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0일 구미교육지원청에서 ‘세월호 참사 교사 시국선언’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중등 교사 2명에 대한 징계위원회가 열렸다. 당시 교사들은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지고 박근혜 퇴진을 요구했고 정부와 보수 시민단체는 이들은 형사고발했다.
교사들의 요구였던 ‘박근혜 퇴진’은 그가 저지른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탄핵으로 극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지금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구속 수감되어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교사들의 퇴진 요구는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물은 것이었으며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민 생명권 보호 의무’를 위반했으나 탄핵사유로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정작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되었지만 시국선언 교사에 대한 단죄는 지금도 진행된다. 교사 중 일부는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고, 또 일부는 약식 기소되었고, 일부는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박근혜는 탄핵됐는데 교사를 단죄 중이라니
기소유예란 말 그대로 위법행위는 인정되더라도 그 위법의 정도가 경미하여 검사의 재량으로 사건을 종결하는 불기소 처분이다. 그런데 경상북도 교육청과 구미교육지원청은 불기소 처분을 받은 두 교사를 징계에 부친 것이다.
교육부는 지난달 지난 12일, 같은 사항으로 검찰에 고발된 전교조 교사 14명을 징계하지 않기로 한 서울시교육청의 결정을 사실상 수용했으며,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세월호 참사 및 국정교과서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사들에 대한 선처를 요청하는 의견서를 7일 검찰청과 법원에 제출했다.
경남, 전북, 세종, 전남교육청도 징계의 부당성을 인정하며 징계 절차를 멈추었다. 시도별로 서로 다르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이들 교사들의 시국선언이 교사로서 교육적 분노의 표현이며 당사자인 대통령이 탄핵됨으로써 이들 주장의 정당성이 확인되었다고 보는 것이 큰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전국적 추세와 달리 경북에서는 징계위원회가 열린 것이다.
징계위원회가 열리기 30분 전에 구미교육지원청 현관 앞에서 전교조 구미지회가 ‘부당 징계 중단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그간 경과보고에 이은 연대 단체의 규탄 발언 뒤에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두 명의 교사들이 각자 자신의 소회를 간단하게 밝혔다(“무슨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이름을 밝히는 건 민망하다” 하여 두 교사의 이름을 익명으로 처리했다).
“저는 양심에 따라 행동했을 뿐입니다. 교사이기 이전에 아버지로서 세월호 참사에 대해 분노했고 이에 그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질 것을 요구했을 뿐입니다. 교사로서의 분노를 표현한 것일 뿐인데 징계를 강행하려는 경북도교육청과 구미교육지원청의 처사를 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양○○ 교사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이 있습니다. 나치에 복무한 관료들도 집에서는 선한 아버지였고 주어진 일에는 충실했다는 거지요. 권력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면서도 ‘질문하지 않는’ 관료들, 공무원들이 2차대전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공교육을 위해 일하는 동료로서 교육 관료들에게 ‘스스로는 왜 질문하지 않는가’라는 조언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런 일로서가 아니라, 더 좋은 교육을 위한 고민들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 한○○ 교사
양 교사는 출석하지 않겠다고 했고 한 교사는 이어진 징계위원회에 출석해 기자회견에서 밝힌 것과 같은 내용을 진술하고 내려왔다. 징계 여부를 떠나서 그는 선언의 주체로서 자신의 신념과 정당성을 밝히고 싶어 했던 것 같았다.
징계위는 오후에 두 교사에게 ‘의결보류’ 결정을 내렸다고 통보해 왔다. 앞서 지난 5월에 소집된 구미교육지원청 징계위원회에서 초등 문 교사에 대한 징계 의결을 법원 확정판결 때까지 보류한 데 이은 두 번째 보류 결정이다.
하긴 징계의결을 철회한 서울뿐 아니라 타 지역 대부분의 시도 교육청에서 ‘불문’ 처리하고 내부에서 징계를 종결한 걸 감안하면 타 시도에 앞서 섣부르게 징계 의결을 하는 게 부담이었을 것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교사선언 관련 징계에 대해서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는 곳은 대부분 보수 교육감의 시도 교육청이다.
기소유예와 재판 결과를 연계시킬 ‘이유 없다’
기자회견에서 규탄사를 한 구미참여연대 황대철 집행위원장이 지적한 것도 그 부분이다. 경북도 교육감은 국정교과서도 찬성했고 박근혜 정부의 교육 시책을 충실히 따라왔다. 전교조를 대하는 태도나 각종 선언과 서명을 바라보는 방식도 마찬가지였다. 교육감 직선의 성과를 누리지 못하는 보수의 고장이 감당해야 할 몫은 언제나 진부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구태여 징계위를 여는 것도, 징계 의결을 보류하는 것도 사실은 면피의 셈속이 드러나 보이는 부분이다. 특히 8월 10일 징계 보류의 이유로 5월에 징계를 보류한 교사의 재판을 든 것도 납득할 수 없는 논리다. 5월에 징계가 보류된 교사의 재판과 검찰이 기소유예로 종결한 이번 징계를 연계시킬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3년 전은 물론이거니와 지난해, 그리고 지난 5월 이전까지의 상황과 지금은 명백히 달라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된 뒤 뇌물수수 등 13가지 혐의로 구속 수감 중이고 대선을 통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촛불 혁명이 역사의 물길을 바로잡은 것이다. 그리고 이제 바야흐로 새 정부의 적폐 청산이 시동을 건 상태다.
그런데 지금 다시 철 지난 징계를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든 경북도교육청과 구미교육지원청은 이 부당한 징계를 강행하여 무엇을 이루려 하는 것인가. 교사들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대로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친 양심적 교사들을 3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 징계위에 회부한 것은 촛불 혁명의 진심을 외면하고 박근혜 정권의 적폐를 계승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결지해지의 주체인 교육부가 징계를 시도 교육청의 재량에 맡긴다고 한 것은 참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그러나 검찰청과 법원에 제출한, 세월호 참사 및 국정교과서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사들에 대한 선처를 요청하는 의견서에 밝힌 다음 내용은 경북도교육청과 구미교육지원청이 거듭 새겨들어야 할 대목임에 틀림이 없다.
“우리 사회와 교육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토대 위에서 새로운 미래를 위한 국가적 희망을 제시해야 한다.”
원문: 이 풍진 세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