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소설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골룸(스미골)과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단편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에 등장하는 지킬 박사는 전형적인 다중인격자다. 좀 멋지게 말해서 ‘해리성 정체감 장애’라 불리는 이 증상은, 영화와 드라마의 단골 소재이지만 현실에서 이 증상을 앓는 사람이 있으면 본인은 물론 그 주변 사람들까지 정말 힘들어질듯. 그런데 최근 자연인이 아닌 한 법인이, 정확히 말해 한 매체가 다중인격 증상을 나타내고 있다. 바로 민족정론 조선일보다.
채동욱이 아버지는 아니지만 아버지는 채모씨다
조선일보는 10일 [단독] 채동욱 검찰총장 婚外아들 숨겼다라는 기사를 통해 ‘채동욱 검찰총장이 Y씨와 혼외 관계를 유지하며 숨겨진 자식을 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당당하게 [단독]이라는 타이틀을 올리며 기뻐한 조선일보, 하지만 Y씨가 한겨레와 조선에 편지를 보내, 채 총장의 아이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상황은 반전된다.
기자는 분명 당황했다! 등에 식은땀이 흘렀을 것이다! 하지만 프로는 절대 사과하지 않는다!! 조선일보는 기지를 발휘한다. 무려 채동욱 婚外사건 Y씨, “아이 아버지 채모씨는 맞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놓은 것. 분명 팩트다. 팩트이긴 한데, 이 제목을 보고 독자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는가? 역시 일등신문이라 그런지, 저질 낚시 제목을 쓰는 매경(무려 충격 고로케 1위에 빛난다)과는 달리 문학적 비장미마저 풍긴다…
“왜 사과하지 않는가”라니? 사과는 너네가 하라고…
여기서 조선일보는 한 발 더 나아간다. 류정 기자는 [기자수첩] 임씨가 한겨레신문에도 편지 보낸 까닭은… 라는 칼럼을 통해 “임씨는 편지에서 ‘일국의 검찰총장’을 수차례 ‘채동욱씨’라고 부르면서, 채 총장에 대한 사과 한마디를 쓰지 않았다. (중략) 그런데도 총장은 이 여인에게 명예훼손 등 법적 대응도 하지 않고 있다. 보통 사람 상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의구심만 키우고 있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정작 조선일보는 초딩들의 증언을 여과없이 싣고 해당 여성의 실명을 까버려놓고 왜 사과 안하나. 이에 채 총장은 9일 조선일보에 정정보도를 청구했으나 조선일보는 이를 일관성있게 무시. 해서 채 총장은 대변인을 통해 “조선일보를 상대로 법원에 정정보도 청구소송을 제기할 것”이라는 뜻을 전했다. “조선일보 보도 의혹의 조속한 해소를 위해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 및 중재 절차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조선일보의 다중인격
조선일보는 뜬금없이 다중인격까지 발휘한다. 實名 올리고 엉뚱한 사진에 인신공격… ‘蔡총장 婚外아들’ 신상털기 度 넘었다라는 기사를 통해 “임씨의 아들 채모(11)군의 실명이 인터넷과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에 그대로 노출되면서 이들의 과거 행적이 나열되고, 채군의 경우 엉뚱한 사진이 채군의 모습이라며 떠돌고 있다.”며, 네티즌을 비판하고 있다. 야… 그거 니들 때문에 생긴 일이잖아… 게다가 이 기사는 위의 ‘기자수첩’과 1분의 차이도 없이 게시돼, 인격간 전환이 매우 신속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미디어오늘은 방일영 전 조선일보 회장, 혼외자식만 4남 2녀라는 기사로, 조선일보의 이중적 태도를 비판한다. 나비효과란 참으로 대단하다. 기자가 쓴 뻘기사 하나가 자사 사주의 혼외자식을 보도하고 만 것이다. 참고로 방일영 회장은 생전에 ‘남의 가슴에 못박는 기사 삼가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이쯤이면 인격이 몇 개인지 셀 수가 없을 지경.
조선일보의 연이은 오보와 오버, 어디서 오는가?
조선일보의 뻘타 오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특히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일반 시민의 얼굴을 성폭행범이라 1면 톱에 게재한 ‘나주 성폭행범 사진 오보’는 언론 역사에 길이 남을 뻘타였다. 이로 인해 피해자는 엄청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 조선일보는 공식 사과를 했으나, 과연 이것으로 피해자의 상처가 씻겼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 있어 조선일보는 사과는커녕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으며, 다중인격을 드러내며 문제를 회피하고 논란만 키우고 있다. 정치적 지향성을 떠나 개념이 부족하다고 밖에는 할 수 없는 행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