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빌딩
미하엘 문을 나섰다. 거리를 분주히 가로지르는 차들, 시민들을 실어 나르는 빨간 트램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다른 속도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지금껏 보았던 도시와 다른 모습이다.
대통령 궁을 지나 조금 더 걷다 보니 이런 풍경마저도 무색하게 만들어버리는 독특한 건물이 등장한다. 마치 다른 세상에서 날아와 콩 하고 땅에 박힌듯한, 거꾸로 뒤집은 피라미드 모양의 건물. 브라티슬라바를 대표하면서도 항상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슬로바키아 라디오센터다.
어쩌다가 이런 건물이 생겼을까? 특별한 멋이 있다고 느껴지면서도 입면에 자리 잡은 수많은 대각선 부재들을 계속 보고 있으면 이내 시선이 어지러워진다. 지금과 멀지 않은 가까운 과거로 돌아가 보자. 그곳에 라디오센터 디자인 탄생 배경이 있다.
히틀러가 사망하고 세계 2차 대전이 종말을 고하면서 세계의 중심은 미국과 소련으로 나뉘게 된다. 2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에 병탄 되어 괴뢰정부가 세워졌던 슬로바키아에는 소련군이 진주하기 시작했다. 전쟁이 끝난 삼 년 뒤인 1948년, 무혈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소련의 지원을 받는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이 일당 독재로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이후 사회주의 정권은 지금껏 쌓아왔던 도시 흔적 위에 새로운 그림을 빠른 속도로 그려나갔다. 새로운 도로가 건설되었고 교외지역으로 회색의 조립식 아파트가 빠른 속도로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다뉴브 강 위에는 두 지역을 잇는 초현대적 디자인의 다리가 놓였다. 불과 반 세기도 지나지 않는 시간 만에 도시는 빠르게 모습을 바꾸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 사회주의 정권과 역피라미드 건물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이에 답을 찾기 위해 북한을 유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최근, 적어도 건물로 관심사를 좁혔을 때 북한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한 건물이 있다. 류경호텔이다. 평양시내에 하늘 높이 치솟은 호텔은 이미 오랜 기간을 두고 건설한 것으로도 유명하고 독특한 생김새 때문에 각종 미디어에서 많이 소개된 바 있다.
사회주의 정권에서 건축은 선전과 통제의 도구다. 자유주의 국가와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때로는 기술이 집약된 초 현대적인 디자인을 도입했으며,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 위압적인 정부 건물을 지었다. 효율적인 시민 관리를 명분으로 교외에는 회색 계열의 조립식 고층 아파트를 건설했다. 건축은 상대적 우월감을 나타내려는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공산당이 50년 동안 슬로바키아를 지배하는 동안에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1960-1980년대 사이 건축계에서는 후기 모더니즘과 브루탈리즘이 유행했다. 새로운 건축 재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건축 구조를 숨기기보다 오히려 더 도드라지게 드러내어 장식의 한 요소로 표현하던 시기였다. 이는 사회주의 국가가 제시하는 이념과 어울리는 면이 있었다. 많은 동유럽의 공산국가가 이러한 건축 경향에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그 흔적으로 남은 건물이 라디오 빌딩과 에스엔페(SNP) 다리다.
1967년 시작된 라디오 빌딩의 건설은 20년 가까이 걸려 1983년에 마무리되었다. 피라미드와 연결된 부속 건물을 통틀어 라디오 방송국, 녹음실, 콘서트홀 등이 들어선 명실상부한 슬로바키아 소리의 전당이다. 중력을 거스르는 도전적인 건물 구조는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세계의 못생긴 건물을 선정하면 꼭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데, 재미있는 점은 그럴 때마다 슬로바키아의 건축가들이 못마땅해 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지역의 디자이너들은 나라를 대표하는 훌륭한 건축이라 말하기도 한다. 왜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는 걸까?
상냥한 사람, 귀여운 사람, 무서운 사람. 그중에는, 처음 봤을 때 굉장히 무섭게 생겨서 다가가기 힘들었는데 알고 보니 섬세한 반전의 매력이 있는 사람도 있다. 라디오 빌딩이 바로 그런 건물이다. 길을 걷다가 처음 라디오 빌딩을 마주하면 누구나 다 건물이 주는 위압감에 눌린다.
짙은 고동색의 두꺼운 철 구조가 감싸는 입면. 바람과 중력을 견디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그 위에 올려진 대각선 부재. 특징 없이 동일하게 반복되는 창문들. 주변 환경과 아무런 맥락 없이 거대하게 들어선 건물 형태를 보고 있으면 과연 세계에서 가장 못생긴 건물 리스트에 들어갈 만하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반전의 공간이 펼쳐졌다.
그저 층별로 라디오 녹음 부스와 업무 공간이 반복되겠거니 생각했던 상상을 무참히 깨버린다. 이 건물의 백미는 피라미드의 내부 공간에 있다. 가운데 코어를 중심으로 피라미드의 벽을 따라 사무공간이 계단식으로 배치되어 있다. 사무실 앞 복도는 계단과 구름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사람들이 쉽게 위아래로 이동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계단식 공간배치는 자칫 답답할 수 있는 내부를 시각적으로 탁 트이게 만들어주는 동시에 공간의 역동성을 더해준다. 경사진 피라미드 구조의 특징이 단지 외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부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처음 이 건물을 설계할 때 많은 사람은 빛이 충분히 안으로 들어올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고 한다. 하지만 여러 차례의 실험과 연구를 통해 이를 해결했다.
맨 위층에 난 넓은 창은 빛을 넉넉하게 안으로 끌어들여 밝은 내부 공간을 만든다. 그림자가 공간의 모습을 더욱 풍부하게 하는 건 덤이다.
현재는 계획 당시에 조성되었지만 쓸모없이 버려졌던 건물 외부 공중정원도 다시 살아나고 있다. 피라미드 밖은 2층 규모의 부속건물들과 바로 연결된다. 이곳은 계단을 통해 외부에서도 접근할 수 있다. 오랜 기간 동안 보안 문제로 방치되어 왔지만 몇 년 전부터 옥상정원을 만들자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마침내 정기적인 이벤트가 열리는 멋진 공간으로 변신했다.
전체적으로 호불호가 뚜렷한 건축임은 틀림없다. 매력적인 내부 공간과 투박한 외형이 서로 충돌한다. 독특한 외형만을 두고 가치를 깎아내리기엔 분명 아쉽다. 이런 생각은 든다. 굳이 이렇게까지 했어야 했을까?
하지만 이러한 반전미가 없었다면 라디오 빌딩은 그저 여러 건물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평가가 후세에 내려지든, 과거의 시대를 떠올려주고 아름다움의 기준이라는 것은 무엇인지 이야기해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건물임은 틀림없다.
에스엔페 다리
라디오 빌딩과 함께 공산주의 건축을 대표하는 것이 다뉴브강을 가로지르는 에스엔페 다리다. 앞서 잠깐 이야기한 것처럼 성 마틴 대성당 바로 앞과 강 건너편의 신도심을 연결한다. 라디오 빌딩 못지않은 특이한 디자인으로 유명한데, 마치 우주에서 온 비행접시가 다리 꼭대기에 얹혀 있는 듯한 분위기 때문에 UFO다리로도 불린다. 85m 위에 있는 비행접시는 다름 아닌 전망대다.
1972년 완공된 다리의 정식 명칭은 모스트 에스엔페(Most SNP)다. 1944년 나치에 항거한 대대적인 민중봉기였던 ‘슬로바키아 민족 항쟁(Slovenského Národného Povstania)’을 기리는 데서 유래했다. 완공 후 한동안은 ‘새로운 다리’를 일컫는 노비모스트(Nový Most)로 불렸지만 지나간 아픈 역사를 되새기자는 의미로 2012년에 와서 바꾸었다.
40여 년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구조 디자인 분야에서는 유명하다. 다리 위에 세운 탑에서 비스듬히 친 케이블로 상판을 지지하는 사장교로 무려 303m를 기둥 없이 버틴다. 브라티슬라바 성에서 내려다보면 다뉴브강으로 단 하나의 발도 걸치지 않은 모습이다. 기술이 정점으로 가면 예술이 된다고 했던가? 언뜻 위태해 보이지만 무려 반 세기 전에 해낸 기술임을 상상하니 놀랍기만 하다. 하나의 탑으로 한 지점에서만 케이블을 내리는 유형으로는 가장 긴 규모를 자랑한다고 한다.
독특한 케이블 구조나 비행접시를 제외하고도 일반적인 다리와는 다른 하나의 특징이 더 있다. 다리를 자세히 보면 차도와 보도가 위아래로 분리되어있다. 따라서 소음만 제외한다면 비교적 안전하고 여유 있게 강을 건너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조깅을 하거나 자전거로 이동하는 시민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동쪽 기둥에 위치한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전망대에 다다른다. 다리 위에서 남과 북으로 펼쳐지는 도시의 모습도 꽤 볼만하다. 강을 두고 구도심과 신도심이 명확하게 나뉘는데, 고개를 돌리면 360도 다른 도시의 모습이 펼쳐지는 것이 마치 지킬과 하이드를 떠오르게 만든다.
전망대에 올라보니 성 마틴 대성당과 바로 옆으로 연결되는 다리의 끝이 확실히 가깝게 느껴진다. 정말 아슬아슬하게 성당을 비켜간 느낌이다. 이 도로가 건설되면서 남쪽의 페트르잘카 신도심과 구시가지가 바로 연결되었으나 성당 주변에 밀집되어있던 유대인 지구는 완전히 철거되고 말았다. 미래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흔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역사가 상상에서만 존재하는 과거가 되어버린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건물이 오래되거나 원래의 뜻과 달라지면 대개 두 개의 미래를 맞이한다. 조금 더 고쳐서 오래 쓰거나 아니면 새로 짓거나. 지나간 과거를 너무 감상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왔던 이 공간이, 그리고 이웃의 삶이 얼마나 가치 있던 것이었는지 한 번쯤 깊게 생각해 봐야 하지는 않을지. 이런 상황이 주어진다면, 당신은 어떤 미래를 선택하겠는가?
원문: 고건수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