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기차 시장을 주도하는 미국의 자동차 회사, 테슬라가 부진한 실적을 발표했다. 사실 이번의 사태는 이미 예견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게, 지난 7월 테슬라의 최고 경영자 앨론 머스크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바 있기 때문이다.
Musk predicted that getting the production of Tesla Model 3 ramped up would be “manufacturing hell.”
제조업 생산의 지옥, 중의적인 표현이기는 하나(왜냐하면 다른 기업들을 불지옥에 넣겠다는 뜻일 수도 있으니) 이번 실적 부진 소식 덕분에 테슬라가 겪고 있는 문제의 근원은 조금 밝혀진 것 같다. 즉, 빨리 생산량을 늘려야 하는데 그게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록히드의 사례를 통해 본 학습곡선 이야기
왜 생산량을 늘리는 것이 중요한가? 그 이유는 누적 생산량이 증가하면 단위당 생산단가를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학습곡선(Learning Curve)’이라고 지칭한다.
학습곡선을 이해하는데, 항공우주산업의 No.2 기업인 록히드의 사례는 상당한 도움을 준다. 1971년 여름 록히드는 항공 수요의 증가로 인해 대량주문이 늘어나자, 기존보다 혁신적인 항공기인 트라이스타를 건조할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록히드는 한 번에 260~400명의 승객을 실어나를 수 있는 신형 항공기를 생산할 공장을 짓기 위해 자금을 조달하고, 미국 정부에 대출 지급보증을 요청했다.
그러나 공장이 다 지어지기도 전인 1973년, 미국 공군의 라이트 준장은 록히드의 신형 항공기 개발계획이 채산성이 없다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아 언론은 물론 산업공학 관련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라이트 준장은 그동안의 군용항공기 생산 경험을 바탕으로, 비행기를 더 많이 생산할수록 1대를 조립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뿐만 아니라 비행기 1대를 조립하는 데 드는 비용도 약 20%가 감소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만약 비행기를 4대 만들 때 1대당 평균비용이 100만 달러라면, 8대를 만들 때는 단위당 비용이 80만 달러, 16대의 경우 64만 달러로 줄어들었다. 즉 노동자들은 작업과정을 통해 일을 좀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되고 이로 인해 비용은 갈수록 줄어든다.
라이트 준장의 예측을 바탕으로 트라이스타의 평균 생산비용을 계산할 결과, 록히드는 약 11년 후 1,024번째 항공기를 생산할 때에야 비로소 투자의 결실을 맺게 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라이트 준장의 예측은 사실로 맞아떨어졌다. 록히드는 1970년대 내내 경영위기에 시달리다 레이건 대통령이 국방비를 대대적으로 늘리는 데 힘입어 간신히 파산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록히드는 1994년 마틴 마리에타와 합병해 록히드 마틴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현재 보잉에 이어 항공우주업계 2위이다).
자본 집약적 산업에 뛰어든 기업은 초기에 큰 적자를 각오해야 한다
라이트 준장의 예측은 전기차 제조처럼 자본 집약적 산업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 학습곡선이 중요한 산업, 즉 생산원가가 초기에는 매우 높지만 생산량이 증가할수록 완만하게 낮아지는 산업은 일단 사업 초반에는 엄청난 손실을 각오해야 한다.
자금력이 약한 기업이 자본 집약적 산업에 뛰어들 경우, 초기에 발생하는 대규모의 손실로 큰 고통을 겪고 심지어는 파산할 수도 있다. 따라서 자본 집약적인 산업의 참가자들은 몇몇 기업에 국한된다. 당장 항공우주산업만 하더라도 보잉과 에어버스, 그리고 록히드 마틴 등 이른바 빅 3 이외에는 시장점유율이 매우 미미하다.
물론 테슬라는 꽤 많은 자금을 가지고 있기에 지금 당장 파산의 위험은 낮다. 당장 얼마 전 발행한 15억 달러 규모의 회사채를 찍지 않았던가?
학습곡선을 타는 동안에는 탄력적인 생산량의 조절은 엄두를 낼 수 없다
라이트 준장의 발견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시사점은 자본 집약적인 산업은 생산량을 탄력적으로 조절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항공우주산업에 버금갈 정도로 대규모 자본투자가 필요한 반도체 기업을 생각해 보자.
반도체 산업의 전망은 매우 유망하지만, 대신 초기에 투자비용이 엄청나며 학습곡선 때문에 생산량이 증가할수록 생산단가가 떨어진다. 그런데 어느 날 PC와 스마트폰 등 반도체 제품이 들어가는 소비재의 수요가 둔화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 기업은 생산량을 바로 줄이고 직원을 해고할까? 아니면 생산단가를 더욱 낮추기 위해 밤낮없이 공장을 돌릴까?
우리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은 1년에 단 하루도 공장을 멈추는 날이 없다. 역시 테슬라도 이 과정을 겪어야 한다. 어떻게든 생산량을 늘려, 단위당 생산비용을 절감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테슬라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왜 포드 자동차는 Mode T만 만들었을까?
그런데 테슬라는 끊임없이 신모델을 내놓았다. 고급형 모델부터 양산형 모델, 그리고 더 나아가 SUV까지. 이렇게 자꾸 모델을 늘려나가면 ‘학습곡선’을 쉽게 타기 어려워진다. 왜냐하면 학습곡선이 발생한 핵심적인 원인이 ‘학습’이기 때문이다. 일이 반복적으로 진행되면서 근로자들이 일에 익숙해지고 이로 인해 생산량이 증가하게 된다. 그리고 이와 연관된 또 다른 원인으로 ‘전문화’를 들 수 있다. 생산을 위한 다양한 업무가 표준화되고 프로세스가 체계화되면, 생산 단계와 업무가 효율적으로 줄어들게 되고 이에 따라 점차 생산량이 증가하게 된다.
근로자들이 일에 익숙해지고 또 업무가 표준화됙 위해서는 한 가지 모델에 집중해야 한다. 당장 포드 자동차만 하더라도, 컨베이어 방식 생산을 시작할 때 ‘Model T’만 생산하지 않았던가?
아래의 <표>에 나타난 것처럼, 1909년 처음 Model T가 출시되었을 때의 생산량은 1만대 그리고 제품 단가는 825달러였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1919년의 생산량은 50만대, 그리고 제품 가격은 500달러로 인하되었다. 그로부터 다시 5년이 지난 1924년의 생산량은 192만 대에 제품 가격은 265달러였다.
테슬라 생산인력의 유출이 지속된다면
Model T의 사례를 살펴보면,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제품가격이 가파르게 인하된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제품가격이 인하될수록 판매략은 더욱 늘어나니, 결국 학습곡선을 어떻게든 빨리 타는 것이 기업이 성공하는 요체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최근 테슬라의 엔지니어들이 대거 이탈(혹은 해고)한 것은 좋지 않은 징후다. 표준화를 달성하고 숙련도를 올리기 위해서는 고용의 안정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 자본 집약적인 대공장일수록 ‘연공서열’ 등의 임금체계를 만들어 어떻게든 장기근속을 유도하려 애쓴다. 그런데 테슬라는 오히려 대량 해고를 단행했으니, 이건 뭔가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맺는말을 대신하여
물론 이 모든 어려움을 뚫고 테슬라는 보란 듯이 대량생산에 성공하고, 또 학습곡선을 시원하게 탈 수도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을 결정짓는 요인이 하나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당장 록히드만 하더라도, 정부 정책 변화 덕분에 파산을 모면한 것은 물론 더 크게 성장하지 않았던가?
따라서 이 글이 ‘테슬라가 실패했다’는 식으로 해석되지 않았으면 한다. 이 글을 쓴 목적은 단순하다. 학습곡선을 공부했던 경영학자의 입장에서 학습곡선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지 설명하는 데 도움될 듯하여 최근 테슬라의 뉴스를 활용했을 뿐이다. 테슬라의 매끈한 신제품이 한국의 도로 곳곳을 누리는 그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이만 글을 마친다.
원문: 시장을 보는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