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트럼프를 뽑았을까?
트럼프가 취임한 지도 200일이 지났다. 예전 같으면 ‘허니문 효과’로 인해 언론과 대중의 지지를 흠뻑 받을 시기이지만 어쩐 일인지 백악관은 하루도 빠짐없이 시끄럽기만 하다. 2000만 달러가 넘는 세금을 리조트에 가는 데 쓰는가 하면, 필터라곤 모른다는 듯 생각을 있는 그대로 트위터에 옮기는 그의 습관은 북한으로부터 “자만에 가득한 기괴한 글들을 트위터에 올리고 있다”고 비판받을 정도다.
지지율도 좋지 않다. 워싱턴포스트와 ABC 방송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36%로 조사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오바마의 지지율은 70%에 가까웠다는 것을 기억해본다면 현재 트럼프의 입지가 얼마나 불안한지를 알 수 있다.
이쯤 되니 비난은 트럼프의 지지자들에게 옮겨가고 있다. ‘백인 노동계급’으로 대표되는 이들은 지난 미 대선에서 트럼프의 당선에 결정적으로 공헌한 바 있다.
미국의 역사가 민주주의와 인권, 여성의 권리와 LGBT 권리를 확대라는 커다란 세계적 싸움에서 물러나지 않기를 바란다는 오바마의 미래 지향적인 제안을 뿌리치고 Make America Great Again이라는 트럼프의 구호에 손을 들어준 사람들의 생각은 뭘까?
그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J.D. 밴스가 증언하는 백인 노동 층의 삶에 대해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제조업의 몰락 = 백인 노동 계층의 몰락
예일 로스쿨 출신이라는 간판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와 다르게 밴스는 백인 저소득 노동 계층이 밀집한 그레이터 애팔래치아 지역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소위 ‘러스트벨트’에 포함되는 곳으로, 미국 제조업의 몰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지금은 몰락이라는 표현밖에 남지 않았지만 본래 이곳은 ‘포드식 대량생산’으로 대표되는 미국 제조업의 황금기를 이끈 곳이었다. 하지만 비용 절감을 이유로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 노동통계국의 조사에 따르면 1970년대 2000만 명에 달하던 제조업 종사자 수가 2010년 기준 1000만 명 이하로 떨어졌을 정도다.
경제적인 안정이 무너지면서 지역을 구성하던 기초 단위인 가정 또한 몰락하게 된다. 여덟 명의 아이를 ‘만들’ 시간은 있었지만 ‘부양할’ 시간은 없는 사람이 최소한 몇 명씩 존재한다. 또한, 엄마는 남편에게 돌이킬 수 없는 모욕을 퍼붓고 남편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주먹을 치켜드는 가정도 허다하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아이들은 너무도 손쉽게 마약을 배우고 만다.
시스템이 구원하지 못한 개인의 삶
J.D. 밴스의 삶 또한 다르지 않았다. 아버지는 양육권을 포기한 채 집을 나갔다. 어머니는 약물 중독자였다. 친구들은 중학생 때부터 대마초를 피우고 있었다. 밴스 앞에 준비된 삶은 명확했다. 운이 좋으면 기초수급자가 되는 것이고, 운이 나쁘면 마약 과다 복용으로 사망하는 것이다.
밴스가 사는 곳은 미국이지만, 사람들이 아는 미국과는 다른 곳이었다. 면접 복장으로 전혀 적절하지 않은 해병대 전투화와 군복 바지를 입고 가거나, 면접자에게 준비된 탄산수를 생전 처음 마셨다가 뱉어버리는 그의 경험담은 이러한 사실을 가장 확실하게 증명한다.
이러한 밴스의 삶을 구원한 것은 시스템이 아니었다. “내 삶의 방정식에 변수로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엉망이 됐을 거라는” 밴스의 고백처럼, 유년시절의 그를 정서적으로 안정시켰던 외할머니의 헌신과 사랑이 아니었으면 실리콘밸리에서 투자회사를 운영하는 지금의 밴스도 없었을 것이다.
미국 제조업이 붕괴하는 과정에서 가족이 해체되고 소외와 가난이 지배하는 동안 미국 정부는 아무런 기능도 하지 않았다. 도리어 인권이나 복지와 같은 진보적인 가치를 거부하는 러스트벨트의 사람들을 힐빌리(산골 촌놈)이라고 비하할 뿐이었다.
이성만으로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
논리적인 엘리트들의 말에, 배움이 짧은 ‘힐빌리’들은 제대로 대꾸하지 못했다. 다만 분노할 뿐이었다. 그 결과는 트럼프를 선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애초 민주당 클린턴 후보가 우세할 것으로 전망되던 러스트벨트의 지역에서 모두 공화당이 승리한 것이다.
오바마는 힐러리 후보 지지 연설에서 ‘자신이 아는 미국은 품위 있고 너그럽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하지만 담배를 살 수 있을 나이가 되기도 전에 임신하고, 소녀를 강간한 노인이 총알이 박힌 시체로 발견되는 몰락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품위와 너그러움이란 사치에 불가할지 모른다.
J.D 밴스의 회고가 담긴 책 ‘힐빌리의 노래’를 두고 빌 게이츠는 “가난의 원인이 되는 문화의 다면적인 성격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이 문장은 트럼프를 선택한 사람들의 심리를 설명하는 데도 유효하다.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잣대만으로는 시속 160km로 운전하면서 자식에게 함께 죽자고 말하는 러스트벨트의 불안정한 부모들의 심정을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힐빌리의 노래’는 소외받은 사람들이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전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