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대 외상센터를 오가는 헬리콥터의 소음에 주변 주민들이 민원을 넣는다고 한다. 주변 주민들을 제외한 모두가 극도의 이기주의에 분노했다.
사람들의 속마음을 알려면 그들이 하는 말을 듣지 말고 쓰는 돈을 봐야 한다. 아이폰X가 비싸다고 난리지만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그것은 비싸지 않다. 가짜 욕쟁이 할머니는 돈을 제대로 내지 않는 손님에게 진지해진다. 시장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평생 모은 돈에 대출까지 받아 사야 하는 아파트 시세는 더욱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10억 원 짜리 아파트 주변에 장애인 수용시설이 들어서서 집값이 9억5천만 원으로 떨어졌다면, 사람들은 장애인을 혐오하며 장애인을 보지 않는 권리를 5천만 원짜리로 평가하겠다는 속내를 가진 셈이다. 이런 사회적 통념은 집주인의 편견이 아니라, 집을 살 수 있는 잠재적인 고객인 나머지 구성원들의 것이다. 장애인 시설이 들어서기 전에는 당연히 해당 지역 주민들이 가장 반발하고 나머지 운 좋은 국민들이 정의롭게 비난한다.
그런데 장애인 시설이 일단 들어서고 난 후에는, 집주인은 어떻게든 그 부정적인 영향을 축소하고 장점을 홍보하는 반면, 나머지 운 좋은 국민들은 5천만 원이나 깎아주지 않으면 그곳에 살지 않으려 한다. 결국, 당사자냐 아니냐가 중요한 문제지 누가 더 정의롭냐의 문제는 아니었다. 모두가 속으로는 장애인 시설을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문제고, 아무 보상 없이 위선적인 공치사로만 넘어가려 했던 것이 문제다.
물론 외상센터가 주변에 있으면 주민들에게 좋은 점도 있다. 그들은 외상으로 죽을 확률이 다른 지역민보다 훨씬 떨어진다. 그러나 이런 장점조차도 이미 떨어진 집값에 반영된 상태다. 그런 장점마저도 없는 군부대 헬리콥터장이 들어섰다면 아마 집값은 1억 원이 넘게 떨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돈이라는 진실은 모든 득실의 합을 5천만 원 순손해라고 판결했다.
이런 손해는 헬리콥터 소음에 둔감한 사람들에게도 결코 무관한 문제는 아니다. 어떤 사람이 고양이를 혐오해서 고양이가 자주 출몰하는 골목길 원룸을 시세보다 싸게 넘기고 이사가려 할 때,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굳이 자신의 선호를 밝히며 정상 시세를 참작해줄 필요는 없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드물다면 애묘가들은 프리미엄을 손쉽게 누릴 것이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면 그다지 경쟁력을 가지지 못할 것이다.
모두에게 이득이 되지만 결과적으로 일부 구성원에게 손해가 되는 일을 추진할 때에는, 뽑기에 걸린 사람이 운이 나빴을 뿐이라거나 정의감이 부족하다며 매도할 일이 아니다. 그들이 입는 손해를 나머지 구성원들이 공평하게 나누어 갖겠다는 합의가 필요하다.
사람을 살리는 일인데 그깟 소음을 참지 못하냐는 사람에게는, 그 떨어진 집값을 보전할 5천만 원을 희사하라고 강요해 볼 수 있겠다. 냉정하고 정의로운 시장은 헬리콥터 소음을 피할 권리를 5천만 원으로 결정했으므로. 5천만 원의 현금을 내기 싫어할 사람에게, 집값이 5천만 원 떨어져서 항의하거나 소음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을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 이 세 가지는 형태만 바꾼 동치다.
당연히 모든 것을 돈으로 수치화할 수도 없고, 어디엔가 지어져야 할 외상센터를 외딴곳에 둘 수도 없다. 그러나 손해를 보는 소수를 위해 모두의 세금으로 헬리포트 차음벽을 설치해 준다거나, 다른 선호 시설을 지어준다거나 하는 타협의 태도는 오히려 나머지 구성원들에게 필요하다. 주변 사람들이 이기적인 악마인 이유는 자신 역시 지옥의 주민이기 때문이다.
원문: 펜시브의 무권해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