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에 있는 흔한 식재료를 그럴듯한 음식으로 변신시켜주는 것은 바로 주방의 칼이다. 주방에 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요리하고자 하는 의지가 생길 정도. 요리의 기본인 ‘썰고, 자르고, 다지는’ 일이 칼에서 비로소 시작되며, 그 칼을 쥐고 있는 그 순간만큼은 집중력이 가장 높아지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집중력이 높아지는 만큼 머리에서 잡생각도 지울 수 있다. 그래서 단순히 끼니를 때우는 행위가 ‘요리’로 승격되는 순간이 바로 칼을 쥐는 순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모두의 주방에 칼이 있다지만, 세상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칼이 있다. 쉐프로 가는 길의 첫걸음. 칼의 종류에 대해 알아보자.
주방의 카리스마: 과도와 식도만 있는 게 아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시장에서 장을 보고, 냉장고를 채우고, 끼니때마다 스스로 요리한다. 요즘 주방에 부는 변화는 ‘무엇’을 요리하느냐보다 ‘어떻게’ 요리를 할지 초점이 맞춘다는 것.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인간으로서 이 대전제가 우리를 주방으로 이끄는 것이다. 칼은 태곳적부터 인류 문명의 발전에 공헌해왔다. 그리고 21세기 들어 식재료를 어떻게 다듬느냐를 좌지우지하는 주방의 필수 도구로 자리매김했다.
냄비나 프라이팬도 쓰임새에 따라 다양하게 구입하듯 칼도 육류용, 생선용, 과일채소용 등 위생상 최소 세 종류의 칼은 갖춰야 한다. 기본 칼을 갖췄다면 단단하거나 무른 식재료 성질에 따라 최대 5종까지 칼을 선택하거나 구분해 사용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부엌칼과 과도가 전부였다면 이제 칼에 대해 좀 더 폭넓은 지식을 쌓을 때다.
식도 (셰프나이프 Chef’s knife)
길고 넓은 칼날로 가장 일반적인 조리용 칼로 사용범위가 넓은 칼이다. 다양한 사이즈가 있지만 보통 식도로 사용되는 칼은 16~20cm 사이가 적당하다. 큰 고기를 자르는 것부터 채소 다지기까지 다재다능하다. 흔히 가정에서 쓰는 식도는 크게 아시아형과 유럽형으로 나뉜다.
아시아형 식도로 불리는 산토쿠 식도는 칼 하나로 채소, 고기, 생선 3가지를 모두 다룰 수 있다. 칼끝이 둥글고 가벼운 게 특징이며 한식 요리에 잘 맞는 칼이다. 식품이 칼날에 달라붙지 않도록 설계됐다. 칼날이 유선형인 유럽형 식도는 무게감 있고 칼끝이 날카로워 육류나 채소를 다질 때 적당하다.
중식도 (클리버 나이프 cleaver knife)
중식도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 주방 칼과 달리 직사각형 형태로 전체적으로 손도끼를 닮은 커다란 칼이다. 클리버나이프는 중식도와 닮은꼴로 주로 가금류의 뼈를 부러뜨릴 수 있는 푸주칼 용도로 쓰인다. 흔히 중국집에서 주방장들이 닭을 토막 낼 때 무심한 표정으로 탕! 탕! 내려치는 그 칼이다.
유투버 ‘요리N화니’의 중식도 이야기
최근 이연복, 백종원 셰프가 사용하는 칼로 중식도가 유명해져 가정에서도 많은 관심을 갖는 칼이다. 무겁고 단단하며 날 면적이 넓고 묵직해서 많은 양의 채소를 썰거나 마늘을 쉽게 으깨고 다질 수 있고 뼈도 쉽게 자를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무게가 늘어나 손목에 무리가 가고 한식칼과 써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적응시간이 필요하다.
고기칼 (부처나이프 butcher knife)
고기칼은 말 그대로 칼끝부터 곡선형의 날카로워 육류의 뼈, 연골 등을 얇게 자르거나 토막 낼 때 주로 사용한다. 육류의 가죽을 벗기거나 힘줄 등 질긴 식재료를 힘줘서 잘라야 할 때 유용하다. 모양은 다양하나 보통 중식도와 비슷한 날이 넓은 제품이 있고 빅토리녹스의 제품처럼 정글칼 모양을 한 제품도 있다. 중식도와 마찬가지로 무게가 꽤 나가는 편이라 숙련이 필요하다.
뼈 칼 (보닝나이프 boning knife)
유투브 인기스타 Salt Bae의 발골 영상, 역시 잘 드는 뼈칼을 사용한다.
칼등이 곧게 뻗은 형태로 칼의 폭이 1.5~2.5cm로 칼날이 가늘고 끝이 뾰족한 게 특징이다. 살코기를 잘 도려내기 위해서 칼 손잡이 쪽 목 부분에 턱이 져 있고 칼끝이 뾰족하면서도 위쪽으로 살짝 올라가 있다. 도마 위에서 섬세하게 육류, 생선류의 뼈에 붙어 있는 살을 얇게 저며낼 때 효과적인 칼이다. 발골을 하는 목적의 칼이기 때문에 사용 시 특히 손을 조심해야 한다.
카빙나이프(carving knife )
끝이 뭉툭하고 날이 좁은 긴 형태의 칼로 로스트비프나 가금류를 통째로 조리한 큰 고깃덩어리를 한입 크기로 자르거나 저밀 때 사용된다. 뷔페나 서양 레스토랑에서 볼 수 있다.
과도(패링나이프 paring knife)
조리칼의 축소판,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과도를 말한다. 가장 작은 사이즈로 칼날 부분이 곡선 처리돼 있으며 작은 음식 조각을 깎고 긁고 자르는 데 사용된다. 과일이나 채소 껍질을 쉽게 벗길 수 있도록 손에 잘 잡히는 사이즈다.
빵칼 (브레드 나이프 bredad knife)
칼날이 물결처럼 톱니 모양으로 길고 단단한 칼로 빵을 흐트러짐 없이 깨끗하게 슬라이스 해줄 뿐 아니라 무른 토마토도 껍질이 벗겨지지 않게 깔끔하게 썰 수 있고 치즈 칼로도 사용된다. 특히 겉이 딱딱한 바게트를 자를 때 유용하다.
치즈칼(cheese knife)
칼날의 구멍을 넣어 공기가 통하는 형태의 치즈 칼은 속살이 연한 치즈를 달라붙지 않고 깔끔하게 커팅할 수 있다. 치즈뿐 아니라 칼에 달라붙기 쉬운 얇은 햄이나 페이스트리, 비스킷 등을 형태의 변형 없이 자른다. 칼끝은 포크나 집게 형태로 돼 있어 자르고 난 치즈를 찍어서 옮길 수도 있다.
회칼(사시미칼)
‘사시미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생선 전용 칼이다. 칼날이 길고 면적이 작으며 얇은 형태의 칼로 생선을 얇게 저미거나 포를 뜰 때 주로 사용한다. 섬세한 칼질 작업을 많이 하기 때문에 칼날이 유독 얇으므로 사용할 때 주의가 필요하다. 사용 후에 식초 물로 소독해야 기름기와 비린내가 남지 않는다.
데바칼
이름은 특이하지만, 아주 친숙한 칼이다. 생선의 비늘을 벗기고 머리뼈를 잘라낼 때 유용한 데바칼이다. 날이 튼튼해서 생선 뼈가 쉽게 절단된다. 주로 생선가게에서 생선 머리를 한방에 내려칠 때 쓰는 칼이 바로 이 데바칼이다. 전통시장 어물전에서 쉽게 보는 그것이다.
칼이 무섭다고? 영상으로 칼질을 배웠어요
인간은 도구를 쓸 줄 아는 동물이지만 사실 제대로 사용하는 방법은 잘 모른다. 브라운관 속 셰프처럼 도마에 경쾌한 소리를 내며 마늘을 얇게 슬라이스하고 빠른 속도를 양파를 착착 채썰고 일정한 간격으로 고기나 채소를 썰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갖고 있다.
처음부터 칼질을 잘하는 사람은 없지만 서툰 칼질 때문에 몇 번 손을 베기라도 하면 칼이 무서워지고 오히려 칼질 실력은 뒤로 퇴보한다. 칼질도 연습이 필요하다. 무작정 칼을 들고 식재료를 썰기보다는 기초적인 칼에 대한 사용법과 식재료별로 칼질하는 방법을 이론적으로 습득하는 것도 중요하다.
고든 렘지 양파 제대로 썰기
제이미 올리버의 나이프 스킬
고든 렘지, 제이미 올리버 세계적인 스타 쉐프인 이들의 이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유명 쉐프인 이들도 당신의 눈높이에 딱 맞게 친절하게 팁을 공개한다. 특히 고든렘지의 양파 제대로 써는 법은 한번 배워두면 두고두고 잘 쓰일 요리 팁이다.
비싼 돈 주고 산 칼, 오래오래 사용하자!
칼을 구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칼은 한번 구입하면 반영구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용도에 맞는 칼을 고르고 관리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칼을 오래 사용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요리 직후 칼은 깨끗하게 씻은 다음 반드시 물기를 완전히 제거하고 칼집에 보관한다.
생선을 손질했다면 비린내가 남지 않게 식초물로 닦아주거나 섭씨 55도 이상 끓인 물에 칼을 담가주면 냄새 제거와 살균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칼날 역시 항상 날카롭고 깨끗하게 유지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한 달에 1번, 요리를 많이 한다면 2~3주에 1번 정도 칼을 가는 것이 좋다.
기획, 편집 / 정도일 [email protected]
글, 사진 / 홍효정 [email protected]
원문보기: danawa D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