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기 전에: 이런 글을 쓰는 필자는 누구인가
어렸을 때 독일에서 기나긴 시간을 보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졸업하면서 13년을 살았는데, 대학 시절인 2004년 피터 린치의 『One Up On Wall Street』를 읽으면서 주식에 관심을 가지고 곧바로 투자를 시작했다. 다음 해 학사 논문을 제출할 때 당시 관심이 많았던 ‘가치투자’에 대해 쓰려 했는데, 이것저것 뒤져보다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아니? 노벨상까지 받은 교수들이 어떤 방법으로 주식을 사면 주가지수보다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지 논문을 썼네? 그리고 교수들은 정확히 어떤 규칙으로 주식을 사고팔았는지, 어떤 지표나 숫자를 봤는지 표기가 되어 있네? 그럼 이 전략은 누구나 따라 할 수 있잖아?
결국 이 지표와 숫자만 보고 투자하고, 사고파는 규칙이 정확히 명시된 ‘계량 가치투자’를 학사 논문의 주제로 삼았다. 졸업한 후 2006년 7월 한국에 귀국해서 본격적으로 투자를 시작하고 지금까지 약 11년간 투자해서 복리수익 약 14%를 올렸다. 14%가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지금까지 사회생활을 하면서 아직 월급을 지출해본 적이 없다. 모든 지출과 생활비는 주식시장에서 끌어왔으며 8년 동안 월급이 모두 종잣돈으로 흘러가서 지금은… 당분간 돈 걱정할 일은 없다고 해두자.
투자 방법은? 대학 졸업할 때 저명한 교수님들의 논문을 따라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않았는가? 주식에 내 돈이 들어가니까 저런 논문 수백 개가 술술 읽혔다. 덤으로 CFA라는 금융자격 시험도 보고 통과했다. 가장 존경하는 교수/투자가인 벤저민 그레이엄이라는 사람이 저 자격증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내 돈을 투자하니 알아서 관련 공부를 하게 되더라.
결론적으로 머리 좋은 교수님들이 ‘어떻게 투자하면 돈을 버는가’에 대해 정말 많은 연구를 하셨다. 관련 논문은 수백 개 있고 계속 새로운 논문이 쏟아져 나와서 재밌는 논문 위주로 많이 읽었다. 그리고 2006년부터 10년 이상 그런 연구 중 괜찮아 보이는 걸 따라 해봤다. 이게… 진짜 되더라! 2008년을 제외하고는 연 단위로 아직 마이너스 수익을 기록해 본 적이 없다.
나처럼 투자하는 투자가들이 대다수인 줄 알았다. 물론 돈을 잃는 멍청한 투자가가 많은 것은 알았다. 주식 땜에 파탄 나는 가족도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러나 초보자를 벗어난 투자가들은 당연히 대부분 나처럼 투자할 줄 알았다. 이렇게 완벽히 검증이 끝난 전략을 똑같이 따라 하는 것보다 손쉬운 방법이 어디 있는가?
심심해서 2016년 하반기부터 페이스북에 본격적으로 투자 글을 올렸을 때 알았다. 나처럼 이렇게 오래, 저런 식으로 투자한 사람은 최소한 한국에는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을. 심지어 저런 방법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모르는 투자가들이 엄청 많았다는 것과, 투자 논문도 읽은 사람이 매우 적다는 사실도 덤으로 알게 되었다. 매우 단순한 계량투자 전략만 올려도 피드백이 매우 좋았다. 신이 나서 더 많은 글을 쓰고 바야흐로 카카오(?), SNEK 등에 글을 정기적으로 게재하게 되었다.
참, 필자는 금융기관에 근무하지 않는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근무하며, 독일 근무 4년 후 본사로 돌아와서 북미지역(!) 시장조사를 맡으면서 요즘은 주로 트럼프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분석한다. CFA 자격증 공부할 때만 해도 나이브하게 금융기관에 입사할 생각을 했는데, 분기 투자수익이 낮아서 고객과 상사의 지랄을 듣는 것보다는 KOTRA처럼 재미있는 동료들이 많은, 즐거운 회사에 다니며 금융연구 및 투자를 사이드로 하는 것이 훨씬 더 삶의 질이 높다는 사실을 알아채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왜 대다수 투자가는 실패하는가
자기소개는 그만하고 본론으로 가자. 결론은 가장 앞에 쓰겠다. 경험상 성공적인 투자전략은 구체적이고, 계량화가 가능하면 좋다. 최고의 투자전략은 누구나, 즉 초보 투자자도 곧바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하고 오해의 소지가 없는 전략이다. 즉 요리사가 바뀌어도 상관없는 식당의 레시피처럼 투자자가 바뀌어도 동일한 방법으로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매수·보유·매도 기준이 체계적이고, 계량적이며, 오해의 소지가 없는 명확한 규칙을 따라야 한다. 왜 이렇게 틀에 박힌, 아니 ‘규칙과 숫자에 박힌’ 투자전략을 구사하라고 하는 것인가? 투자전략의 구체성이 떨어지고 계량화가 어려우면 투자 과정에 어쩔 수 없이 사람의 주관성이 개입하게 된다. 그리고 인간의 주관성 개입은 최소한 주식투자 분야에서는 대부분 패망의 지름길이다.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당신이 정상인이고 소신껏 투자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왜? 앞으로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우리의 뇌는 모순투성이다. 우리는 우리가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동물이라고 착각한다. 물론 두뇌를 풀가동해서 매우 열심히 노력하면 가끔, 정말 아주 가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는 정말 예외상황에서나 발생하는 일이다. 우리의 두뇌는 그런 판단에 익숙하지 않다.
행동경제학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경제학 노벨상을 받은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교수는 우리 머릿속에는 두 가지 시스템, 즉 시스템 1과 시스템 2가 존재한다고 정리했다.
시스템 1에는 우리가 다른 동물들과 공유하는 본능적인 능력이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갑자기 소리가 난 곳으로 주의를 돌린다든지, 상대의 목소리에서 적대감을 감지한다든지, 불에 데면 손을 뺀다든지 하는 행위는 시스템 1의 통제를 받는 것이다. 시스템 1은 직관적이고 생각이 필요 없으며 빠른 반응을 보장한다.
시스템 2는 복잡한 계산 등 정신적인 노력이 필요한 상황에 가동된다. 예를 들면 2+2=4 같은 문제는 시스템 1을 통해 감각적으로 풀 수 있다. 그러나 17×24 같은 복잡한 계산이 필요한 문제의 경우 시스템 1은 답이 5나 5000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아채지만, 정확한 값인 408을 구하기 위해서는 시스템 2를 사용해야 한다.
시스템 1은 일상생활에서 매우 요긴하게 쓰이고, 익숙한 상황에서 별생각 없이 정확한 반응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고 작동을 단 한순간도 멈출 수 없다. 2+2=4라는 것을 머릿속에서 계산하지 못하게 막을 수 없고, 큰 소리가 나면 무조건 당신의 관심은 처음에는 그곳을 향한다. 슬픈 건, 시스템 1은 논리와 통계를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특정 상황에서 일정한 패턴의 오류를 보인다. 이를 편향(Bias)이라고 한다. 곧 시스템 1은 어떤 편향을 따르는지, 이 편향들이 투자에 얼마나 치명적인지 배우게 될 것이다.
더 심각한 건 논리적·합리적 판단 담당인 시스템 2는 의지가 없으면 작동하지 않는다. 따라서 시스템 2의 작동은 노력과 주의가 필요하다. 따라서 정상인은 일상생활을 하면서 대다수 경우 감각적·직관적인 시스템 1의 통제를 받고 아주 가끔 필요할 경우에만 논리적인 시스템 2를 쓰는 것이다.
피곤하고 배고프고 귀찮고 바쁘고 주의가 분산될 경우 시스템 2를 가동할 노력과 에너지를 투입하기 어렵다. 이 경우 우리는 시스템 2가 필요한 경우에도 시스템 1의 명령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가끔 살다 보면 시스템 2를 평생 써본 적 없는 것처럼 보이는 멍충이들도 만나지 않는가?
즉 정상인은 대부분 시스템 1의 지배를 받아서 직관에 따라 움직이고 가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데 이조차도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상인은 여러 이유로 그 노력을 하지 않을 경우가 많다. 이 경우 논리가 필요한 상황에서도 직관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시스템 1은 간단한 상황에서는 옳은 결정을 내리지만 논리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오류, 즉 ‘편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못 하는 것은 주식시장에서는 치명적이다. 아쉽게도 주식시장은 우리의 직관으로만 대처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당신이 정상인이면 당신의 시스템 1이 만드는 편향이 당신 계좌를 말아먹을 것이다.
우리의 투자수익을 박살 내는 이놈의 편향, 첫 번째
카너먼의 ‘행동경제학’은 시스템 1이 구체적으로 어떤 편향에 약한지 연구하고, 따라서 인간이 공통적으로 주식투자에서 실수하는 원인을 제시한다. 내가 이런저런 계량투자 전략을 연구하면서 가장 놀랐던 점은 한국에서 알파를 창출한 대다수 전략은 해외 증시에서도 알파를 창출했다는 점이다. 마치 약속했듯이 말이다.
그런데 각국 투자자 대표단이 만나서 “저 PER주를 밀어줍시다! 주가지수보다는 저 PER주가 미래수익이 높아야 하지 않겠소?” “그럽시다! 허허허!” 이런 식으로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도 본서에 나오는 투자전략들이 전세계 공통으로 통한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왜 그럴까?
계량투자 전략은 앞으로 2회에 걸쳐 설명할 ‘인간의 편향’을 역이용해 알파를 창출하는 것이다. 인간의 편향이 기업의 내재가치와 주가의 괴리(mispricing)를 만든다. 이 괴리는 모든 증권시장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인간의 편향은 어딜 가도 비슷하니까. 시간이 지나 괴리가 해소되면서 일시적으로 저평가된 기업들은 제값을 찾아간다. 이 과정에서 알파가 생긴다. 따라서 인간의 편향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의 두뇌도 저 편향을 따른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최대한 저 편향을 이해함과 동시에 본인이 저 편향에 휩쓸리지 않게 특히 유념해야 할 것이다. 대표적인 몇 가지 사례만 살펴보도록 하자. 우리는 모두 인간이기 때문에 아래의 심리적 함정, 즉 편향에서 벗어나기 매우 힘들다. 시스템 2로만 움직이는 인간은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I. 일관성(Consistency)
투자에서는 일관성이 매우 중요하다. 성공적인 투자는 별거 없다. 어느 전략을 선택하던, 일관성 있게 장기적으로 그 전략을 유지만 하면 돈을 벌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가치투자자는 꾸준히 수십 년간 PER, PBR, PCR 등 가치지표가 우수한 주식을 사면 부자가 될 수 있다.
아쉽게도 일관성 있게 행동하는 사람은 사람을 발견하기 힘들다. 당신의 친구를 보라. 똑같은 말을 해도 기분 좋을 때는 재밌는 농담으로 받아들이고 기분 나쁘면 삐지지 않던가? 그렇다고 그 친구는 이중인격자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인간은 100% 일관성 있게 행동하기 불가능하다.
이렇게 살아도 사회생활에는 별문제는 없다. 모든 정상인은 다 저러니까! 그러나 이런 식으로 판단이 오락가락하면 주식투자에는 치명적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강조하는데, 이렇게 오락가락하지 않는 사람은 내가 아는 사람 중 단 한 명도 없다. 일관성 있는 행동이 이렇게 힘든데, 일관성 있게 투자하는 행위는 얼마나 힘들겠는가?
주식시장에 적용해보자. 정상인은 똑같은 조건을 가진 주식을 분석해도 우리 기분, 건강, 배고픔, 피로, 날씨, 오늘 본 신문 내용, 점심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등 투자에 전혀 관계없는 요소에 따라 우리의 가치판단이 좌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데 저런 식으로 한번 몇 년 투자해 보시라. 계좌가 남아나나.
II. 과잉확신 편향(Overconfidence Bias)
정상인은 모두 남보다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한다. 이를 과잉확신 편향이라고 하고, 요즘 젊은이의 언어로 ‘근거 없는 자신감’ 줄여서 근자감이다. 사람들에게 “당신의 운전 실력은 남들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 됩니까?”라고 물어보면 80% 이상이 “평균 이상의 실력을 보유했다”고 대답한다. 물론 실제로 평균 이상 수준을 보유한 운전자의 수는 50%를 넘을 수 없다.
원시시대에는 오늘 사냥에 실패하더라도 “그래도 내일은 사슴을 잡을 수 있어!”라는 근자감이 생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사냥꾼이 하루 이틀 사슴을 못 잡았다고 “내가 이려려고 사냥꾼이 되었나” 한탄하며 자괴감에 빠져서 집에서 한숨만 쉬었다면 인류는 아마 멸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투자할 때 근자감은 위험하다. 별 볼 일 없는 주식과 사랑에 빠지고 그 주식을 ‘믿게’ 되면 그 주식이 별 볼 일 없다는 확실한 반증을 아무리 많이 제시해도 당신의 근자감을 믿고 그 주식을 밀고 가기 때문이다. 결국 망한 후에야 정신을 차리기 마련이다.
주식시장에 적용하면, 한국에서는 1~2종목만 보유한 개인투자자들이 전체의 60%(!) 이상이었다. 이 통계만 봐도 한국 투자자들이 얼마나 심한 과잉확신에 사로잡혀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 내가 매수한 1~2개 주식이 “상승할 거야~”라고 믿는 것이다. 나중에 변동성이 높으면 망할 확률이 높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종목을 1~2개로 제한하는 행위는 쓸데없이 변동성을 높이는 바보 행위다. 그리고 이 통계를 보면 한국 투자자 중 최소 60%는 멍청한 짓을 한 것이다. 이들 중 대부분은 정상인일 테니, 또 한 번 정상인이 임의로 투자하면 망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물론 이 중 대다수는 다른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과 지능을 보이는 분들일 것이다.