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툰 편집장이 말하는 ‘수원 공군기지’를 이전시키면 안 되는 7가지 이유
수원 공군기지가 화성으로 이전할 예정이라는 소식은 밀리터리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사실 공군기지 이전 문제는 수원기지 뿐 아니라 대도시 권역 내에 있는 광주나 대구 등도 마찬가지로 겪는 문제다. 수원 공군기지 역시 주민들과의 오랜 마찰 끝에 원래 있던 자리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해 있다.
수원 공군기지의 역사는 사실 결코 짧지 않다. 이미 6.25가 개전되던 당일부터 6월 30일까지 미 공군이 미국인 철수의 거점 중 하나로 사용했으며 6.25중에는 F-51머스탱이나 F-86세이버등의 미 공군 전투기들이 거점으로 사용했다. 지금 수원 공군기지에 부여된 K-13이라는 번호 역시 그 당시 미 공군이 부여한 것이다.
그 뒤 1953년에는 공군의 제10 전투비행단이 새로 창설되면서 강릉에서 수원으로 이전한 뒤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우리 공군에서 운용된 시기만 따져도 64년이라는 상당한 역사를 자랑한다. 그런데 이토록 긴 시간동안 그 자리에 있던 이 기지를 왜 이제 옮긴다고 할까.
수원시가 화성시로 군공항을 이전시키려는 이유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인근 주민들과 지방자치단체들의 끊임없는 민원 제기다. 공군기지 주변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항공기의 이착륙으로 인한 소음문제가 만만치 않다. 게다가 수원 공군기지는 전투기 운용 기지이다. 전투기의 이착륙 소음이 상당한 문제라는 사실은 설명이 필요 없다. 게다가 공군기지 주변은 항공기 이착륙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고도제한도 걸려있다.
가장 큰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수원 공군기지 주변의 인구가 급증해, 공군기지에 영향을 받는 주민의 숫자가 크게 늘어났다는 것이다. 사실 수원 공군기지가 본격적으로 운용되던 1950년대만 해도, 주변에는 약간의 농가만 있을 뿐 인구라는 것을 거론할 상황이 아니었다. 애당초 수원 공군기지의 행정구역상 위치는 원래 화성이었다가 행정구역 개편으로 수원시로 바뀐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수원시가 급성장하며 수원역에서 멀지 않은 공군기지 인근 인구도 크게 늘었고, 그로 인해 이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 역시 엄청나게 늘어났다.
게다가 최근 수도권의 팽창으로 수원시도 개발을 위한 토지를 찾는 수요가 늘어나며, 수원 비행장은 몇 안남은 ‘미개척지’로 주목되고 있다. 역세권 내에 있는 데다 아주 평탄한 지형이 광활하게 열려있는 비행장 부지는 다른 용도로 개발하면 엄청난 경제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물며 그 자리가 최근 신도시등으로 주목받는 수원-용인 일대라면야 더 말할 필요도 없다.
1. 군공항 근처 주민들은, 군공항 건설 후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은 상당히 ‘적반하장’격인 측면이 크다. 일단 기지 주변에 거주하게 된 사람들이 그 기지의 소음 등에 민원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상당한 어불성설이다. 이들이 이미 살고 있었는데 기지가 세워져 문제가 야기됐다면 또 모르지만, 기지는 오래전부터 있었고 사람들이 그 기지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기지의 소음 문제 같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들어온 다음 문제가 있다고 불만을 제기하면 어쩌라는 이야기일까.
사실 선진국들의 사례를 보면 이런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오랫동안 운용된 공군기지를 주민들이 이런 식으로 민원을 제기한 끝에 다른 곳으로 내쫓는 식의 행태는 땅이 넓은 미국 같은 나라뿐 아니라, 우리와 토지 사정이 별반 차이 없는 일본이나 유럽 같은 나라들에서도 흔치 않다. 설령 기지 인근에 인구밀집지대가 형성된다 해도, 그 사실이 기지 형성보다 나중이라면 소음 피해에 대한 보상 요구 등은 제기될지언정 아예 그 기지를 내쫓아 다른 곳으로 밀어내는 경우는 드물다.
미국의 경우도 라스베가스 인근의 넬리스 공군기지 주변에 주택가가 형성되면서 전투기 소음 등에 의한 피해가 만만찮게 제기되지만, 이 경우도 피해 배상 등의 요구는 있을지언정 기지를 옮기라는 식의 극단적 주장은 결코 조직화되지 못한다.
물론 해외에서 공군기지 폐쇄라는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만 해도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의 종식, 그리고 냉전 종식 등 사례가 있을 때마다 여러 공군 기지들이 문을 닫았고, 실제로 현재 미국 곳곳에 있는 민간용 경비행기 비행 장등의 상당수가 대전 중에 공군기지였다가 폐쇄된 뒤 민간용으로 전환된 곳들이다.
그리고 냉전 종식 직후인 1991년에는 무려 14곳, 1995년에도 5곳의 공군기지가 문을 닫았고 그 외에도 많은 기지들이 비행장으로부터 다른 용도로 용도전환이 이뤄졌다. 그러나 이것들은 주변 주민들의 민원과는 관계없는 군비 축소로 인한 구조조정의 일환이었고, 이런 경우는 오히려 지역 주민들이 기지 폐쇄를 반대할 정도였다.
2. 여기에는 ‘세금’이 들어간다
이런 ‘도의적’인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당장 공군 입장에서는 기지 이전에 돈이 들어간다. 비행장 부지를 매각해 비용을 충당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허나, 비행장 이전은 짧은 기간 안에 목돈이 크게 들어가는 반면, 부지 매각은 매각 자체부터 매각 대금의 현금화에 이르는 기간이 결코 짧지 않다. 그러잖아도 각종 예산에 언제나 쪼들리는 공군으로서는 자칫 몇 해쯤 전력증강이나 유지에 부작용을 우려할 수도 있다.
수원 공군기지는 처음부터 철도 인근에 지어져 철도를 통한 유류 등 보급에 유리하다. 또 경부고속도로 등 수도권의 도로망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입지여서 도로를 통한 군수 보급에도 유리하다.
무엇보다 수십 년간 있던 입지 덕분에 이런 군수 보급 측면에서 확립된 프로그램이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다. 항공기 전력 유지에서 보급이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이런 면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다. 반면 화성은 아무리 최근 도로망이 발달했다 쳐도 수원에 비할 바가 아니며, 공군기지를 새로 짓게 된다면 이런 운영 기반에 대해서도 적잖은 추가 투자를 해야 한다.
3. 수원 군 공항은 공군 전투기에 최적화돼 있다
게다가 지난 60여 년간 우리 군과 주한 미공군의 작전계획은 수원 공군기지가 있다는 전제를 상당히 중요하게 깔고 작성되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6.25 당시 수원 기지는 주한 미공군의 주요 전선 출격기지였으며 지금도 KF-5E/F 전투기들이 전개한 주요 공군기지의 하나다.
지금은 구식이 된 KF-5E/F가 전개됐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도가 낮은 거 아니냐는 오해를 살 수도 있다. 구식임은 사실이지만, 긴급발진에 소요되는 시간이 짧고 운용유지도 단순하다. 때문에 최전선용 기체로서는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
특히 전시에 이 기종들은 최전선의 아군에 대한 근접항공지원에도 상당한 비중이 부여되기 때문에 가급적 휴전선에서 가까운 기지에 전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수도권에서 전투기의 상시 작전이 가능한 공군기지로서 수원 공군기지는 가장 북한에 근접한 곳이며, 같은 이유로 주한 미 공군의 A-10 지상공격기들도 1981년부터 1989년까지 수원에 주둔한 바 있다.
물론 6.25 당시의 항공기 작전반경을 중심으로 위치가 잡힌 수원 공군기지가 오늘날 전투기들의 향상된 작전반경을 감안하면 굳이 그 자리에 있을 필요는 없지 않겠냐는 반박도 나올 수 있다. 더 뒤쪽인 화성으로의 이전, 혹은 이전 자체도 하지 않고 아예 기지를 없애버리고 현 전력은 서산이나 중원, 강릉, 오산 등의 다른 기지로 분산시키자는 주장도 나올 법하다.
그러나 전투기의 작전반경은 전투기의 성능이 향상되었다고 무작정 길어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당장 국군의 전투기 중에도 현재의 F-5계열이나 이를 대체할 F/A-50계열 기체, 혹은 전투기는 아니지만 전시에 중요한 작전기체로 활용될 전선항공통제기 KO-1등은 작전반경이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다. 게다가 이들은 코앞이라고는 하지만 전쟁이 발발할 경우 초기 단계에서 주 전장이 될 경기도 북부 및 DMZ인근에서 근접항공지원을 담당할 기체들인지라 지상군의 요청에 매우 민첩하게 대응해야 한다.
4. 새로운 기체라고 해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게다가 현대의 전투기들은 과거에 비해 무장 탑재량이 매우 높아졌다. 단적인 예로 6.25 당시에 쓰이던 F-86F전투기는 최대 무장탑재량이 2.4t에 불과하지만 F-5E는 3.2t, F/A-50은 3.7t에 달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비록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해도 수원 기지를 화성으로 옮기는 것은 플러스보다는 마이너스가 적잖이 나온다-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이는 대략 10km정도의 거리 차이라도 연료와 무장을 계산하는 입장에서는 나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여기에 현재 주둔한 기체들만 중요한 게 아니다. 수원은 그 입지 덕분에 전시에는 다양한 우리 공군이나 주한 미공군, 기타 우방국 공군 기체들이 전개할 가능성이 높은 공군기지다. 전투행동반경이 현재 수원 기지에 주둔했거나 앞으로 주둔할 가능성이 높은 기체들보다 더 긴 전투기들이라도 상황에 따라서는 무장 탑재량을 최대한 높이고 작전 시간을 늘리기 위해 최대한 전선에 가까운 기지로부터 발진하려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전시에는 이곳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자세한 계획이 지난 수십 년간 확립되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데 이곳을 이전한다면? 말 그대로 수십 년의 계획이 도로아미타불이고 이전에 따른 완전한 새로운 계획을 다 짜야 한다.
5. 그간 세워둔 치밀한 작전과 전략이 흔들릴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전 예정지인 화성과 수원의 위치가 큰 차이가 없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앞에서도 그게 쉽게 말할 부분이 아니라는 점은 이미 언급했고, 또 항공기 운용계획이나 전시 작전계획 등을 짤 때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약간의 거리나 위치 차이도 사람의 목숨과 고가의 전력자산의 가치를 생각하면 사고가 생기지 않게 매우 치밀하게 계산해 짜야 한다.
하물며 평소와는 비교도 안 되는 빈도로 항공기가 운용될 전시까지 감안하면 이런 계획은 수립에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수십 년간 확립된 노하우가 존재하는 수원 같은 오래된 기지의 존재감은 큰데, 그것을 이전으로 순식간에 날려버리는 것이다. 새로 짜면 된다? 그거 새로 짜느라 드는 돈과 시간, 노력은 결국 국민 세금 아니었나?
6. 전시에는 더욱 큰 혼란을 유발할 수 있다
전시의 아군 항공기 생존에도 수원 기지가 더 뒤로 이전한다는 것은 결코 좋은 측면은 아니다. 사실 수원 공군기지의 위치는 전쟁 중 피격 등으로 파손되어 비상착륙을 요구하는 아군 항공기들에게는 나름 중요하다. 더 북쪽에 서울공항이 있기는 하지만 이 기지 하나만 믿기는 용량이 부족하고, 그런 면에서 전투기 운용 역량이 처음부터 있는 데다 나름 휴전선에서 가까운 수원 기지는 전시에 아군 전투기들이 북한 지역을 탈출해 비상착륙을 시도할 확률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곳이다.
실제로 비상착륙은 아니지만 1996년에 북한 미그19 전투기가 귀순할 때에도 수원 기지를 택한 이유가 이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런데 화성으로 기지를 이전한다면 수원보다 짧게는 수 km, 길게는 10~20km 정도 최전선 지역과 거리 차이가 나게 된다. 정상적인 항공기라면 이 정도 거리는 거의 없는 셈 칠 수 있지만, 피격되어 파손된 항공기라면 이 정도 거리 차이도 무시 못 할 부담이다.
7. 민원과 로비에 안보가 흔들리는 관행을 만들 수 있다
이처럼 군사적인 측면에서의 실용적 문제도 만만찮지만,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민원이 제기되면 안보적 측면에 대한 고려조차 뒷전으로 밀리는 관행이 굳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지역 주민의 민원도 아닌 일개 기업의 로비에 공군기지의 안전조차 위협받는 롯데타워 문제 같은 극단적인 경우도 있지만, 실질적인 지역이기주의로 인한 공군기지 이전이 상시화되면 현실적으로 군의 안보를 위한 작전 운용 자체가 형해화되는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원래 사람 없던 곳에 지었던 수원 같은 기지도 사람이 주변에 늘어나면 민원으로 쫓아낼 수 있다는 전례가 생긴다면, 이제 화성 역시 수도권이라는 입지 특성상 오래지 않아 수원만큼이나 주변 주민들의 이전 압박이 거세질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미 정치권에서까지 지원한 수원이라는 전례가 있는 만큼, 화성 역시 재이전이라는 사태를 맞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면, 이번에는 어디로 가야 할까? 서산이나 오산 등의 기지로 항공기나 시설을 이전하는 것 자체는 가능할 수 있지만, 문제는 수도권 최북단의 전투기 운용 기지라는 입지적인 중요성은 완전히 상실한다.
국방부와 보수정당의 잘못된 판단, 이제는 되돌려야
이런 상황을 보건대, 우리나라가 ‘휴전 중인 국가’라는 사실은 사실상 말 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전쟁 위협이 없는 유럽 국가들보다도 안보에 대한 배려가 더 형편없다고도 할 수 있다. 지역주민 민원만으로 공군기지 이전이 가능하다는 사실 자체가 그야말로 ‘전쟁 절대로 안 날거다’라는 확신이 없으면 가능하지 않다. 다른 나라 관련 전문가들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백이면 백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만 짓는다.
게다가 이런 이전 결정이 진보정권도 아닌, 눈만 뜨면 안보, 안보 타령을 하던 보수정권에서 내려진(대구나 수원, 광주 공군기지를 염두에 둔 ‘군공항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이 2012년, 수원 기지의 이전을 국방부가 최종 승인한 것이 2015년이다. 설마 2012~2015년이 진보정권 집권기거나 진보정당이 국회를 지배한 시기라고 생각하는 분은 없으리라 믿는다- 심지어 대구 공군기지 이전을 사실상 주도한 것은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던 유승민 의원이었다!) 것은 그야말로 꿈도 희망도 없게 만드는 이야기다.
결국 수원 기지의 화성 이전은 수원 시와 그 지역 주민들에게야 꿈과 희망에 부풀게 만드는 희소식이겠지만 이전 예정지역인 화성 주변은 둘째치고 국가 안보등의 ‘빅 픽쳐’로 보면 꿈도 희망도 없게 만드는 우울한 이야기다. 과연 이런 우울한 이야기가 몇차례나 더 반복될지 생각하면 우리는 더욱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