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유진 구미시장, ‘박정희 유물전시관’ 입찰공고… 내년 지방선거 앞두고 정치적 ‘포석’ 논란
결국, 남유진 구미시장은 민심을 아랑곳하지 않고 박정희 역사자료관을 건립하겠다고 나섰다. 구미시는 지난 19일 ‘박정희 대통령 역사자료관 건립공사’에 대한 전자입찰공고(긴급)을 냈다. 나는 구미시가 숨을 고르고 있나 생각했는데 어떤 이가 입찰공고 나간 거 알고 있냐며 내게 쪽지를 보내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을 거치면서 경상북도와 구미시의 박정희 마케팅에 힘이 좀 빠졌나 싶긴 했다. 시민들의 삶과 무관하게, 독재 끝에 불행한 최후를 맞아야 했던 대통령을 우상화하는 사업도 지역 시민단체의 지속적인 반대 운동이라는 걸림돌을 만났다.
구미시, 박정희 역사자료관 공사 입찰 공고
구미참여연대(아래 참여연대)는 ‘역사자료관’을 ‘박정희 유물 전시관’이라 부르며 이 공사를 백지화하라고 꾸준히 요구해 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역사와 자료는 이미 세워져 있는 박정희 타운에 차고 넘친다, 고작해야 그가 쓰던 소파나 생활용품 나부랭이를 전시하기 위한 거라면 ‘유물 전시관’이 합당한 이름이라는 이유에서다.
참여연대는 26일 성명을 내고 민심에 역행하는 구미시의 결정을 규탄했다. 참여연대는 “도지사 출마를 위해 연말 사퇴를 기정사실화하고 있으면서도 주민 반발이 극심한 대형 사업을 잇달아 밀어붙이고 있다”며 이 사업 중단을 촉구했다.
박정희 유물전시관 건립은 지금 준공을 앞두고 있는 새마을 테마공원 등 이미 1천억 원을 상회하는 공사비를 퍼부은 박정희 타운으로도 족한 데도 다시 막대한 예산을 들이겠다는 것이다. 이 공사의 부당성은 구미시와 경상북도가 이후 소요될 박정희 타운의 운영비 문제로 다투고 있는 데서도 드러나고 있다.
참여연대는 또 시 의회와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보류된 송정동 민자공원 조성사업을 오는 31일 시의회에 안건으로 상정한다는 데 대해서도 우려와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송정동 민자공원 사업은 수천억 원대 사업으로 공원 녹지의 난개발 문제, 재개발 아파트의 미분양 사태가 일어나는 상황에서 8500세대의 대규모 아파트 공급으로 인해 발생할 문제 때문에 시민들의 우려가 큰 상황이었다.
최근 지역 언론에서 실시한 ‘구미시 공원일몰제 및 공원 개발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역민 53%가 ‘공원일몰제’와 ‘중앙공원 민간공원 조성사업’에 관해서 모르고 있으며 44.7%의 시민들이 공청회, 토론회 등 충분한 검토 후 진행해야 한다고 답하였다.
그리고 11.5%의 주민들은 내년 지방선거 이후로 사업 실시를 미루어야 한다고 의견을 표명하였다. 결국, 55% 이상의 주민이 현재 추진 중인 민자공원 사업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는바, 주민들의 우려를 불식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찾기 위한 방안으로 구미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미 ‘구미시 공원일몰제 대응전략 위원회’의 구성을 제안했었다.
연말 사퇴 공언한 남 시장, 사업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말에 사퇴하겠다는 남유진 시장이 민자 공원 사업을 밀어붙이는 것, 역시 민심에 역행하는 독선 행정이며 이해 당사자들의 갈등과 분노만 키우는 일이라고 참여연대는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박정희 유물전시관 사업을 중단하고 민자공원 조성 사업에 대한 주민 의견을 수렴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연말 시장직 사퇴를 앞두고 있는 남 시장이 이 공사의 입찰 공고를 냄으로써 사업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은 그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정치적 지향을 분명히 하겠다는 정치적 선언으로 읽힌다.
지난 개천절에 남유진 시장은 박정희 생가 주변을 배경으로 만든 동영상 속에서 ‘좌파들과의 이념전쟁의 최전선’에 나서겠다고 비장하게 선언한 바 있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시한 ‘박정희 대통령 영전에 드리는 말씀’에서 박정희의 업적을 찬양하고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새마을운동이 외면되는 현실과 박정희를 독재자로만 인식하는 세태를 개탄했다.
또 보수가 사분오열되어 무너져 버린 현실을 통탄하면서 ‘두 주먹 불끈 쥐고 이념대결의 불길 속으로 뛰어든 열혈 정치인은 별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돌 기념 우표’ 발행 취소를 두고 ‘전직 대통령의 기념 우표 한 장 못 만드는 나라가 자유 민주 국가’냐고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공사 강행은 남 시장의 ‘정치적 선언’
박정희의 고향이고 보수 정당의 아성이긴 하지만 기초 자치단체장에 불과한 남 시장이 좌파들과의 이념 전쟁에 최전선에 나설 만한 ‘선수’로 보기는 어렵다. 그말고도 언론의 조명을 받는 쟁쟁한 전국 단위 정치인이 좀 많은가 말이다.
그럼에도 남 시장이 다분히 넘치는 선언을 감행한 것은 특정 정당의 도지사 후보로 공천받기 위해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높이고자 하는 일종의 코스프레다. 현재 3선 구미시장으로서 남유진이 가진 정치적 자산이란 게 고작 박정희 우상화 같은 사업에 목을 매는 것밖에 없는 것이다.
그는 박정희를 ‘반신반인’의 자리에 올린 이다. 그가 시장 재임 중에 오직 박정희에 대한 숭앙을 바탕으로 그 우상화 사업에 골몰해 온 정치인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그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시정의 기본으로 삼기보다는 사위어가는 ‘박정희 신화’에 끊임없이 불을 지펴서 그를 흠모하는 복고적 퇴행적 정서에 편승하고 지역의 보수적 정치 성향에 영합해 온 것이다.
따라서 그가 시장직 퇴임을 공언하고서도 역사자료관 공사 강행의 의지를 드러낸 것은 그런 의도의 연장선에서 살펴볼 수 있을 듯하다. 구미참여연대가 이를 두고 ‘도지사 후보 자리를 얻기 위한 정치적 행보에 시민들의 혈세가 사용되어선 안 된다'(10. 10. 성명)고 주장한 것도 그래서이다.
이는 구미시의 ‘2018년 예산편성 시민 의견 수렴결과’와도 어긋난다. 민선 6기 역점 시책 중 가장 우선 투자할 부분이 어디냐는 설문에 대해 시민들은 ‘구미공단 재창조'(23.2%)와 ‘행복 일자리 8만 개 창출, 서민경제 실현'(21.9%)라고 답했고, ‘박정희 관련 사업’은 5.8%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설문결과 참조)
정치적 입장과 무관하게 민생을 도외시하고 수십 년 전의 권력을 되살리기 위해 골몰하는 시장의 시정 아래서 시민들은 무력하다. 시민들의 요구가 전해질 수 있는 지방 의회조차 시 권력의 거수기 정도로 기능하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시민은 신경을 끄고 살 수밖에 없다.
그 도시의 ‘시민으로 살기’
물론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은 지역 보수정당에 몰표를 던져서 그들에게 권리를 위임한 시민들이 져야 한다. 그러나 그 이전에 특정 정당이 독점하는 정치적 상황을 수십 년 동안 온존할 수 있게 만든 우리의 후진적 정치 구도에 대한 책임은 또 다른 문제다.
또 선거에서 반대표를 던진 적지 않은 시민들은 꼼짝없이 정치적 반대 성향의 시장이 펼치는 시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정치적 태도로 일관하는 시장의 도시에 ‘시민으로 살기’는 그래서 여간한 고역이 아니다.
수십 년 동안, 특정 정당에 몰표를 던짐으로써 다양한 정치적 선택을 스스로 봉쇄해 왔던 시민들은 민주주의와 인권, 개혁을 선택했을 때 열리는 지방자치의 가능성을 잘 모른다. 당연히 개혁과 진보의 과실이 어떤 방식으로 시민에게 돌아오는지에 대해서 무지하다.
전국에서 무상급식 비율이 가장 낮은 지역이 ‘영남 벨트’다. 그러나 지역 사람들은 타 시도 주민들이 받는 무상급식 혜택을 자신이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덤덤하다. 구미참여연대 황대철 집행위원장의 말이다.
“복지 혜택은 몸으로 누려본 사람만이 체감하지요. 아무리 관념적으로 무상급식을 외치더라도 몸으로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그 필요성을 온몸으로 느끼지 못하거든요. 홍준표 전 지사의 어깃장으로 인해 무상급식이 중단된 경남 도민들의 투쟁은 그 필요성을 몸으로 체감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투쟁인 셈이지요.”
개혁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다. 지역 사람들은 한 번도 특정 정당 출신이 아닌 선출직을 뽑아보지 못했다. 늘 하던 방식을 답습하는 시정을 무심히 받아들이는 이유다. 그들은 개혁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시정과 민주주의에 대한 상상력을 펴본 적이 없는 것이다.
참여연대와 시민들의 반대 투쟁에도 불구하고 입찰이 예정대로 이루어지면 곧 박정희 역사자료관 공사는 시작될 것이다. 참여연대가 다양한 반대 행동을 경고하고 있지만 이미 확보된 예산으로 계획된 사업을 시행하는 합법적 행정 집행을 멈출 수 있는 힘은 시민이나 시민단체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민들의 뜻에 역행하는 퇴행적 행정은 일시적으로는 자치단체의 권력이 시민을 제압했다고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자치의 본질을 훼손할 뿐 아니라, 시민의 뜻과 삶을 섬기는 민주주의를 저버린 행정은 결과적으로 대의민주주의의 불신과 부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 사업의 강행이 예산의 낭비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은 실질적으로 시와 시민에게 두고두고 짐이 될 가능성이 짙다. 박정희 타운의 운영비 부담을 두고 경상북도와 구미시가 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은 그 조짐이 아니던가 말이다.
2017년 10월, 구미에서 ‘죽은 자의 제사상보다 산 자들의 삶을 돌보라’는 명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원문: 이 풍진 세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