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가 오고 컴퓨터와 과학의 발전이 고도화될수록 개인의 글쓰기 요구는 더욱 높아진다. 자신의 생각과 특성을 드러내는 게 글쓰기라는 방법을 통해 가장 잘 발현되기 때문이다. 기업체나 대학을 들어갈 때 면접의 비중도 매우 높아지고는 있지만 피면접자의 사전 이미지를 만들어 주는 역할은 지원서와 자기 소개서듯 미래 사회에서 자신만의 특성과 장점을 글을 통해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없다면 경쟁에 뒤처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글쓰기에 그다지 내세울 만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조그만 해외 교민 신문사에서 파트 타임으로 기자 생활을 1년 정도 한 것, 다른 사람들이 잘 보지 않는 옛날 영화들을 좋아한 탓에 영화 평론은 10년 조금 안 되게 했던 것, 변호사 시절 지역 신문에 법률과 관련된 칼럼을 6~7년가량 꾸준하게 연재했던 것이 글쓰기 경력 전부다.
책을 내보았거나 전문적인 작가, 기자로 활동한 것이 아니기에 글을 쓰던 기간에도 문장 구조나 문체, 단어, 맞춤법 때문에 항상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랬던 내가 이런 칼럼을 쓰는 건 어쩌면 한동안 글쓰기를 멈추고 살았던 나에게 글쓰기가 새로운 생활의 활력이 되어 줄 것이라는 기대인지도 모르겠다. 평소 그다지 말주변 있는 편이 아니고, 낯 가리는 성격 때문에 쉽게 말을 걸지 못하는 단점을 글쓰기가 어느 정도 보완해주었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글쓰기를 즐겼던 건 아니다. 글을 쓴다는 것이 정말 두렵고 어려웠고, 재주가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절망에 빠진 적도 있다. 하지만 절망과 공포를 넘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 자신에게 뭔지 모를 뿌듯함이 생겨나는 것을 느꼈다. 이 연재를 통해 내가 느꼈던 이런 무서움과 공포, 그리고 절망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그나마 작은 희망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영화 평론을 시작했을 때가 생각난다. 틈틈이 영화 보면서 배우나 감독 제작자 등의 정보를 모으고 그 내용과 다른 사람들이 그 영화에 내린 평들(대부분의 경우 해외 비평을 참조했다)을 읽고 나면 뭐라고 써야 할지 계획이 서곤 했다. 그렇게 쓴 글이 활동하던 동호회 회원 리뷰를 통해 알려졌다.
이후 비회원을 위해 공개하는 콘텐츠에 선정되어 메인에 올라가면서 일부 잡지에서 평론 청탁을 받았다. 평론은 천직이기보다는 취미였기에 결혼하고 아이의 아빠가 되면서 접었지만, 당시 일주일에 최소 1개 이상의 기사와 평론을 쓰면서 나 자신을 표현하고 글을 통해 내 관점을 전달하는 능력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 어릴 적 글이나 책과는 담을 쌓고 사는 아이였다. 글은 4살 위의 누나가 타고난 재능이 있어 전국적인 글쓰기 대회에 나가기만 해도 상을 받아왔으니 그런 누나에 비해 나의 글쓰기는 장난처럼 느껴졌다. 중학교 시절 방학 숙제로 제출한 독후감을 읽은 담임선생님이 초등학생이 쓴 것 같다는 혹평을 하셨을 때는 정말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군대를 제대하고 본 입사시험에서 논술 시험에 제대로 된 글을 쓰지 못해 백지 제출하고 시험장을 나섰던 기억이 떠오르면 지금도 참담하다. 법학대학을 나와 그래도 웬만한 글은 쓸 수 있는 훈련을 했다고 자만했지만 그런 생각이 진짜 자만이었음을 알게 되니 도저히 자신감이 생기질 않았다. 하지만 나 자신도 모르게 언젠가부터, 글쓰기를 통해 어쩌다 보니 영화에 되도 않는 평론도 하고 영화 및 문화 관련해 칼럼 쓰는 일을 할 수 있었다.
글쓰기가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내 예전 모습이 떠오른다. 누군가가 내 글을 읽어 보고 “유치하다” “재미없다” “초짜 같다” 심한 말로 “쓰레기다”라고 평가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고민에 휩싸이는 그런 모습 말이다. 그런데 글쓰기를 하다 보면 이런 걱정이나 고민이 다 부질없다는 것을 어느 순간 느끼게 된다.
글은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는 행위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대규모 군중을 상대로 하는 연설이나 여러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에 비해 어쩌면 글은 훨씬 쉬운 의사 전달 수단이라 할 수 있다. 연설이나 강의는 듣는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통한 소통이 매우 중요한 반면 글은 자신의 의사를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면서 많은 사람이 두려워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비판이나 비난이다. 하버드에서 글쓰기 강의를 30년간 해온 바바라 베이그는 자신의 저서 『하버드 글쓰기 강의(How to be a writer)』에서 작가를 포함해 글을 쓰는 많은 사람의 가장 큰 착각이 글의 평가와 그 권한이 독자에게 있다는 생각이라 말했다.
그는 다른 사람의 평가나 비난이 두려워서 글을 쓰지 못하고, 평가에 대한 두려움은 교육 제도를 통해 교사나 교수들이 학생들의 글을 평가하는 시스템에서 기인 한 것이라 비판한다. 글쓰기라는 소통의 방식에서 표현과 구성, 어투, 문장의 완성 등 소통 방법의 결정권은 전적으로 작가에게 존재하고 독자는 소통 방식을 따르지 않을 경우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작가의 글을 읽지 않는 것”이라 단정한다.
최근 발전한 과학 기술과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일방적인 작가의 소통 방식이나 작품에 대한 비난 및 비판이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하는 사실은 연설이나 토론회, 대화의 경우처럼 면전에 대놓고 비난하는 것보다는 감정적인 괴리가 확실히 존재한다. 그렇기에 글쓰기가 가장 어렵거나 힘든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해주고 싶은 말은 “뭐라도 써봐라”다.
일기라는 형식의 글쓰기는 글쓰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합리적이고 좋은 방식의 글쓰기 연습장이다. 어린 시절 일기를 썼던 경우 방학 숙제로 써간 일기 때문에 좋은 기억이 없을 것이다. 실제 일기는 다른 사람에게 읽히기 위해서 쓰는 글이 아니다. 일기는 하루를 돌아보고 그날 일을 다시 한번 정리하면서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는 장치로써 사용되는 글쓰기 도구로, 원한다면 절대적인 비밀을 보장받을 수 있다.
아무도 읽지 못하는 나만의 글. 매력적이지 않나? 무슨 얘기를 써도 절대적인 비밀이 보장되는 글이 생긴다는 것. 남에게 할 수 없는 이야기를 나 자신에게 해보는 기회를 가지는 것이 일기의 매력이다. 그럼에도 일기를 꾸준히 쓴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특히 직장을 다니거나 아이들의 육아를 하는 가정주부가 일기를 쓴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럴 경우 가능한 방법은 나만의 일간 메모를 써보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하루를 확인하는 방법이 일일 메모를 쓰는 이유다. 그날 했던 일, 인상에 남은 사람, 사건, TV프로와 같이 자유롭게 써 놓는다. 일주일이 끝날 때쯤 다시 한번 해당 메모한 내용을 보면서 기억을 되살려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다.
아니면 일상을 사진으로 담고 간단한 설명 메모를 담아 보자. 매일 하지 않더라도 사진을 찍을 기회가 되면 찍어서 보관하는 습관을 가지는 것도 좋다. 사람, 풍경, 동물이나 일상 등 뭐든 일단 찍어 두고 저녁에 하루를 마감하면서 사진들을 꺼내 보고 메모해두는 연습을 하면 나중에 글을 쓰는 데 도움 될 수 있다(단 영화관에서 사진을 찍는 것처럼 몰상식한 일은 하지 말자).
이렇게 자신만의 메모나 일상을 적어 나가다 보면 나름대로 표현이 늘어나는 걸 알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사진을 보여주면서 내용을 설명할 때 더욱 자세한 표현이 생각나듯 말이다. 많은 사람이 글쓰기에 두려움을 가지는 건 자기 글의 자신감 부족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운동선수도 태어날 때부터 운동을 잘하는지 알 수는 없다. 독후감이나 정해진 틀에서 써야 하는 글짓기 같은 부분에서 연습도 없이 뛰어난 능력을 낼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글쓰기는 운동과 똑같이 계속 훈련하고 연습을 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기술이다. 표현의 풍부함 같은 약간의 차이에서 감수성이나 타고난 실력이 드러날 뿐이다. 내가 이해하는 글쓰기는 최소한의 자기표현, 다른 사람과 10분 정도의 대화를 나눌 능력,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기술이다.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걷어차고 기회가 될 때 무엇이든 써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원문: B2B 교육 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