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어 기획자이던 시절, 기획이란 단지 와이어프레임을 그리고 그것을 개발자에게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다. 단순히 프로그램의 외형을 그리고 그것을 개발자들에게 넘겨주는 일들을 반복했었는데, 난 정말 운이 좋게도 개떡같이 준 기획서를 개발자들이 찰떡같이 알아듣고 일을 진행해주었기 때문에 프로그램 개발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조금씩 다른 것들을 보기 시작하면서 기획은 결국 사업을 통째로 만들어 내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기획자는 CEO와 그 궤를 같이하는 협업자이자 조력자 역할을 톡톡히 해내야 한다. 그래야 비즈니스가 성공할 가능성이 많이 높아질 수 있다.
그렇다면 사업을 어떻게 만들어내야 할까. 지금부터 그 프로세스를 적어보도록 하겠다. 이 방법은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방법이다. 시니어 및 창업을 경험한 사람들에 비해서 매우 매우 많이 모자란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사업은 이런 게 아닐까 머릿속에서 생각해오던 것들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적어 보기로 한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퍼스널 트레이너를 위한 스케줄 앱을 만든다고 생각하고 사고를 전개해 나가겠다.
1. 문제의 인식
보통 입사를 하게 되면 이미 특정 산업군에 대한 문제점이 정의되고 문제점을 어떤 식으로 해결시켜 나가겠다는 방향성이 결정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완전히 그런 것조차 없는 처음의 상태에서는 뭔가 문제점을 발견해야 일의 시작이 된다.
그러한 문제점의 발견은 대체로 일상의 영역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를 발견해야 해결에 대한 욕구도 더욱 더 진정성이 있다고 생각이 든다. 물론 테슬라처럼 전 인류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정의하고 그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회사도 있지만, 그것이 일반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 문제를 발견한다. 나는 퍼스널 트레이닝을 받고 있는데, 매번 스케줄을 트레이너와 맞추는 것이 상당히 귀찮다. 내가 스케줄을 변경해야 할 때도 있고 드물지만, 트레이너가 내 스케줄을 조정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전화 혹은 카톡을 통해 여러 번 의사를 주고받아야지 스케줄이 확정된다.
처음에 한두 번은 그러려니 할 수도 있겠지만, 지속해서 트레이닝을 받는 입장에서 이런 스케줄 이슈가 계속 생기니 트레이너 입장에서 참 귀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랑도 이런 식으로 계속 연락을 주고받는데, 다른 회원들과도 계속 이런 식으로 스케줄을 맞추다니 참 원시적인 방법으로 스케줄 조정이 이루어지고 있구나, 이를 자동화시키고 트레이너와 회원 간에 스케줄 관리를 어느 정도 자동화하여 편리하게 관리할 수 있는 솔루션이 있으면 쓰지 않겠냐는 생각에서 사업이 시작된다.
2. 인터뷰
내가 생각했을 때는 문제가 되는데 트레이너 입장에서는 전혀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여러 가지 정성적인 질문과 답변을 통해 이 문제점이 진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인지, 아니면 나 혼자만의 생각인 건지 검증하는 절차를 거친다.
현행 스케줄 관리에 전반적인 상황을 묻고, 때때로 어떤 불편함을 겪고 있는지, 그런 부분에 대해서 해결해주었으면 하는 부분은 있는지 묻는다. 여기서 주안점은 해결 방법에 대한 생각을 묻기보다는 현재 상황을 파악하고 불편한 점을 알아내는 것이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나가는지의 문제는 사업을 하는 사람이 해결해나갈 몫이라고 생각한다.
3. 시장성 파악
문제를 인식하고 몇 번의 정성적인 인터뷰를 통해 이 문제는 충분히 해결할만한 가치가 있는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그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과연 시장이 존재하느냐를 파악하는 일이다. 먼저 시장 타깃 군을 설정한다. 이 경우에는 1차 타깃으로 당연히 퍼스널 트레이너가 될 것이다. 하지만 서비스에 따라 타깃을 명확하게 설정하기 모호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런 경우에는 주변 지인, 인터넷, 시나리오 분석, 필요하다면 포커스 그룹 인터뷰를 활용해 타깃을 설정하도록 한다. 타깃으로 선정된 집단의 규모를 파악해야 한다. 과연 전국의 퍼스널 트레이너의 수는 몇 명이 될까?
이를 파악하기 위해 트레이너가 되려면 어떤 절차를 거치는지, 트레이너에게 자격증은 필수요건인지, 자격증이 갖춘 사람과 안 갖춘 사람의 비율은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지, 즉 가능한 여러 가지 질문을 통해서 시장을 특정시킬 수 있어야 한다.
시장을 특정하고 나면, 점유율 대비 연간 매출을 예상함으로써 이 시장이 니치마켓인지, 완전히 거대한 시장인지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서비스가 출시되고 내가 예상한 타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용도로 서비스가 이용될 수 있다.
하지만, 위와 같은 시장성 파악을 하고 들어가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천지 차이라고 생각한다. 사업을 하든 실험을 하든 중요한 것은 가설을 세우고 측정과 검증을 통해 시행착오를 줄여나가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본질을 파악하기가 매우 어려워지고, 행동의 중심축이 없이 이리저리 쓸려 다니게 될 것이다.
4. 경쟁사 파악
문제점을 인식하고, 인터뷰를 통해 가능성을 확인했고, 시장 규모를 보니 사업을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여기서 바로 서비스 기획에 들어간다? 경쟁사를 파악해야 한다. 경쟁사는 누가 봐도 바로 특정되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정확히 산업군에 걸쳐있지는 않기만 정의 내리기에 따라서 경쟁자로 볼 수 있는 회사도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퍼스널 트레이너를 위한 스케줄 관리 앱이라는 카테고리 내에서 솔루션을 배포하고 있는 회사는 없지만, 일반적인 스케줄 관리 앱 및 1:1 학생 교습 일정을 잡는 앱은 이미 시중에 존재한다. 이러한 앱은 정의 내리기에 따라 나의 경쟁사 앱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앱과 비교했을 때 내가 구상하고 있는 앱의 장점은 무엇인가, 차별화된 포인트는 무언인가를 확실히 정의한 후에 본격적인 서비스 기획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구상단계에서 특별한 차이점이 없는 앱이라면 이미 시작도 하기 전에 혼란이 오게 될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퍼스널 트레이닝을 하면서 겪을 수 있는 특수한 상황에 최적화된 앱을 만들기로 하였고, 시중에 나와있는 모든 앱은 이러한 조건을 만족시키지는 않았기 때문에 일을 진행해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5. 자금 조달 계획 세우기
서비스를 만들려면 돈이 필요하다. 개인 자금으로 충당 가능한지, 정부 혹은 엔젤투자를 통해 시도할 건지, 클라우드 펀딩 등을 통해 자금을 확보할 것인지 대략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 서비스에 대한 대략적인 골격을 세우고 필요한 인력과 기간을 산출해내야 한다.
또한, 서비스에 대한 개략적인 마일스톤을 세우고, 손익분기에 대한 부분도 생각해 둬야 한다. 물론 100%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간다. 하지만 위에도 말했지만, 미리 한번 생각을 해 두는 것과, 막무가내로 뛰어드는 것은 천지 차이다. 물론 기존 회사에 들어간다면 금전적인 부분은 경영진에서 알아서 할 것이다. 혹은 지원 사업 혹은 투자 유치와 관련하여 준비해야 할 수 있다.
6. 마케팅 계획 세우기
서비스 구현 단계별로 런칭 가능 시점을 정하고, 런칭 가능 시점과 맞물려 어떤 식으로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알릴 것인지 정해야 한다. 지인, 아니면 회사가 갖고 있는 영업망, 디지털 마케팅, 디지털 마케팅을 쓴다면 어떤 매체를 주로 활용할 것인지, 근거는 무엇 인지에 대해 대략적으로 정리가 되어 있어야 한다.
7. 서비스 기획하기
서비스를 사용하는 이해 관계자, 큰 틀에서의 플로우, 서비스의 전반적인 개요, 개요에 필요한 솔루션의 종류, 솔루션별 기능, 구현에 대한 마일스톤 등 일정에 대한 부분까지 정리가 되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회원용 앱, 트레이너용 앱, 관리자 어드민이 필요하고, 서비스의 시작과 끝까지의 시나리오, 시나리오를 만족하기 위한 기능들, 마일스톤에 따른 기능 추가 리스트 등 전체 골격을 먼저 세우는 작업을 한 후, 와이어프레임을 그려나가기 시작한다. 여기서 이해를 돕기 위해 프로토타이핑 툴을 이용해서 작업하기도 한다.
8. 서비스 구현하기
전형적인 워터폴 방식을 쓰든 어떤 방식을 쓰든 관계없다. 일반적으로 기획자가 스토리보드를 그리고 난 후 개발자와 디자이너와 함께 리뷰한 후 디자인 작업, 개발 작업의 순으로 서비스 구현 작업이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기획자는 말을 바꾸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말인즉슨, 정말 신중하게 생각하고 많이 고민한 후 일의 진행을 요청해야 한다. 물론 구현이 진행되다가 전반적으로 일이 뒤집히게 될 수 있다. 제품의 출시가 우선인가 사용자에게 가치를 주는 것이 우선인가. 무엇이 우선인가 한번 생각해보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말로 신중하게 많은 부분을 고려 후 디자이너와 개발자에게 구현에 대해 요청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 한마디가 바뀌는 즉시, 구조 전체를 뜯어고쳐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기획자는 신뢰를 잃고 일정이 늦춰지게 되며, 회사 차원에서는 당연히 마이너스다.
물론 아무리 철저히 생각했어도, 미처 발견하지 못한 문제에 따라 전체를 뜯어고쳐야 할 수도 있다. 이때는 이러한 상황을 경영진, 개발자, 디자이너에게 충분히 그리고 솔직하게 설명을 한 후 합의점에 도달 후 재개발을 진행해야 한다. 문제를 내버려 두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9. 서비스 구현하기 2
항상 사용성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한다. 특히 O2O의 경우엔 시간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많이 현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보고 관찰해야 한다. 지금 현재 일을 처리하는 방식은 왜 그렇게 처리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내가 해결해줄 방법은 무엇일지 계속해서 현장 속에서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게 되면 현장과 동떨어진 괴상한 서비스가 나올 수 있다.
UI/UX의 구현도 현업에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한다는 가정 속에 구현해야 한다. 예를 들어 플랫 디자인이 아무리 대세라고 한들 배달업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디자인일 수 있다. 현재 존재하는 경쟁 솔루션과 우리가 대체하고자 하는 솔루션의 간극도 고민해봐야 한다.
서비스 구현 시 제일 좋은 방법 중에 하나는 해당 산업군의 일을 직접 경험해보는 것이다. 왜 모 영화감독이 호스트바에 대한 영화를 쓰기 위해 직접 호스트바에서 근무했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좋은 서비스를 만들어내려면 정말 현장의 땀을 느끼며 노력해야 된다. 책상에서 고민해도 답은 안 나온다.
10. 개발 완료 전
QA작업이 필요하다. 실제로 개발이 내가 생각한 대로 제대로 구현된 것이 맞는지 예상 동작과 기능에 대한 리스트를 작성해서 하나하나 검증해보도록 한다.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보고 혹시 문제가 있지는 않은지 계속해서 시험해본다.
그리고 또 하나, GA나 Tune 연동을 반드시 한다. UI/UX에 대한 트래킹은 필수이다. 아울러 디지털 마케팅을 위해서도 GA는 반드시 연동해야 한다. 가설을 세우고 측정을 위한 보고서를 만들어 내기 위한 도구로서 GA나 Tune을 이용하고, 실제 런칭 후 데이터를 수집해서 내 가설이 맞았는지 검증하고 수정해야 한다. 그러한 수정을 위한 근거자료로서 보고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11. 서비스 런칭 후
사용자 유입과, 매출 성장을 일으키기 위해 마케팅을 실시하고, 사용자 피드백을 통해서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개선시킨다. 또한 피봇팅에 대해서도 유연한 시각을 가져야 한다.
서비스의 확장에 대한 부분도 처음 단계에서 생각해두고 있어야, 후속 플랜을 견고하게 진행시켜 나갈 수 있다. 하지만 너무 장기적으로 10년 계획을 세우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1~2년 길게는 3년 정도의 전반적인 흐름을 한 번쯤 머릿속에 정리해둔다면 베스트일 것이다.
마무리
이 방법이 정답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도 아직 경험이 적고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하면 할수록 기획이라는 것은 많은 것을 알아야 하는 직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30대는 비즈니스를 하면서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목표 아래 현재와 미래의 간극을 채워나가는 작업을 부지런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론: 기획자는 빡세다. 그리고 여기 나와있는 거 전부 기획자가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회사에 따라 UI/UX 기획, 사업 기획, 데이터 분석가 등 따로따로 직군이 존재하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 혹은 창업을 기준으로 서술하였다.)
원문: 정경진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