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정성스럽게 써 내려가는 손글씨 캘리그라피! 디지털화에 익숙한 현대인 사이에서 아날로그 감성이 깃든 손글씨가 인기를 끈다. 붓, 펜 등 다양한 도구를 활용해 자신의 감성을 표현하는 캘리그라피를 향한 사람들의 관심은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코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캘리그라피 잘 쓰는 법, 캘리그라피의 기초, 영문 캘리그라피, 수채 캘리그라피 등 다양한 캘리그라피 전문 서적을 판매하며 캘리그라피 자격증이나 학원 관련 문의도 덩달아 많아졌다. 문자적인 의미를 넘어 조형미를 지닌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인정받는 캘리그라피, 도대체 어떤 매력으로 많은 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알아보자.
캘리그라피가 뭐지?
캘리그라피는 아름다움(kallos)과 쓰기(graphe)의 합성어로 아름답고 개성 있게 글씨를 쓰는 기술을 뜻한다. 유려하고 활동적인 선이나 자유로운 번짐, 스치는 효과, 여백의 미 등을 조형적으로 표현하는 순수 예술 활동이다. 정해진 규격대로 찍어내는 활자와는 달리 감정이나 생각을 담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게 독특한 매력이다.
- 가독성: 예술적인 기교를 넣어 글씨를 표현할 수 있으나 글자가 정확히 보여야 한다. 보는 이들로 하여금 문장의 내용이 전달되지 않으면 잘 쓴 캘리그라피라고 할 수 없다.
- 주목성: 디자인적인 요소가 가미된 글씨이므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 차별성을 지녀야 한다.
- 율동성: 딱딱한 글씨체가 아닌 손글씨만의 리듬감이나 유연함을 지녔을 때 캘리그라피의 매력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 협조성: 글씨를 쓰는 캘리그라퍼와 디자이너 사이의 충분한 협업과 피드백이 있을 때 완성도 높은 캘리그라피 작품을 얻을 수 있다.
- 독창성: 어렵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나만의 감성을 담아 새롭게 캘리그라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캘리그라피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캘리그라피는 14~16세기 북부 이탈리아의 서풍을 이어받으면서 시작되어 영국의 에드워드 존스턴이 20세기 캘리그라피를 부흥, 발전시켰다. 캘리그라피라는 용어는 기욤 아폴리네르라는 사람이 처음 사용하였으며 타이포그래피 디자인 부문에서 캘리그라피를 활용한 사람은 독일의 헤르만 자프다.
서양뿐 아니라 아랍 문화권에서도 독특한 캘리그라피를 사용했는데, 건축물이나 옷 등 각종 생활용품에 문양에 가까운 화려한 서체의 흔적이 남아 있다. 동양의 캘리그라피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사실 한자문화권인 동양에서는 예부터 서예 문화가 있었다.
한국, 중국, 일본 등 나라마다 표현은 다르지만 붓을 활용해 글씨를 쓴다는 점은 같다. 또한 여백의 미나 거친 획, 유려한 곡선 등을 이용해 디자인적 글씨를 활용한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조선 후기 추사 김정희의 글씨나 일본의 히라가나 등이다.
국내에서 캘리그라피는 90년대 후반 서예 학과 출신 작가들을 주축으로 시작되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라는 영화 포스터 속 카피를 캘리그라피로 쓰면서 캘리그라피의 상업 활용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다양한 영화 타이틀, 카피 등에 캘리그라피가 사용되었고, 이상봉 디자이너는 파리에서 캘리그라피가 쓰인 의상으로 패션쇼를 열어 큰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캘리그라피는 2000년대에 들어와서 ‘필묵’이라는 기업과 유명 작가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일본 시장에서는 보편화 되어있던 캘리그라피가 국내 대기업의 패키지나 광고, 로고 등으로 사용 영역을 넓혀가면서 현직 작가뿐 아니라 신진 작가들도 대거 육성되고 있다.
2008년까지 성장세를 보이던 캘리그라피도 경제 불황을 피할 순 없었다. 이때 작가들은 캘리그라피 디자인 협회를 창립하고, 교육과 전시 등을 통해 캘리그라피의 이론을 확립하거나 저변을 확대했다. 2013년 이후 캘리그라피 자격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협회를 중심으로 자격증 제도가 만들어지고 수많은 강사진이 양성되어 현재까지 관심과 배움이 식지 않는다.
앞으로 국내의 캘리그라피 시장은 디자인의 한 영역으로서 성장하며 시장을 더욱 확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캘리그라피 교육 서비스부터 캘리그라피를 활용한 전시나 다양한 볼거리까지, 캘리그라피의 미래 시장은 앞으로 더욱 밝을 것이다.
우리 생활 속 깊숙한 곳의 캘리그라피
캘리그라피의 활용 분야는 드라마나 영화 타이틀, 제품 패키지, 상점 간판, 포스터 디자인 등 다양하다. 독특한 필체나 먹 선으로 제품의 주목성을 높이고, 브랜드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어서 광고주들로부터 각광받는다.
캘리그라피가 제품 패키지 디자인에 활용된 대표적인 사례는 ‘참이슬’이다. 대한항공의 광고 헤드라인, 배스킨라빈스, 기업은행 등 수많은 기업 광고의 캘리그라피를 쓴 이산작가는 캘리그라피로 쓴 ‘참이슬’ 로고를 통해 참이슬을 국민 소주 브랜드로 만드는 데 기여하였다.
교보생명은 광화문 교보빌딩에 내건 간판에 나태주의 ‘풀꽃’, 파블로 네루다의 시 등을 캘리그라피로 디자인해서 사람들의 마음에 따뜻한 감성을 불어넣었다. 이후 브랜드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캘리그라피를 사용해 만든 청첩장, 연하장 디자인이 인기를 끌고 있다. 신혼부부의 첫 시작을 응원하는 글귀를 캘리그라피로 새겨 넣은 청첩장은 간결하지만 개성 있는 붓놀림과 독특한 디자인으로 주목받는다.
이뿐 아니라 캘리그라피를 새겨 넣은 머그잔이나 휴대폰 케이스 등을 판매하거나 원하는 글귀를 캘리그라피로 직접 써주는 주문 제작 쇼핑몰도 높은 인기를 구가한다. 인쇄 출판 업계를 넘어 디자인적인 소스가 필요한 전방위적인 부분에서 다양하게 활용되며 타이포그래피와는 다른 독특하고 아날로그적 감성을 자극하고 있다.
타이포그래피, 캘리그라피, 서예의 차이는?
캘리그라피는 서예를 기반으로 두지만 서예와 달리 콘셉트에 따라 다양한 요소를 결합해 조화를 이루는 조형적인 디자인이 가미된 문자 예술이다. 타이포그래피는 활자를 표현한다는 활판 인쇄 용어의 확장으로 문자 디자인과 관련된 레이아웃, 이미지, 색 등의 모든 요소를 아우르는 것으로 인쇄 활자를 소재로 한다. 현재는 타이포그래피에 속하는 폰트에 캘리그라피 형태가 많이 포함되어 타이포그래피와 캘리그라피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다.
캘리그라피에 필요한 기본 준비물
캘리그라피를 하기 위한 도구나 장비의 특성을 이해하면 자신이 원하는 표현을 만들고 싶을 때 적재적소에서 활용할 수 있다.
1) 붓
붓은 대부분 동물 털로 만들며 양털로 만든 양호필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 양호필의 장점은 부드럽고 다양한 변화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붓대가 20cm 내외, 붓털이 5cm, 지름이 1cm 이내인 붓이 적당하다. 쉽게 잡을 수 있고 굵은 획부터 얇은 획까지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
붓 관리는 중요한데, 붓을 씻을 때는 흐르는 물에 씻고 붓걸이에 걸어 붓털이 아래로 향하도록 한다. 붓에 물기가 있는 상태로 붓말이에 보관하면 곰팡이가 생길 수 있으므로 주의한다.
2) 먹
먹은 아교와 향료를 사용한 ‘송연묵’과 식물의 씨앗을 태운 그을음으로 만든 ‘유연묵’으로 나뉘며 일반적으로 송연묵을 많이 사용한다. 검은색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얼마나 가느냐에 따라 다양한 흑색을 띤다. 캘리그라피 입문자라면 갈아 쓰기보다는 먹물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먹 가는 시간을 단축해 글씨 연습에 더욱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종이
캘리그라피를 연습할 때는 ‘화선지(연습지)’를 많이 사용한다. 먹색을 더욱 선명하게 보이고 싶거나 컴퓨터로 옮기는 작업을 할 경우 먹 번짐이 덜하도록 화선지 두 장을 겹친 이합지를 사용하기도 한다. 화선지 외에도 섬세한 번짐을 표현할 수 있는 ‘작품지’가 있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여도 질감이나 만든 시기, 지역에 따라 다양한 종류로 나뉜다. 수분을 흡수하기 때문에 직사광선에 노출되면 마를 수 있으며 습한 곳에 두면 수분을 흡수한다. 6개월 이상 장기 보관해야 한다면 비닐 포장을 하는 게 좋고, 대량구매보다는 필요할 때마다 구매하는 것을 추천한다.
4) 벼루
많이 사용하는 벼루는 중국의 단계연이다. 단계연은 먹이 잘 갈리고 마르지 않는 장점이 있다. 입김이나 손의 온기에도 잘 마르지 않고 먹을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벼루를 고르는 게 좋다. 먹을 갈아 쓰지 않고 먹물을 사용한다면 사기그릇이나 유리그릇을 사용한다. 먹을 흡수하지 않고 사용 후 씻기 쉽다.
5) 모포
화선지에 붓으로 글씨를 쓰면 밑에 묻어날 수 있기 때문에 바닥에 까는 천이 필요하다. 화방이나 문구점에서 구매 가능하며 검은색과 흰색 모포로 나뉜다. 그림 그릴 때는 흰색 모포를, 글씨 쓸 때는 검은색 모포를 많이 사용한다.
이외에도 먹물이 튀거나 묻으면 옷이 오염될 수도 있기 때문에 앞치마나 팔토시 등은 필요에 따라 준비하면 좋다.
다양한 느낌 표현이 가능한 캘리그라피 아이템
과거에는 실제 붓을 사용한 캘리그라피 작업을 많았나 부담 없이 편안한 느낌을 주는 펜 로고 타입이 인기를 끌면서 요즘은 붓펜 등 간편한 도구를 활용해 광고 문구나 책 제목, 부제 등을 쓰는 경우도 많아졌다. 어떤 제품이 있는지 알아보자.
1) 캘리그라피 펜
펜촉이 납작해 가로와 세로 선의 굵기 조절이 가능한 도구로 폰트처럼 딱 떨어지는 글씨체를 쓰기에 적합하다. 납작 사선 팁과 납작 사각 팁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팁이 단단하기 때문에 캘리그라피 입문자가 사용하기 쉽다.
2) 붓펜
붓펜은 촉이 부드러워 실제 붓과 같은 느낌을 주는 ‘부드러운 붓펜’과 ‘끝이 뭉툭한 붓펜’으로 나뉜다. 부드러운 붓펜은 번짐이나 거친 느낌을 표현하기 좋으며 뭉툭한 붓펜은 도톰하고 귀여운 느낌의 글씨를 표현하기 좋다. 대표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것은 쿠레타켓 붓펜. 붓이 크기별로 나누어져 있어 골라 사용할 수 있으며 필모의 갈라짐이 붓에 가까운 게 장점.
다양한 컬러 붓펜도 있다. 아카시아 붓펜은 수용성 염료 잉크로 재현한 일본 전통 색상 붓펜으로 20가지 색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과감한 터치나 섬세한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며 붓펜에 물을 적셔 농도 조절도 가능해 활용도가 높은 제품이다.
3) 물붓 (water brush)
붓펜과 마찬가지로 실제 붓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으며 물을 채워 넣은 뒤 원하는 색상의 물감을 찍어 글씨를 쓸 수 있는 도구. 수채화 느낌의 투명한 글씨나 그러데이션(gradation) 효과를 줄 수 있다.
4) 만년필
얇고 가벼운 선을 표현하기 좋아 날렵한 글씨체나 흘림체를 쓸 때 사용한다. 그립감과 필기감이 좋으며 이탤릭체를 쓸 때 많이 사용한다. 펜촉이 뾰족한 것과 넓은 것이 있으며 굵기에 따라 글씨에 느낌을 다르게 낼 수 있다.
뾰족한 펜촉의 경우 A4용지가 아닌 화선지에 작업할 경우 먹물이 번지면서 따뜻한 느낌을 줄 수 있다. 라미 만년필은 탄탄한 필감을 주는 스텐스틸 촉에 손에 쥐었을 때 안정적인 그립감을 준다. 10만 원 이하로 저렴하면서도 고품질이라 젊은 층에서 인기가 많다.
5) 색연필
일상생활 속에서 많이 사용하는 채점용 색연필은 질감이 독특해 투박하지만 독특한 글씨를 쓸 수 있어 캘리그라피 도구로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유리, 플라스틱 등에 쓰는 것도 가능하므로 다양한 곳에 활용하기 좋은 도구다.
6) 그 외
작품 콘셉트에 따라 붓이나 펜에 국한하지 않고 나무젓가락, 빨대, 수세미, 립스틱, 휴지 등 다양한 도구를 활용해서 글씨를 쓸 수 있다. 도구마다 가지고 있는 특징을 알고 사용하면 생각지 못한 독특한 표현물을 얻을 수 있다.
당신이 캘리그라피 작품을 만든다면
캘리그라피의 정의, 역사, 캘리그라피에 필요한 준비물 등 캘리그라피가 무엇인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평소 캘리그라피에 관심이 있거나, 특별한 취미를 갖고 싶었다면 이번 기회에 도전해 보는 건 어떨까.
붓, 붓펜, 만년필 등 다양한 도구의 특성을 활용해 나만의 캘리그라피 작품을 만든다면 무료한 일상 속에서 큰 활력이 될 것이다. 당신이 캘리그라피 작품을 만든다면 어떤 도구를 사용해 작품을 만들고 싶은가?
기획, 편집/
이은화([email protected])
글, 사진/
윤현진([email protected])
원문: 다나와 D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