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싱턴포스트의 「The death of reading is threatening the soul」을 번역한 글입니다.
저는 개인적인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저는 책 읽기를 좋아합니다. 이 글을 쓰는 사무실에도 5,000권의 책이 담긴 책장 27개가 둘러 있습니다. 몇 년 동안 이 책들을 읽었고, 책에 표시를 하고, 글쓰기에 참고할 만한 내용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었습니다. 그중 상당 부분이 내 직업적이고 영적인 삶을 이룹니다.
책은 내가 누구인지 정의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믿음의 여행으로 안내하고, 과학과 자연 세계의 경이로움을 소개했으며, 정의와 인종과 같은 문제에 관해 알려주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기쁨과 모험 그리고 아름다움의 근원이었고, 알지 못했던 현실의 창문을 열어주었다는 것입니다. 저의 위기는 제가 현재가 아니라 과거를 이야기한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저는 일주일에 3권의 책을 읽곤 했습니다. 어떤 해는 동안 매주 저녁 셰익스피어의 희곡 전부를 읽은 적도 있습니다(중간에 중단해서 실제로는 2년이 걸렸습니다). 또 다른 해에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의 주요 작품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읽는 책이 점점 줄어들고,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그런 책을 경우는 더 줄었습니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는 한두 단락의 글을 읽고는 주위를 둘러보도록 제 뇌를 훈련시켰습니다. 애틀랜틱이나 뉴요커의 온라인 글을 읽을 때면, 몇 단락을 읽은 뒤에 옆쪽의 슬라이드 바를 쳐다보곤 합니다. 기사의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려는 이유죠. 마음은 흐트러지고, 어느 순간 사이드 바와 링크를 클릭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머지않아 CNN.com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최근 트윗과 테러리스트 공격에 대한 세부 기사를 읽거나 내일 날씨를 점검하게 될 것입니다.
더 나쁜 것은 “이 글(또는 책)이 마음에 드셨다면, 이러이러한 글들도 좋아할 것입니다”라고 말해주는 작은 상자의 먹이가 되는 것입니다. 아니면 화면 하단을 보면서 예고란에서 더 재미있는 글을 찾겠죠. “여러분을 소름 끼치게 할 아미시의 30가지 실상,” “유명인 노출 사진 톱 10, ” “월마트 카메라 캡처 재미있는 사진들” 같은 글 말입니다. 이런 글들을 12번 이상 클릭하게 되면 원래 글에 대한 관심은 사라져 버립니다.
신경 과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설명합니다. 우리가 무언가 빠르고 새로운 것을 배울 경우, 도파민 러시를 겪게 됩니다. 기능성-MRI 뇌 스캔 사진을 보면, 뇌의 쾌락 중추가 밝아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유명한 실험에서, 쥐는 도파민 러시를 즐기기 위해 계속 레버를 누르고, 음식이나 성별을 선택합니다. 인간의 경우, 이메일뿐만 아니라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그리고 스냅챗이 이 쾌락 중추를 만족시킵니다.
니콜라스 카의 책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The Shallows)』에서는 이 현상을 분석하고, 부제를 통해 “인터넷이 우리의 뇌에 미치는 영향”이라고 말합니다. 카는 대부분의 미국인, 특히 젊은이들의 읽은 시간이 가파르게 줄어든다고 말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한때는 저도 단어 속을 헤엄치던 바다의 스쿠버 다이버였습니다. 이제는 제트 스키를 탄 바보처럼 그 표면을 바르게 지나쳐갈 따름입니다.
2016년 닐슨 보고서에 따르면, 평균 미국인들은 라디오, TV 및 모든 전자 장치를 포함한 미디어를 소비하는 데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쓴다고 합니다. 깨어있는 시간 중 65%를 쓰는 것입니다. 집중해서 읽는 것 같이 훨씬 더 힘든 일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구텐베르크 애가(The Gutenberg Elegies)』에서 스벤 버커츠는 강한 집중력, 의식의 문을 의식적으로 낮추는 것 그리고 느린 속도가 필요한 ‘깊은 책 읽기’가 사라진 것에 한탄합니다. 그의 책은 제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저는 계속 찰스 테일러의 『세속화 시대(A Secular Age)』 읽기를 미루고, 향수에 젖어 위르겐 몰트만의 신학 서적으로 가득 찬 책장을 바라보고만 있습니다. 왜 지금은 저런 책들을 읽지 않을까?
비즈니스 인사이더의 한 기사에서는 엘론 머스크, 오프라 윈프리, 빌 게이츠, 워런 버핏 및 마크 저커버그 같은 선구자들을 연구했습니다. 이들 중 대부분이 소위 ‘5시간 규칙’이라는 공통적인 습관을 지녔습니다. 적어도 하루에 1시간(일주일에 5시간) 이상을 할애해 책을 읽는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습니다.
- 빌 게이츠는 1년에 50권의 책을 읽습니다.
- 마크 저커버그는 2주마다 적어도 한 권의 책을 읽습니다.
- 엘론 머스크는 하루에 두 권의 책을 읽으며 자랐습니다.
- 마크 쿠반은 매일 3시간 이상을 읽습니다.
- 홈 데포의 공동 창립자인 아서 블랭크는 하루에 2시간씩 읽습니다.
성공의 비밀이 무어냐는 물음에 워런 버핏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매일 500페이지를 읽습니다. 지식은 그렇게 모이는 것이지요. 마치 복리 이자처럼 쌓여갑니다. 여러분 모두는 저처럼 할 수 있겠지만, 장담하건대 많은 분들이 그러지 못할 것입니다.
쿼츠에 실린 글에서 버핏의 말을 인용한 찰스 추는 ‘하루에 500페이지는 몇 사람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이들에게 다가갈 수 없는 벽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신경 과학은 바쁜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증명했습니다.
실제로 이일 저일 바쁘게 옮겨 다니는 것보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것이 에너지 소비가 더 적다고 합니다. 사람은 1시간 동안 깊게 생각하거나, 읽고 나면, 피로가 덜하고 신경 화학적으로 소모도 덜하기 때문에 정신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됩니다.
견고한 습관의 요새
우리가 버핏의 높은 책 읽기의 벽을 뛰어넘을 수 없다면, 현실적으로 어떤 목표를 잡아야 할까요? 찰스 추는 분당 평균 400단어를 읽는 속도면 1년에 책 200권을 읽는 데 417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계산합니다. 이는 평균 미국인이 소셜 미디어에 소비하는 608시간이나 TV 시청에 쓰는 1,642시간보다 적은 시간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많은 책을 읽은 것 뒤에는 이렇게 간단한 진리가 있습니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그만한 시간이 다 있습니다. 우리가 무시하는 무서운 부분은 우리가 너무 중독되었고, 너무 약하고, 너무 정신이 없기 때문에 모두가 중요함을 아는 것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의지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소위 ‘습관의 요새’를 구축해 놓아야 합니다. 최근 저는 작가 애니 딜라드의 홈페이지에서 “더 이상 여행을 할 수 없고, 낯선 사람과 만날 수도 없으며, 책에 서명할 수도 없어 라벨로 사인을 대체할 예정이며, 글 요청도 받을 수 없으며, 편지에 답장도 쓸 수 없습니다. 읽고 집중해야겠습니다. 왜냐고요? 나를 단련시켜야죠.”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이것이 요새입니다.
책 읽기에 몰두하는 것은 계속된 싸움이라는 것이 저의 결론입니다. 마치 인터넷 포르노 퇴치를 위한 싸움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강력한 도파민 러시의 유혹에 견딜 수 있을 만큼 견고한 벽으로 요새를 세우고, 동시에 깊은 책 읽기가 가능한 환경의 피난처를 만들어야 합니다.
현대 문화는 창의력을 배양하는 데 큰 장애물입니다. 저는 소셜 미디어 시대의 작가로서 페이스북 페이지와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가끔 블로그에 글도 씁니다. 30년 전의 저는 독자들로부터 꽤 많은 편지를 받았고, 독자들은 1주일이 지나도 답장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독자들은 이메일을 보내며 이틀 안에 답 메일을 받지 못하면, “제 이메일 받으셨나요?”라는 메일을 다시 보냅니다. 졸라대는 사람들의 폭정이 저를 둘러쌌습니다.
제가 그 폭정에 굴복한다면 제 삶은 정신적 혼란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지루함은 창의성의 어머니입니다. 마음이 오락가락하면 새롭고 예기치 않은 곳을 방황하게 됩니다. 산으로 들어가 며칠 동안 플러그를 뽑아 놓으면 마법이 일어납니다. 글쓰기가 막히면 침대로 들어가 잠을 청하고,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수정같이 맑은 해결책을 갖고 깨어나게 됩니다. 소셜 미디어와 인터넷을 돌아다닐 때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 일입니다.
시가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시를 획 읽어나갈 수 없습니다. 시는 천천히 읽고, 생각하고, 집중하고, 단어와 구절을 즐기게 해줍니다. 이제 조지 허버트, 제라드 맨리 홉킨스 아니만 R. S. 토머스 선집을 매일 읽어 보려고 합니다. 깊은 책 읽기를 위해서 하루 중 다른 일을 하고 남은 자투리 시간이 아니라 정신 에너지가 가장 왕성한 시간을 찾습니다. 산만함을 피하려고 헤드폰을 끼고 부드러운 음악을 듣습니다.
고의적으로라도 휴대폰 문자를 보내지 않습니다. 아내가 박물관에나 기증해야 한다고 놀리는 오래된 골동품 전화를 꺼낼 때마다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이제는 일종의 삐딱한 자존심으로 주머니에 넣어 다니곤 합니다. 하루에 평균 2천 번이나 전화기를 확인하는 청소년들에게는 유감이지만 말입니다.
우리는 기술이라는 무거운 무기를 휘두르면서 전쟁을 치릅니다. 로드 드레어는 저서 『베네딕트 선택(The Benedict Option)』에서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베네딕트회 수도사들이 했던 것처럼 수도원 벽 뒤로 숨으라고 주장했습니다. 어쨌든 그들은 인간 역사의 가장 어두운 시대 중 한 곳에서 문맹 퇴치와 문화를 보존했습니다.
드레어의 의견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지만, 책 읽기를 보존하려면 베네딕트의 선택과 비슷한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저는 오늘도 습관의 요새에서 활동하면서, 독서가 오랜 세월 가져다준 훌륭한 자양분을 부활시키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여러분을 소름 끼치게 할 아미시의 30가지 실상”이라는 링크를 누르지 않을 수 있다면 말입니다.
원문: 책도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