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풀 원작의 <26년>이 판권이 팔린 지 5년 만에 개봉된다. 참 반가운(?) 일이다.
반가운 일이라기보다 너무 늦었다고 해야 할까? 만들어졌어도 진즉 만들어졌어야 하는 영화인데… 오늘 <26년>의 포스터를 보면서 문득 5년 전에 있었던 <26년>에 대한 에피소드가 한 가닥 생각이 나서 그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어찌 보면, 강풀의 <26년>에 꽤 지대한 공을 세운 게 나였을지도 모른다. 왜?
“그분”을 죽이는 방법을 같이 연구한 것이(바로 총에 관계된 부분)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만화가 강도하씨가 <로맨스 킬러>를 할 때 총 좀 구해줄 수 없냐는 말에 집에 가지고 있던 핸드건(물론 BB탄이 나가는 가스 핸드건이었다)을 바리바리 싸들고 가서 직접 시범을 보였던 기억이 난다. 베레타와 007이 쓰는 PPK를 포함해서 스콜피온 등등 꽤 많은 총을 들고 가서 그립감과 함께 조작법, 사용법 등을 알려드렸다.
그 이후 가끔 인연이 되는 만화가분들에게 이쪽 관련해서 조언(?) 아닌 조언을 드렸던 기억이 난다. 물론, 공짜다. 원체 만화를 좋아하고, 만화가들하고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기에 이들이 연락 오면 열일 제쳐놓고 도와줬던 기억이 난다.
2005년이었나? 강풀 작가가 연락이 왔다.
딴지일보 시절의 인연도 인연이지만, 강도하 작가가 먼저 연락이 왔다.
– 풀이가 뭘 좀 하려는데, 좀 도와주세요.
늘 그랬던 것처럼 선선하게 응답을 해줬다.
– 예, 제가 할 수 있는 거면 도와드려야죠.
그때 모 잡지사에서 취재팀장으로 일하고 있을 때였다. 한참 MBC 용인세트장과 KBS 수원 세트장을 달렸던 기억이 난다(불멸의 이순신 때문에 나주까지 갔던 기억이 난다. 아… 젠장. 지금 생각해도 토가 나온다). 좀 정신이 없었던 시절이었는데, 강풀 작가가 연락이 왔다. 지금 기억으로는 내가 지금 어디로 가기 어려우니 회사 사무실로 오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양영순 작가와 강풀작가, 그리고 지금 사모님이 되시는(그때는 애인이었던) 여성분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왔다.
– 공기총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요?
– 가까이서 쏘면 죽죠.
– 그게… 차 유리창을 깨고 죽일 수 있을 정도의 파괴력을 가진 공기총을 만들 수 있을까요?
뭔가 좀 이상했다. 결국, 개괄의 스토리를 다 듣고 난 다음에 그 “조건”들을 확인했다. 나름 영화판에 있었고, 시나리오 작가 타이틀로 살았던 시절이었기에 수긍이 갔다. 결론은 간단했다.
– 설정이 뭔가 좀 있어 보이고, 파괴력이 있으면서도, 이야기의 극적 긴장감을 위해 어떤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 “설정”이 필요했다.
“그분”을 죽이신단다.
당연히 도와드려야(?) 할 일이다.
알았노라고 대답하고는 그때부터 설정 구성에 들어갔다.
그때 생각했던 게,
첫째, 공기총탄의 머쉬롬 효과를 위해 끝을 뾰족하게 만든다.(별 효과는 없겠지만, 뭔가 있어보이게…)
둘째, 공기압축을 위해 콤프레셔를 단다. 공기총은 공기 압력을 에너지원으로 쏘는 게 아닌가? 압축공기 대신에 콤프레셔를 달면 압력은 훨씬 더 세진다.
셋째, 그 전원은 리튬이온 전지로 한다(가벼워야 하니까)
넷째, 콤프레셔는 무게를 고려해서 착탈식으로 한다.
다섯째, 압력을 고려해서 압축공기 실린더는 카본으로 대체한다(무게중심을 고려해서)
마지막 다섯 번째는 설정의 긴박감을 위해서 카본으로 했던 기억이 난다.
실제로 2~3일간 이런저런 고민을 많이 했다. 실제로 내가 공기총으로 “그분”을 저격한다는 생각으로 고민을 했다(나중엔 내가 진짜 그분을 쏘는 꿈도 꿨다. 아 놔… 내가 한혜진이 되는 거야?).
그리고 강풀씨와 다시 만나 이 설정을 그대로 전달했다.
강풀씨는 감사의 의미로 그 분의 그때까지의 작품들을 친필 사인본으로 건네줬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그 책 잘 보고 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내 설정은 그대로 만화로 녹여내 작품으로 나왔다.
여기서 끝난 줄 알았다. 그런데 다급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 이번엔 실총을 좀 구할 수 없을까요?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강풀씨에게는 만화가로서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다. 보고 그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실제 모델이 눈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그걸 사진으로 찍고, 그걸 보고 그림을 그린다고 들었다(본인에게 직접 들었으니까)…
당시 만화가들 사이에서 나는… 좀 이상한(?) 존재로 소문이 나 있다.
– 총이 많다!
– 시판 된 전동건, 가스건, 모델건이라면 어디서든 구한다!(이건 선배 덕분이다. 지금은 은퇴하신 그분은 거의 대한민국의 건 스미스 수준이었다)
– 자료 조사도 편하게 해준다.
(이건 분명한 과장이다! 실제로 그럴 능력도 없다. 다만… 뭐 좀 구하기는 쉽다. KBS 스페셜인가? 거기 PD분이 “민간군사기업”에 대한 특집을 기획했을 때 총과 장비를 구하기 위해 처음으로 연락한 사람이 나였다. 영화판의 프롭총기를 구하는 게 훨씬 낫지 않겠느냐고 했는데, 결국은 그걸 연결해줘서 촬영을 도와줬던 기억이 난다. 그 총들 전부 모델건, 가스건, 전동건들이었다…시키면 했다)
솔직히 말하겠다. 군사전문가 노릇 할 때가 있었다. 그리고 총도 꽤 있었다.
물론 <실총>이 아니다! 마루이, 다나까라면 알만한 사람은 안다. 그렇다 BB탄 나가는 가스건이나 전동건들이다. 물론 100% 실총을 재현한 극 사실 실총들이다. 바렐들도 전부 금속제였고, 나무재질은 나무로 된 것들, 모델건도 몇 자루 있었다.
이것들 모으느라 돈 좀 많이 깨졌다. 중형차 한 대는 말아먹었을 것이다.
지금은 거의 다 처분하고, 남아있는 건 그냥저냥… 그런 수준이다.
어쨌든 당시 강풀씨의 SOS는 다급했다. 조건은 간단했다.
마지막 장면을 위해서 저격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당시 나는 이 상황에 꼭 맞춤한 저격총을 한 자루 가지고 있었다.
아마 다나까제였을 것 같은데, 레밍턴 M700 이었다. 스코프도 꽤 고배율로
간지가 제대로 였다. 문제는… 개머리판에 미세하게 금이 가 있어서(나무재질이었는데, 내가 기름칠을 게을리해서) 수리를 맡겼었다.
그걸 내 지인분… 정확히 콕 찍어 말하자면, 형이 가지고 있었다.
당시 이 형이 태릉에 사무실이 있었는데, 이걸 급히 가져와 달라고 했다.
이 형님이 또 강풀 작가 팬이었다. 급하게 지하철을 타고 광흥창까지 달려오는데… 아뿔싸, 이 형이 마음이 급해서 이 총을 지하철에 놓고 내린 것이다!!
이 녀석이다. M700…당시 내 생각은 간단했다.
– 저격총이라면, 볼트액션식이다! 반자동 저격총은 아니다. 뭔가 긴박한 설정을 위해서는 볼트액션으로 한발씩 저격하는 것이 멋있지 않겠는가? 노리쇠 후퇴하고 땡기고 하는 그 시간차…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잭슨이 보여준 그 화려한 손짓과 긴박감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넉넉한 7.62미리 탄이면, “그분”을 시원하게 저격할 수 있을 거야.
라는 생각이었다. 때마침 이 총을 가지고 있었고 말이다.
이 모든 계획이 틀어졌다. 당장 그림은 그려야 하고(아 놔, 내 레밍턴!! 돈이 얼만데 ㅠㅠ), 마감은 코 앞이고… 강풀 작가에게 물어봤다.
– 저는 볼트액션이 좋을 거 같은데…
– 어쩌죠? 마감이…
어쩔 수 없었다. 형이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기 시작했다. 내 총의 안위는 이제 둘째 문제였다(그때 우리 둘이 얼마나 떨었는지 몰랐다. 9시 뉴스에 “저격총 발견” 뭐 그런 뉴스가 뜰까봐…물론 BB탄이 나가는 장난감이지만…툭하면 경찰들이 잡아와서 인마살상용 총이라고 하도 뻥을 쳐놔서…).
강풀 작가의 몸이 달아올랐다. 당장 총이 있어야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다. 모델은 있는데(애인이니까), 총이 없는 것이다. 이때 형이 타협안을 제시했다.
– 저격총은 저격총인데…반자동도 괜찮아요?
그 형님이 지금 당장 수배할 수 있는 총이 한 자루 있는데…물론 스코프가 달려 있었으니 저격총 맞다. 생긴것도 저격총이고, 실총도 저격용으로 쓰이는 것이다. 문제는 이게…너무 샤프하고, 멋있었다는 것이다. 바로 SR-25였다.
이 녀석이다!!
볼트액션(노리쇠를 뒤로 한번 땡겨서 장전… 완전 수동식으로 생각하면 된다)식 저격총이 순식간에 반자동 저격총(한방씩 땡기면 바로 나간다)으로 뒤바뀐 것이다. 그 형…솔직히 말해서 우리나라에서 모델건이나 전동권, 가스건 구하라면 다 구하는 분이다. 발도 넓고, 성격도 좋아서 잘 구해온다.
강풀작가도 어쨌든 저격총이면 된다고 하신다.
당장 그분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우리밖에” 없었으니까…
결국 그 형은 그 날로 부랴부랴 SR-25를 수배해서 강풀 작가의 화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강풀 작가의 애인 되시는 분(지금의 사모님)이 모델이 돼 부랴부랴 마감을 넘긴 걸로 안다.
그럼 이 총은? 결국 내 총이 됐다.
M 700을 지하철에서 잃어버린 도의적인(?) 책임을 느낀 그 형이 M700 대신 이 녀석을 구매해서 내게 양도했던 것이다.
만약 그때 그 형이 총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한혜진 씨는 지금쯤 레밍턴 M700을 들고 스크린을 뛰어다녔을 것이다. 화보 포스터를 보니, 영화상에서도 SR-25를 쓰는 걸로 보이는데, 원래 내 생각은 M 700이었는데, 역시 저격총은 볼트액션이어야 한다는 나름의 철학이 있어서…
2005년도면 몇 년 전 일인가? 벌써 7년은 지난 이야기가 아닌가? 영화 <26년>의 개봉을 앞두고, 이런저런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 글 한 번 써봤다. 어제일 같은데, 벌써 7년이나 지난 일이라니, 우리사회가 많이 민주화 됐다고 하지만,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이렇게 오랜 세월이 걸린 걸 보면, 아직 민주화가 덜 된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26년>의 흥행을 기원한다.
첨언 : 요즘은 총 가지고 안 놉니다. 다 어린 시절 이야기입니다. 어린 시절… 쿨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