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O2O(Online to Offline)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열기가 한층 꺾인 듯하다. 특히 카카오의 제법 공격적이었던 O2O 사업 의지가 분사 형태로 정리되고 더 이상 O2O 사업에 집중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O2O 스타트업에 대한 시장의 기대는 1-2년 전과 대비해 크게 후퇴한 느낌이다.
생각해보면 카카오같은 대기업 집단이 O2O 영역, 특히 생활플랫폼으로서 고객의 일상생활 전반을 아우르는 버티컬 O2O 플랫폼을 만들어내겠다는 발상이 오히려 문제였지 않았을까? O2O로 특정 영역이나 카테고리를 찍어 니치하게 접근하는 버티컬 O2O 플랫폼 관점에서는 오히려 혁신 조직인 스타트업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지점이 O2O인 셈이다.
다시 말하면 카카오가 O2O를 버렸다고 그것이 모든 O2O 스타트업의 실패나 좌절로 비쳐서는 조금 곤란하다는 이야기다. 본 칼럼에서는 필자가 평소에 생각하는 O2O, 버티컬 플랫폼에 대한 생각을 조금 정리해서 관심 있는 분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2017년 상반기 투자 트렌드, 버티컬 O2O에 몰렸다
최근 기관 투자자의 O2O 분야 투자 피로도가 쌓이면서 회피 영역으로 이야기되는 경우를 종종 듣곤 한다. 그런데 국내에서 가장 방대한 스타트업 투자 데이터를 제공하는 TheVC의 2017년 상반기(1-6월) 투자트렌드에 따르면 여전히 가장 많은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영역이 버티컬 O2O, 버티컬 이커머스 분야라고 할 수 있다.
2017년 상반기 스타트업 투자 트렌드를 살펴보면 O2O 분야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약 1,780억 원으로 온라인 이커머스 분야 투자액 1,478억 원과 함께 압도적으로 높음을 확인할 수 있다. 투자대상 Top 10의 경우 게임을 제외하고는 여행-음식-부동산-교육 분야의 버티컬 O2O 분야 및 쇼핑(온라인 이커머스) 분야의 스타트업 투자가 증가했다. 그 외 P2P 대출 플랫폼을 포함한 금융(핀테크), 기업용 솔루션/SaaS, 광고마케팅 솔루션 스타트업에 자금이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지표만 놓고 보더라도 기관 투자자의 상당수 자금은 특정 버티컬 분야에서 차별적 경쟁 우위를 확보한다. 또 팀 역량이 뛰어난 스타트업에게 과감히 투자가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기관 투자자의 심사역 입장에서 보면 신규 투자처를 고를 때 너무 넓은 분야에서 이것저것 잘할 수 있다고 열거하는 팀보다는 특정 시장에서 날카롭게 칼을 갈아 엣지 있게 기존 전통적인 비즈니스 메커니즘을 교체하거나 대체하는 스타트업 팀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자본력과 영업/마케팅 자원이 부족한 스타트업으로서도 여전히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은 세분 시장을 타깃팅 해 더욱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해결책(제품, 서비스)을 제안하는 것이 단 기간에 고객 지표와 손익 지표를 확보하는 데 유리할 수밖에 없다. 즉 애당초 소수 인적 자원으로 구성된 스타트업팀이 굉장히 큰 시장에 진입해 너무 많은 해결책을 가지고 접근하는 이른바 호라이즌털(Horizontal) O2O를 지향하는 것은 거의 자살행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소비자의 일상생활 다방면에서 디지털·온라인 고객 접점 또는 고객 관계 강화 채널을 기반 두고 오프라인과 매개되는 버티컬 O2O 스타트업 분야는 따라서 더욱더 확장될 것이다. 특정 버티컬 시장 내에서도 약간의 차이점을 가지고 여러 스타트업이 등장할 확률이 높다. ‘스타트업=혁신 조직’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버티컬 O2O 분야는 그야말로 기술의 진보와 더불어 더욱더 팽창할 수밖에 없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즉 스타트업이 ‘혁신 조직’이기 때문에 버티컬 O2O 영역에서 기술력을 확보한 스타트업 팀에 대한 투자자의 관심과 적극적인 구애가 미래에도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는 ‘혁신’의 정의와 ‘스타트업’의 개념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곱씹을 필요가 있다. 2013년 미국에서 출간된 『비즈니스 모델 혁신의 10가지 유형(10 Types of Innovation)』에 따르면 ‘혁신’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혁신한다는 것은 중요한 문제를 정의하고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다.
Innovating requires identifying the problems that matter and moving through them systematically to deliver elegant solutions.
‘혁신하다’의 정의가 이렇다면 스타트업이야말로 ‘작은 조직’이 아니라 ‘혁신 조직’인 것이다. 국내에서는 ‘스타트업=작은 조직’의 개념에서 바라보는 경우가 다반사지만 우버 에어비엔비, 위워크 등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시작한 이들 스타트업의 공통점은 기존 전통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해결하지 못하는 중요한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고,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 빠른 MVP(Minimum Viable Product) 테스트를 통해 시장-고객을 검증(체계적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조직이라는 점이다.
재미난 점은 이런 혁신 조직, 스타트업은 여러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보다는 아주 특정 세분 시장의 한두 가지 문제점을 빠른 속도로 해결하는 데 집중한다는 점이다. 우버가 기존 택시-운송업 시장, 에어비앤비가 기존 숙박업, 위워크가 기존 부동산 임대/코워킹 스페이스 시장에 집중해 완전히 새로운 고객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말이다.
정리하면 혁신 조직으로서 스타트업(팀)은 온전히 특정 세분 시장/영역에서 발생하는 한두 가지 고질적 문제점을 찾아내고 정의하며 이를 위해 빠르고 명쾌하게 새로운 해결책을 제안하는 소수의 인적 자원으로 구성된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온라인(디지털) 채널을 활용해 고객 접점과 고객 관계를 강화하고, 오프라인에서 주로 고객/소비자의 충족되지 않은 니즈를 해소하는 플랫폼 또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데 집중한다. 따라서 대부분 스타트업은 버티컬 O2O 스타트업이라고 할 수 있다.
O2O vs. O2O
혁신 조직으로서 스타트업이 버티컬 O2O 영역에서 시작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의미는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다. 특히 궁극적으로는 결제 수단을 제공하는 커머스 행위가 연동될 수밖에 없는 버티컬 O2O 사업은 디지털 거래 중개-큐레이션-매치 메이킹의 규모가 커지면서 그 범위도 비례해 커진다.
규모가 커지면서 범위까지 확장된다면 그 스타트업팀은 비로소 버티컬 O2O에서 호라이즌털 O2O 플랫폼 사업자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마치 카카오가 카카오 게임에서 시작해 카카오택시, 카카오 대리운전, 카코오 뱅크 플랫폼으로 그 범위를 확장하는 것과 유사하다.
문제는 버티컬 O2O 스타트업에서 출발해 호라이즌털 O2O로 규모와 범위의 확장이 가속화되면 반대급부로 기존 오프라인 기반 전통적 사업자(굴뚝기업 포함)도 디지털 기술 역량을 확보해 이른바 ‘오프라인 투 온라인(Offline To Online)’ 또는 ‘옴니채널(Omni-Channel)’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물밀 듯이 온라인으로 진입한다는 점이다.
시장은 근본적으로 경쟁(Competition)이 존재하는 곳이다. 최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라는 전략적 화두가 기존 전통적인 사업자의 절대절명의 과제로 부상함에 따라 적극적으로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하나로 통합하거나 오프라인의 역량을 온라인으로 빠르게 확대해 크로스 채널(Cross-Channel) 전략을 확대할 수밖에 없다. 전통적인 유통·물류 기업, 금융기업들은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O2O 개념이 ‘디지털 전환’ 전략의 핵심이 되고 있다.
이렇게 전통적인 기업의 ‘디지털 전환’ 전략 실행이 가속화되면, 거꾸로 유사 영역의 버티컬 O2O 스타트업에게는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 대기업 특성상 내부에서 ‘디지털 전환’을 100% 달성할 수 없기 때문에 오픈 이노베이션 관점에서 기술 혁신 조직인 스타트업에 대한 전략적·배타적 제휴(수익분배 포함), M&A, 전략적 투자(지분 투자) 등의 행위가 매우 빠르게 전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2018-2019년은 전통적 대기업의 오픈 이노베이션 바람과 더불어 기술력을 확보한 버티컬 O2O 스타트업에 대한 전략적 투자나 M&A가 굉장히 활발하게 전개될 확률이 높다. 또한 국내뿐 아니라 해외의 유망 스타트업에 대한 전략적 협업이나 투자가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버티컬 O2O, ‘플랫폼’으로 온전히 성장하기를 바라며
마지막으로 버티컬 O2O와 플랫폼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우선 버티컬 플랫폼은 특정한 집단, 시장, 영역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관성적으로 이용되던 제품과 서비스 기반 사업 모델이 혁신 조직(스타트업)에 의해 제안되는 새로운 제품 및 서비스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가치가 기존 사업 모델에 참여하는 고객, 이해 관계자 사이에 생성되면서 대체재로 빠르게 해당 집단-시장-영역을 장악해낼 새로운 사업 모델을 의미한다.
하나의 제품 및 서비스가 특정 이해관계자 집단 사이에서 이용되면서 직접 네트워크 효과가 빠르게 일어난다. 제품 및 서비스를 개발하는 혁신 조직은 더욱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해 수익모델을 확보하기 위해 이 직접 네트워크 효과를 다른 측면의 이해관계자 집단으로 이전시켜 이른바 교차 네트워크 효과를 만든다. 그리고 이해관계자와 이해관계자를 매개하고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하는 특징을 지닌다.
이 첫 번째 플랫폼을 기저 플랫폼이라고 칭하고, 이 기저 플랫폼을 완전히 다른 시장-영역으로 그대로 카피해 이전시켜 다시 교차 네트워크 효과를 확보하게 되면 그것을 플랫폼 팽창 또는 봉합(Platform Envelopment)이라고 일컫는다. 성공한 버티컬 플랫폼 사업자는 바로 이런 기저 플랫폼에서 시작해 플랫폼 팽창 및 봉합으로 나아가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우버가 우버 블랙, 우버 이츠(Eats), 우버카풀 등 기저 플랫폼을 기반으로 플랫폼 팽창 전략으로 나아가고 있는 점이 대표적인 예이다.
즉 특정 버티컬 영역에서 기저 플랫폼으로 발전한 버티컬 O2O 사업자는 필연적으로 플랫폼 팽창 전략에 따라 연관된 다른 버티컬 시장이나 버티컬 영역에서 승자독식(Winner Take a lot, Winner Take Almost)이 가능한 버티컬 플랫폼으로 성장한다. 플랫폼이 양면 또는 다면 시장적 구조라는 점과 이런 양면/다면 시장 구조의 특징에 대해서는 필자의 다른 글 「양면 시장(Two Sided Market)과 한계비용 제로 사회」를 확인하기 바란다.
버티컬 O2O 영역을 파고드는 스타트업 팀을 필자가 만날 때마다 느끼는 공통점 중 하나는 버티컬 O2O 서비스에서 시작하지만 언젠가는 승자독식할 수 있는 버티컬 플랫폼으로 성장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라는 2개 키워드가 부상하는 지금 버티컬 O2O 스타트업 ‘제2의 물결’이 2018년부터 본격화될 것이다. 거대 플랫폼 사업자로 성장하는 단초를 버티컬 O2O 사업자들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딥러닝, IoT, 빅데이터, 클라우드라는 기반 기술을 스타트업 팀이 가장 빠르고 유연하게 기존 레거시의 허들 없이 적용해 세상의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원문: Vertical Platform / 필자: 김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