당이나 주변 사람들이 원하는 걸 해야 했죠.
리: ……
김: 어찌 데뷔는 했지만, 계파성 없이, 지지기반 강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정치를 하니까 정치인으로 단계단계 올라가는 건 훨씬 힘들더라고요. 그런데, 얼마 전 만난 한 선배가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김광진만의 길로 그만큼 성장해온 거잖아. 그걸 인정해야지. 그 강점으로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지금 와서는 왜 니 편이 많지 않은 것에 대해서 아쉬워하냐. 둘 중 하나를 포기하든지 그 길로 쭉 가서 김광진만의 정치를 만들어가야지.”
이런 조언을 했어요. 요즘은 그런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리: ‘김광진 다운’은 어떤 것일까요?
김: 정치인에 대한 기대감은 제가 아닌 남들이 평가하는 거라 생각해요. 저를 좋아하는 이유도 다양해서, 딱 하나로 단정짓긴 힘들지만 교집합을 찾자면… 저는 기존의 정치질서에서 약간은 이단아처럼 등장했잖아요. 그런 놈이 앞으로 정치가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의 기대를, 좀 더 잘 실현하고 있는 모습이 아닐까… 아직은 김광진 개인이 가지고 있는 역량과 힘이 부족해서 기대치만큼 다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말이죠.
리: 정치인 생활이 잘 맞는다 보시나요?
김: 개인적으로 정치가 잘 맞다고 생각해요. 재밌고요. 여러 사람들이 기대하는 소명이라는 것도 느껴지고, 정치 자체를 바꿔봐야 하겠다는 욕심도 들고… 김광진 통해 바꾸는 거지만, 사실 시민들과 함께 바꾸는 거잖아요.
요즘 촛불혁명 과정에서 느낀 건데, 실제 유권자들의 정치적 요구와 의식수준을 기존 정치인이 못 따라가고 있어요. 시민 수준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데, 김광진은 그 길에 조금이라도 발맞춰 나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주위 사람들의 그 기대를 잃지 않으려 하고요. 현실정치에서 국회의원을 해보니까, 개인의 영달을 추구하면 정말 맘 편하게 먹고 살 수 있어요. 그럼에도 계파에 얽매이지 않고, 할 말 있으면 당 안이든 밖이든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고요.
리: 음…
김: 제가 처음 청년비례대표로 당선됐을 때 어떤 국회의원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서, 두 가지를 이야기했어요. 하나는 ‘물대포 맞는 정치인’이 되겠다, 또 하나는 ‘앞으로 제도적으로 물대포가 없어지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고… 한 사람의 시민으로 살며, 왜 이런 현장에 와서 함께하는 국회의원 한 사람이 없을까를 고민한 적이 있어요. 그런 현장에 함께 하는 국회의원 한 명이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죠. 이게 처음 정치 시작할 때 다짐이었고, 그래도 그 다짐을 지켜내려 노력하고 살았다고 생각해요.
리: 마지막으로 정치입문하려는 이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게 있다면?
김: 요즘 젊은 세대는 정치를 통해 우리 삶이 바뀐다는 걸 몸으로 느끼고 있다고 생각해요. 현역 의원시절부터 강연 많이 하며, 정치 꿈꾸는 사람을 많이 찾아갔는데… 단순히 투표하는데 그치지 않고, 예전보다 훨씬 더 직접 정치를 해보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어요. 또 그들을 위해 지원하는 소규모 모임도 늘고 있고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저는 본인이 출마할 생각이 없더라도, 자기 목소리를 대변해주는 정치지망생을 위해 운동해주는 게 의미가 크다고 봐요. 정말 후보자들이 맘에 안 든다면, 굳이 투표 안 해도 돼요. 그렇다면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이를 후보로 키워야죠. 여기에 힘쓰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