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들, 종교인 과세유예 법안을 발의하다
한 무리의 국회의원이 2018년 1월 1일부터 시행할 종교인 과세 조건으로 국세청 훈령에 교회나 사찰 등에 대한 세무조사 금지를 명시하라고 요구했다. 지난 50년 동안 미뤄왔던 종교인 과세를 또다시 2년간 미루자는 법안을 발의했다가 여론의 반발에 부닥치자 내놓은 요구다.
이 일단의 국회의원은 법안을 대표 발의한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여야 의원 25명(위 제안자 목록 참조)이다. 세무조사 금지를 명시하라는 요구에는 23명이 참여했는데 제안자 가운데 빠진 2인이 누군지는 기사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보도에 따르면 이 법안 발의에 참여한 의원은 72%가 기독교 신자라고 하는데, 세무조사 금지를 요구한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진표 의원과 안상수(자유한국당), 조배숙(국민의당) 의원은 모두 소속 정당의 ‘기독인회’ 회장이다.각각 수원중앙침례교회 장로, 인천 계산중앙감리교회 권사, 이리성산교회 권사다. 교파가 다를 뿐 모두 개신교회의 직분을 가진 이들이다.
한국 교회는 짧은 시간에 비약적으로 성장했지만 그만큼 그늘도 짙다. 성장한 만큼 사회에 그 과실을 되돌려주지 못한 채 정치와 유착되면서 교회는 이미 정치 권력도 쉽게 손댈 수 없는 또 다른 권력이 되었다.
이미 한국 개신교는 이승만, 김영삼, 이명박 등 세 명의 장로 대통령을 배출했다. 교인들이 가진 표의 힘은 무시할 수 없다. 정치인 가운데 표를 의식하고 교회에 가는 이들이 있을 만큼 비약적으로 성장한 교회는 선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이익집단이 된 것이다.
유독 한국의 개신교계가 보여주는 타종교에 대한 배타적 폐쇄성도 일반의 인식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 2000년대 이후, 개신교 출신의 정치 목사들이 극우세력에 진출하면서 이런 인식은 더 나빠졌다. 이들은 때로는 폭력을 수반하는 집회를 이끌면서 민주 진영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걸로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증명하곤 했다.
정치인을 통해 영향력 확대해 온 교회
교회는 소속 교인인 정치인을 통해 자신의 민원을 해결하고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한다. 이명박 장로의 소망교회는 이명박 정부 인사의 강력한 한 축(고·소·영)이었다. 이들은 거대 교회의 위세에 기대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게 된 대신 교회는 시민과 멀어졌다.
기독교인인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자신의 독실한 신앙을 증명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를 봉헌하는 걸 즐기기도 했다. 2004년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그랬고 그의 고향인 포항의 시장도 그를 따랐다. 전남의 목포시장과 충남의 서산시장도 이 봉헌 대열에 합류했었다.
“서울시를 하나님 도시로 봉헌하겠다.”
- 이명박 전 서울시장
“포항을 기독교 도시로 만들겠다.”
- 정장식 전 포항시장
“목포시가 하나님의 도성으로 발돋움하도록 기원해 달라.”
- 전태홍 전 목포시장
“서산의 복음화를 위해 기관장들이 예배를 드리게 된 것을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
- 조규선 전 서산시장
본인의 신앙 고백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임기가 끝나면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지자체장이 도시를 ‘봉헌’하겠다는 발상이 어떻게 가능할까. 시민들의 다양한 신앙을 존중하고 종교의 자유를 지켜야 할 시장이 도시를 특정 종교의 도시로 만들겠다는 건 자신의 책무를 포기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천주교와 진보 개신교단이 독재정권 때에 민주화 운동에 이바지하긴 했지만 한국 기독교는 친미, 반공을 앞세우면서 독재 정권에 협조함으로써 오늘의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세계 10대 대형 교회 안에 1-2위를 포함해 5개나 속할 만큼(1993년 《크리스천 월드》) 가파른 성장은 외형에 그쳤다.
교회는 주류 사회로 편입하는 데 필수적인 코스가 되는 과정에서 보수 기득권의 가치관과 이해를 대변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것은 열린 사회로 나아가는 걸 가로막는 걸림돌로 기능한다. 교회는 보수와 독재를 옹호하고 성 소수자 차별과 배제에 동의하는 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히 드러낸다.
‘한국 근대사에서 개신교는 거의 언제나 증오하고 공격하고 배척하는 존재로 우리 사회 속에 각인’(김진호, 「동성애 혐오동맹과 교회 부채」) 되었다. 마침내 기독교에 부정적인 시민은 ‘기독’을 ‘개독’으로 부르기에 이르렀다.
교회, 보수 기득권의 이해와 가치관 대변
한국의 기독교는 ‘차별금지법’을 반대한다. 이유는 단 하나, ‘기독 정당을 축으로 동성애 혐오동맹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막강한 경제적, 사회적 자원을 가진, 극우주의 성향의 대형교회 목사들과 장로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기 때문’(앞의 글)이다. 이러한 교회의 영향력은 정치인의 입을 막아 버리고 정책을 주저하게 만듦으로써 소기의 성과를 거둔다.
차별금지법과 동성애 관련한 정치인들의 발언을 돌아보라. 적지 않은 정치인들은 교회 관계자 앞에서 차별금지법과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후보조차 동성애 반대를 천명(사후 해명하긴 했지만)하게끔 만든 것은 그런 사회적 의제에서 교회의 영향력, 쉽게 말해서 교회의 표 때문이다.
공공연히 차별금지법 반대를 외치고 일쑤 타 종교를 폄훼하는 것은 그것이 독실한 신앙을 증빙하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1,000만에 이르는 개신교 인구는 이들이 자신들의 배타적 폐쇄성을 아랑곳하지 않는 근거다. 보수 친미 정치권과 손잡은 교회와 목회자가 누리는 권력에 기대어 이들은 지금 바야흐로 퇴행을 거듭하는 중이다.
1968년부터 제기되었던 종교인에 대한 과세 필요성이 무려 50년 가까이 미루어진 것은 한국 사회에서 교회가 가진 힘 때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2015년에 가까스로 법적 근거가 마련된 뒤에도 이미 2년의 유예가 이루어졌는데 다시 ‘납세 준비’에 시간이 필요하다고 교회는 외치는 것이다.
그런 요구를 교회에 직분을 가진 국회의원을 통해 입법하겠다고 나섰다. 국회의원이 국민을 대신하여 그 이해를 다투는 법안을 발의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그러나 사회 전체에 유익한 입법이라는 전제를 필요로 한다. 일부 국민의 이익을 도모하면서 공익과 배치되는 입법이 ‘청부 입법’이라고 비난받고 그 과정에 금전이 오가면 형사처벌을 받는 것은 그 때문이다.
장로, 권사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종교인 과세 유예 법안이 여론의 질타를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실제로 과세가 시행되더라도 대상 종교인은 약 4만 6,000여 명에 불과하고 대부분 종교인은 세 부담이 거의 없다. 과세를 반대하는 이는 대기업 CEO에 버금가는 고연봉의 대형교회 목사뿐이라는 사실에도 이들은 눈을 감고 있다.
김진표, ‘한국교회 연합과 일치상’ 수상 결정
종교인 과세를 저지하기 위한 조직적인 대응에 나선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 보수 개신교계로서는 이들 유예법안을 발의한 25명의 국회의원이 ‘신실한 교우’일 것이다. 종교인 과세 유예의 총대를 메었던 김진표 의원은 얼마 전 평신도 부문의 ‘한국교회 연합과 일치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
여론에 떠밀려 ‘시행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고 물러선 이들 국회의원은 법안을 철회하지는 않았다. 이들은 이제 국세청 훈령으로 교회나 사찰 등에 대한 세무조사 금지를 명시하라고 요구한다. 신실한 교우가 되는 대신 그들은 자신을 표로 선택하여 주권을 위임한 시민들의 뜻을 저버렸다.
김진표 의원은 종교인 과세 관련하여 ‘세금 안 내려고 정치인들과 협력해 꼼수를 부린다는 비판’으로 대형교회 목사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고도 했다. 그를 국회로 보낸 주권자들의 실망과 배신감 대신 그는 목사들의 상한 마음을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세무조사 금지 요구에 대한 여론의 질타는 매섭다. 대한민국은 신정(神政)국가도 아니고 정교가 분리된 민주공화국이다. 헌법 제20조는 ‘종교의 자유’와 함께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약자와 핍박받는 이를 위해 쓰여야 할 교회의 힘
OECD 국가 가운데 종교인 과세를 안 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여론조사도 과세가 예정대로 시행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83%에 이르렀다. 천주교와 불교 등 주요 종단들은 말할 것도 없고 개신교 목사 다수도 과세에 찬성하고, 현재 자진 납세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교회와 그 이해를 대변하는 국회의원들의 반발에도 내년부터 종교인 과세는 예정대로 시행될 것이다.
힘센 교회가 자신의 힘을 이용하여 전체 공동체의 이해를 외면하고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일은 당장은 만족스러울지 모른다. 그러나 교회는 기본적으로 힘을 추구하는 조직이 아니다. 교회의 세를 그런 방식으로 쓰는 것은 결국 돌아가야 할 시민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일일 뿐이다.
상징적인 힘이 있다면 약자와 핍박받는 이들을 위해 써야 마땅하다. 종교개혁 500돌을 맞는 한국교회에 필요한 것은 지난 시간 동안 비대해진 덩치에 걸맞은 올바른 역할과 사명이 무엇인가를 돌아보는 성찰이다. 성찰 없는 성장은 끝내 그 자신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새기고 환기해야 한다.
원문: 이 풍진 세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