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는 조선 시대 선비들이나 먹는 줄 알았다. 요샌 서민의 술, 소주도 각종 과일 향이 첨가되어 젊은 층을 공략하고 맥주도 전 세계 방방곡곡에서 공수되는 터라 정성 가득한 우리나라 전통주의 존재는 너무도 깜깜했다. 단어가 ‘전통’이어서 그런가? 아니면 맛이 대중적이지 않아서 그런가? 명절이나 특별히 찾아 마시지 않으면 접할 수 없는 희미한 존재 전통주.
최근 변화가 생겼다. 올해 2월 개정된 주류법으로 인해 전통주에 한하여 온라인 유통이 가능해진 것! 하지만 꽤 나가는 가격으로 일반 소비자가 이것저것 마음껏 마셔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여! 다나와에서 술 좀 한다는 ‘꾼’들이 영상 촬영을 빙자하여 전통주 8종의 맛과 향을 근무시간에 품평해 보았다. 오직 소비자의 선택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뭇의 따가운 시선을 극복하고! 한 잔, 한 잔씩 따라 마셔보았다. 이 글은 그 먹부림의 기록이다.
지역별 대표 전통주를 선정하는 작업은 꽤 어려웠다
일단 제품 선정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었다. 우선 막걸리 같은 곡주를 제외한 것. 곧 추석인데 차례상에 막걸리 올리는 집이 있을까 해서다. 그리고 지역별로 딱 1개씩만 선정하는 것.
이렇게 선정해도 경기도, 충청남북도, 경상남북도, 전라남북도, 그리고 제주도로 총 8개 제품이다. 강원도는 탁주류는 다양해도 이런 전통주 제품이 ‘다나와 가격 비교’에 별로 나타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제외했다. 주로 약주, 리큐르 위주로 선정했으며, 모두 가격 비교를 통해 오픈마켓 사이트에서 구입한 것이다.
지역별로 정리하자면 위와 같다. 경기도는 호담산양산삼주(광주), 제주도는 녹고의 눈물(제주), 충청북도는 세종대왕어주(청원), 충청남도는 한산소곡주(서천), 경상북도는 문경바람(문경), 경상남도는 솔송주(함양), 전라북도는 오매락퍽(고창), 전라남도는 진도홍주(진도)다.
박스를 모아보니 꽤 많다. 이 자릴 빌어 우체국 및 각 택배 배송 기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다.
산삼이다! 산삼이다! 산삼이다!
제일 먼저 경기도 광주의 호담산양산삼주를 만나보자. 솔직히 인지도는 별로 없지만 2014-2015년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 대상, 201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국제와인 품평회 동상, 2015, 16년 세계주류품평회 몽드셀렉션 금상을 받은 업체다.
구입한 선물세트는 3병들이 제품이다. 가운데 전용 사기잔 두 개까지 동봉되어 있다. 흔히 우리가 보던 그 전통주의 빛깔이 보이지만, 병이 일반 유리병이라 살짝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추석이나 명절에 선물용으로는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보인다.
알코올은 13%이며, 각 병당 용량은 375mL로 소주 한 병이랑 똑같은 양이다. 5년근 산양 산삼으로 빚은 술이라 건강에 좋은 약주의 콘셉트를 잘 살렸다. 삼계탕집에서 서비스로 주는 그런 인삼주 맛이 날지 참으로 궁금하다.
녹고가 누구지? 왜 눈물을 흘리나?
다음은 제주도에서 온 녹고의 눈물이다. 프리미엄 생주라는 캐치프레이즈와 어울리게 내부 포장이 깔끔한 편이다. 전통주 콘셉트를 잘 살려 사기 재질의 두툼한 병에 담겼다. 마치 동방불패의 임청하가 강 위에서 영호충과 함께 경공술을 펼치며 9할 정도는 흘리고 입에 털어 넣는 그런 술병 느낌이다.
박스 겉면에는 제품 이름에 대한 슬픈 사연이 적혀 있다. 신비로움이 가득한 제주도의 이미지에 걸맞게 감성적인 마케팅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더불어 다른 제품과는 다르게 오가피를 첨가한 전통주로 약주라는 점을 강조했다. 술병에 새겨진 식물같이 보이는 그림이 아마 오가피를 그려 넣은 건 아닐까 추측된다. 용량은 750mL로 양주 한 병에 버금가며 알코올 함량은 16%다. 전용 잔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세종대왕 납시오~~ 왕이 되는 순간!
충청북도 청원에서 온 세종대왕어주다. 본디 탁주로 더 유명한 이 브랜드는 세종대왕 제위 시절 어의 전순의가 쓴 산가요록에 소개된 벽향주의 주방문을 재연한 전통주다. 2병들이 세트는 독특하게 슬라이드 방식의 박스에 담겨오며 별도의 전용 잔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국내산 쌀과 누룩, 정제수 이외엔 다른 재료는 첨가하지 않아 전통주 그대로의 향을 느낄 수 있으며 500mL 용량에 15% 알코올 함량이다. 흔히 차례용으로 많이 구입하는 청주의 재료와 제조법이 거의 흡사하다. 제조사의 홈페이지에서는 유기농 재료라는 것을 많이 강조하고 있다.
달달하다고 얕보면 고주망태
소위 앉은뱅이 술로 알려진 한산 소곡주다. 충청남도 서천군에서 왔다. 익히 알고 있는, 할아버지들이 대꾸리(?)로 부르시던 그 큰 병이 아니라 선물용으로 따로 제작된 제품을 구했다. 한산 소곡주의 로고가 새겨진 전용 잔 2개가 동봉되어 있다.
양주 한 병과 같은 750mL 용량 2병 세트다 보니 박스도 다른 제품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 물방울 모양의 병 디자인도 인상적이다. 따를 때 살짝 무겁지 않으려나 걱정될 정도. 알코올 함량은 16%밖에 안 되지만 별명에 걸맞게 은근히 술이 올라오는 스타일이다.
명절에 달달하다고 무턱대고 마시다 보면 종일 자느라 아무것도 못 할 사태가 일어날 수 있으니 살짝 겁도 난다. 국화 향이 첨가되어 은은한 맛이 특징이며 온도에 민감한 제품이라 보관에 신경 써야 하는 것도 포인트다.
퍽! 퍽! 나쁜 기운아! 물러가라!
이름부터 특이한 오매락 퍽은 전라북도 고창에서 온 전통주다. 매화 梅를 사용해 매화 성분이 들어간 것으로 추측된다. 게다가 세레모니주로 유명한데, 실제 오매락 전통주 병 겉면에 황토로 감싸 함께 제공되는 나무망치로 깨뜨리는 방식이다. 명절이나 새해에 나쁜 기운을 몰아낸다는 의미란다.
황토 코팅 겉면은 촘촘한 망사 포장이 되어 있다. 실제로 깨뜨리는 세레모니시 파편이 주위에 많이 흩어지지 않게끔 하는 안전장치다. 알코올은 40%라 꽤 높은 편이며 용량은 500mL다. 명절에 친척들과 둘러앉아 마시기엔 독하지만, 살짝 음복하는 의미에서는 괜찮을 것이라 생각된다.
열정적인 붉은 색, 열정적인 알코올
솔직히 얘기하자면 이 제품은 온라인 주문 시 실수로 배송시켰다. 원래 40%짜리 진도 아리랑 홍주를 주문해야 하지만, 무심코 클릭을 연발하는 바람에 무려 60%짜리 특별판 진도 아리랑 홍주가 온 것이다. 이름에 걸맞게 붉은색 빛깔이 매우 강렬하다. 남도의 열정을 담은 것인가!
증류주를 내릴 때 지초라는 식물을 통과하게끔 만들어 강렬한 붉은색을 띤다. 병 모양도 스코틀랜드산 위스키와 비슷하다. 하지만, 60%라는 도수를 감안하면 살짝 무서워지는 것이 사실. 용량은 700mL로 지금껏 시음한 모든 전통주보다 많다. 전통주도 이런 독한 제품이 있다는 걸 알게 해주는 제품인듯싶다. 전라남도 진도. 정말 인상적인 고장이다.
문경 새재에 바람이 많은가 보다
사과로 유명한 경상북도 문경에서 온 문경바람이다. 역시나 사과를 주재료로 한 전통주. 그래도 증류주에 속하여 알코올 함량이 높다. 특이하게 문경바람은 선물용으로 주문하면 25%짜리, 40%짜리 두 병이 함께 온다.
사진에서 보이다시피 25%짜리는 무색투명, 40%짜리는 호박색에 가까운 빛깔이다. 용량은 둘 다 375mL다. 전통주라는 느낌 없이 제일 현대적인 디자인을 띄고 있다. 시음회는 한 병 버리기는 아까우니 두 병 다 마셔보는 거로 하자.
솔잎의 향기, 선비의 기상
마지막은 경상남도 함양에서 올라온 솔송주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솔잎 향이 첨가된 제품이다. 함양의 개평마을이란 곳에서 무려 500년간 제조법이 이어져 온 무형문화재 35호 전통주란다. 솔잎 향은 송순, 즉 소나무의 어린싹 추출액이 연출해내는 것. 예로부터 선비들이 많이 살던 고장이라 조금이나마 기상이 느껴진다. 그냥 느낌이니 괘념치 말자.
병 모양도 예전 제사용 청주와 매우 흡사하다. 게다가 소나무를 상징하는 녹색. 누가 솔송주 아니랄까 봐 은은한 디자인을 연출한 것이 눈에 띈다. 알코올은 13%, 용량은 700mL다. 병 크기로 봐서는 적을 것 같은데 은근히 많다. 선물용 제품의 경우 전용 잔 2개가 함께 들어 있다.
전통주 시음회의 특권? 근무시간에 술을 마셔보자!
길고 길었던 제품 설명이 모두 끝났다. 제품을 일일이 만나보느라 시음이 늦었다. 본디 여덟 제품을 모두 시음하려 했으나 알코올 함량과 각자의 주량을 배려하여 두 팀으로 나누었으니 별 탈은 없을 터. 다나와에서 술 좀 한다는 사람들이 모였다. 이미 안주와 술잔은 다 준비되었다. 다나와 건물 지하 식당 코너에서 공수한 모둠전과 각종 편의점 안주(족발, 오돌뼈)가 그것.
첫 번째 팀의 멤버는 닉네임에서조차 술 냄새가 나는 것 같은 DPG 운영자 ‘드렁큰허’와 나름 한 술 한다는 여직원 두 명이다(반강제로 끌려 나온 뉘앙스도 없지 않아 있었… ). 근무시간에 마시는 전통주라 더 짜릿한 느낌일 것이다. 영상으로 확인하자.
전통주 4병은 역시 무리였나? 은근히 취하는 앉은뱅이 술도 포함되었으니 주당 셋이 모여도 감당이 안 된다. 지역별로만 나누었는데도 알코올 도수가 이렇게 차이 날 줄은 몰랐다.
주량과 분위기를 생각해 시음자를 따로 잡은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그 상태로 경상남북도, 전라남북도의 굵직한 전통주를 상대하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를 일. 반쯤 취한 멤버를 교체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멤버와 맛보았다.
알코올 도수가 높은 관계로 취기가 올라 주정 부린 점 사과드립니다. 명절에 친척끼리 모여 이렇게 3~4병 까는 것도 보기 드문 일이니 넘어가자. 명색이 시음회였으니 말이다. 근무시간에 술을 먹을 수 있는 특별한 프로젝트였음도 잊지 말자!
반쯤 취한 참가자들의 공통적인 메시지가 있다. 전통주가 은근히 먹을만하다는 것. 몸에 좋은 재료도 다양하게 들어갔으니 기쁜 날, 좋은 날에 전통주보다 더 좋을 술이 있을까? 소주는 독하고 맥주는 배부르고 양주는 향이 싫어서 뭔가 색다른 술을 원하는 주당들에게 상큼한 별미(?)가 될 것이다.
추석엔 전통주, 전통주는 온라인 쇼핑
지금까지 “가격 비교를 통해 온라인으로 주문 가능한” 전통주 8종을 마셔보았다. 처음엔 추석을 맞이하여 전통주를 선물하자는 의도였지만, 점점 온라인 주문이 가능하다는 점을 더 부각시키고 싶어졌다. 그동안 주류는 온라인에서는 절대 구입할 수 없는 금단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전통주에 한하여 법이 개정된 것이 사실이지만, 평소 술을 좋아하는 입장에선 60%가 넘는 독주를 간편하게 온라인 주문으로 받아보는 것이 안 좋을 리가 없다. 게다가 몸에 좋은 성분이 다양하게 들어간 전통주이므로 혼자 먹는 혼술이 아니라 좋은 사람, 반가운 사람과 함께하는 기쁜 동반자 역할을 충분히 할 것으로 생각된다.
비록 시음회를 하다가 취해버려서 제대로 맛 평가를 못 한 것 같지만, 앞으로도 이러한 전통주를 많이 다루어 우리 술 문화를 지키고, 판매도 촉진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내고 싶은 마음이다.
며칠 있으면 추석이니 내려가기 전 미리 온라인으로 주문해 시골집에 배송시켜 놓으면 두 손 무겁게 KTX 탈 일도 없고 일거양득 아니겠는가! 곧 다가올 추석! 전통주와 함께 기분 좋게~ 아주 기쁘게 지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