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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가 트리플-트리플 콤비네이션을 다시 뛰진 않겠지만, 이 어릿광대를 그만 보내달라며 아디오스를 노래하던 선율과 그 몸짓은 마치 각인처럼 남아있다. 그 몸짓이 그려낸 직선과 곡선은 그야말로 문화와 예술이 스포츠와 만난 가장 아름다운 조형이었다.
올림픽 정신이란 “스포츠를 통해서 심신을 향상시키고 문화와 국적 등 다양한 차이를 극복하며 우정, 연대감, 페어플레이 정신을 가지고 평화롭고 더 나은 세계의 실현에 공헌하는 것”이라고 근대 올림픽의 아버지 쿠베르탱은 말했다. 그가 주창한 올림픽 정신에 따라, 올림픽은 스포츠와 문화를 주제로 하여 세계인을 결속시켜왔다.
그런 의미에서 김연아의 위대한 퍼포먼스는 올림픽 정신에 가장 부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로부터 4년, 이제 평창에서 눈과 얼음이 빚어내는 제전의 무대가 펼쳐질 예정이다. 그리고 2018 평창 동계올림픽까지 일 년이 채 남지 않은 2017년, 한국은 문화올림픽이라 불리는 또 하나의 제전도 함께 준비하고 있다.
한때는 문화와 예술이 올림픽 정식 종목이었다
스포츠 제전으로서의 올림픽은 익숙하지만, 문화 제전으로서의 올림픽은 낯설다. 하지만 반세기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근대 올림픽의 아버지 쿠베르탱은 그리스의 고대 올림픽이 스포츠는 물론 음악, 시, 조각 등을 함께 겨루었음을 알고 있었고 근대 올림픽에서도 이를 재현하고 싶어 했다.
그 결과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에 처음으로 건축, 회화, 조각, 음악, 문학 등 5가지 예술 경기가 정식 종목으로 도입되었다.
작품은 스포츠를 모티브로 하여 올림픽과 스포츠의 이미지를 담아내는 것으로 한정했는데, 개중 가장 유명한 것이 문학 부문 금메달 수상작인 ‘스포츠에 바치는 시(Ode an den Sport)’이다.
문학 부분 금메달을 수상한 사람들은 ‘게오르게스’와 ‘에슈바흐’란 작가였는데 사실 이들은 존재하지 않는 인물들이었다. 왜나하면 쿠베르탱이 만든 가공의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쿠베르탱이 도입한 종목에 쿠베르탱이 출전한 뒤 쿠베르탱이 심사하여 1등을 먹은 셈(…)
어쨌든 이런 문화 예술 종목은 1948년 런던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정식 종목에서 물러나게 된다. 쿠베르탱 때문은 아니고(…) 측정도 어렵고, 프로와 아마추어를 구분하기도 어려우며, 예나 오늘이나 서민적이라곤 할 수 없는 예술의 속성 때문에 아무래도 퇴출당한 듯. 이때부터 올림픽은 오늘날과 같은 스포츠 제전으로서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된 셈이다.
스포츠와 문화 축제의 분리
그러나 ‘심신을 향상시키고 문화의 차이를 극복하여 더 나은 세계에 공헌해야 한다’라는 쿠베르탱의 이념은 올림픽 헌장에 여전히 남아있다. 비록 경쟁의 형태는 아닐지라도 올림픽과 패럴림픽 개최국은 문화 예술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하게 되어 있으며, 또한 그렇게 하고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는 한강축제, 거리축제, 전시축제, 한가위축제, 성화봉송 등 다양한 문화 축제가 진행되었다. 한강에서는 황포 돛단배를 제작하고 유등제를 거행하였으며, 거리에서는 상감마마 행차와 꽃차 퍼레이드가 재현된 바 있다. 인사동, 관철동, 낙원동 등 서울의 오래된 마을에서는 민속놀이를 거행하였고, 석촌호수에서는 서울놀이마당을 거행하여 14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프로그램은 축제라는 것을 떠올렸을 때 흔히 생각하던 전형적인 모습을 탈피하지 못했고, 그렇기에 문화올림픽만의 고유한 매력도 갖지 못했다. 한국인뿐 아니라 외국인도 함께 즐길 수 있을 만한 프로그램이 부족했기에 올림픽에 수반되는 문화 행사로서는 다소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사실 시대적 배경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냉전기를 아직 다 벗어나지 못해 문화 행사가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크게 벗어나기 어려웠고, 당시 한국의 상황도 먹고사는 문제를 벗어나 다양한 문화 융성과 같은 새로운 과제를 지향하기는 어려웠다. 당시의 문화 프로그램이란 ‘그 서울이 이렇게 발전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차원을 크게 넘어서지 못했다.
문화올림픽으로 융성하다
본격적으로 올림픽과 패럴림픽 문화 프로그램이 큰 변화를 이룩한 것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이다. 이때부터 관 주도가 아닌, 시민단체와 문화예술단체가 직접 참여하게 된다. 축제를 위한 축제가 아니라 ‘문화’가 메인이 되는 축제가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당시 바르셀로나는 4년에 걸쳐 문화예술 이벤트를 개최하면서 이를 ‘문화올림픽’이라 지칭했는데, 이것이 이후 올림픽 문화 프로그램의 양식으로 정립되었다.
평창 문화올림픽도 마찬가지다. 이번 평창 문화올림픽의 슬로건은 ‘평창, 문화를 더하다’로 정해졌다. 30년 만에 국내에서 다시 열리는 올림픽이니만큼 1988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문화올림픽이란 이름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젊은 예술인들의 창작 활동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시민단체와 문화예술단체의 자율적인 참여를 통해 말 그대로 올림픽에 문화를 ‘더하는’ 방식이 된 것. 기존 문화 예술 행사와 새로운 예술 행사, 전시회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평창의, 나아가 한국의 과거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보여준다.
기존 문화 예술 행사가 문화올림픽의 일환으로 치러진 대표적인 경우로 ‘드림콘서트’가 있다.
드림콘서트가 열리는 곳을 보면 알 수 있듯 문화올림픽은 평창에서만 열리는 것이 아니다. 춘천, 강릉, 원주 등 강원 주요 도시에서, 서울을 거쳐 목포, 안동 등 그야말로 8도를 통틀어 한반도를 수놓을 예정이다.
5월부터 열린 ‘평창올림픽과 함께하는 문화예술축제 14선’은 평창 문화올림픽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5월 안산 거리극축제와 춘천마임축제를 시작으로, 8월에는 목포에서 세계마당페스티벌이, 인천에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광주에서 월드뮤직페스티벌이 열린다. 9월에도 세계소리축제, 무술축제 등이 이어지며, 10월 서울거리예술축제와 광화문광장에서 열릴 아리랑페스티발로 대단원을 장식한다.
한국에서만 열리는 것도 아니다. 러시아, 체코, 핀란드 등에서 한국 전통 음악 예술과 서양 클래식 음악과의 협연이 시도된다. 차이콥스키 음악원 오케스트라, 볼쇼이 합창단, 핀란드 타피올라 신포니 등이 그 협연 상대. 6월에 이미 볼쇼이홀에서 한 차례 공연이 열렸고, 핀란드와 체코에서 9월, 10월에 다시 공연이 열릴 예정이다.
물론 평창이 주인공에서 벗어나면 섭섭하다. 4월에는 올림픽과 패럴림픽 이후 평창의 디자인 방향을 상상하는 ‘평창의 봄’ 전시회가 열렸으며, 7월 31일까지는 평창동계올림픽과 동계패럴림픽을 소재로 한 예술포스터 공모전이 진행될 예정이다.
7월 26일부터 8월 7일까지 경포해변, 안목해변, 사천해변, 강릉시내 등을 무대로 평창대관령음악제가 열릴 예정이다. 두번째달, 김반장, 전제덕, 말로, JK 김동욱 등 유명 연주음악가, 재즈음악가, 대중가수, 일렉트릭 음악가 등이 무대를 꾸민다.
서울 쪽에서 관심을 가질 프로그램도 많다. 평창올림픽과 패럴림픽을 주제로 한 미디어 예술 작품이 서울스퀘어 외벽에서 전시된다. 올 8월부터 2018년 3월까지. ‘청년, 새로운 미래, 평창’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올림픽과 패럴림픽을 소재로 한 미디어아트를 선보일 계획이다.
서울 5대궁에서는 궁궐을 무대로 꾸밀 ‘심쿵심쿵 궁궐콘서트’가 9월에 열릴 예정. 국악은 물론 클래식, 월드뮤직 등을 고궁을 배경으로 즐길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로맨틱한 기회로 9월 23-24일 양일간 열릴 예정이다.
억지로 만들어낸 축제가 아니라 록 페스티벌부터 드림콘서트에 이르기까지, 기존에 열리던 문화 축제들을 유기적으로 ‘평창 문화올림픽’ 이름 아래 모으고, 다시 또 ‘평창의 봄’이나 ‘청년, 새로운 미래, 평창’과 같이 평창 올림픽과 문화를 유기적으로 결합하고자 하는 시도가 눈에 띈다.
이를 통해 평창 문화올림픽은 평창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에 대한 관심을 촉진하는 것은 물론, 강원에 공공디자인을 확충하고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문화 그 자체를 육성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앞으로도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 기간까지 한국의 다양한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그 가치를 드높일 평창 문화올림픽의 자세한 프로그램 내용은 공식 블로그를 통해 더 많이 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